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Persnal Profile System

연수 받는 동안 했던 여러가지 테스트와 강의 중 흥미로왔던 테스트가 있어서 포스팅 한다. Persnal Profile System 이라고 개인의 행동양식을 분류해서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평가였다. 흔히 DiSC 진단 이라고 하는 평가다.

나는 D형으로, 그 중에서도 개발자형 행동 양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됐다. 특징을 나열해보면,

정서 : 독자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목표 : 새로운 기회를 얻음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 :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정도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점 : 독자적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일할 때 개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조직에의 공헌 :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거나 도전의 기회가 막혀버리면 공격적으로 된다
압력 아래서 : 일을 끝내야 할 때 혼자가 된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거나 도전의 기회가 막혀버리면 공격적으로 된다
두려움 : 할일 없이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일;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

기타 코멘트로는,

"직선적이고 강인한 행동을 하지만 사람이나 상황을 선명하게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도록 강요받으면 공격적으로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비판적으로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종종 무관심해 보이기도 한다"

등이 있다. 그 밖에 신문을 볼 때 헤드라인만 본다든가(매우 뜨끔!) 이런 말투를 갖고 있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너무 유난떨지 마십시오' '어린애처럼 굴지 마십시오' 등....

2주간 함께 교육받은 팀원들이 마지막날 롤링 페이퍼에 쓴 말도 장점으로는 열정과 기획력, 리더쉽, 추진력 등을 열거한 반면 단점으로는 지나친 승부욕 등을 꼽은 걸 보면 아주 틀린 것은 아닌가보다.



한달만의 포스팅

지난 2주간은 그룹 연수를 다녀오느라 연수원에 있었고, 그 전 2주는 한달동안 할 일을 2주에 몰아서 하느라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포스팅이 근 한달만.

연수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2주만에 규헌이가 부쩍 자랐다는 느낌이 든다. 뭐라고 옹알대는 소리도 조금 길어진 듯 하고. ^^

ps
감기에 걸려서 온 탓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지만 그래도 규헌이를 보고 싶어서 끙끙 알았던 지난 2주를 생각해보면 더 이상 뭘 바라랴 싶다. :-)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일상으로 복귀

그룹 연수를 마치고 지난 24일 집으로 돌아왔다. 경력직 입사자들 입문 교육 과정이라 모든 연수생들이 모두 경력직들이어서 그분들의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 듣는 재미가 2주간 쏠쏠했다.

인터넷이 연결 안된건 아니었지만 몇대 되지도 않는 PC 에 늘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탓에 난 포기하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다행이 세상이 크게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

감기에 걸린 탓에 규헌이도 제대로 안아보지 못하고 집에서 방콕하고 있지만 역시 집이 좋다. :-)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2주간 연수원으로~

내일부터 2주동안 연수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는다. 그곳 여건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설마 인터넷도 연결 안되지는 않겠지.

암튼, 푹 쉬다 와야지. :-)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연휴

잠시 후 퇴근하고 나면 이번주 근무는 끝이다. 다음주 부터 2주간 연수원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출근을 못하기 때문에 2주간 일과는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 연수원에서 나오는 건 24일 오후. 25일은 금요일로 크리스마스. 25일까지 연수원에 있는 걸 피하기 위해 그룹에서 주말에도 교육을 진행하고 대신 12/31에 대휴를 하루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어제 크리스마스 연휴와 신정연휴 사이의 나흘을 권장 휴무일로 지정하고 휴가를 쓸 사람은 연이어서 쉬라고 지침을 내려왔다. 내 경우엔 12/31이 원래 대휴였기 때문에 3일만 휴가를 쓰면 오늘(12일)부터 시작해서 다음달 3일까지 무려 23일을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황당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더군다나 내가 있는 팀은 휴가 쓰는데 눈치보면 분위기 나빠진다면서 휴가 쓰는건 아무도 터치 안하는 분위기.

...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업무 공백도 걱정되거니와 양심상 도저히 그리는 못하겠어서 휴가 안쓰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또 언제 한달중 23일을 연이어 출근 안하는 경험을 해볼까 싶어서 아쉽긴 하다.
^_______________^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Mac 용 구글 크롬 발표

기다리고 기다리던 Mac 용 구글 크롬이 발표됐다.



그리고 공지 메일에 구글 특유의 유머가 담겨 있어서 더 즐겁다. 도대체 어떻게 카운트 했는지 모르겠지만,

8,760 cups of soft drinks and coffee consumed
4,380 frosted mini-wheats eaten

데굴데굴. :-D

퇴근하면 바로 설치해 봐야지. ^^

UPDATE 2009.12.10. 09:53 pm
인텔맥 전용이란다. ㅡㅜ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초롱이 집에 오다

디스크-_- 로 장기간 치료를 받던 초롱이가 지난 주말 석달만에 집에 왔다. 좀 야위긴 했는데 앞으로 허리 때문에라도 예전보다 더 체중 관리를 해야 한단다. 그래도 걷지도 못했던 상황을 떠올려 보면 감지덕지다.



어쨌든 이렇게 초롱이와 규헌이의 첫 대면이 이루어 졌다. 아직은 초롱이가 규헌이를 무서워 하고 있어서 반경 1미터 안으로는 오라고 해도 안온다. 뭐, 차츰 나아 지겠지. 어쨌든 규헌이의 첫번째 친구이자 경쟁자가 될테니까. :-)



자상한 아빠, 엄한 아빠

친구 녀석이 메일로 궁금함을 전해왔다. 내가 자상한 아빠가 될지, 엄한 아빠가 될지 궁금하다나?

...

나도 궁금하다. 자상하면서도 엄한 아빠는 너무 이상적이겠지? 암튼, 결론은 나도 궁금하다는 것. :-)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2009년 11월 28일 토요일

밤 잠

규헌이와 함께 조리원에서 나와 집에 온지 대충 일주일이 되어간다. 밤에는 두번 정도 배고프다고 우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들게 굴지는 않는다. 좀 더 있어봐야 안다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제법 양호한 것 아닌가?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 주부로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둘 중 한명이라도 낮에 쉴 수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수유커버 도착

호주로 이민간 친구가 규헌이 태어난거 축하한다면서 보내주겠다는 선물이 도착했다. 다름 아닌 수유커버. 일시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건 아는데 연락처를 알지 못해 감사의 인사를 직접 전하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포스팅을 한다. 이럴줄 알았으면 전에 통화가 됐을 때 전화번호라도 적어둘걸.(그 번호가 임시로 쓰는 번호인지 남의 전화인지 알 순 없지만)

땡큐. 남 신경쓰기 어려울 만큼 힘든 상황인거 잘 알고 있는만큼 뭐라 글로 적기 어려울 정도로 고마워 하고 있어. 메일로 인사 전해도 되지만 그것만으로 고마움의 표현이 부족할 것 같네. 정말 고마워. :-)



사람사이

참 어려운게 사람 사이다. 며칠을 업무 때문에 거의 잠을 못자고 일해도 몸은 힘들지만 그 일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일은 참 어렵다.

나는 감정이 상했다고 해서 사람과의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것 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철부지일 때는 그럴 수 있지만 적어도 20대를 넘기면서는 그래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처럼 감싸주려 애 썼는데 본인이 나서서 똥물을 뒤집어 쓰겠다고 애쓰는데야 더 이상 감싸줄 방법도, 명분도 없는 듯 하다. 이제 나는 모르는 일. 똥물이 나한테 튀는지 여부만 신경쓰면서 지켜보련다.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집에 오다

오늘 조리원을 나와서 집으로 왔다. 드디어 규헌이가 우리집에 처음으로 발도장을 찍었다.
^_____________^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카페 드 빠르코





날이 제법 추웠던 지난 한주간, 무척이나 제대로 내린 드립 커피가...카페 드 빠르코가 생각났었다.


현상소

동탄 인근에서 제대로 된 현상소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일단 현상을 하는 곳도 없을 뿐더러 찾은 곳도 제대로 현상을 해주지 않는다. 필름 수세도 제대로 하지 않아 얼룩이 남아 있는 상태의 필름을 봤을때의 황당함이란. 물론 자기들이 갖고 있는 좋은 스캐너야 그런 얼룩쯤 실시간으로 보정하면서 스캔하겠지만 그럴 경우 색감이 바뀌는 문제는 어쩌란 말인가. 집에서 스캔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아내가 찍는 필름들은 내가 모아서 쉬는 주말에 충무로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고는 필름을 쓰는 의미가 없을 듯 하다. 나 역시 충무로 가서 가끔씩 동호회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을 듯 하고.

아내도 나처럼 흑백을 쓰면 집에서 현상을 해줄 수 있는데 죽어도 흑백은 싫단다. ㅎㅎ 뭐..규헌이 사진은 대부분 컬러로 찍으라니 나도 몇년만에 컬러 필름을 써보게 생기긴 했지만. :-)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리듬세상

출산 후 병원과 조리원에서 심심하지 말라고 아내에게 사준 NDSL용 리듬세상을 아내가 무척 즐기고 있다. 지금도 등 뒤에서 쿵짝쿵짝 하고 있다. ^^

다행이 이제 규헌이가 요구하는 것을 만족시켜 줄만큼 충분히 수유할 수 있게 되어서 전처럼 고생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규헌이 수유하는 것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규헌이가 자는 동안에도 리듬세상을 즐기면서 즐겁게 보내는 듯 하다.

임신 기간에도 그랬지만 엄마가 즐거운게 최고인 듯 하다. :-)




400TX | Diafine



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의사표현

귀가 따갑게 들었던 내 어린시절 이야기가 있다. 다른 아기들은 걸핏하면 울어서 의사 표현을 하는데 반해 나는 어지간 해서는 울지 않고 참았다고 한다. 어디에 부딪혀도 그렇고 여하튼 잘 안울었다고 한다. 대신에 한번 울음이 터지면 어떻게 어르고 달래도 눈 딱 감고 목이 쉬어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까지 그치지 않고 울었다는데 제대로 터지면 4시간 까지 울기도 했단다. 그래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외할머니께서 날 업고 울어도 남한테 피해 안주는 역전 광장에 나가서 몇시간이고 그칠때까지 계셨었다고 했다.

가만 지켜보니 규헌이도 어지간해서 잘 울지 않는다. 소변은 고사하고 대변을 싸도 울지 않는다. 그저 하던 일을 멈추고(젖을 빨던 중이라 할지라도) 그냥 또랑또랑한 눈을 하고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게 다다. 그래서 아내는 규헌이가 갑자기 빤히 쳐다보면 기저귀를 확인하곤 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맞는다. 조리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규헌이는 어쩌면 그렇게 떼를 안쓰고 잘 울지 않느냐고.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퇴근해서 돌아오니 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그랬단다. 잘 울지 않더니 한번 터지니까 장난 아니네요 라고.

조금 전에도 내가 안고 유축해놓은 젖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먹는걸 거부하고 얌전히 있어서 아내가 급하게 확인해보니 대변을 왕창. 그런데도 울지 않고, 아내가 안고 나가서 목욕을 시키는데도 울지 않더란다.

슬슬 불안해진다. 저렇게 울거 안울고 잘 참다가 뭔가 못마땅한거에 터져서 나처럼 4시간씩 울어대면....난감한데. 차라리 울어서 의사표현을 분명히 해주는게 백번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ㅡ.ㅡ;;;



모유와 분유 사이

자연분만이 아닌 수술을 해야 해서 아내의 회복 기간이 좀 걸렸다. 모유도 바로 돌지가 않아서 처음 며칠은 분유로 수유를 해야 했고. 그래서 모유 수유로 전환하고 있는 요즘 규헌이 짜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물기만 해도 쉽게 나오던 젖병과 달리 모유는 말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해야 하니까.

몇 번 빨다 나오는 속도가 성에 안차면 울고, 그래도 젖병 안주고 계속 물리면 또 몇 번 빨다가 다시 짜증내면서 울고를 반복한다.(간혹 그냥 젖꼭지 입에 문체로 잠들기도 한다) 규헌이 입장에선 배고파 죽겠는데 찔끔찔끔 젖을 주는 것일테니 성에 안차기도 하겠지. 뭐...규헌이한테는 안된 말이지만 그렇게 우는 규헌이를 보면서 아내와 나는 즐겁다. :-)

모유량도 조금씩 늘고 있고 규헌이도 조금씩 힘이 늘고 있으니 곧 원활해 지겠지.

규헌아, 조금만 힘을 내보렴. 그래도 모유 수유 후에도 양이 안찬 듯 하면 보충 수유는 해주잖니. ;-)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Still life 091114 #1


휴식.
400TX | Diafine | K50.4



2009년 11월 8일 일요일

신종플루

얼마나 신종플루가 난리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규헌이가 태어나고나서 체감중이다. 병원에서 면회객 통제는 물론이거니와 부모가 자기 아이를 만나는 것 까지도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있다. 하긴, 남 이야기가 아닌게 태어난지 한달도 안되는 사촌형의 둘째가 신종플루에 감염되서 가슴졸였던 일도 있었다.(지금은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퇴원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집사람만 수유할 때 수유실에서 마스크에 손소독 다 하고난 후 규헌이를 안아보고 있을 뿐 나는 아직도 우리 규헌이를 품에 안아보지 못하고 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병원측이 그토록 신경질적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큼 통제를 엄격하게 하는게 불만인 건 아니다.

암튼, 동탄이 급속도로 환자수가 늘고 있다고 하니(몇개 안되는 초등학교들도 대부분 휴교한 듯)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일이긴 하다. :-(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60억 + 1

2009년 11월 6일 오전 10시 35분.

결혼한지 만 5년을 살짝 넘긴 어느날, 60억 인류에 +1 을 했다.

규헌이가 드디어 세상과 만난 날. :-)



2009년 11월 6일 오전 10시 35분

2009년 11월 6일 오전 10시 35분.

드디어 규헌이가 세상에 나왔다.



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파리바게뜨야 도와줘

어제는 다섯번째 맞는 결혼 기념일이었다. 평일이기도 했지만 아내가 움직일 수 없어 집에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모처럼 저녁을 먹지 않고 일찌감치 퇴근해서 동네에 있는 파리바게뜨에 갔다. 요즘 한창 "파리바게뜨야 도와줘~" 라는 TV 광고를 하고 있는 파리바게뜨의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였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다양한 종류의(디자인도 예쁜) 케이크들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보니 한창 저녁을 짓고 있는 아내가 밥은 먹어야 한다고 해서 케이크는 밀쳐두고 밥을 먼저 먹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배가 불러서 케이크는 손도 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ㅡ_ㅡ;;

둘이 함께 케이크를 먹긴 해야해서 하루밤이 지난 오늘 아침 식사 대신으로 케이크를 먹었다. 냉장고에 밤사이 넣어 두었더니 부드러운 크림들이 전부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묘하게 단단한 케이크가 되고 말긴 했지만. ㅡㅜ

어쨌든 오늘은 주륵주륵 비가 내리고 있고, 예정일이 우리보다 1주일 늦는 친구 부부가 놀러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집만 애가 나올 생각을 안하는게 아니라 그 집도 그렇단다. 그래도 대단하긴 하다. 예정일 2주 남은 임산부가 일산에서 동탄까지 놀러 오다니.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고 간다고는 해도 오는 것만 차 밀리고 비오고 해서 두시간은 족히 걸릴텐데.

규헌아, 별아. 너희들 오늘 나오면 곤란하단다. 알았지? ;-)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시간

사진 찍으러 다닐 시간이 없는 건 둘째치고 정물 사진 찍느라 소모한 롤이 집에 굴러 다니는데도 현상할 시간이 없어 그냥 쳐다만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주말에는 시간이 있었는데 좀 쉬다 보니 이틀이 훌쩍 지나 버렸다. 아....;;;

확실히 시간은 상대성이다. ㅡ_ㅡ;;



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주말 휴식

오랜만에 주말을 온전히 집에서 쉬었다. 예정일까지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쉰다고 해서 아내와 조금 멀리 나들이를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집에 있었다. 아내는 어딘가 무척 다녀오고 싶어 했지만 막상 가자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고민을 하다 아쉬워 하면서 그냥 있자고 하긴 했다. 이제 열흘정도 지나서 규헌이가 세상에 나오면 당분간은 어딘가 놀러 다닌다는 것은 힘들 일이 되겠지.

사람들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했다느니 낳고나면 그때부터 고생 시작이라느니 하면서 겁을 주지만 결국에 세상 모든 부모들이 겪는 일이고 다들 잘 견뎌내는 일 아니냐는 내 질문에는 머쓱해한다. 더군다나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정말 괴로와 하는 표정을 짓는 부모들을 본 적이 없다. 고생이라면서 모험담 늘어 놓듯 아이 키우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모두들 웃고 있다. 힘들지 않은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힘든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밝게 만들만큼 행복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씩 배가 당겨오는 일이 잦아진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한 고생이 될 우리 규헌이의 세상 나들이를 기다려 본다.


아이리버 스토리 주말 사용기

주말 내내 아이리버 스토리를 끼고 살았다. 텍스트 읽기 기능이 지원되는 휴대폰으로 보거나 전자책 읽기 기능이 있는 PMP등으로 보던 것과는 눈의 편안함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다만 해상도가 좀 더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작은 폰트에서는 글씨가 약간 흐릿하게 보이는 단점이 있다. e-ink 입자수가 많아져야 선명해 질테니 지금의 해상도에서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디스플레이도 유난히 새하얗고 질 좋은 종이를 쓰는 우리나라 제본 문화 때문에 비교가 많이 된다. 완전한 백색이 아니라 희미하게 먹색이 낀 디스플레이라서(신문 종이와 거의 유사하다)종이책을 보는 것에는 많이 뒤쳐진다.

주말 사용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좋은 가독성을 보여주는 것은 epub이었고 그 뒤를 이어 txt, pdf 순이었다. 전자책 전용 포맷인 epub 이 가장 좋은 가독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폰트나 줄 간격 등 구성에 따라서는 나쁜 것도 있었다. txt 는 줄간격은 약간 좁긴 했지만 변동 없는 가독성을 보여줘서 어느면으로는 epub 보다 더 낫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여서 두 포맷 사이의 차이는 미미했다고 보인다. 다만 pdf 는 많이 부족했다. 특히 교보에서 다운받은 전자책의 경우 pdf 라고는 하지만 e-book 단말기에 맞춰서 재구성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책을 스캔해서 그대로 만든 것이라 영 불편했다. 그냥 보려면 글씨가 너무 작게 나왔고, 확대하면(최대 배율에서이긴 해도) 일부가 화면 밖으로 잘린다. 가로보기를 하면 훨씬 보기 좋지만 그럴 경우 페이지를 지나치게 많이 넘겨야 한다.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보게 되는 논문은 괜찮았지만 소설의 경우 쉴 새 없이 깜빡거리면서 화면 전환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적절한 해결 방법은 아닌 듯 했다. pdf 파일은 그저 논문이나 읽을 때 쓸 것 같다.
(교보문고라는 국내 최대 서점에서 전자책이라고 내놓은 상품이 기존의 책을 그냥 스캔해서 pdf 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에 적잖이 실망했다. epub 형태도 있긴 했지만 책을 그대로 스캔해서 만든 pdf 상품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배터리는 생각보다 수명이 짧았다. 제품 스펙으로는 최대 9000페이지, 30권의 책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나 이는 순전히 디스플레이 갱신에 드는 전력만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에는 파일을 로딩하거나 페이지 확대를 위한 랜더링 등 전력을 소모하는 작업들이 많아서 저 스팩대로의 수명은 안된다.(특히 pdf 로딩은 오래 걸리고, 제대로 보려면 확대&가로보기 등의 랜더링을 더 해야 하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가 클 듯 하다) 이틀동안 음악도 약간 연주해보고, 파일 복사도 하고 책도 거의 계속 읽고 했지만 토요일 아침에 완충된 상태로 보기 시작해서 조금전에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서 동작을 멈추었다. mp3 음악들을 수기가 복사하는 등의 작업이 얼마나 전력을 소모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순수하게 책 읽는데 드는 전력 소모는 이번주에 다시 확인해 봐야 할 듯 하다.

