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을 이용해서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서해 남당리에 다녀왔다. 유달리 대하회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결혼 기념일 여행으로 다녀온거다. 결혼기념 여행이라면 둘이 가는게 보편적이지만 청주에서 늘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께서 평소 우리와 함께 어디든 여행을 다녀오시길 원하셨던게 기억나 마침 토요일 시간이 비는 걸 이용해 새벽같이 청주에 내려가 모시고 서해에
함께 갔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내 제안에 군말없이 방긋 웃으며 따라준 아내에게 너무가 고마운 하루였다.
그 고마움에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께 조금 눈치가 보이긴 했어도 대하회를 좋아하지만 스스로 껍질을 벗기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대하를 거의 입대 대지도 않고 쉴새없이 껍질을 벗겨 아내 앞접시에 놓아줬다. 2년전에 서해에 왔을때도 난 거의 먹지도 않고 아내에게 껍질을 벗겨줬던 생각이 났다.
착하고 현명한 아내와, 누구 못지않게 까다로우시고 너무나 정확하신 성격임에도 며느리에게 만큼은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머니.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내 가족을 바라보며 내가 참 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물론 내 어린시절에 지금 당신의 며느리를 대하시는 것처럼 그럴수도 있다는 끄덕임으로 어머니께서 날 키우셨다면 조금 더 숨통이 트이는 어린시절이었을 거란 투덜거림도 살짝 해본다. 너무나 자로 잰듯한 생활을 강요하셨던 터라.)
이제 12시간 후면 결혼식을 올린지 2년째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결 혼한 지 2년. 날 가만히 지켜보면, 결혼식 올리고 다음날 서툰 운전 솜씨로 조수석에 아내를 태우고 청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던 그 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은근히 물어본, 내게 서운했던 거나 고쳤으면 하는 것을 이야기 해보라는 말에 그런거 없다는 아내.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내 아내에게 서운했거나 고쳤으면 하는 점이 단 한가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그렇기 때문에 연애하면서부터 결혼후 2년이 지나기까지 단 한차례도 싸우기는 커녕 의견 충돌로 서로 얼굴을 붉힌 적조차 없는 것이겠지만.(한번쯤 일부러라도 긁어보고 싶다. 화가난 내 아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정말 궁금하다.)
워낙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내가 최고의 상대여서 그런 것도 있고 어지간한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내 성격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누군가 내게 내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아마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내 삶은 분명 달라질 것.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 다시 결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수십년동안 세명 이였던 우리 가족이 딱 한달간 네명이었던 그 시절. 언젠가 내가 내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 다시금 네명, 다섯명이 되겠지만 결코 비교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 네식구였던 그 시절. 돌아간다면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