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충동 구매라 할 수 있는 마우스 클릭질로 샀던 그 책의 제목은 ‘개밥바라기 별’ 이었다. 사람이 지적 동물임을 증명하는 수단 중 하나인 ‘체계화 된 언어를 통한 느낌의 구체화’ 라는 것이 얼마나 별볼일 없는 것인지 그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는 순간 다시한번 깨달았다. 금성(金星) 이라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한자어에 비해 개밥바라기별 이라는 순 우리말은 얼마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가. 그것이 순 우리말이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책의 제목을 금성 혹은 샛별 이라고 지었으면 어땠을까. 아니, 아예 이 시대가 앓고 있는 영어 상사병에 부합되게 venus 라고 붙였다면 어땠을까. 동일한 사물을 지칭하는 많은 어휘가 있고 이중 평소 들어보지 못한 어휘가 사람들의 주목을 조금 더 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개밥바라기별 이라는 제목은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물론 아직 소설을 반의 반도 채 읽지 않은 입장에서 그 제목의 적절성을 논하는 것만큼 웃음거리가 되는 일도 없겠지만 어쨌든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랬다. 만일 내가 개밥바라기별이 무엇인지 몰랐다면 다른 반응을 보였을까.
시덥잖은 소리....지쳐있는가 보다.
가루녹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간이 녹차를 한잔 앞에 놓아두고 책을 손에 넣은지 날수로 사흘째 되는 날 저녁인 오늘에서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의 하드 커버를 싸고 있는 매끈한 종이로 된 얇은 겉장을 벗겨내 버렸다. 어떤 사물이든 그것을 덕지덕지 감싸는 것들의 존재를 싫어하는 건 아마 수십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으리라. 난 책 표지를 보호한다고 매끈한 종이로 한겹 싸 놓거나 홍보용 종이를 접어서 다시 한번 그 위에 둘러싸 놓는 것이 너무 싫다.(그런 것들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책 만드는 일을 하시는 다희님한테 물어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텐데.) 어쨌든 그렇게 책의 옷들을 벗겨버리고 한시간 정도 읽다가 책을 소리나게 덮어 버렸다. 왜 그리 집중이 안되던지. 책을 읽는 내내 자꾸 엉뚱한 상상이 머리속을 파고들어 내 의식을 책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인도하려 했다.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어가며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더이상 책을 잡고 있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엉뚱한 상상이라고 적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모든 의식은 자꾸 컴퓨터 키보드를 향하고 있었다. 음악을 작게 틀어두고 모처럼 여유있고 조용한 휴일 저녁을 보내고 있던 내게 필요한 것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었다.
장담하지만 ‘어떤 글’ 이냐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혹 혼자 끄적여 놓곤 하는 단편 소설이어도 좋았을 것이고 가장 즐기는 수필이어도 혹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거의 쓰지 않던 시였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마 내 머리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자로 구체화 시켜 쏟아내지 않고 너무 오래 담아 두었기 때문에 그처럼 머리속이 뒤죽박죽이었을 것이다. 어떤 글을 써야 겠다는 구체화도 없이 일단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자 마자 이처럼 손쉽게 문장이 쓰이는 것을 보면 그동안 잘도 참아 왔구나 싶다. 하지만 어떤 강제적인 제지가 있어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블로그에 자주 글을 쓰긴 했다. 길지 않은, 짧은 시간에 쓸 수 있는 글들을. 하지만 그런 글을 통해서는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런 부분의 해소가 필요했지만 평소에 문서 작성기를 켜놓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자면 내가 처한 현실이라는 것에 의한 압박감(이런 글 쓰는 시간에 논문을 한편 더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때문에 섣불리 첫글자를 입력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오늘 저녁 드디어 잔을 넘은 것이다. 봐야 하는 논문 여러편이 키보드 바로 옆에 쌓여 있고, 보려고 마음 먹었던 책도 놓여있지만 임계점을 넘은 참을성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마음 편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아마, 다 쓰고 난 이 글은 쓰레기일 것이다. 어떤 목적도, 주제도 없이 그저 욕망을 배설한 배설물에 불과할테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래서 배설 후의 쾌감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아마 어처구니 없다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배설의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지난 몇년간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졌고 올 봄부터는 특히 재미를 붙여 제법 많은 사진을 찍으며 지냈지만 분명 내 가장 큰 취미는 글쓰기일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 두 취미를 비교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은 없고 그저 내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부스러기들을 치우는 수단으로 사진보다 글쓰기를 꼽고 싶다. 정확히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겨울부터 시작된 취미였으니 제법 오래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게 ‘업’ 이 아니라 ‘취미’ 라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하다. 그처럼 오랜 세월 해왔으면서도 늘지 않는 어휘력과 문장력이라니.
어처구니 없게도 손이 아파온다. 키보드 때문이다. 집에서 쓰는 아이맥을 구입할 때 같이 온 맥용 키보드는 키감이 너무 뻑뻑해서 키를 입력할 때 평소보다 손과 손가락에 힘을 많이 줘야 한다. 그래서 일정시간 타이핑을 쉬지 않고 하면 손가락과 손에 무리가 온다. 답답한 것은 그 ‘일정시간’ 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아마 여기서 더이상 키보드를 두드리면 짜증이 나기 시작하겠지. 내년엔 꼭 키보드를 새로 구입하리라.
마침 공교롭게도 스피커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흘러 나오고 있다. 음악을 듣는다는 핑계로 이쯤에서 배설을 멈추고 변기의 물을 내려야 겠다. 12월 29일 밤 10시 23분.
2008년이 끝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