결론적으로 백라이트로 빛을 눈에 직접 쏘는 LCD 에 비해 월등하게 좋은 편안함을 주기는 하지만 질 좋은 종이에 인쇄된 종이책보다는 조금 뒤쳐진다. 신문을 보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듯 하다. 냉정하게 판단해 볼 때 종이의 질감을 좋아하고 책을 소장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보다는 글 읽는 속도가 빨라 책을 읽고 치우는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적당한 물건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꺼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싫은 사람에게도. 수십권의 책을 넣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 큰 장점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수십권을 매일 읽어대지는 않을테니. 하지만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얇은 책 한권 무게로 대치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장점이라고 보인다.

교보에서 제대로 epub 파일을 판매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주 찾는 소설가들의 연재 블로그나 신문 내용들을 긁어다 txt 로 저장하는 툴이나 하나 만들어서 써야겠다. 그러면 읽을거리가 모자라지는 않겠지. 아니면 Gutenberg project 혹은 직지 살림을 제대로 이용할 시간이 된 것인지도. :-)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아이리버 스토리 구입



아마존에서 나온 킨들DX 에 군침을 흘리다가 이번에 아이리버에서 나온 전자책 리더기 '스토리' 를 구입했다. 윈도우에서 전용 프로그램을 써야만 동작하는 삼성전자의 멍청한 전자책 리더기와 달리 USB 메모리 연결과 같은 방식을 써서 컴퓨터에 연결한 후 읽고 싶은 전자책을 연결된 USB 메모리 폴더에 복사하기만 하면 끝난다. 한마디로 맥이든 리눅스든 USB 연결을 가진 모든 종류의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동작한다는 말.

한시간 정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매우 만족하고 있는 상태. :-)

ps
교보문고의 이북 컨텐츠를 맥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텐데 그런건 한국에서 기대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윈도우 노트북을 써야 하겠지. 그저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만 한국이 IT 강국이 되길 바랄 뿐이다.



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휴대폰 교체

우여곡절 끝에 회사내 매장에서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다. 수리비가 3만원 가까이 나왔는데 아무런 부가 서비스 없이 2만원에 기기변경 할 수 있는 모델이 있기에 5초도 고민하지 않고 기기를 구입했다.

애니콜로 구입하면 회사 입문하는 순간부터 카메라도 자동으로 동작을 멈추고(렌즈에 스티커 붙였다 뗐다 안해도 된다!) 바로 사내 전화로 전환 연결(통화료는 당연히 무료)도 된다고 해서 애니콜로 구입. 현재는 사내전화 발신만 되는데 정보보호센터에 가서 서류 한장 작성하면 사내전화 수신도 된다고 해서 오늘 신청할 예정이다. 책상에서 전화기를 없앨 수 있다니. :-D

어제 테스트해 보니 사내전화 발신 잘 되고 카메라도 회사 정문 벗어나니 정상적으로 동작이 됐다. 회사 내에서는 카메라 화면 상단에 디카에 빨간줄이 있는 표식이 자동으로 뜨고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았다.

퍼블릭 제품에 이런 기능을 넣어둘 생각을 했다니. 재미있는 회사다. 재미없는 회사라고 해야 하나? :-)

ps
실은 지난 주말 동탄 이마트 점에서 원래 터치폰으로 구입하려다 마음만 상해서 구입을 포기했었다. 이와 관련된 포스팅은 추후에. 어디 SKT 와 이마트가 뭐라고 답변하는지 궁금하다.



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휴대폰 고장

휴대폰이 고장났다. 수신부에 문제가 생겨서 내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상대방은 내 목소리가 들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비스 센터에 다녀왔는데 수리비로 3만원을 내란다. 헐..;;;

차라리 새로 하나 사는 비용이 더 싸겠다. ㅡ.ㅡ;;

집사람이 아이폰을 사면 집사람 쓰던 공기계를 내가 사용할 수 있는데 아이폰 출시는 아직도 딜레이 되고 있고...진짜 하나 사야하는걸까? 고민이다. 아이폰 출시때까지 휴대폰을 안쓸 수도 없는 입장이고. ㅡ.ㅡ;;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노벨상 받기, 참 쉽죠?

노벨 위원회 사무총장은 취임 후 8개월 밖에 되지 않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자 외교와 핵무기 군축, 그리고 기후 변화 등의 분야에서 알프레드 노벨의 이상을 어떤 수상자들보다 더 충실히 구현" 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관련기사)

다자 외교는 세계 정상들이 늘 해오던 것이고, 핵무기는 러시아에게 감축 논의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지금보다 앞서 2002년에 부시 대통령은 구체적인 감축 내용으로 러시아와 합의하기까지 했었는데..그럼 부시도?) 도쿄 의정서에 미국 대통령의 서명은 여전히 없다.

오바마가 추진중인 것중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8개월은 그럴 수 있는 기간도 아니다. 결국 오바마는 그저 "난 이런 것들을 하려 한다" 는 말만으로 노벨상을 받는다.

허허...노벨상 받기, 참 쉬운걸?



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백 홈

출산을 위해 처가가 있는 강릉에 내려갔던 아내가 어제 동탄으로 돌아왔다. 이유인즉, 생각도 못했던 아파트 단지 페인트 칠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고민끝에 금요일 퇴근 후 강릉에 가서 아내와 출산용품들을 차에 가득 싣고 주말 일찍 동탄으로 돌아왔다. 내가 강릉에 도착했을 때부터 페인트칠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건물 외벽 뿐만 아니라 내부 페인트까지 전부 칠하는 작업이 진행중이어서 냄새가 보통 독한게 아니었다. 굳이 규현이가 세상 구경 하는 순간 독한 페인트 냄새를 맡게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되어서 바로 동탄으로 복귀했다.

결국 강릉에서의 출산 준비는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괜시리 들떠 있으셨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한편으로는 병원도 크고 시설도 괜찮은 이쪽에서 출산하는게 좋은 점도 있으니 좋게 생각 못할 것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퇴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인근 산후조리원에 가서 시설을 좀 둘러볼 예정. 혹시 아나? 아내가 조리원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을 사귀게 될지. :-)



2009년 10월 6일 화요일

마지막 호의

나는 친한 이들에게는 종종 이런저런 내 의견을 이야기 한다. 보통은 안그러는데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런 의견들을 제시한다. 좋게 이야기 하면 진심어린 충고라고 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잘난척이다.

대부분은 그런 직설적인 의견 개진을 고맙게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전후 사정을 잘못 파악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조언을 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받아들일 뿐 잘못된 의견은 흘려 버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미움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무릎쓰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 주는 친구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주 않좋은 결과로 되돌아 오는 행동이 바로 조언을 하는 것이다.

쩝...그냥 남들처럼 앞에서는 비위 맞춰주고 뒤에서 비웃어 줄 수 있어야 미움받지 않고 살텐데.

어쨌든 그 녀석에겐 이번이 마지막 호의다. 이번에도 예전과 똑같이 반응한다면 더이상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직설적인 의견 개진이고, 제일 쉬운게 뒤에서 호박씨 까는 거라는 걸 그 친구도 알기를 바란다.



2009년 10월 6일

오늘부터, 정확히 말하면 어제 저녁부터 당분간 혼자 지내야 한다. 한달가량 남은 출산을 위해 아내가 강릉 처가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 어제 저녁때 단 몇시간 혼자 있는데도 뭔가 어색해서 혼났다. 5년간의 결혼생활이 그 이전 10년간의 싱글 생활보다 강렬한가 보다.

이왕 혼자 지내게 된거, 야근 많이 하고 운동 많이 하고 개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노력해 봐야겠다. 집에 혼자 있어봐야 심심할 뿐이라는 걸 하루만에 알아 버렸으니. :-)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회식문화

내가 속한 부서의 회식 문화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회식 자리를 강요하지도 않고(어지간하면 참석하는 문화이기는 하지만 사정이 있다고 빠지는 경우도 다들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는다. 한국 직장 특유의 말아(?)주는 문화와 축하주 건네는 문화는 물론 있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는 않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내 주량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한 수준이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인사부서에서 주관한 경력사원 환영회식에 참석했다 술 마시는 것 보고 좀 놀랐었는데 다행이 내가 속한 파트는 그런 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어제처럼(!) 갑과 을의 관계에 놓여있는(우리 파트가 '을' 이다) 파트와 회식 자리를 함께하게 되면 영업사원으로 변신하는 수 밖에 없다. ㅠㅠ 어제 함께 술을 마셔야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20대였다. 나보다 십년이상 어린 사람들도 많았다. 나이 대우를 받으려는게 아니라, 술 마시는 체력의 차이를 말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진짜 잘 마신다. ㅡ_ㅡ;;;;; 살아 남기 위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물론 그 사람들이 대하기 난처하거나 한 건 아니다. 대단한 사람들이고,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 회식 자리에서 오가는 정보와 논의도 꼭 필요하다. 회식 자리에서도 일 이야기 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가만 보면 어지간히 술에 취하기 전까지는 이게 세미나 자리인지 회식 자리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난 평일 술자리는 싫다. ㅡㅜ 담배도 안피우는 입장에 술자리까지 기피하면 외톨이 되는건 뻔하니 피할 수도 없고...ㅡㅜ

슬쩍 물어보니 금요일 저녁 회식은 다들 개인 약속이 있어서 기피하는 편이라 어쩔 수 없이 월-목 사이에 회식을 잡는다고 한다. 납득이 가는 이유이니 금요일에 회식날짜 잡자고 우겨볼 수도 없는 상황. 회식이 많지 않다는 걸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듯 하다. :-(

ps
우리 파트원들의 나이를 어제 정확히 알았다. 20대가 한명, 30대가 한명(나), 나머지 5명은 모두 40대다. 대리급 사원의 충원이 매우 시급해 보인다. 아무리 개발쪽이라지만 과장급만 6명에 사원 한명인 희한한 구조라는;;;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퇴근길

회사에서 눈 위에 손그늘을 만들어서 멀리 내다보면 우리 동네가 보인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가깝다. 퇴근 시간에 신호등만 도와주면 회사 주차장에서 살고있는 아파트 단지 주차장까지 5분이면 도착하니 가깝다고 이야기 해도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회사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가 걸어서 10분을 넘게 가야하니 그게 문제긴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점심때 차를 끌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도 되겠다고.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게 중요. ㅡ_ㅡ

어쨌든, 퇴근길이 짧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퇴근이 아무리 늦더라도 10분 안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이 되니까. 기흥 사업장으로 근무지가 옮겨진 걸 정말 고맙게 여겨야 할 듯 하다. :-)



2009년 9월 26일 토요일

꿈, 열정, 소명

제목에 적어놓은 단어들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저 단어들이 갖는 의미가 싫은 것이 아니라 저런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중 특정 스타일의 사람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저런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비슷한 부류의(똑같이 달고 살거나, 아니면 달고사는 사람들을 존경해 버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워크샵도 하고 단합대회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는 울타리 안에서 발갛게 홍조를 띠고 산다. 그런 사람치고 정말 삶에 목표와 꿈을 갖고 정열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아직은 본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행동이 내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내가 골치아파 하는 건,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고 더욱이 같이 일(직장이던 동호회던)을 해야 하는 경우다. 삶에 '열정' 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남 앞에 하기 힘든 말인지 왜 모를까? 어떤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왜 모를까? 내 주위에서 진정으로 삶의 열정과 소명 의식을 갖고 사는걸로 보이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단 한번도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열정적인지 아닌지 조차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공부할 뿐 '난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라고 독서실 칸칸마다 돌아다니면서 광고하고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발 부탁이니 자신이 열심히 사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열정을 갖고 산다는 식으로 유난 좀 안 떨었으면 좋겠다. 정 그러고 싶으면 끼리끼리 모인다는 딱 맞는 표현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어떨까?



2009년 9월 23일 수요일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


@청담동 웨딩 사진 스튜디오, 2009

모든 기억이 추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2009년 9월 20일 일요일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오늘 아침에 그간 읽어오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를 모두 읽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의해 책 내용 중 상당 부분을 공감할 수 없어서 참 읽기가 힘들었다. 중간 어느 부분은 건성으로 몇페이지를 넘겨버리기도 했다.

역시 아무리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가보다. 심지어 남녀 사이에 진행되는 연애감정 조차도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화자가 연인인 클로이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것이 과연 사랑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ㅡ.ㅡ;;



아내 친구의 웨딩 촬영에 다녀오다

아내의 오래된 고향 친구인 서린이의 웨딩 촬영이 어제 있었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에 오니 그곳에 놀러 가겠다며 아내가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탄에서 압구정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오는 것도 힘들까봐 걱정됐지만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늘고 있는 시점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결국 집에 싸들고 왔던 일거리를 덮어놓고 차를 끌고 함께 다녀왔다.

촬영이 밤에 진행됐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었다. 촬영 후 미안하고 고맙다면서 밥을 사겠다는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촬영장에서 주점부리를 했기 때문에 사실 배도 안고팠다.) 집에 돌아오니 거의 새벽 2시가 되어 있었을 정도로. 촬영을 지켜보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었던게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아내가 피곤해 할까봐 신경이 쓰였는데 본인은 간만의 외출과 친구와 수다 떠는 재미에 눈이 반짝거렸던 걸로 봐서 나만 걱정하느라 손해본 느낌인게 흠이긴 했다. ㅡ.ㅡ;;

서린이의 남편될 사람과는 같은 회사는 아니지만 한 울타리 안에 있어서 얼굴을 종종 볼 것 같다. 다만 서로의 근무처까지 걸어가려면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는게 흠이지만. :-)



2009년 9월 17일 목요일

인터넷 통제

내 블로그는 비업무용 사이트라고 회사에서 접근이 되질 않는다.

그런데 블로그를 관리하기 위한 blogger.com 은 접근이 된다. 여기서 게시글을 올릴 수 있다. 여기마저 막힌다면 이메일을 통해서도 포스팅을 할 수 있다. 내가 내 블로그를 이리저리 둘러볼 일은 없으니 사실상 블로깅을 하는데 제약은 없다고 봐야 한다. 업무용과 비업무용으로 구분지어서 인터넷을 차단한다는 개념 자체가 조금 흥미롭다.(흥미롭다기 보다는 조금 멍청해 보이는게 사실이다) 예를 들면, 스포츠 조선 웹사이트는 접근이 안되는데 다음 미디어를 통해 스포츠 조선 기사를 보는건 허용되는 식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스케쥴에 지장이 있는게 아니라면 자기 혼자 뭘 하든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은데.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사내 블로그. 업무 관련 지식 공유 용도로 사용하라고 명시되어 있는 사내 블로그 시스템이 있긴 한데 옆 팀에게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은 회사 업무에서 업무 관련해서 공유할 지식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 사내 블로그 시스템에 올라오는 글들이 외부 블로그와 별반 차이도 없는 신변 잡기적인 글들로 도배되는 걸 피할 수 없는게 당연할지도. 약관을 지키라는 경고성 포스팅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 변해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 하다.

암튼 오늘은 일찍 퇴근. 집에가서 저녁을 먹어야지. :-)

UPDATE 2009.09.27.
근무처가 수원 사업장에서 기흥 사업장으로 변경되었다. 기흥에선 접속이 된다. 아무래도 그룹 전체 정책이라기 보다는 계열사별 정책인 듯 하다.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본문 하단에 자동으로 br 태그 넣기

내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 하면 글의 마지막 줄과 작성자 정보 줄이 딱 붙어서 보인다. 본문과 작성자 정보 줄은 한 줄이나 두 줄 정도 떨어져 있는게 보기 좋은데 그렇지 못하니 영 보기에 불편하다.

예전에 지저깨비 님께서 댓글을 통해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똑같이 해도 변화가 없다. 그동안은 좀 번거롭지만 br 태그를 넣어서 해결하고 있었는데 이젠 좀 곤란해졌다. 회사에서 블로그에 접근이 안되는 관계로 메일을 통해 포스팅을 하려고 보니 br 태그를 인위적으로 넣을 수가 없는 것.

자세히 들여다 보자니 귀찮고, 된다는 방법은 내 블로그에선 안먹고...좀 답답하다.


Yogurt

한동안 마트에서 요거트를 사다 먹는 일이 많았다. 아내가 유난히 요거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임신 후 변비에 걸리는 임산부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되서 미리 대비했던 이유가 좀 더 컸다. 그 덕분인지 아내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출산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싼 행사 제품을 산다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며칠전부터 어머니의 의견을 따라 자주 먹는 요거트 제품을 우유에 넣어서 집에서 발효를 시켜봤다. 결과는 대 만족. 잼이나 꿀, 올리고당 등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맛을 다르게 해서 먹을 수 있기도 하거니와 감질맛 나게 작은 양이 아니라 큰 그릇에 담아 먹는 기분도 일품이었다. 만드는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우유팩을 뜯고, 요거트를 조금 떠서 우유에 넣고, 다시 집게 등으로 우유팩 입구를 막은 후 상온에서 하루동안 놔두면 된다. 어느정도 발효가 되고 나선 지나치게 발효되는 걸 막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다. 그리고 차갑게 해서 먹어야 유산균이 장까지 내려간 후 활성화되기 때문에(맞는 말인지는 의심이 되지만) 요거트는 차게 해서 먹는게 좋다고 한다.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이미 만들어 둔 요거트를 홀랑 먹어버리지 말고 남겼다가 새로운 우유에 넣어서 또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요거트를 살 일이 없어진다.

어제 저녁때 마트에서 우유를 좀 더 사왔다. 지금 한창 발효중인데 앞으로는 지금보다 양을 늘릴 듯 하다. :-)



카시트 구입

어제 저녁 아내와 함께 규헌이가 사용할 카시트를 구입했다. 사내 알뜰장터를 통해 구했는데 4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튼튼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하고 있다.

