2017년 8월 15일 화요일

헌책방

헌책방 이라는 단어에는 유화 물감과 같은 진득한 끈적임이 있다. 단지 낡은 것에서 오는 시간의 무게가 아닌 다른 무엇.

동네에 헌책방이 하나 들어섰다. 20여년전 종로에 갈 일이 있으면 가끔씩 들리던 헌책방을 떠올려 볼 때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는 장소 -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동탄에서도 어느 곳에서든 보이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에 Aladin 에서 하는 헌책방이 들어섰다. 아내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언뜻 장소가 그려지지 않을만큼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초고층의 주상 복합과 헌책방.

기대 그리고 궁금함이 어울어진 마음으로 찾은 그곳은 내 기억속의 헌 책방과는 사뭇 달랐다. 켜켜이 가로로 쌓여 있는 책들 사이로 미로처럼 돌아다녀야 했던 그곳이 아니라 전산으로 책의 위치가 검색되고 책의 상태에 따라 가격 표지가 붙어 있는 무척이나 현대적인 모습의 장소였다. 심지어 검색할 때 이미 책의 상태와 가격을 미리 알 수 있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쯤 전자책이 종이책의 유통 규모를 뛰어 넘을지는 알 수 없다. 편리성이라는 단 하나의 장점 만으로 뛰어 넘기에는 아직 종이책의 벽이 높은 것일 수도 있다. 내 경우만 봐도, 읽고 싶은 책과 소장하고 싶은 책은 분명히 다르며 아직은 소장하고 싶은 책의 경우 디지털 형식이 아닌, 출판된 종이책으로 구매하고 있다. 종이책을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저렴한 문고판이 아닌 일반판을 사는 것을 고려할 때 다른 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지는 개인마다 다를테니 책의 종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여하튼 첫 방문에서 하루키의 장편 소설인 1Q84를 구입했다. 일부러 찾아보진 않았지만 구글 스토어에서 구입하는 전자책 버전의 비용과 그다지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한참을 읽었기에 약간은 너덜너덜해져서 새 책 특유의 뻣뻣한 느낌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종이책으로 책장에 꽂아두고 한권씬 뽑아서 읽는 그 기분은 태블릿으로 화면을 쓸어가며 읽는 전자책과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형태가 비록 낯설지만 헌책방이 동네에 생겨서 정말 고맙다. 서점 특유의 분위기가 느끼고 싶어 간혹 강남 교보문고까지 나들이를 다녀오곤 했는데 나들이의 횟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내 책장의 책도 늘어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