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연구실에 혼자 있으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물론 그것이 밤샘을 해야해서 새벽에 혼자 있는 경우는 제외되어야 겠지만.
최근 10년 정도를
그래서일까? 도보여행에 대한 미련이 점차 커지고 있다.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벗어던지고 배낭 짊어지고 신발끈 질끈 동여맨 다음, 며칠간 비와 바람과 햇살을 맞아가며 어디론가 걷고 싶다. 이십대 중반에 겪었던 그 도보여행의 후유증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심호흡, 인내 그리고 최대한 즐겁게.
과제 회의가 있어 수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다행이 화정에서는 수원까지 다니는 시외버스가 있어 복잡하게 교통편을 전전하지 않고도 한번에 수원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먼 거리가 가까워 지는 것은 아니지만 화정에서 수원으로 출근하기 위해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역삼동 까지 내려가야 했던 때에 비하면 편하기 이를데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회의 시간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출근 러시아워를 피해 버스에 몸을 싣고 며칠전부터 정신없이 읽고 있는 책을 펴들었다. 그러다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을때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버스의 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의 모습이 영 낯설었기 때문이다.
곧게 뻗은 도로 옆으로 멀리 우회하여 반대편 차선으로 다가서는 진입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새였다.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고 고개를 길게 빼어들고 운전석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이 화정으로 이사온 후로 수십번은 왕복했을 바로 그 도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나서 의자에 몸을 다시 묻으며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문 밖 풍경은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수없이 운전을 하면서 지났던 길이지만 정면을 배제하고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풍경의 모습이 색다른 것에 놀랐던 것이었다. 원래가 갔던 길을 거꾸로 돌아오면 같은 길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심한 길치이기는 하지만.
그 진입로 역시 처음 보는 것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와 뒤로 지나가는 풍경과 옆으로 다가와 옆으로 사라지는 풍경의 차이점은 내겐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길이라는 것의 속성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닐런지.
같은 곳을 걷더라도 걷는 방향에 따라,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그리고 누구와 걷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바로 그 속성 말이다.
길...을 테마로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해 보면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늘상 만나는 것이 바로 그 길이지만 남들이 그 길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바라본 길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볼 수 있을런지.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막내고모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에 사진을 제법 여러장 찍었다. 아산병원은 걸어가는 길을 참 잘 꾸며놓은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