이제 유모차만 구하면 대충 물건 구입은 끝나는 것 같은데 유모차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잘 올라오지 않는다. 뭐, 급할 건 아직 없으니 느긋하게 기다려 보면 또 올라오겠지. ^^



규헌(揆憲)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揆 : 헤아릴 규
憲 : 법 헌

을 붙여서 규헌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돌림자가 법 헌 자라서 너무 이름이 무거워 진 듯 싶지만 아내와 고민 끝에 규헌으로 결정했다.

규헌아! 반가워! ^^


머리크기

며칠 전에 임신 후 처음으로 아내 혼자 병원에 다녀왔다.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이제는 2주에 한번씩 병원에 가야 하는데 회사 때문에 함께 갈 수가 없었다.(앞으로도 계속 그럴 듯)

회사에 있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모든게 정상이고 아이가 머리 크기가 좀 크다고 한다. 의사가 나중에 힘 좀 주셔야 겠는데요 라며 멋쩍게 웃었다는 소식. 아..난처하다. 머리 큰건 상관 없는데 출산할 때 고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걱정이 앞선다.

어제 저녁때 아내에게 만일 분만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질 것 같으면 난 그냥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테니 고집 부리기 없기로 약속하라고 했다. 아내는 깔깔대며 웃었다. 자연 분만을 할 때의 통증이 아이의 신경계를 자극해서 아이에게 좋다는 이야기도 있고 산모의 감성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고, 비용도 저렴하고, 회복도 빠르고 등등 자연분만의 장점은 검색어 하나에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나온다. 그와 더불어 자연분만을 고집해서 산모를 저세상 근처까지 보냈다 다시 데려온 사연도 많이 나온다.

다른 이유 다 필요없고, 난 출산이라 할지라도 아내가 아파하는거 볼 자신이 없다. 솔직히 출산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식은땀이 날 지경. 암튼, 길어진다 싶으면 제왕절개를 할거다. 귀 닫고 펜 움직여야지. ㅡ.ㅡ;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취미생활

취미생활을 즐기는 건 중요하다.

...

그런데 요즘 같아선, 앞으로도 얼마나 그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바쁜건 싫지 않은데 사진을 찍고 현상할 여유가 없으니 무척 아쉽다.


2009년 9월 9일 수요일

대하철이 돌아오다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에 돌아와 RSS리더에 올라온 글들을 읽던 중 대하에 관련된 글을 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벌써 9월도 중순으로 치닫고 있다. 10월 말까지 대하가 한창 맛있는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껍질을 까먹는 것이 귀찮아서 대하도, 대게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내는 그 두가지라면 정신을 못차린다. 특히 대하는 구이로도 좋아하지만 회로도 즐긴다.(이때는 번거롭지만 내가 조치? 를 취해줘야 한다.) 달력을 보면서 가급적이면 이번달이 끝나기 전에 서해도 가깝겠다 한번 대하를 먹으러 다녀올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2009년 9월 8일 화요일

도시와 도시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인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수도권과 같이 서울이 어디까지이고 안양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은 곳에서는 그저 거대한 대도심으로 인지될 뿐이다. 나도 고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왔고 서울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크게 생각해보지 않고 십년 넘게 살아왔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요즘 내가 오가는 길이 강렬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동탄 신도시는 수원과 바로 인접해 있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화성시 동탄면은 그저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을 뿐이다. 그런 벌판에 아파트를 모아짓고 도시를 만든 것이다. 인접한 도시가 수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탄과 수원 사이에 도로가 놓아졌다. 내가 출퇴근시에 이용하는 도로가 바로 그 도로인데 무척이나 좋아하는 도로이기도 하다. 바로 도시와 도시 사이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동탄 신도시의 경계를 빠져나와 수원시의 경계로 들어서기 전까지 그 도로는 넓게 펼쳐진 논을 양쪽으로 끼고 달린다. 동탄처럼 도심의 경계가 명확한 곳도 드물것 같다. 아파트 단지 주위로 넓게 논과 산이 펼쳐져 있으니. 그래서 수십층 짜리 아파트 단지 사이를 운전하다 보면 갑자기 눈 앞이 확 트이면서 논과 밭이 펼쳐진다. 그리고 멀리 수원 도심이 보인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놓고 경쾌한 음악을 틀어 놓으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수원의 경계 역시 명확하게 찾아온다. 동탄-수원간 도로의 끝에 놓인 권선지하차도를 빠져나오면 갑자기 목가적인 풍경이 사라지고 복잡한 도시 한복판으로 나온다. 그렇게 아침 출근 시간의 즐거움이 끝난다.

출근길 도로 주위로 저렇게 꼿꼿하면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푸르게 그리고 곧게 자라고 있는 벼를 보면서 이제 추석도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요즘처럼 시원한 바람과 따가운 가을볕이 이어진다면 다가오는 추석에는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멋진 도로가 되리라 확신한다. 아쉽게도 나는 그 전에 기흥으로 주 근무지가 옮겨 지겠지만(물론 출근길이 짧아 지는 건 반갑긴 하다) 그때가 되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한번 사진기를 들고 드라이브를 다녀올 생각이다. 마음에 드는 도로를 갖고 있는 행운을 마음껏 즐기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



2009년 9월 3일 목요일

즐거운 나의 집

지난 며칠동안 틈날때마다 읽었던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을 모두 읽었다. 읽으면서 상당히 충격을 많이 받았고 생각도 많이 했다. 이혼가정의 아이들에 대해 충격을 받은게 아니다. 그 소설속에 그려진 가족을 보면서 내가 이룰 가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버스에서 흔들리며 읽었던 탓에 메모를 할 수가 없어 가슴에 와서 박힌 구절이 몇 페이지였는지 정확하게 집어내질 못하고 있다. 물론 가슴에 와서 박힌 문장이 한두곳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인용을 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그 감정들을 어떻게 일일이 설명 하자니 말이 너무 길어질 듯 해서 못하겠다. 정확하게 문구를 인용하고 싶은데 메모가 없으니 다시 읽는 수 밖에.

서두르지 않고 내년쯤 다시 한번 정독을 하면서 문장을 집어내야 겠다. 그 때까지는 책이 내게 던진 고민거리들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충분할테니.



2009년 9월 1일 화요일

월월월월월월월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월화수목금금금도 아니란다.

월월월월월월월 이란다. 그 선배처럼 일요일도 11시 퇴근하는 삶에 빨리 익숙해 져야 할텐데.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9년 8월

2009년 8월은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 하면 시간이 많았고, 어떻게 이야기 하면 시간이 많지 않았다. 확실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2000년 1월 이후(그 이전에 네트웍에 올린 글은 손실되었으니) 내 이름으로 한달이라는 기간동안 내 홈페이지에 올린 글 수중 가장 많은 23편의 글을 2009년 8월 한달간 올렸다. 이것까지 하면 24편이니 하루 한편이 조금 못되게 글을 올린 듯 하다. 그만큼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가 보다.

이제 다음주가 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바삐 사는 관계로 아마 전처럼 글을 자주 올리지는 못할걸로 생각된다. 그래도 내 머리속의 찌꺼기들을 배설하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꾸준하게 매일같이 여러개의 글을 올리고 수만명의 독자를 거느린 파워 블로거는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꾸준히 내 생각과 일상을 남겨왔다. 1년에 단 하나의 글을 올리게 되더라도 이전과 같이 앞으로도 글을 올리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산책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아내와 함께 동네 산책을 다녀왔다.

저녁이면 종종 다녀오곤 하는 산책이 지난 며칠은 부쩍 선선해진 날씨탓에 훨씬 즐거워졌다. 몇주 전까지만 해도 무더운 날씨 때문에 땀을 흘려서 운동을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걷기 딱 좋은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서울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곳 동탄에는 벌써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메일 박스 정리

지난 몇년간 쌓여왔던 gmail 의 메일박스를 정리했다.

이제 다시는 찾아볼 일 없는 연구과제 관련 메일과 논문 첨부 메일등을 고민하다 모두 삭제했다. 그냥 놔둬도 되겠지만 이사가면서 짐 정리한다는 기분으로 모두 삭제했다.

2기가 정도 사용중이던 메일 박스가 정리하고나서 보니 56메가로 용량이 줄어 있었다. 연구와 관련된 메일이 그렇게 많았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텅 비어버린 메일 박스를 보며 무언가 시원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The Mission



오래전 감명깊게 본 영화중에 The Mission 이라는 영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게 음악도 좋다. 영화를 평가할 때 OST 의 비중을 높게 두기 때문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

최근들어 이 영화의 OST 를 자주 듣고 있다. 무척 오래전에 구입한 CD 인데 한동안 듣지 않다가 얼마전부터 CD재생기에 넣어두고 반복해서 듣는다. 구할수만 있다면 DVD 를 구입하고 싶은 영화 0순위인데 발매를 했는데 못찾는건지 눈에 띄질 않는다.

구입하고 싶었던 영화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마의 휴일 은 구했지만 아직도 컬렉션으로 갖추고 싶은 영화들은 목록으로 정리하기에도 벅차다. 쉽게 구해지진 않지만...명작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명작이니만큼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찾아볼 생각이다. :-)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오늘 재미있는 기사를 접했다. 상반기(6월까지)까지의 정부 재정 적자가 28조원에 이른다는 기사였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재정 적자를 22조원으로 계획하고 있었다는데 상반기에만 28조원의 적자가 이미 발생했으니 하반기 재정 운용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최근 개인들의 금융관련 지식이 늘면서 예전처럼 안먹고 안입고 안쓰는 저축이나 생각없는 소비 대신 노후까지 계획을 짜서 생활하는 재무설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개인들도 이럴진데, 도대체 현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상반기에만 28조의 적자를 봤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문득 예전에 접했던 블로그가 생각났다.

현대건설 파산(워크아웃) 주범! 이명박!!

내용을 요약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을 당시 이라크 전쟁 위기로 모든 건설 회사들이 이라크에서 빠져 나갈때 현대건설만 공사비를 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묻지마 수주를 했고 이것이 결국 대부분 미수금이 되면서 현대건설이 파산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는 것이다.

이미 그 당시에 앞 뒤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하고 보는 방식으로 회사를 말아먹었던 것이다. 지금 국가 재정을 쓰는 방식을 보면 계획대로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가 시끄러우면 돈뭉치 들어다 틀어 막는 식인데 과거 현대건설 파산과 너무나 흡사하다. 한마디로 무계획적인 운용인 것이다.

만일 예산 계획 수립 후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해서 재정적자 규모가 확대된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설명을 하면 된다. 그러나 앞선 기사의 내용에 보면 하반기가 되면 재정 적자가 줄어 22조로 맞출 수 있을 것 이라고 재정부 관계자가 이야기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상반기에 28조의 재정 적자가 난 것도 계획된 것이고 하반기에는 6조에 해당하는 흑자 재정을 펴겠다는 말인데 현 상황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세제 개편등을 통해 추가적인 세수 확보를 하려 애쓰고 있다 하여도 정부에서 하반기에 한푼도 안쓰고 6조를 걷어 들여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쨌든 하반기에는 흑자 재정을 펴겠다는 정부의 발언이 있었으니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대게 사람잡는 선무당들이 목소리 만큼은 씩씩하고 자신감 넘친다는 불변의 진리가 또다시 적용될까 하는 점이다.



대중문화,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을 태울 것인가

5섯살 짜리 꼬마가 가요를 부르는 동영상이 저작권법 위반이라며 삭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저작권법이 강화된다면서 시작된 소란이 극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저작권 보호법은 원저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나 지금 같아선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법무 법인의 수익을 보호하는 법이 되어 버렸다.

문화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산업이다.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수단을 쉽게 제공해주는 문화 분야가 더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려 왔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자신이 직접 불러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저작권 위반이라며 법의 잣대(올바른 잣대로 보이지도 않지만)를 들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지금의 작태는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대중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수나 작곡가들이 지금과 같이 대중이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고마워 하기는 커녕 자작권법 위반이라고 법으로 처단하려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들의 문화와 대중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일부 불법 복제를 잡으려다 해당 문화 산업 전반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경우를 잘 묘사한 속담이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을 태운다 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계는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을 놓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이와 같은 황당한 저작권법이 아니었다면, 그대들의 고객인 대중을 위해 지금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바램이 무엇인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리고 그 불은 지금 그대들의 집으로 옮겨붙고 있다.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비슷한 결과가 도출된다면 얼마나 선택이 쉬워지겠는가. 그러나 그런 선택은 사실 선택이 아닌 방기에 불과하다. 진짜 어려운 선택은, 어느 길을 택하든 후회와 아픔이 있을걸 뻔히 아는 경우다. 하지만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고 그 선택은 결국 아픔으로 남는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평생을 간다.

어제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걸 원하고 전화했을거란 생각에 내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 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 친구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젖어드는 것을 들으면서 과연 지금 내 행동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야기 해야 했다. 최소한 내가 하고 있는 후회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와 똑같은 결정을 내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에게 예고되어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 방법을 결정하는 것 만큼 가혹한 선택이 어디 있을까. 그 친구의 선택이 어느쪽이든 분명 아픔과 후회는 남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내다 보았을 때를 생각한다면 나는 그 친구가 내 조언을 받아들이기를 희망한다. 가장 슬픈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지 못하고 맞이하는 죽음이라 믿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처서(處暑)

베란다 창문을 열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개구리 우는 소리, 매미 소리에 이어 귀뚜라미 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들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더위가 한 풀 꺾이고 가을걷이를 준비한다는 처서(處暑)가 바로 오늘이다. 옛 어른들은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고 했다. 날이 선선해져 여름동안 피를 빨기 위해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온 나라의 혈세를 쪽쪽 빨아들이고 있는 4대강 사업도 슬슬 수그러 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진정으로 우리 나라의 장래 물부족 사태를 걱정한다면 반대 여론을 뭉개가며 수년안에 공사를 마무리 지으려 할 것이 아니라 필요성과 부작용등을 장시간 논의하고 검토한 끝에 오랜 기간 공들여 물부족 사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토론과 설득의 정도를 밟으면 된다. 넘치기 일보 직전의 반대 여론을 막고자 가래를 들지 말고 지금이라도 호미를 들어 막으라는 소리다.

처서가 지나고 나서도 피를 빨고자 달려드는 모기는 쉽사리 손바닥에 눌려 죽는 법이다.



결정

'결정' 을 내리는 순간은 언제나 괴롭다.

갈등을 동반하지 않는 결정은 사실 그 순간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결정은 괴로운 시간을 수반했던 사건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오늘...아니 이제는 어제가 되어버린 저녁, 몇해 전 힘든 결정을 내렸었다는 후배를 만나 그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후 세시간 동안 내가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머리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결정의 이유는 묻지 않았다. 지나간 일에 이유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걸 물어보지 않는 내가 야속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을 들추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반면 누군가에게 그 일을 이야기 하면서 하소연 하고 싶은 것 아닐까 싶은 걱정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머리속만 뒤죽 박죽이 된 채 쓸데없는 시간만 흘려 보냈다. 횡설수설. 말해놓고 나서 '아이고..' 싶은 문장들이 쉴 새 없이 입에서 튀어 나갔다.

그 후배의 결정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누구든 다른 사람의 결정에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조언이랍시고 해줘 봐야 결국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지인들에게 제대로 연락도 못하고 지냈다는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 각자 다른 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기 전인 2002년까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던 녀석이었는데.

힘든 결정 뒤에는 언제나 그 순간을 보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혼자 이겨낸, 그리고 이겨내고 있는 후배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언제나 굳건했던 녀석이기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새벽. 맥주를 한 캔 뜯어 그 후배를 위해 잔을 비운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화장실에서 읽는 책

일반적으로는 그러지 않지만 가끔 두 권 이상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갈때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금방 읽어나가지 못하고 조금씩 오랜시간 읽는 책이 있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런 경우 그 책은 화장실에 비치되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이용하곤 한다. 최근에 그랬다.

'움베르토 에코' 의 '장미의 이름' 을 손에 잡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잘 읽히지 않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다른 책에 추월 당하기를 몇번, 오늘 상권을 화장실에서 다 읽었다. 하권도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화장실에 비치될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가 있어져서 속도가 제법 날 것 같다는 것.

후배를 만나 머리 복잡한 이야기를 들어 잠도 오지 않는 밤. 화장실에 비치해 둔 책을 들고 나와 거실에서 잠이 올 때까지 읽어야 겠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장인어른, 장모님 방문

어제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있을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고자 올라오신 것이지만 이틀 먼저 올라와서 집도 구경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찍 올라오시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기쁘게도 승락해서 일찍 올라 오셨다.

어제는 시간이 늦어 아무데도 못갔지만 오늘은 두 분을 모시고 코엑스에서 열렸던 유아용품 및 출산준비물 박람회에 다녀왔다. 우리도 이런저런 준비물을 샀고 부모님들께서 몇가지 사주시기도 했다.

지금은 집사람하고 이불을 보러 장모님께서는 나가셨고 장인어른은 주무시고 계신다.

간만에 집이 북적북적한게 좋다. 역시 함께 사는 식구는 단촐한 것 보다는 약간명이 더 있는 것이 좋은 듯 하다. ^^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분의 재임기간까지 나는 정치에 대해 무관심 했기에 그가 언론에서 빨갱이라는 공격을 받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든 무관심했다. 말 그대로 '정치에 관심 없는 이십대' 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 분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고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기록물로 남겨져 있는 사실들을 접할 수는 있으나 그 시기를 공유하고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내 감정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향한 것과 같이 애틋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한가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대해 혹은 시민의 권력에 대해 알아갈수록 어느 분야를 알아보든 귀결점은 '김대중' 이라는 세 글자였다는 점이다. 그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긴 발자취의 깊이는 발자국이 아니라 깊은 계곡을 팠고 거대한 벽을 남겼다.

누구나 신념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절대 권력이 그 신념을 꺾으려 할 때 굽히지 않고 수십년을 한결같이 굳건하게 있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가 진정 자신의 권력욕심 때문에 정치를 했다면 절대 권력에 붙어도 벌써 수십년 전에 붙었을 것이다. 아무나 손가락을 들어 '저 자는 빨갱이다' 라고 외치면 사실 관계도 확인해보지 않고 돌을 들어 지목당한 사람을 쳐 죽이던 (한국 전쟁이 남긴,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타까운 정치 의식을 생각해볼 때 그가 견뎌낸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차라리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3당 합당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빠져나가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무릇 정치가란 그래야 한다.

뜨거운 열대야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2009년 여름. 대한민국은 진정으로 아까운 정치인을 또 한명 잃었다. 그의 영정 앞에 고개숙여 묵념을 한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초롱이 재활 치료 시작

지난 3일동안 병원에서 고강도 치료를 받던 초롱이가 오늘 집에 온다.

최소 3년 이상 재활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개라 어려움이 많다. 사람이라면 "평생 불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 몇년간 조심하셔야 합니다" 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스스로가 조심하겠지만 개는 그게 불가능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껑충껑충 뛰지 못하게 공간적인 제약을 가하고 주인이 운동을 시켜주는 일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앞으로 3년간을 주로 개집에서 생활하도록 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나오게 해서 가벼운 운동을 조금씩 시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초롱이가 생활하고 있는 개집은 초롱이가 웅크리고 잘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되어 있어서 주생활 공간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의사와 상의한 끝에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초롱이가 지냈던 것과 동일한 제품을 전문 업체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어제와 오늘이 휴일이라 주문은 내일 들어갈텐데 그때까지는 초롱이도 불편하겠지만 기존의 집에서 며칠 지내야 할 것 같다.

뜻하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바람에 연말쯤 각자 구입하기로 했던 물건(아내는 아이폰, 나는 킨들DX)의 구입을 일단 연기하기로 했다. 앞으로 3년간 구입 안해도 좋으니 초롱이가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힘내자. 나도, 아내도, 초롱이도.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사촌 형제들 모임

오늘 낮에 세븐스프링스 강남점에서 사촌 형제들의 모임이 있었다. 내가 박사학위 취득턱을 내는 자리였는데 간만에 많은 수가 모였다. 각자의 생활이 있어 모여봐야 두세명씩 나뉘어서 얼굴 보는게 전부였는데 오늘은 열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친형제가 없는 내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자주 만나고, 서로 의지가 되어주는 사촌들이 많다는 것은 진정으로 반가운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형님들과 나는 각자의 집으로, 싱글인 동생들은 조금 이르긴 하지만 맥주집을 찾아 강남역으로 헤어졌다. 지금쯤 뜨거운 날씨를 시원한 맥주로 식히며 이야기 꽃이 피었겠지. 그러고 보니 사촌들과 맥주 한잔 하느라 밤 늦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눠본게 꽤 오래 전이다. 이젠 집으로 불러야 겠지. ^^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디스크가 온 초롱이

이틀전에 초롱이가 유난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음날 외출하고나서 돌아오니 초롱이가 왼쪽 다리를 잘 쓰지 못했다. 예전에 동물병원에서 초롱이가 고관절이 좋지 않다고 해서 관절에 이상이 왔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늦어 병원에 데려가진 못했다.

오늘 아침 일찍 가기로 했는데 이번엔 양쪽 다리를 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거였다. 안으려 하다 몸에 닿으니 죽을듯이 비명을 질렀다. 크게 이상이 생겼구나 싶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병명은 충격적이게도 디스크였다. 간호원이 초롱이의 다리살을 세게 꼬집었는데도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있었다. 하반신이 마비가 된 것이었다. 문제가 생긴 부분의 허리에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그 아래로는 감각이 없는 듯 했다.

직립 보행을 하지 않는 개는 디스크가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람과 사는 개는 디스크가 종종 온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좋아해서 두 발로 서서 겅중겅중 뛰는 동작을 자주하는 개일수록 디스크가 온다고 했다. 초롱이는 특히나 점프력이 좋고 이쁨받는 걸 좋아해서 우리가 들어오면 뒷다리로 서서 껑충 껑충 뛰어오르곤 했다. 평소에도 두발로 자주 서 있곤 했다. 우리는 그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웃었는데 실은 그게 초롱이의 허리에 지속적인 충격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개가 이상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알게 되서 치료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이틀만에 하반신 마비가 올 정도의 급성은 치료가 되더라도 재발 가능성이 높단다. 오늘부터 이틀간 약물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경과가 좋으면 퇴원해도 되지만 이후 초롱이가 그런 동작을 못하도록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침에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서 이런저런 일정이 있었는데 하루종일 넋이 나가서 계속 실수를 연발했다. 나도 아내도 마음이 이만저만 피폐해진게 아니다. 약물 치료는 비용 부담이 적어 괜찮지만 만일 더 악화된다면 MRI 촬영을 통해 정확한 위치와 확진을 하고난 후 수술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수백만원이 든다는데 솔직히 우리에게 그런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은 없다. 또 그렇게 수술한다고 해서 100% 치료된다는 보장도 없다고 한다. 결국 그럴 경우 초롱이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될 테고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상반신 이상에 이어 욕창까지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게 된다. 간혹 동물 프로그램에는 그런 개와 주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부분 몇 년 살지 못한다고 했다. 아내와 이후 이야기를 하면서 그럴 경우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가짓수를 따져봤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후의 생각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우선 지금 당장의 약물 치료가 효과가 있어 신경이 돌아오고 이후의 훈련 요법은 그 다음의 문제다. 결혼과 함께 우리집에 와서 우리 결혼 햇수와 같은 나이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지난 5년간 자식 노릇을 해준 초롱. 부디 고생하지 않고 건강을 되찾기를 바란다.






포도 농장에 다녀오다

오늘 오후 우리 부부와 기석이 셋이서 안성에 있는 삼정원 이라는 포도농장에 다녀왔다. 포도로 유명한 안성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화성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여름이 오기만을 별렀었는데 드디어 다녀왔다. 삼정원은 스무가지 이상의 포도 종류를 재배하고 있는 농장인데 요즘은 세가지 종류의 포도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기석이는 4 kg, 우리 부부는 2 kg 을 샀다. 비가 지난 며칠간 많이 와서인지 포도의 당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청포도의 새콤한 맛이 오히려 더 강조되서 개운한 맛을 냈다. 이제 간혹 지나다니면서 포도를 구입할 계획이다. 다음번엔 다른 포도 농장을 찾아봐야겠다. 마음에 안들어서는 아니다. 혹시 아는가? 더 맛있는 포도를 재배하는 농장이 안성 어디에 숨어 있을지. :-)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스무살의 나

집에서 사진 정리를 좀 했다.

옛날부터 찍어서 모아온 사진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앨범을 사서 정리를 좀 해두긴 해야 하는데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렇게 나온 사진들 중 내 시선을 끄는 건 스무살의 내 모습이었다. 정확하게는 스무살 초중반까지의 사진들. 그 당시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우리나라 해안을 따라갔던 배낭여행, 한여름 소나기 맞아가며 중부지역의 고갯길들을 타넘고 다녔던 자전거 여행, 과 동기들을 이끌고 속초로 다녀왔던 기차여행, 중국 연변 자치구로 다녀왔던 한겨울의 자원봉사, 일주일 간격으로 두 차례 다녀왔던 그리고 또다시 가고 싶은 지리산 종주,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던 공주와 부여로의 역사 여행, 대동여지도의 길을 현대 지도에 옮겨 그려가며 옛길을 따라 걸었던 국토종주....그리고 어디를 언제 다녀왔는지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주말 배낭 여행들.

돌이켜 보면 편하게 다녔던 여행은 단 한번도 없었다. 늘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들었었고 돈을 여유있게 써가며 다녔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스무살의 내 젊음을 한껏 누려가며 다닐 수 있었고 '어디가서 뭘 봤는데 좋더라' 는 식이 아닌 생생한 이야기 거리가 넘치도록 많다. 수리티재를 자전거로 넘는게 어떤지, 지리산 촛대바위를 남의 배낭을 옮기느라 두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한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도보 여행을 하다 지났던 수박밭에서 주인 아저씨가 안겨준 수박을 주먹으로 깨 먹는 맛이 어떤지, 대동여지도를 따라 그린 길을 걷다 산 꼭대기에서 길이 사라져 버렸을 때의 황당함이 어떤 기분인지. 스무살의 젊음이 아니면 도전해보기 힘든 것들을 누려 봤기에 나는 누구를 만나든 할 말이 많다. 그리고 그만큼 내 스무살의 기억은 풍요롭다.

사진 속에는 그 때의 나와, 그 때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얼굴을 한채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한참을 미소 지었다. 푸근해 진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기억이 풍요로우면 그것을 함께했던 사람들도 풍요롭다.

지금도 여행을 다니지만, 분명 그 당시에 경험했던 여행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이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때의 경험과 기억 만큼이나 지금의 경험과 기억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한살 먹을때마다 내가 내 삶에서 또다시 1년을 만들어 냈다는 뿌듯함에 기뻐하듯이, 나는 지금의 내 경험들 역시 앞으로 십년이 훌쩍 지난 후 또다시 풍요로운 기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되돌아 오는 기억의 풍요로움도 커진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는 것도 나는 믿는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K50.4 | 400TX | Diafine | V700]
@용인




읽은 책 목록

-. 2009년 8월 10일 이전에 읽은 책은 게시하지 않음
-. 이 게시글은 블로그 우측 하단에 링크로 상시 게시
-. 업데이트 하는 책은 완독을 기준으로 함.
-. 두차례 이상 다독을 한 책도 읽을 때마다 매번 재게시


순번제목저자완독일
25 예술가의 작업실 박영택 2013.2.18.
24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해인 2012.10.12.
23 (마음을 얻는 지혜)경청 조신형, 박현찬 2012.10.05.
22 조국 현상을 말한다 김용민 2012.9.24.
21 좋은 사람 콤플렉스 듀크 로빈슨 2012.1.16.
20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와사키 나쓰미 2011.10.16.
19 생각 버리기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2011.09.28.
18 인문학 콘서트 김기동 外 2011.07.17.
17 Justice 마이클 샌델 2011.03.11.
16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2011.02.03.
15 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2010.09.12.
14피를 마시는 새이영도2010.08.07.
14눈물을 마시는 새이영도2010.07.02.
1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맥 매카시2010.06.11.
12김동인 단편선김동인2010.05.05.
11천년의 금서김진명2010.03.15.
9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기쿠카와 세이지2009.11.21.
8긍정안광호2009.10.11.
7연인정호승2009.09.25.
6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2009.09.18.
5즐거운 나의 집공지영2009.09.03.
4장미의 이름(하)움베리토 에코2009.08.31.
3무기의 그늘(하)황석영2009.08.24.
2장미의 이름(상)움베리토 에코2009.08.22.
1무기의 그늘(상)황석영2009.08.14.


* blogspot 에서 table 만들 때 테이블 윗 공간에 여백이 남는 문제는 나무님의 게시글을 참조해서 해결했음.

수면 내시경

얼마 전 밤에 심한 복통으로 잠을 깼다. 하필이면 처가에 놀러가서 아버님과 술 한잔을 하고난 이후 그랬기 때문에 어른들의 걱정을 사고 말았다. 그날 이후 통증은 바로 사라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졸업논문 학기를 거치며 신경성 위염이 생긴 듯 했다.

병원에 가서 확인을 받았는데 예상대로 신경성 위염.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면서 3~4일만 약을 먹으면 완치가 될 것 같긴 한데 이왕 병원에 올 정도로 신경을 썼으니 내시경으로 한번 검사해 보는게 어떤가를 물어봤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입사하고 나면 병원다닐 시간도 부족할만큼 바빠질게 뻔한데 여유 있을 때 검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병원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면 내시경을 받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주 깨끗. 위염도 전부 없어졌고 위가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왜 수면 내시경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시술대에 눕고나서 링거를 맞고 있는 혈관 주사 라인에 간호사가 주사를 한대 놓았다. 온 몸이 약간 나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다 끝났으니 회복실로 가자고 했다. 약간 황당할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정말로 시술받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르고 잘 만큼 강력한 수면제를 썼을리는 없고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마취제들 중 하나를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시술 후에 잠깐이지만 균형을 잘 잡지 못해 아내가 옆에서 팔을 잡아서 균형감을 보조해 줘야 했다.) 그래서 약효가 있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 기억 중추에 전달이 안되는 것 아닐까.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과 같은 효과겠지. 어쨌든 기억하지 못하면 아팠든 안아팠든 상관없는 일이다. 위가 건강하다니 그걸로 대 만족. :-)


에피소드 하나.

내 앞에 시술 받았던 사람은 마취제 양을 좀 줄여달라고 의사한테 요구했다고 한다. 지난번에 시술 받고 나서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다 기억이 돌아왔다나. 시술대에 누운 것 까지 기억나는데 그 다음에 정신차려보니 자신이 자장면을 먹고 있더란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ㅡ_ㅡ;; 암튼 그런 이유로 수면 내시경은 무조건 보호자와 함께 가야 한다.



2009년 8월 9일 일요일

형태가 없는 것



고정된 형태가 없는 것들.

바람, 불, 물

이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커피 핸드 드립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첫맛은 커피 본연의 깊은 맛이 강하게 나고 뒷맛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종류다. (에스프레소는 싫어한다. 진한 맛은 일품이지만 넘기고 난 후 커피의 맛이 입 안에 너무 많이 남아있다) 브라질 산토스를 가장 좋아하고 만델린도 좋아하는 편이다. 아내는 예가체프등과 같이 달콤한 맛과 새콤한 신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나는 질색을 한다.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근처에서 카페 빠르코 라는 로스터리 커피숍을 하시는 작은 어머니 (이제껏 다니면서 마셔본 핸드드립 커피중에 작은 어머니만큼 원두 종류별 맛을 기가막히게 이끌어 내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덕에 핸드드립을 배워서 그 이후부턴 내가 원하는 맛을 내 손으로 내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며 커피를 즐기고 있다.

작은 어머니 가게에 인사드릴겸 놀러가면 로스팅이 잘 된 커피 원두를 조금씩 싸주셔서 신선한 원두를 구하는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었는데 화성시로 이사를 온 후 잘 볶은, 신선한 커피 원두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가까운 로스터리 숍이 수원까지 나가야 했기 때문. (이놈의 신도시에는 아파트 말고는 뭐가 있는게 없다.) 우편으로 주문하는 건 언제 로스팅 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환경에서 원두를 로스팅 하는지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문하는게 내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로스터리 숍을 발견했다. 아쉽게도 산토스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만델린이 너무 로스팅이 잘 됐다며 강력 추천하는 주인 아저씨의 권유를 받아 만델린을 사들고 집에 왔다. 어제부터 몇 잔 마셔보고 있는데 결과는 대 만족. 주인 아저씨의 로스팅 정도가 내 입맛에 굉장히 잘 맞는다. ^^

간만에 커피를 내렸더니 집안이 커피 냄새로 그윽하다. 역시, 인위적인 방향제 같은 것 보다는 커피향이 백배는 더 좋다. :-)




2009년 8월 8일 토요일

동탄 보건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탄 보건소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다음달에 배넷 저고리를 임신 축하 선물로 준다고 하고 이번에는 빈혈을 막기 위한 철분제를 한달치 받아왔다. 그리고는 땡.

화성시 재정이 많지 않아서인지 별다른 건 없었다. 물론 각종 검사를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할 수 있다는 것과 철분제를 임신한 모든 여성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받을 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잔뜩 기대를 하고 갔었던 터라 뭔가 좀 허전하긴 했다.

어쨌든 종현이 말 마따나 불필요한 이런저런 검사와 예방 접종들 맞을 필요 없이 보건소에서 해주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니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ps
보건소 가는길에 커피 로스터리 샵을 하나 발견했다. 그동안 신선한 커피 원두를 구하지 못해 곤란했었는데 이제 언제든지 신선한 원두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 ^^



갖고 싶은 물건 1위 - Kindle DX

몇 달 전까지는 특별히 갖고 싶은 물건이 없었다. 한때 Natura Classica 를 갖고 싶어했던 적도 있지만 Kobica 를 갖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그다지 갖고 싶은 물건이 없다가 얼마전부터 아내가 구매 리스트 1순위에 놓고 있는 아이폰에 나도 살짝 끌리기 시작했다.(같이 사자고 유혹 ㅡ_ㅡ;; 도대체 왜..;;;)

출시되면 아내가 살 때 나도 그럼 살까... 하는 생각이 슬슬 들던 어제. 단 하나의 물건이 내 머리속의 모든 구매 리스트를 포맷해 버렸다. 바로 아마존에서 발매하는 Kindle DX 였다.

Kindle 시리즈는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전자책 리더기다. 발광방식의 액정이 아니라 전자 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종이와 거의 같은 가독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고 무엇보다 실제 종이책을 보는 것 처럼 편하다. 휴대폰이나 모니터 등으로 글을 읽을때처럼 눈이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거기다 전자책은 대부분 종이책 가격의 1/3 ~ 2/3 정도이고 그나마 저작권 기한이 끝난 고전들은 무료로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 Kindle 은 이러한 전자책을 수천권 저장해 놓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도서관이나 마찬가지. 나같이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기기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 동안은 그다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pdf 리딩 기능이 빠진 제품이 대부분이었고 디스플레이 크기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그림과 도표가 많이 첨부된 pdf 포맷의 논문 파일을 많이 보는 내게 pdf 를 그대로 보여주는 기술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존에는 pdf 가 지원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문서내 텍스트만 별도의 txt 파일로 만들어서 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또한 대면적 구현이 어려운(혹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전자잉크 기술의 한계와 모바일 기기는 너무 크면 곤란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간의 전자책 리더기들은 6인치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잡아본 바로는 내 취향에는 6인치는 너무 작았다. 1세대 Kindle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Kindle DX 가 출시되면서 그 두가지 아쉬움이 해결되어 버렸다. pdf 문서를 변환이나 손실 없이 그대로 인식함은 물론이고 크기도 9.7인치로 대폭 증가했다. wireless 기능과 한글 텍스트 문서가 읽히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wireless 지원 기능은 탐나긴 해도 원래 없던 기능이라 생각하면 참을 수 있고 한글 텍스트 파일이 지원 안되면 pdf 로 변환해서 읽으면 된다.(시험삼아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을 Adobe Digital Editions 를 이용해서 내 아이맥에서 변환해보니 대략 15분 정도면 책 한권이 ebook 포맷에서 pdf 로 변환되었다.)

마침 더이상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마음껏 빌릴 수 없게 되어서 전자책을 이용할까 고민중이었다. 일일이 사서 보자니 책값이 감당이 안되고 시립 도서관을 이용하자니 회사 생활 하면서 오가기 번거로울 듯 해서였다. 그런차에 Kindle DX 는 딱 맞는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그래서 내 머리속 구매 예약 리스트 1번부터 끝번까지는 Kindle DX 로 꽉 차 버렸다.

아내와 이야기를 해본 결과 연말에 각자 모바일 기기를 하나씩 사기로 했다. 아내는 아이폰을, 나는 Kindle DX를. :-)




2009년 8월 7일 금요일

출산용품 준비

어제 유아용품 전문 매장을 찾아 출산 준비물을 구입했다. 아기 옷부터 시작해서 몇가지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매장에가서 출산용품 준비하러 왔다고 하니 용품 리스트가 인쇄되어 있는 종이를 주던데 대충봐도 50가지가 넘어 보였다. 그런 걸 다 살 필요는 없겠지. ㅡ_ㅡ;;

어쨌든 조막만한 아기 옷과 손싸개 등을 보니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때가 가까워 온다는 실감이 난다.



구글 크롬

구글 크롬이 발표되었을때 호기심에 설치만 해보고 제대로 사용해보진 않았었다. 가장 큰 이유는, MacOS 용 크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아이맥에서는 firefox 를 사용중인데 집과 연구실 양쪽에서 서로 다른 브라우저를 쓰는 것도 썩 내키지 않고 해서 별 미련 없이 프로그램을 삭제했었다.

그러다 어제 구글 애플리케이션들은 구글 크롬에서 더욱 빨리 동작한다는 안내 문구를 우연히 접했다. 출근해서 별 생각 없이 크롬을 다시 설치하고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구글오피스 등을 실행시켰는데, 와우-!

이렇게 빠를수가. ㅡ_ㅡ;;;;

이정도 속도라면 구글 오피스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듯 싶었다. 아쉬운 점은 아직도 MacOS 용 크롬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는 점. 집에서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들고 있다.



2009년 8월 6일 목요일

햇살이 눈부시던 날


[Kobica 35 BC-1 | 400TX | Diafine | V700]
@한양대 지하철역




2009년 8월 5일 수요일

Gmail 실험실

gmail 에는 여러가지 추가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실험실이 존재한다. 정식으로 서비스 되는 기능은 아니지만 자신의 메일 계정에 기능을 추가해서 사용해 볼 수 있는 (즉 테스트 중인) 기능들이 수십 가지나 전시되어 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사용' 에 체크하고 저장하면 된다.

그 동안은 메일 본문에 이미지를 삽입하는 기능만 추가해서 쓰고 있었는데 오늘 한가지를 더 추가했다. 다름 아니라, 답장시 상대방 메일 인용 위쪽에 서명을 넣어주는 기능이다.

내 서명이 인용된 상대방의 본문 아래쪽에 위치하는 경우는 사실 상대방의 메일 본문 내용의 중간중간 내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의 회신에는 좋다. 하지만 메일로 문장 하나하나를 언급하며 토론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냥 인용만 해놓고 그 위에 자신의 할 말을 적는게 보편적이다. 그런경우 서명이 인용된 본문 위쪽에 오는게 편하다.

이 기능이 옵션으로 들어가서 환경설정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ps
실험실에서 등록한 기능은 언제든지 없어질 수도 있다. 말 그대로 테스트 중인 기능이니까.


2009년 8월 4일 화요일

과거와의 이별

요즘 오래된 수첩과 메모들, 문서등을 살펴보면서 내가 해왔던 것들과 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거창하게 과거와의 이별이라는 타이틀을 달긴 했지만 사실 포기하지 않고 있던 것들 중 더 이상 내가 안고 갈 수 없다 판단되는 것들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가입해서 활동중이던 인터넷 카페도 활동이 뜸해지는 것들은 정리하고 있다.

더이상 내가 정리할 것들은 없을 것이라고 몇해전에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또 정리할 것들은 생긴다. 정체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좋은 징조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정돈되지 않은 삶을 산다는 의미이기도 한 듯 하다.



2009년 8월 2일 일요일

VIPS 수원역점 다녀옴

어제 저녁 수원과 서울의 K리그 18라운드를 보러 아내와 함께 수원월드컵 경기장 빅버드를 찾았다. 지난달에 있었던 강원-포항 전 이후 한달만의 축구 경기 관람이기도 하고 빅버드는 한차례도 가본 적 없었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많이 하고 갔었다.

그런데 도저히 차 댈 곳을 찾지 못해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나와야 했다. 경기 30분 전이 되도록 주차할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경기장 주차장은 물론 인근 도로까지 모두 먼저 온 차들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 지하철이 없어 대중 교통이 불편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그래서인지 차를 끌고 온 사람이 많아 보였다. 우리도 집에서 차를 끌고 가면 15분이지만 버스를 타면 70분이 넘게 걸리는 상황이었는지라 차를 끌고 갔었다. 결과적으론 아쉽지만 포기. 다음에는 몇시간 전에 와서 차를 대놓고 근처에서 놀다 경기를 보러 들어가자는 아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빅버드에서 차를 몰고 나왔다.

이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는 아내의 요구에 따라 VIPS 수원역점을 찾았다. 패밀리 레스토랑 중 VIPS는 처음 가 봤는데,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몰라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내도 흡족해 했고.

돌잔치를 하고 있는 팀이 있어서 자리가 나지 않아 30분 정도 기다리긴 했지만 크게 지루하진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함께 우리는 나중에 아이 돌잔치를 어디서 할까를 놓고 한참 의견을 주고 받았다. 패밀리 레스토랑과 같이 음식과 서비스가 보장된 곳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후보군을 몇군데 꼽아 봤는데 문제는 교통. 수원이 서울처럼 지하철이 잘 놓여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렇지를 않아 좀 아쉽다.

어쨌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았는지 어제는 아이가 몸부림 치지 않아 잠을 푹 잤다고 한다. 매일 저녁....맛잇는 음식을 먹이면 좀 나아지려나? ^^a



2009년 8월 1일 토요일

2009년 07월 31일 초음파 - 발길질의 실체

요즘들어 태동이 부쩍 심해지고 있다는 아내의 호소. 병원에서 초음파 촬영중 그 실체를 봤다. 두 발을 모아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그냥 움직이는게 아니라 마치 일부러 힘을 주어 차는 듯한. ㅡ.ㅡ;;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UP 3D 영화를 보다

2006년 여름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렸던 Optics & Photonics 학회에서 입체 영화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연구 결과에 대한 발표라기 보다는 그간의 연구를 이용해 이제 상용화 수준에 도달한 기술의 시연이었다.

몇 가지 샘플 영상과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의 한 장면(얼음 호수를 기차로 건너는)을 3D 로 제작한 것들을 시연했었다. 그러면서 수년 내로 일반 극장에서 상용화 할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물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최근 픽사의 애니메이션 UP 이 3D 버전으로도 제작되어 상영되고 있다. 오늘 아내와 함께 동수원CGV 를 찾아 이 애니메이션을 함께 봤다. 결론만 이야기를 하자면, 실망. 그것도 아주 큰 실망. 3D 영상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라면 신기함에 감탄했을 수도 있지만 이미 3년 전에 최고 수준의 3D 영상물을 접했던 내게 UP 3D 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1. 상영관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3D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스크린으로는 어림도 없다.

2. 빠른 움직임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
입체 영사기를 도대체 어떤 걸 썼는지는 모르겠지만(2006 OP 에서 소개됐던 영사기는 대략 3가지 정도였다고 기억된다. 그 사이에 저가 모델이 개발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잔상이 너무 심했다.

3. 영화내의 연출이 굳이 3D 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화면으로만 이루어 졌다. 2006년에 샌디에고에서 봤을때는 영화속 사물이나 인물들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 나오는 듯 했다. (화면에서 튀어 나오는 뱀을 피하고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 들기도 했다) 그런데 UP 에서는 입체로 보일 뿐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연출이 없었다는 말이다.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걸로 예상하고 잔뜩 기대한 장면에 몇차례 있었지만 모두 스크린 안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실제감이 너무 줄어들어 버렸다. (2D 와 3D 양쪽으로 제작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같긴 하다.)

결과적으로는 3D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전용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는게 정답인 듯 하다. 앞으로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극장에서 굳이 비싼 돈을 내가며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Mahler: Symphony #5 - Adagietto

요즘 Karajan이 지휘한 Mahler : Symphony #5 - Adagietto 에 빠져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며칠전 퇴근 후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쥬스잔을 쥐고 거실 쇼파에 퍼지듯 앉았을 때 틀어져 있던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즐겨 듣던 곡은 아니었지만 리모컨도 멀리 있고 해서 그냥 눈을 감고 잠깐 음미하다 그만 반해 버렸다. 같은 앨범에 있는 곡인 Albinoni 의 Adagio in G minor 에 밀려 거의 스킵해버리던 곡이었는데.

역시, 음식이든 입맛이든 취향은 조금씩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긴 호흡을 가진 대화

나는 메신저 보다 메일을 이용한 대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메일이 좋고 메신저가 싫은 이유는 두가지다.

메신저는 문장 단위의 대화이다. 물론 메신저도 길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야기 하는 도중 언제라도 상대방의 문장이 떠오를 수 있고 그걸 무시하지 않는 한 이야기는 거기서 한번 쉬어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메신저를 이용해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문장씩을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번째 이유는, 메신저는 실시간 대화라는 점이다. 엄청나게 두뇌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메신저든 직접 대면하고 하는 대화든 나중에 후회할 말을 내뱉는 경우도 있고 적절하지 못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엔 그런 자연스러움이 독이 된다. 미투데이류의 서비스를 인터넷 포털의 댓글 만큼이나 싫어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짧은 문장으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공감 여부나 비아냥 거리기 뿐이다. 그 두가지 중 재미있는 건 비아냥 거리기다. 결국, 비난이나 비아냥거리는 말만 남을 뿐이다.
(미투에 대한 비유는 취소. 포털의 댓글과 비교하는건 너무 가혹한 비교인 듯 하다.)

메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위 두가지 이유의 반대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자신의 할 말을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를 조합해서 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와중에 방해받지 않는다. 그래서 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잘 완결된 문단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휘 선택의 실수도 줄일 수 있고. 그래서 난 한 문장씩 끊어서 호흡해야 하는 메신저 보다는 한 문단이나 하나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호흡하게 되는 긴 호흡을 가진 메일을 더 좋아한다. 전자 메일이 보편화 되기 전에는 손 편지를 참 많이 썼었다. (군생활동안 받은 편지가 168통이고 난 한 그 두배쯤 썼던 것 같다.) 블로그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안타까운 사실은, 막상 나와 친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이 희귀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메신저를 좋아하고 길게 글을 쓰는 것을 어색해 한다. 세상엔 블로거들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 왜 내 주변 인물들 중엔 그런 사람이 없는건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내 주위 친구들이 긴 호흡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커피 그라인더 구입

집에서 사용중인 커피 그라인더는 몇 해 전에(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1년이었나...??) 친구가 사용하던 것인데 집에 놀러갔다가 '쓰지 않으니 가져갈거냐' 는 말에 덜렁 받아왔다.

다 좋은데, 커피콩이 담기는 부분이 평평해서 커피콩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결국 몇알은 분쇄되지 않고 남는 문제가 있었다. 늘 1인분이나 2인분씩만 분쇄해서 드립하는 우리에게 몇 알 남는 건 약간 귀찮은 문제였다. 그래도 크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어서 상당히 오랜시간 그대로 사용하다가 며칠전에 저렴한 수동 그라인더를 하나 구입했다. 시험삼아 사용해 봤는데 남는 원두 없이 깨끗하게 분쇄가 되었다.

아내가 임신한 탓에 집에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아 커피를 드립 하는 횟수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줄어서 당분간은 크게 사용하지 않을 듯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늘 걸려있던 것이 해결되어서인지 기분은 무척 좋다. :-)

ps
이제 2선으로 물러나게 된 예전 그라인더는 일단 진열장에 놓아두고 있다. 어찌 해야 할까...버리기엔 아까운데.


2009년 7월 23일 목요일

나들이

강릉으로 여름 나들이를 왔다.

경포대 해변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아내와 발목까지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을 거닐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닌지라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 좋았다. 물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강렬한 햇살, 포근한 바람, 시원한 바닷물까지 마음을 쉬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음에 경포대 해변을 거닐때는 식구가 하나 더 늘어 있겠지. :-)



2009년 7월 19일 일요일

임신 7개월째.

배불뚝 아줌마가 된 아내가 요즘 잠을 잘 못잔다. 다름 아니라 태동 때문에. 누워 있는 자세가 마음에 안들면 뱃속의 아이가 발로 자꾸 툭툭 차면서 자세 바로 잡으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잠을 깊게 못잔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 아이가 잠이 들어서 얌전해지면 그 때 낮잠을 잔다. 그러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서 피곤을 호소. 배 밖으로 나오기도 전부터 심술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ㅡ_ㅡ;;




2009년 7월 17일 금요일

대화


[400TX | Diafine | V700]
@파주 평화누리




2009년 7월 15일 수요일

취직

수원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결정됐다.

기념으로 오늘 아내와 축배를 함께 들었다. 요즘 마시지도 않던 술을 몇잔 마셔서인지 어질어질... 하지만 기분은 좋다. 면접 준비하느라 정신 없었던, 면접 보고나선 걱정하느라 정신 없던 시간들이 모두 지났다.

내년 여름 여행갈 곳을 아내와 함께 고르고 있는 중이다. 일단은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쪽이 유력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 중 한군데로 꼽자면 캐나다에 있는 위니펙에 가보고 싶다.(나는 인간이 초라해질 정도의 자연을 보고싶다) 추운 곳이라고 늘 반대 의사를 내던 아내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여름이라면'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나저나...주소까지 다 적어놓고 책상에서 숙성중인 제명씨에게 보내는 우편물을 얼른 보내야 할텐데. :-(



2009년 7월 12일 일요일

비 내리는 휴일 아침



비 내리는 휴일 아침을 맞이하는 바람직한 자세?



쓰임새


[400TX | Diafine | V700]
@용인 민속마을


나란히 걸려 있으되 쓰임새는 제각각.

더 잘 맞는 곳을 찾는 사람과, 덜 힘든 곳을 찾는 사람은 겉보기에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찾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2009년 7월 11일 토요일

무제


[K50.4 | 400TX | Diafine | V700]
@용인




2009년 6월 27일 토요일

구글리더 정렬 순서

요즘 블로깅을 할 시간이 없다. 포스팅은 물론이고 구글리더에 구독신청해 놓은 블로그들을 읽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몰아서 읽으려다 보니 한가지 아쉬운 점이 생겼다. 다름아닌 정렬 순서. 몰아서 읽으려니 처음 쓴 포스팅을 가장 먼저 읽었으면 좋겠는데 가장 최근 포스팅이 제일 먼저 나오다 보니 스크롤바를 계속 위아래로 움직여가며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정렬 기능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음...어떻게 바꿀 방법이 없을까?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도심 속 자귀나무


[Pentax KX | K50.4 + Red Orange 041 filter | 400TX | Diafine | V700]
@화성 동탄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눈치

"아빠 얼굴이 무척 익숙하네요."

"아기가 아빠를 닮은 것 같네요."

이런류의 말이 아기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관심이 있었어야 알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려주려 애쓰다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는 나를 보다 못한 의사가

"파란색.....고추.....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라고 이야기를 할 즈음에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은 낙태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성별에 대한 이야기는 부모의 궁금증을 만족시켜주는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느냐는 눈빛을 받으며 그제야 이해했다고 끄덕이면서 아내를 보니 눈치 없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어쨌든 아들이란다. 첫째는 딸이길 바랬는데.

ps
그런데 막상 태어나고 보니 성별이 틀린 경우도 간혹 있다는데, 출산 전에 미리 아는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차를 바꾸다

박사논문 디펜스 때문에 정신없던 탓에 블로그 업뎃을 못했다. =_=

이번주에 결혼후 타고 다니던 마티즈를 팔고 98년식 sm520v 를 구입했다. 연말에 태어날 아가를 위해 좀 낡았더라도 뒷자석에 카시트를 장착하고도 여유가 있는 큰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내와 함께 서민5호 라고 불리기도 하는 우리 새 차를 타고 강릉 처가까지 테스트 드라이빙겸 나들이를 했다. 11년된 차라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주행 성능이 좋았다. 연비도 리터당 12km 정도 나오던데 이만하면 준수.(물론 25리터로 450km 를 달리던 마티즈에 비할 순 없지만;;;)

앞으로 우리 가족의 나들이를 잘 부탁해, 서민5호! :-)



2009년 6월 8일 월요일

차를 바꾸다

오늘 아침까지 몰았던 차는 GM대우에서 출시한 마티즈II 였다. 4년전에 청주에서 중고차로 골랐는데 아반떼와 마티즈II 를 놓고 한참 고민하다 마티즈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4년간 불만없이, 오히려 상당히 만족하며 탔다.(대관령에서 CVT 미션이 나가버렸던 일을 빼면..)

마티즈를 타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바로 사고 발생시 차의 파손 정도였다. 몇해 전 고등학교 동창 한명이 마티즈를 몰았었는데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당하고 차의 뒷자석이 없어져 버렸다. 이후에도 마티즈의 사고 현장을 몇차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운전석과 조수석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호가 되지만 뒷자석은 음류수 캔 찌르러지듯 파손이 되어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그동안에는 크게 걱정 안하고 타고 다녔는데 연말에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뒷자석에 카시트를 장착하고 아내와 함께 탄다는 생각을 하자 마티즈를 이용하는 건 좀 걱정스러워졌다. 그래서 오래된 연식의 중고차 가격이 많이 내려가 있는 지금 차를 바꾸기로 했다.

고민 끝에 sm5 로 결정하고 어제 98년식 sm520v 를 구입했다. 최근 경제 사정 때문에 마티즈의 중고 거래가가 상당히 강세를 보이고 있고, 10년 이상된 연식의 중고차 가격이 많이 내려가 있는 탓에 내 마티즈에 추가금 아주 약간을 얹어서 좋은 차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오늘 오후에 정비소에서 말끔히 점검과 청소를 마친 차를 넘겨 받았다. 마티즈II 키를 넘겨주면서 조금 아쉬웠다. 지난 4년간 우리 부부와 10만km 이상 여기저기 돌아다닌 녀석이었는데. 좋은 주인 만나겠지.

그런데 sm520v 는 이래저래 좀 복잡한 듯 하다. 주행 모드도 파워모드, 스노우 모드로 나뉘는 듯 하고...또 ECU?? 개념은 참 마음에 드는 제어장치이긴 한데...ECU 리셋...재학습....이거 시켜야 하는걸까? 또 재학습 시킨다면 그냥 내가 해도 되지 않을까? 나름 좋은 운전 습관을 갖고 있는데.(에코 드라이빙?)



설거지

사람마다 요리하는 걸 더 좋아하는 이가 있고, 반대로 설겆이 설거지 하는걸 더 좋아하는 이가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오랜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 요리보다 짦은 시간동안 팔 걷어 부치고 박박 문질러 대는 것으로 긑나는 설겆이 설거지가 더 속이 편하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일상은 요리-설겆이설거지 의 관계와는 정 반대의 양상을 보이는 듯 하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간단하고 쉬운데, 마무리 하는 것은 길고 지루한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면 설겆이 설거지를, 그렇지 않다면 일을 벌이는 부서에서 몸담고 있는게 내게는 맞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2009년 6월 1일 월요일

바람부는 여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아파트가 아니다. 베란다에 서서 바라보면 산과 들이 보이는, 신도시 지역의 최 외각에 자리잡고 있다. 밤이면(물론 요즘들어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외곽에 있다 보니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 바람이 너무나 잘 통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 창문을 열어놓는 것 만으로 30도를 넘는 더위가 사람을 괴롭히는 요즘,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의 먼지를 닦을 필요조차 없이 지내고 있다.

한 여름의 열대야를 지내봐야 알겠지만 지금 같아선 굳이 에어컨을 설치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래, 원래 여름이란 이런 계절이었다. 햇볕에선 뜨겁게 달아 오르고,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는.

확실히 난 도심에서 살 체질은 아닌 듯 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여름을, 시원한 냉커피 한잔 책상에 올려두고 책을 읽기에 딱 알맞은 계절을 보내고 있다.



2009년 5월 29일 금요일

안녕, 바보 노무현



그토록 굳게 다짐했건만 영결식과 노제를 보며 또 눈물이 난다.

그러나..아무리 아쉬워 하고 그리워 한들 이제는 떠나야 할 사람.

안녕, 안녕 바보 노무현.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1막

오전 9시를 넘기면서까지 침대에서 잠을 잤다. 엊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세상 모르고 잠을 잤다. 마지막으로 잠을 자고 싶은 만큼 자 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평일인 오늘, 연구실에 이야기 해 둔 짧은 휴가를 쓰고 있다. 아내와 함께 인근 유원지에 나들이라도 다녀오려 한다.

2009년 5월 27일 오후 6시 20분. 그러니까 바로 어제 저녁.

박사 논문 디펜스에 성공했다.

내 인생의 1막이 어제 막을 내렸고 2막을 준비하는 짧은 휴식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노무현...노무현 그리고 또다시 노무현

(이 글은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훗날 기억하기 위해 쓴다. 내가 세상에 실망을 할 때마다 이 글을 꺼내 읽으며 그 실망을 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주 토요일 아침, 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건강 악화로 부산대 병원 입원" 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오죽했으면' 이라며 혀를 차게 했던 그 뉴스는 몇 시간 뒤 절망적인 뉴스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났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은 이제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TV를 틀어도, 라디오를 틀어도, 블로깅을 해봐도 나왔던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다. 그를 그리워 하는 이들이, 평가하고자 하는 이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 내고 있지만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으니 더이상 뉴스(news) 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노무현 대통령을 이야기 한다. 뻔한 기사와, 뻔한 댓글, 뻔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블로그를 계속 지켜본다. 마치 처음 접하는 이야기인양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고 있다.

그립기 때문이다. 그리고...미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 올랐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그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가슴의 그리움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을 때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꿈꾸는 가치를 노무현이라는 젊은 정치인이 갖고 있었고, 그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그 정치인 덕분에 나는 '한 명' 만 바라보면 되는 쉬운 이상을 꿈 꿀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금, 나는 내가 그리워 하는 대상을 힘들게 구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인간 노무현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그를 지지했던(그의 어떤 정책들은 매우 반대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루고자 했던 가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에 동의했기에 그를 지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지금, 나는 내가 그리워 하는 존재와 내가 꿈꾸던 가치가 분리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단언컨데, 인간 노무현은 내가 평생을 두고 그리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는 그의 죽음과 무관하게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것은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여전히 추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 동안은 참 쉬운 길을 걸었다. 내가 꿈꾸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저 노무현에게 한표 던지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가치를 위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더 이상 인간 노무현에게 그 가치의 실현을 떠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그리워 할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게 지웠던 내 몫의 봇짐을 되찾아 오려 한다.

그리워 하기도 할 것이며, 슬퍼 하기도 할 것이다.
때론 분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마지막 고개라고 할 수도 있는 그 길을 넘지 못했으나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나는 무의식중에 그것을 바랬으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역사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그 이후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그의 죽음 앞에 다녀가는 그리움의 발자국은 그가 외로이 걸었던 험난한 시골길을 넓은 신작로로 바꾸어 가고 있다. 나는 그 길에 서서 희망을 보고 있다.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담배 있나?"



경호관에게 마지막으로 담배 있냐고 물었던 노무현 대통령. 만일 그 때 담배 한대 피울 시간이 주어졌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역사에 가정은 불필요한 그리움인걸 알지만...

담배 한대 불을 붙여 영전 앞에 놓아두는 유시민 전 장관의 사진을 보며 기어코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노무현...ㅡㅜ

미칠듯이 그립다.

ps.
누군가 말했다. 노무현도 잘못한 것이 많았다고. 맞다. 그도 실수한 정책이 있었고 본인도 언젠가 인정했듯이 재임기간 대통령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도 했다.

하지만 분향소의 천막을 철거하고 경찰 버스와 무장 전경으로 분향소로 향하는 시민들을 가로막는 경찰과 싸워가며 그를 추모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며 그가 최소한 '자기 자신' 이 아닌 '국민' 을 위한 정치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투신을 '자살' 이 아닌 '자결' 이라고 본다. 구체적인 혐의도 잡지 못하고 시계를 선물 받았다, 논두렁에 버렸다 등등 절대로 수사 종결 이전에 발설하지 말아야 할, 더군다나 혐의와 무관한(검찰도 인정 했듯이) 내용들을 언론에 흘려서 망신을 줘가며 압박했던 검찰.

소환을 미루고 노무현 망신주기에만 열을 올리던 검찰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가 자청해서 소환 조사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하지만 검찰은 당장 구속영장 신청할 것처럼 굴면서도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달의 시간만 끌었다. 혐의가 있으면 구속 영장을 신청하면 될 것이고 정치적 역풍이 부담됐다면 불구속 기소 했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한달이 되도록 기소 여부조차도 결정 못했던 건 그들 스스로 확실한 증거도 없이 노무현을 건드렸다는 말이 된다.

스스로 자청해서 소환조사까지 받아가며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으면서 '노무현은 돈 받았는데 몰랐다고 발뺌한다' 는 뉘양스의 발언만 언론을 통해 계속 흘려대는 그들을 향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결' 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앞으로 3년 남았다. 물론 '정치 보복' 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저 정치적으로 보복을 약간 하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과거 청산' 이다. 해방과 함께 청소 되었어야 할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것이 지금이라도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화로 풀어가려는 사람이 아니라 강철같은 권력으로 과거를 청산해 나갈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붓을 놓다

이 시대가 낳은 가장 위대했던, 하지만 영악하지는 못했던 정치가.

노무현.

2009년 5월 23일

그 자신의 붓을 내려놓다.

눈물이 난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축제

이번주는 우리학교 축제 기간이다.

지난 수요일 낮에는 자연대 건물 주차장에서 교수님과 학부, 대학원생들이 어울어진 맥주 파티가 열렸다. 그릴 앞에서 음식을 공급하는 건 교수님들이었는데 나중엔 누가 그릴에서 소세지를 굽고 누가 맥주를 배달하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됐다.

불쌍한 건 대학원생들. 구석에 모여서 맥주 한잔에 안주 몇개 집어먹고는 어느틈엔가 각자의 연구실로 사라지는 듯 했다. 뭐...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교수님 한 분 찾아뵙고 업무 관련해서 코멘트 받을게 있어서 잠깐 들렸을 뿐 맥주 한모금도 얻어 먹지 못했다. ㅡㅡ;;

대신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어제 천막을 쳐놓고 파전을 팔던 수학과 주점에 들려서 연구실 동료들과 비가 천막을 두드리는 소리를 머리 위로 들으며 파전을 먹었다. 다들 할 일이 많은 평일이고 나 역시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은 마시지 못했지만 꼭 술을 마셔야 비오는 날 파전이 맛있는 건 아니다. 기름 냄새 가득한 천막 안에서 비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파전의 맛은 솔직히 비교할 만한 음식이 그다지 많지 않다.

최고로 정신 없던 일들을 어제까지 대충 마무리 하고 오랜만에 오늘은 차를 놓고 출근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새벽 같이 차를 몰고 출근하는 것 보다는 여유있게 일어나서 출근하는게 훨씬 편하다. 몸도, 마음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더 준비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듯 하고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것만 남았을 뿐이다.



2009년 5월 16일 토요일

저장 후 종료하시겠습니까?

1초도 안되는 순간의 착각 때문에 주말 4시간 반의 결과물이 깨끗하게 날아갔다.

점심때 출근해서 지금까지 4시간 30분동안 열심히 작업을 했고 이제 퇴근하려고 컴퓨터 창들을 정리하던 중, 워드 창 종료 버튼을 클릭했더니 파일을 저장 후 종료하겠느냐는 확인창이 떴다. 그 순간, '출력해서 한번 읽어보자' 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화근이 될 줄이야.

'예' 를 클릭하면 저장 후 워드가 종료되기 때문에 종료하지 않고 출력을 할거라면 '취소' 를 클릭해야 했다. 그런데 순간적인 착각으로(저장 후 종료하시겠습니까? 아니, 종료 안할건데) '아니오' 를 클릭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상황 종료. 백업 파일을 만들도록 해 놓으면 뭘하나. 비정상 종료도 아니고 작성자가 저장하지 않겠다고 분명한 지시를 내린 판국에 백업 파일인들 남아 있을리가 없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퇴근 후 집에서 작업하려 했던 부분까지 포함해서 다시 다 할 경우 몇시에 퇴근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잘못인 걸 누굴 탓하겠는가. 아내에게 전화 걸어서 퇴근해서 저녁 먹을테니 함께 저녁 먹자고 했던 약속을 취소하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30분째 아무것도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도 아직 그대로다. 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 있으면 사람이 아니지. ㅡ.ㅡ;;;

그래도 어쩌겠는가. 잊을 건 빨리 잊어야지.....아 진짜...ㅡㅜ

UPDATE 2009.05.17.


결국 하루 뒤인 오늘도 아침일찍 출근했다. 그런데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평소 작업 중 저장을 자주하는 편인 내가 어째서 4시간 반동안 단 한번도 저장을 안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던 건지...어쨌든 오늘 하루도 열심히!


2009년 5월 14일 목요일

등산

나무님 블로그에 올라온 저질 체력이 경험하는 등산의 3대 미스터리 란 포스팅을 읽고 등산이 하고 싶어졌다. 동탄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아내와 둘이 종종 경기 북부 언저리의 산들을 다니곤 했었는데 이제는 당분간 산에 가는 건 어려워 졌다. 산과 여행을 유독 좋아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고 있는 아내를 떼어놓고 의리없이 혼자 놀러다니기도 사실 좀 뭣하고...

어쨌든 날 잡아서 등산을 한다면 지리산 종주를 다시 한번 하고 싶긴 하다. 처음 종주는 친구들과 함께 갔었고 두번째 종주는 길잡이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첫번째 종주 마치고 돌아오고 일주일만에 또 한번 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천왕봉을 오르지 못했던 첫번째 종주와 달리 두번째는 천왕봉에 오르긴 했지만 다 올라서 비구름의 습격을 받는 바람에 일출은 역시 보지 못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올랐음에도 보지 못했으니, 할아버지부터 나까지 누군가 한명은 덕을 쌓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범인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나저나...천왕봉 바로 아래 장터목 산장 화장실에 적혀 있던,

"지리산 종주 3번째 성공!" -> "미친놈"

이라는 화장실 낙서와 그 아래에 달려 있던, 글쓴이의 심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댓글은 이제 페인트 아래로 없어졌을까? 볼 일 보러 들어갔다 발을 헛디딜 뻔 했을 만큼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파전에 와인 한잔

하루종일 비 오는 걸 구경하고 있자니 학교 앞 파전집에서 파전에 동동주 한잔이 하고 싶어졌다.

바빠서 그럴 여유는 없고....

퇴근할 때 전화해서 파전 먹자고(파전 해달라고) 할까? 집에 동동주는 없어도 와인은.. 1/3 병 가량 있지..아마? 가만 생각해보면 와인과 파전도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문득 예전에 눈 펑펑 내리던 날 내가 함박눈+굴전+막걸리가 땡긴다고 하니까 노구가 어이없어 했던게 생각났다.

취향이라구 취향. (비+파전+와인에 대한 입막음)

(^_______________^)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제철 간장 게장

꽃게가 제철인 5월.

게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종현 부부를 통해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 간장 게장을 공수받았다. 간장게장으로 저녁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는 아내를 보면서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을 배우고 있다.

(^_______________^)



2009년 5월 9일 토요일

서린 부부 다녀감

아내의 절친한 친구 중 한명인 서린이와 그 약혼자가 저녁에 다녀갔다. 가을에 결혼할 예정인데 동탄에 집을 마련할 계획이어서 집을 보러 온 김에 우리집에 들렸다고 한다.

같이 차를 한잔 마시면서 집에서 이야기 하고 저녁은 나가서 사먹었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도 주말이나 저녁 모임에 어울리는 사람이 자꾸 내 친구와 부인들의 모임으로 한정되는 분위기여서 내 속마음이 좀 안좋았는데 같은 동네로 절친한 친구가 이사온다고 하니 내 마음이 다 방방 뜬다. 약혼자도 사람이 선하게 생기고 성격도 모나지 않은 듯 해 함께 어울리기에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아무리 결혼을 했어도 결혼 전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래서도 안되고.) 결혼 전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놓아버리고 배우자에게 맞추기 시작하면 결국 그 가정은 이래저래 불화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 세상 어느 사람도 다른 사람의 삶과 인간관계를 모두 떠안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린 부부의 동탄 이사는 진심으로 반길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




주말 출근

어지간하면 주말은 집에서 쉬는게 원칙이지만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 연구실에 나왔다. 그래도 어제 일찍부터 푹 수면을 취했더니 오늘 컨디션은 최근 어느때보다 좋다. 확실히 그동안 받는 스트레스에 비해 잠이 모자라긴 했던 것 같다.

5월이 지나면 잠을 좀 충분히 잘 수 있겠지. 어디 여행이라도 좀 다녀오고.

힘내자. :-)



2009년 5월 7일 목요일

Hotel California



퇴근길 라디오에서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라이브 공연이 흘러 나왔다.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지라 무척 반가웠다. 뜻밖이었던 것은 1977년 5월 7일, 즉 32년전 오늘 빌보드 차트 1위가 바로 이 곡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간만에 잊고 지내던 좋은 곡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자기 전에 다시한번. :-)



관사, 전치사 그리고 조사

오늘은 영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ㅡ_ㅡ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능력은 없지만 학회등에 출장가서 대화를 할 때는 사실 가벼운 문법상의 실수 정도는 무시할 수 있다.(나만 그러나? 일본 사람도, 독일 사람도, 프랑스 사람도 다 자기나라 고유의 억양과 문법이 뒤죽박죽이 되서 이야기 하는 걸.) 대화에서 중요한 건 그런 사소한 문법을 지키고자 애 쓰는 것 보다 자신있게 하고 싶은 말의 핵심 단어들의 강세에 신경을 써서 의사 표현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 영어 공부의 원칙이었고, 지금보다 훨씬 영어 실력이 못했을 때도 학회 나가서 발표할 때면 '난 양키가 서툰 한국말로 더듬거려도 다 알아듣는데, 너희들은 서툰 영어 못 알아 들어? 그건 너네 잘못' 이라는 배짱으로 신나게 떠들어 댔다. 그리고 사실 별 무리없이 의사소통이 됐다. 혼자 여기저기 놀러 다니다 길을 잃어서 주민이나 경찰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몇번 있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적어도 가벼운 회화 수준에서는.

너무 회화 위주로 영어 공부를 해서일까. 논문을 쓰면 가장 많이 지적받는게 문장이 너무 '구어체' 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영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난 한국어로 글을 쓸 때도 문장이 대부분 구어체다. 그래서 발표자료 원고를 작성하는 건 잘 되는데 논문 쓰는 건 잘 안된다. 그러니 이건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관사.

영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말과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어순이 아니라 관사 라고 하는 한국어에는 없는 것들이다. 논문을 쓰고 교정을 받아보면 다른게 문제가 아니라 a 와 the 의 사용이 많은 부분에서 민망할 정도로 틀렸다고 체크되서 돌아온다. 전치사도 마찬가지.(비중은 훨씬 덜 하지만.)

어제 저녁때도 온통 붉은 표시가 되어 있는 원고 교정본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a 와 the 가 쓰인 곳은 어김없이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전치사도 종종 포함되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관사와 전치사를 어려워 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영어 시험 보고나면 친구들에게 투덜댔던 대표적인 말이,

"조사 하나면 될 것을 조사가 없어서 관사와 전치사를 붙여서 의미 전달을 하는 미개한 언어"

라는 것이었다. 물론 조사와 관사+전치사 가 동급으로 칠 수는 없다. 사과와 배를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만큼 그 두가지를 어려워 했다는 것 만큼은 틀림없다. 남들도 그러려나.....ㅡㅜ

그런데 적어놓고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관사와 전치사가 없고 조사가 있는 한국어를 어려워 할까? 조사의 용법을 쉽게 이해할까? 왠지 그럴 것 같은데 경험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아...교정본 고쳐서 타이핑 해야지..ㅡㅜ

UPDATE 2009.5.11.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이제명님이 이 글을 읽고 본인 블로그에 관사에 대해 포스팅을 했다. 이제명님의 블로그에 종종 올라오는 영어산책 은 굉장히 실질적인 영어 공부가 되서 좋다. ^^




2009년 5월 6일 수요일

마리오 카트 Wii 구입

아내와 나는 닌텐도에서 나온 게임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가 즐기는 게임의 특징이 닌텐도의 게임 철학과 잘 맞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복잡한 설명을 빼고 NDSL과 Wii 용으로 발매되는 게임을 참 즐겁게 한다.

최근에는 NDSL 용으로 나온 호텔 더스크의 비밀 이라는 게임도 구입했다.(아내는 벌써 클리어, 나는 시간을 많이 못들인 탓에 챕터 3 에서 헤매는 중. 챕터 10까지 언제가냐...;; )

그러던 중 며칠전 닌텐도 Wii 용으로 마리오 카트가 발매됐다.

닌텐도 Wii 용으로 발매된 마리오카트 Wii 를 구입해서 연휴동안 아내와 레이싱을 벌였다. 어제도 자기 전 각각 열번의 코스를 돌며 두번의 레이싱을 하고는 지쳐서 그대로 침대로 다이빙 했다. 점수는 1:1. 게임 소요 시간 한시간 10분.

그나저나 NDSL 용 마리오카트DS 에서는 승률이 박빙 이었는데 Wii 에서는 아내의 승률이 조금 높다. 어쨌든 당분간은 또 자기전 그날의 스트레스를 적당히 풀어주는 용도로 많은 사랑을 받을 듯. :-)



2009년 5월 3일 일요일

배가 나오고 있어요

외출을 위해 샤워를 하던 아내가 샤워가 끝난 후 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며칠 전과 체형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임신 4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으니 이제 조금씩 나올때는 됐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조금 부풀어 오른 몸을 보니 신기하기 그지 없다.

ps
이제 한동안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쇼파에 앉아 양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도 배가 당겨서 하지 못하게 됐다.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바이다.
(^______^) a



2009년 5월 1일 금요일

Gmail backup solution



지저깨비 님의 블로그에 어제 지메일 백업 툴에 대한 포스팅이 올라왔다. 읽어 보고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건 날 위한 툴이야!'
(아마 이 툴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소리를 했을 듯.)

원래 홈페이지는 http://www.gmail-backup.com/

대충 관련 글타래를 읽어보니 처음 백업할 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견들이 많아서 퇴근 전에 백업을 걸어놓고 퇴근하기로 했다. 리눅스용을 사용하면 맥에서도 된다고 하는데 라이브러리를 더 설치해야 하는 듯 했다. 아내의 매킨토시만 있는 집에서 사용을 하려면 내가 귀찮아 져야 하는데...예전의 그 열정은 다 어디갔는지 이젠 라이브러리를 설치 어쩌고 하면 별로 손대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데비안 GNU/리눅스에 너무 오래 길들여진 듯 하다. ㅡ.ㅡ;;

그나저나 이런저런 인터넷 팁에 대해선 내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지저깨비님이 알아서 잘 정리해서 알려주시니 너무 편하다. 만세. :-D



2009년 4월 30일 목요일

인화물 도착

주 초에 온라인 인화샵에 주문했던 사진 인화물이 오늘 택배로 도착했다.

얼마전 처형 결혼식에서 찍은 사진들과 그 전에 찍은 사진들 몇장을 선물용과 집안 장식을 위해 조금 큰 사이즈로 주문했다. 결과물은 어쨌든 만족.

가슴 한켠이 차분해지는 느낌의 이런 흑백 인화물이 난 너무나 좋다. ^^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입덧이 끝나가는 건가?

아내의 입덧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연속 삼일째 컨디션이 괜찮다고 한다. 입덧이 끝나려면 아직 기다려야 하는 건 확실하지만 어지러움을 동반해서 오는 심한 입덧 시기만이라도 지나가 줬으면 좋겠다.

아직은 울렁거림이 남아 있어 30분 이상 차를 타는 건 힘들어 하니 멀리 다녀오는 건 무리겠지만 지난 주말처럼 간단히 인근 호수 등으로 가볍게 나들이 다녀오는 건 괜찮을 듯 하다. 날씨도 점차 추운 날 수가 줄어들고 있어 여러모로 임신 중기로 접어들고 있는 아내에게 좋은 상황이다.

이번 연휴에는 청주와 강릉 부모님들을 한번씩 집으로 모셔서 얼굴을 뵐까 생각중인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다. 나도 5월까지는 정신없고 아내도 장거리 이동이 힘들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얼굴을 뵐 수가 없다. :-(



2009년 4월 27일 월요일

안개

5시 반에 일어나 창 밖을 바라봤는데 바로 앞 동 건물이 보이지 않을만큼 안개가 짖게 들어차 있었다. 원래 화성 인근이 안개가 심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요즘 같이 바쁜 시기가 아니라면 버스 다니는 시간까지 기다렸다 버스를 타지 절대로 그런 안개속을 운전해 가며 출근하지 않았을 테지만 워낙 일이 많은지라 투덜거리면서 집을 나섰다. 덕분에 7시 반이 살짝 못미친 지금 한가지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 졸려.

일찍 움직이면 그만큼 하루가 길고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어서 나도 아침일찍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만,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밤에 일찍 잘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그만큼 건강은 나빠지는 것 같다. 앞으로 한달. 끝나면 늘어지게 잠도 자고 여행도 다녀와야지.

UPDATE 2009. 4. 27. AM 7:58
주말 K리그 7라운드에서 전북이 대전을 4-1 로 '발라'버렸다. 아...orz
컵대회 강원 원정 경기를 사실상 포기하면서까지 준비했던 원정이었는데.
올시즌 전북은 부상만 피한다면 상대할 팀이 없어 보인다. ㅡㅜ
정신 차리려고 커피 한잔 하면서 축구 뉴스를 보다 급 우울해짐...ㅡㅜ



2009년 4월 26일 일요일

왕송 저수지 나들이

집에서 30분만 차를 타고 가면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에 있는 왕송 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저수지(인근 호수들에 비하면)이기는 하지만 저수지를 따라 제법 맛있는 밥집들이 연이어 있다.

점심에 뭘 먹을까 하다 날씨도 괜찮은데 나들이 삼아 다녀오자는 생각이 들어 기석네 부부를 불러서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날이 좀 더 포근했다면 2층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조금 아쉽다. 그래도 비가 그친 후의 깨끗한 공기를 느끼며 산책도 잠깐 했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두시간 가량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는 백운호수에 한번 놀러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는데, 설마 정말로 호수에 있는 노젓는 배를 타자고 하진 않겠지. ㅡ_ㅡ^



태몽?

보통 태몽이라는 것을 꾼다고 한다. 본인이 꾸기도 하고, 주위에서 꾸기도 하고. 아내가 임신할 때는 고향 어머니께서 밤 줍는 태몽을 꿨다고 하셨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내가 꿈을 꿨는데 산에 밤을 따러 가서 어른 주먹보다 큰 밤을 땄는데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서 얼른 먹어버렸다고 한다. 둘째일리는 없고, 쌍둥이라면 벌써 알았을테고...아침에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 웃었다.(원래 밤 좋아하고, 먹을거 욕심 많잖아! 깔깔깔)

난 꿈에 의한 예지(예를 들어 누군 유난히 꿈이 잘 맞는다느니 하는 등의)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상의 사건에 의해 사람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는 인정한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은 것처럼.

음...거실에서 달그락 거리며 사기그릇에 숟가락 닿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뭘 또 먹고있나보다. 내다 봐야지.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구글 그룹스에서 공지사항 지정하는 방법은?

나는 온라인 모임 개설에 구글 그룹스를 이용하고 있다. 내가 개설한 것들도 있고, 가입해서 회원으로 활동중인 곳도 있다. 그런데 오늘 신기한 화면을 봤다.



토론 항목 제일 상단 메세지는 과거의 메세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첫번째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핀으로 눌러놓은 듯한 아이콘도 붙어 있다. 공지사항으로 지정해서 제일 상단에 표시되도록 지정해 놓은 듯 한데 도대체 저걸 어떻게 지정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쉽게 찾아지는 옵션인데 내가 못찾는건지...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내 블로그의 가치는?

지저깨비님의 내 블로그의 가치 라는 포스팅에 나온 사이트에서 나도 내 블로그의 가치를 평가받아 봤다.



5백만 달러???

평가하는 기준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저렇게 높을리가 없는데. 저게 신뢰할 수 있는 결과라면 당장 구글 애드센스를 달아야 하는 것이겠지. :-D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빈스 과랄디를 위하여



어제 밤 새벽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서 라디오를 듣던 중 뜬금없이 어떤 앨범이 생각났다. 바로, 조지 윈스턴의

'빈스 과랄디를 위하여'

정식 제목은,

LINUS & LUCY
THE MUSIC OF VINCE GUARALDI

라고 해야 한다.(CD케이스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이 앨범을 언제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앨범에 반해서 LP 판을 두개나(처음 샀던 판에 기스가 가서...ㅡㅜ) 샀을 때는 분명 지나서였을 것이다. 아직도 LP가 판매되던 때였던가? 아니면 이 앨범은 CD로만 판매됐었던가? 음....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표지부터 이전 앨범들과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던 이 앨범을 들으면서 무척 놀라워 했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조지 윈스턴은 자연을 연주하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였고 그의 앨범에서 이토록 도시 내음이 물씬 풍기고 경쾌한 피아노 선율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가 진한 커피 한잔과 한겨울 산장이 어울리는 앨범이라면 빈스 과랄디를 위하여 는 부드러운 와인 한잔과 늦은 시간 다운 타운의 스카이 라운지가 어울리는 앨범이다.

지금 나오는 곡은 Theme to Grace/Lament.

며칠전에 산 와인 한잔과 함께 5분간의 향취가 기다리고 있다. :-)



12 주차 초음파 영상

임신 12주째가 되어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 오늘은 정밀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신체 부위를 확인하고 다운증후근 징후나 기타 초음파로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보는 날이었다.

검사를 시작하자 마자 아이의 크기를 측정했는데 6cm 나 됐다! 두주일 만에 두배나 큰 것. 어쩐지 많이 먹더라니.(응? 누가?)



오늘도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마자 온 몸을 꿈틀대며 움직였다. 그런데 정밀 초음파로 얼굴을 찍으려 하자 두 팔로 얼굴을 가린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활발하게 움직였었는데. 의사도 당황했는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흔들어 보기도 하고 여러 각도로 재촬영을 시도했는데 조금 전까지도 온몸을 움직이던 아이가 얼굴을 찍으려 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비싸게 굴긴. ㅡㅡ;



대면식은 다음 기회로. :-)

ps
아내가 야채쌈이 먹고 싶다고 해서 단지내에 매주 서는 장에 가서 쌈 재료들을 사갖고 와서 저녁으로 쌈밥을 먹었다. 종류별로 쌈을 포개놓고 된장을 턱 얹어서는 정신없이 먹더니 지금은 배부르다며 늘어져 있다.

주위에서 입덧이라고 하면 뭘 잘 먹지도 못한다고 들었는데... 속 미식거린다고 하면서도 먹을걸 대령하면 순식간에 아구아구 잘 먹는다. 정말 잘 먹는다. 평소 두배는 먹는 듯. 조금 있다가는 냉면도 삶아 먹겠단다. 뭐...잘 먹으니 걱정은 없는데...제발 야식은 나 몰래 먹었으면 좋겠다.

(^______________^);;

UPDATE 2009.04.23. 오후 10시 36분

아내가 쌈을 한소쿠리 먹고 과식했다고 늘어졌던 시각으로부터 한시간 반이 지난 지금. 냉면을 먹겠다고 물을 끓이고 있다. 아무래도 야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재 문을 닫고 일해야 겠다. orz




아침햇살

요즘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로 갈아타고 움직이는 시간도 아까워서 기름값 써가며 차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2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과 퇴근 길도 심야에 운전해서 가면 과속하지 않더라도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루의 일상에서 왕복 4시간과 1시간 20분은 굉장한 차이다.

집에서 눈만 잠깐 붙이고 다시 나온 오늘 아침. 한남대교에 도착했을 때 마침 햇살이 건너편 두무개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눈은 조금 뻑뻑했지만 무언가 할 일이 있어서 바삐 움직일때가 나는 즐겁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화창한 아침에 출근하는 것도.

힘들지만 기분좋은 날들의 연속.

힘내자. 이제 한달 남았다.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곡우(穀雨)

오늘은 24절기 중 못자리를 낸다는 곡우(穀雨)다. 1년 농사지을 곡식이 이날 비로 결정된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는데 신기하게도 오늘부터 이틀간 전국에 비가 내린단다. 반갑기 그지 없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24절기중 상당 부분은 잘 맞는 듯 하다. 이렇게, 못자리 내는 날 맞춰서 곡우가 내려주기도 하고. :-)

행복하게 비오는 걸 바라볼 수 있는 날이다. :-)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최고로 진땀 흘렸던 한시간

지난 금요일 대전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에 내려가 한시간 동안 세미나에 참석 했다. 대형 국책 과제를 기획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전문가들을 불러서 세미나를 듣는 자리었으니 사실 나 같은 풋내기가 낄 자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세미나를 듣는 것이 아니라 현업에서 뛰고 있는 고참 박사님들을 앞에 두고(머리 희끗한 분들이 절반 정도 됐던 것 같다) 그 분들에게 내가 연구했던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차라리 심사를 받는 형식이었으면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배우는 입장이니 마음이 편했을텐데 내가 처했던 입장은 그분들에게 내 연구 분야의 근황과 함께 향후 전망을 내놓고 아울러서 내 결과를 가르치는 입장이었다. 가르친다고 하면 표현이 과격하긴 하지만 그분들이 공부하러 들어온거라고 하셨으니 그분들이 공부가 되게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30분 발표를 했고 다시 질문과 답변이 30분 이어졌다. 발표 자체는 편안하게 했는데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셔츠가 젖어 버렸다. 그분들이 잘 모르는 분야 라고는 하지만 한 분야의 대가는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도 빠른 법. 그 짧은 시간에 핵심 키워드와 연구 결과의 약점등을 찾아내서 질문 해대는 통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표하다 말을 버벅거리기도 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다 이처럼 당황한 적도 기억에 없다.

내가 평가를 받는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발표를 잘 하고, 못 하고는 내게 아무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다만 내 발표가 좋은 영향의 부메랑이 되어 빠른 시일내에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내 설명이 도움은 됐을지 모르겠다. 함께 발표했던 박사님은(이분도 대기업 부장급 연구원. 도대체 왜 날 추천하고 또 그쪽에서도 그걸 받아들였던 건지.) 흥미진진하게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고는 하시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립서비스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발표였는데...ㅡ.ㅡ;;;

뭐, 덕분에 난 내 연구에서 보충해야 할 내용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실히 깨닫긴 했다. :-(




2009년 4월 15일 수요일

는개

잔뜩 흐린 하늘을 화면 가득 띄워놓은 아침 방송에선 하루종일 서울 지역에 는개가 내릴거라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같이 얼굴이 찌푸려 졌다. 모든이가 잠든 밤에 살며시 오는 는개라면 몰라도 한참 돌아다님이 많은 낮동안 내리는 는개라니. 우산을 써도 소용 없지 않은가. 더구나 모름지기, 비는 소리로 내리고 눈은 모습으로 내려야 하는 법이다. 비가 모습으로 내리려면 최소한 그 소리를 대신할 음악이라도 챙겨야 할텐데 배터리가 방전된 내 MP3 플레이어는 가져가 봐야 짐만 될 뿐이었다. 음악도 없는 상황에서 소리없이 내리는 비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함박눈이 내리는 것 만큼 어색한 일이다.

웃을 일인지, 화낼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상청의 예보는 빗나가 오후 2시를 지나면서 제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비가 오려면 최소한 이렇게는 와야지. 가물어도 너무 가물어 울창한 삼림에 사람의 손길이 스치기만 해도 불이 붙는 지경인데 안개처럼 흩뿌리다 마는 비는 보는이의 갈증만 더 심하게 만들게 뻔했다.

비오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카메라를 가져올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전 주말에 이사 후 처음으로 필름을 현상했다. 근 넉달만인듯 하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 바빠서 필름 한롤 소모를 못하고 카메라에 물려놓고 살았는지. 수세를 마친 필름에 상이 제대로 맺혔는지 확인하면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안온함을 느끼곤 나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양팔을 한껏 벌린듯 넓은 흑백 필름의 관용도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건진 사진이 몇장 없었을 상황이었는데.(노출계 없이 짐작만으로 찍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준다 하더라도) 뭐, 아무렴 어떤가. 좋으면 된거지. :-)

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건물 밖으로 나가질 못해 건물 전체가 웅웅거리는 소란스러움에 잠겨 있다. 그리고, 다른 소음과 달리 이런 웅성거림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든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여유로와 진다. 아마 그래서일까? 비오는 날 유난히 쌉싸래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동동주 한사발이 생각나는 것은.

배낭에 옷 우겨넣어 여행을 떠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필름을 현상하고, 협탁에 마주앉아 동동주 한사발 함께 들이킬 친구가 항상 옆에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 살이가 그리 원하는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

그래, 여유롭게 생각하자. 귀찮기 그지없는 는개비도 봄비라는 이름을 붙여보면 그리 못마땅 하지 않은 것처럼 일말의 여유도 없이 쫓기듯 사는 일상이라도 지금의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분명 신발끈 동여매고 잠시 여행을 다녀올 시간이 주어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가 누렸던 그 어떤 여행의 달콤함 보다도 더 달콤하리라 믿는다. :-)





2009년 4월 14일 화요일

기회?

살면서 기회가 세번은 온다고 했다.

그 세번 중 한번일까?

...모를 일이다.



2009년 4월 11일 토요일

이사온 집에서의 첫 손님

점심때 기석 부부와 지훈 부부가 다녀갔다.

음식을 따로 하진 않고 중국음식을 주문해서 먹었고 차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의 임신과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긴 기석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왔고 3시간 정도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행이 어제부터 아내의 컨디션이 좋았고, 그동안 집에만 있느라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친구들과 그 부인들이 와서 시간을 보내주고 가서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았다.

아내의 입덧이 잦아들면 시흥에 있는 지훈네 신혼집에 놀러가기로 했는데 언제쯤이 될런지. :-)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혜성, 기운을 차리다 ^^

평소보다 조금(...많이?)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더니 아내가 씩씩한 표정으로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입덧에 현기증에 무기력증으로 인해 이불 속에서 반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물어보니 오늘 점심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한다. 속 울렁거리는 건 여전하지만 현기증이 나거나 몸이 너무 힘들거나 하지 않아서 기운 차린 김에 좀 움직이고 있는 거란다.

입덧을 시작하고 난 이후 처음으로 기운찬 모습이어서 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다. ^^



2009년 4월 9일 목요일

사이버 망명

지난 며칠동안 구글이 MB정부의 삽질에 굴복하는 듯 해 무척이나 실망하고 있었다. 구글에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정부의 인터넷 언론 탄압에 반기를 들어야 했고, 한국 기업보다는 글로벌 기업이 그런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언론 탄압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본인실명 확인제를 구글마저 수용하고 나면 이제 한국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게 뻔했다.

그런데 오늘 구글이 유튜브 서비스에서 계정의 지역을 한국으로 설정할 경우 동영상의 업로드를 금지하는 결정을 했다고 발표했다. 본인실명 확인제를 도입해서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의 칼날에 가입자들을 노출시키느니 한국에서의 사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고 말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 이유에 대한 해명도 구글 코리아 공식 블로그에 올라왔다.

아이의 동영상등을 YouTube를 통해 업로드 하고 있던 난, 어쩔 수 없이 내가 한국이 아니라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설정을 바꿔야 했다. 구글의 현명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내 국적을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바꿔야 하는 현실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사이버 망명을 가는 건가...

구글 코리아 블로그에 오늘 올라온 글의 마지막 문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다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신호입니다.
-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 레이첼 웨트스톤(Rachel Whetstone)


MB정부... 정말 싫다.

ps
어느 나라로 변경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제명씨가 놀러오라고 늘 이야기 했던 캐나다로 변경했다. 정말 캐나다 오타와 정도만 해도 약간의 인맥도 있고 일자리도 어느정도 있는데...확 이민 가버려???



2009년 4월 8일 수요일

쇼를 하라, 쇼!

3주만에 병원을 찾아 초음파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했다. 초음파를 통해 탯줄은 잘 연결되어 있는지, 혈액은 정상적으로 공급되고 있는지,심장은 건강하게 잘 뛰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아래 동영상에서 아가로부터 길게 연결되어 있는 선이 탯줄이고 그 탯줄을 통해 보이는 붉은색이 혈액의 흐름이 촬영된 것이다.



아내와 아이가 탯줄을 통해 생명을 나누고 있는 모습은 참 가슴 벅찬 풍경이었다.

한가지 더 기억에 남는 일은, 초음파로 심장 박동을 재려던 의사가 아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확대해서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아이가 춤을 추듯 온몸을 흔들어 가며 노는 것을 보곤 의사가 "아이가 쇼를 하고 있군요. :-) " 라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D



무엇이 그리 신이 나기에 팔다리와 온 몸을 흔들어 가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

다음 병원 방문 예정일은 2주 후다. 그때 정밀 초음파를 찍고 정확한 예정일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아이의 성장으로 미루어 봤을 땐 11월 5일이 예정일이란다.



2009년 4월 6일 월요일

블로그 개설 고민 중

아이 사진과 동영상 등에 관심있어 하실 친가와 처가 어른들을 위해 블로그를 하나 더 운영할까 말까를 고민중이다. 내 개인 블로그를 그 용도로 쓰기 보다는 따로 블로그를 운영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아내와 둘이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뭐..주로 내가 올리겠지만.

오늘 퇴근하면 아내와 상의를 해봐야 겠다.



2009년 4월 4일 토요일

MB의 삽질, 나를 강타하다 ㅡ_ㅡ;;

국책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연구실에서 MB 정부의 삽질을 위해 어처구니 없는 과제 예산 삭감을 당했다는 포스팅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또 한번의 MB표 삽질이 강타했다.

다름 아닌 청.년.인.턴.

논란이 많은 청년인턴 제도...사실 어떻게 저런 한심한 생각을 할까...하면서 혀를 찼던 건 사실이지만 직접적으로 당할줄은 몰랐다.

간단히 말하면, 국책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연구실들은 청년인턴제도에 의해 인턴을 채용하라는 지시가 정부로부터 내려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이 아닌, 취업 의지가 있는 미취업자(연령제한 있음. 서른살 이상은 청년이 아니란다)
2. 월 110만원의 인건비를 지급(단, 정부에서 110만원을 전부 보조해줄 수는 없고 일부만 줄테니 나머진 연구 과제비에서 알아서 마련하라)
3. 인턴으로 취직한 사람은 다른 곳에 취직할 경우 아무 제약 없이 그만둘 수 있다.

황당함이 하늘을 찌른다. 한양대의 경우 110만원의 인건비 일부는 정부에서 주고 나머지는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하는 과제 간접비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따라서 우리 연구실에서 직접 돈이 나가는게 아닌 까닭에 금전적인 손해는 없지만(한양대 차원에선 매우 손해겠지만...) 인턴을 뽑아서 뭘 어디다 써야 할 지 모르겠다. 책상도 모자라기 때문에 책상을 마련해 줄 수도, 컴퓨터를 마련해 줄 수도 없다. 책상 구입 비용이 아깝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연구실에 더이상 책상을 놓을 공간이 없다. ㅡ_ㅡ;;

도대체 대학원 진학 생각 없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을 데리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이 우리 연구실 테마인 surface plasmon coupling에 대해 뭘 알 것이며, 진공 증착 장비나 각종 측정 장비를 쓸 수 있을리도 없지 않은가. 보통 새로 입학한 신입생에게 연구 내용을 이해시키거나 장비 사용법을 가르쳐서 연구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잡는다. 그런데 청년인턴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6개월 이상 공을 들여서 연구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게 할 수는 없다. 또한 청년인턴...10개월이 한계 아니던가? 가르치다 연구는 하지도 못하고 끝날 수 있다.

서류작업? 안타깝지만 그 인턴이 연구과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리도 없고 단순 서류 작업은 1년에 몇 건 없다. 연구실 동료들과 한참을 진지하게 논의했는데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매일 일정 시간에 나와서(자리가 없으므로) 연구실과 실험실 청소 및 비이커 등 소모성 실험기구들의 세척을 시키자 라고. 물론 그래도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MB 정부에서 추진하는 인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요약된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 싶다.

1. 최대 10개월의 기한으로는 연구 과제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 청소를 시키면 매일 할 일이 있지만 서류 작업을 시키면 1년에 한번정도 일이 있긴 하다.
2. 그런데 과제 관련 서류 작업이 많은 시기는 황당하게도 지금 뽑은 청년인턴 기한이 끝난 후다.
3. 연구참여도 불가능, 서류 작업도 제일 필요할 땐 불가능. 청소나 시켜야 하는데 월급여가 110만원이다. 정부에서 다 주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좋다. 그런데 과제에서 책정된 석사급 연구원의 월급여는 100만원이 채 안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해야 할 대상이 도대체 누구인가?
4. 국책 연구과제들은 예외없이 한국의 미래를 위한 R&D 사업들이다. 이번 청년인턴제도로 국책과제비중 200억~400억이 빠져 나간다. 미래를 위한 비용을 빼서 실업인구 통계 감소를 위해 써도좋은가?
5. 이렇게 쓸모없는 인턴을 수천명 뽑느니 정부출연 연구기관 정규직 연구원 수를 일부라도 늘리는게 더 가치있는 일 아닐까?

누가 대답좀 해줬으면 좋겠다.
(MB정부 지지자들...대답좀 해줘봐요ㅡ_ㅡ;;;)




2009년 4월 1일 수요일

한의원

지난주 금요일 퇴근길에 건물 로비에 놓여 있는 탁구대에서 탁구를 치던 후배들에게 이끌려 한시간 가량 탁구를 쳤다. 나는 원래 양면 탁구채를 쓰는데 탁구채가 내 차에 있었던 관계로 익숙치 않은 단면 탁구채를 손에 쥐고 땀을 흘렸다. 그 때 탁구채가 달라져서인지, 오랜만에 쳐서 실력이 녹슨것인지는 몰라도 결정적인 노림 스매싱이 헛스윙 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허리를 삐끗했다. ㅡ_ㅡ;;;

그때부터 강의를 하느라 오래 서있다 보면 허리를 굽힐 때 한 지점이 뜨끔거리는 느낌이 든다. 금방 없어지겠지 싶었는데 오늘까지도 증상이 그대로여서 오늘 일찍 나와서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화정에 살 때는 제법 실력이 좋은 한의사 친구가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살았던 탓에 집사람 약을 지을때도, 내가 침을 맞을 때도 그냥 퇴근후에 슬리퍼 끌고 찾아가면 됐기 때문에 한의원을 일부러 찾아갈 이유가 별로 없었는데 이쪽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탓에 어쩔 수 없이 근처 한의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왠 침을 그리 많이 놓는지. 크게 문제 있는 건 아니고 준비운동 없이 크게 움직여서 그런거라니 별 치료 없겠구나 싶었다가 허리에 놓아대는 침 숫자에 잠시 당황했었다. 전에 목이 안돌아 가서 친구를 찾았을 땐 손과 발에 합쳐서 세개인가 놓고는 5분만에 멀쩡히 돌아가게 만들던데. ㅡ.ㅡ;;

한의사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어렵겠지만 평생 경험해 본 한의사라고는 이번 포함해서 두명 뿐이라 내 친구가 훨씬 괜찮은 솜씨인 것 같다. 한시간이나 치료받고 왔는데 증상이 그대로다. 이틀간 더 오라고 하는데...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찜질과 침 시술등 합쳐서 한시간씩이나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매일 시간을 낸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가지 않으면 오늘 받은 치료가 효과를 못볼테고. 고민중이다. 차라리 WiiFit 을 통해 스트레칭을 하는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D



2009년 3월 31일 화요일

모자이크



어제 밤, 맥에 저장되어 있는 아내 사진들을 보다 만든 모자이크.

그런데..흑백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도 완전한 검은색이나 흰색에 가까운 사진이 이렇게 없을 수 있나....orz



2009년 3월 29일 일요일

신조협려(神雕俠侶)



내가 김용의 무협소설인 영웅문 시리즈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1984년인가 그럼...) 1부 6권을 하루 반나절만에 모두 읽어 버릴만큼 흠뻑 빠져버렸다. 그 이전까지 무협지라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사촌형에게 빌린 여섯권의 책이 이후 한동안 무협지에 빠져 지내게 만들었다. 결국 3부까지 총 18권을 책을 2주만에 전부 읽어버렸다. 그때까지 많은 책을 읽었었지만 위인전과 고전소설 등이 전부였기 때문에 김용 스타일의 무협지는 내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김용의 무협소설을 섭렵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두번째로 읽었던 영웅문 2부 였다. 원제목이 신조협려(神雕俠侶)라는 건 대학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김용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남자는 양과를, 여자는 소용녀(신조협려의 남녀 주인공들)를 특히 좋아했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친구들이 이상형을 이야기 해보라면 ‘소용녀’라고 대답해서 친구들을 갸우뚱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땐 주위에 무협지를 읽은 친구들도 없었고, 요즘처럼 영상물로 접할 수도 없었다. 그냥 책으로 읽고 책에 묘사된 것을 내가 상상으로 그렸던 인물인 탓에 누구에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없었다.

얼마전 후배들과 무협지 이야기를 하다 김용의 소설들은 드라마로 수없이 제작이 되었지만 난 내가 상상했던 풍경과 인물들의 모습을 다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안본다고 했더니 후배 하나가 “형, 신조협려 2006은 꼭 보셔야 해요.” 라고 추천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나...하고 인터넷으로 신조협려 2006을 검색해 봤는데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있었다. 바로 유역비라는 여배우가 연기한 소용녀가 자신이 바로 상상했던 소용녀의 모습 그대로다..라는 감탄사들.

마침 집에서 보고 있는 IPTV에 신조협려 2006이 무료로 서비스 되고 있어서 주말에 한번 틀어봤다. 그리고는 헉....하고 숨을 들이키고 말았다. 어린시절 내가 상상했던 소용녀가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굉장히 여러번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신조협려지만 유독 2006년도 버전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원작 소설의 팬들이 공통적으로 상상했던 소용녀의 모습을 이처럼 충실하게 재현했으니.

다만 좀 아쉬운 점 두가지는, 첫째로 유역비가 연기하는 소용녀는 고묘를 탈출하기 전과 후로 나뉘는...다시말해 감정에 눈을 뜨기 전과 후의 소용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한결같이 넘칠만큼 사랑스럽다. -_- 뭐...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소용녀의 모습은 감정에 눈을 뜬 후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소용녀의 모습이니 다들 불만은 없어 보이지만 난 조금 아쉽다. 둘째로 너무 어려보이는 소용녀의 모습이다. 원작에서 그려지는 소용녀의 모습은 양과를 제자로 받을 당시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아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단장애 계곡 아래에서 감정을 끊고 16년간 산 탓에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써놓고 보니...모든 여성들이-남자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인물이기도 한듯?) 유역비가 연기한 소용녀는 그냥 한결같이 어려보인다. 심지어 고묘 탈출 전에도 양과보다 어려 보인다. ㅡㅜ 배우 자신이 1987년생이니 어쩔 수 없었던 건지...중국의 분장술이 부족한건지...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어리고 예쁘게만 표현한건지...여하튼 그 부분은 많이 아쉽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부분을 빼면, 원작 소설에서 표현했던 소용녀라는 인물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거의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덕분에 이후 신조협려를 또다시 제작하려면 여배우 선택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듯 하다. 사실 유역비라는 여배우가 비교할 사람이 없을 만큼 예쁜건 아니다. 한국엔 더 예쁜 배우들도 많고 아시아 권에서 찾아봐도 수두룩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소용녀 역을 고르기 어려워 질거라 생각하는 건, 원작에서 묘사된 소용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저녁 먹기 전까지 신조협려 2006이나 좀 더 봐야겠다. 할 일이 많아 풀로 달리지는 못할테고..;;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심심...

아내가 입덧 때문에 처가가 있는 강릉에 내려가 있다. 덕분에 이번주 내내, 그리고 다음주까지 혼자 지내야 한다. 해외 출장을 가도 일주일이었는데...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보기는 처음. 사실 아침 일찍 나와서 밤 늦게 들어가기 때문에 낮시간 동안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 집에 들어갈 때 그리고 잠들기 직전이 영 심심하다.

결혼 후부터 잠들기 전에 둘이 침대에 엎드려서 NDSL로 게임을 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 잠드는 버릇이 들었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으니 영 허전하다. 어제는 하도 잠이 안와서 안방 창문을 열고(안방 창문은 베란다로 연결되어 있고 베란다에는 초롱이 집이 있다) 초롱이를 인형으로 약올리며 놀다가 1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들었다.

이번 주말에는 일이 많아서 강릉에 못가고...천상 꼼짝없이 다음주말까지는 계속 심심한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할 듯 하다. 고작 며칠 떨어져 있는 것도 이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 그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 내셨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남과 다르지 않다

'남과 다른 아이로 자라거라'

어린시절 내 뒤를 따라 다녔던 어머니의 주문과 같은 요구였다. 정확히 초등학교 2학년때로 기억하는데(음...아닌가? 3학년때였나?) 그 때 학교에서 부모님에 대한 글짓기를 해오라는 숙제를 받아와서 집에서 숙제를 하기 위한 대화를 할 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그대로 글짓기에 포함되었고 선생님께서 인상깊은 문장으로 꼽으셨었다. 어쨌든 그 때 이후 남과 다른 아이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그대로 주문이 되어 날 따라 다녔다.

공부를 잘해라, 의사가 되야 한다 등의 요구가 아닌 남과 다른 아이로 자라라는 그 말을 따르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늘 남과 다르기를 바랬다. 평범한 건 싫었다. 남과 다르다는 건 대다수와 달라서 눈에 띄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반장을 해야 했고 선생님이 잘못 행동한다고 판단되면 그자리에서 바로 왜 그렇게 행동하시는지를 질문해서 선생님들을 난처하게 했던 되바라진 아이이기도 했다. 특히 선생님들이 알면서도 저지르는 일상적인 잘못을 보아 넘기질 않았다. 초등학교 몇학년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데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교사생활 수십년에 나같은 학생은 처음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정도니 오죽했을까 싶다. 유행을 무시했고, 남들 다 보는 TV는 중학교 이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학 입학 신입생 OT 에서 '모래시계' 라는 드라마를 안본 사람이 전체 참여자중 나 하나라는 걸 알았을 때 놀라워 하는 선배와 동기들 사이에서 난 근거없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대학에 와서 컴퓨터라는 것을 접했을 때 모두가 MS윈도우를 쓰는 걸 보고 같은걸 쓰기 싫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다른 운영체제라는 이유만으로 OS/2 를 구입해서 사용했고 이후에는 남들이 OS/2 보다 더 안쓴다는 이유로 리눅스를 선택하기도 했다.(물론 이후에는 철학적인 이유로 리눅스와 자유소프트웨어에 빠지긴 했지만.)

지금서 돌이켜 보면 남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쉬운 길은 하나도 없고 늘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좋은 의미의 주목 보다는 나쁜 의미의 주목이 더 많다. 그래도 난 내가 남과 다른게 좋았다. 내가 남과 다르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면 우울해질 정도로.

...

그런데 최근 몇년동안 내가 남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아무리 독특하게 생각을 한다고 해도 내 생각과 행동은 대중의 생각과 행동에 일치했고 큰 흐름에서 도드라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나도 별 수 없구나 싶어 의기소침 해지기도 했는데 최근들어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남과 다르지 않다' 는 것은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라는 쪽으로.

간단히 말해,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더라도 그것이 대중이 원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대다수도 잘했다고 평을 했으며 내가 비난하는 일에는 많은 이들이 역시 잘못했다며 비난을 한다. 주식시장 전망부터 심지어 명절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시간대까지 대중과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같이 손해보고, 같이 이득보며, 같은 시간에 고속도로에서 답답한 한숨을 내쉰다.

대중은 우매하다. 하지만 판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결국엔 가장 적당한 길을 찾아낸다.



2009년 3월 23일 월요일

서점 나들이

이곳으로 이사온 지 한달이 되었다. 조용한 동네. 완전한 주택가로 지어져서 그런지 단지 근처에 유흥가가 없다. 상점과 식당들만 늘어서 있는 상가단지는 있지만 주점이나 기타 유흥 일부러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는 아내와 저녁을 사먹으러 외출을 했다. 입덧도 이제 막 시작한 주제에 먹고 싶은 음식은 하루에도 열두개씩 쏟아져 들어온다. 어떤 음식이 생각난다기 보다는 TV를 보다 음식이 나오면 ‘저거’하고 지목하는 수준이라 정말 예상 밖의 음식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어제는 ‘패밀리가 떴다’ 재방송을 보던 중 추어탕을 먹고 싶다는 바람에 가볍게 옷을 주워입고 둘이 동네 상가로 추어탕 가게를 찾아 나갔다. 그러나 추어탕 가게는 찾지 못했고 돌아다니던 중 묵은지 찌개를 먹자고 방향을 선회해서 그걸 먹었다. 나는 별 느낌 없었는데 너무 맛있게 먹길래 포장까지 해서 집에 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청과상에 들려서 과일을 사고 서점에 들려서 책 구경을 좀 했다. 서점을 구경하는 건 언제나 기분좋은 일이다. 동네가 아파트 단지고, 인근에 중고등 학교가 많아서겠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큰 서점이 두개나 있다.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입구부터 빼곡히 쌓여있고 진열되어 있는 것은 아이들 참고서적.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 다음 많은 것은 유아용 서적. 베스트셀러 전시대는 서점 깊숙한 곳, 제일 모퉁이에 자그마하게 놓여 있었다. 컴퓨터와 자격증 서적에도 밀린 소설과 수필류등은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가져다 놓았다는 느낌이었다. 서점을 찾는 고객들의 성향을 분석해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겠지.

보기에 좋았던 것 하나는, 마주하고 있는 다른 서점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가 들어갔던 서점은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넓은 테이블이 하나 있고, 편한 의자를 그 주위에 나둬서 사람들이 책을 꺼내들고 읽을 수 있게 해 두고 있었다. 아이를 한명 데려와서 거기 앉아 같이 책을 읽는 젊은 엄마도 한명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서점이 고향에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중학생 때 고향에서 가장 큰 서점에 방학때 매일 찾아가면서 원했던 소원은 그 서점 문을 닫아놓고 거기있는 모든 책을 내 마음대로 꺼내 읽는 거였다. 그 서점은 시내에 있어서 가려면 버스를 타고도 한참 가야 했지만 일부러 거기까지 매일 찾아갔던 이유는 동네 서점들은 책을 읽지 못하게 했지만 큰 서점은 그렇게 몇시간 서서 읽다보면 서점 아르바이트 하던 형,누나들이 의자를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와 함께 서점에 와서 책을 읽는 젊은 엄마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내가 읽을 책을 사주시는 것을 우선으로 하셨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처럼 책을 좋아하는 내가 있었다. 저 아이도 크면서 책의 소중함과 가치를 찾는 일에 열심이겠지.

서점, 음식점, 상점.

우리 동네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이다. 이사온 지 한달...동네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서점의 모습이 너무나 흡족하게 다가왔다. :-)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어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른 아침부터 안개를 불러온 것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니 얕게 깔린 안개와 밤새 내린 비로 젖은 땅이 싱그러운 흙냄새를 11층까지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비가 온 직후의 흙냄새가 피어 오르는 시기가 되어 가고 있지. 며칠만 지나면 4월이니까.

베란다의 창문을 활짝 열고 온 몸으로 호흡하듯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코끝부터 시작된 싱그러운 흙냄새가 온 몸을 짜릿하게 타고 흐르기까지는 불과 수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단지 주변 개발이 모두 끝나고 나면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위적인 것이 전혀 없는 들판과 야트막한 야산들이 모두 사라지겠지..하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아쉽다. 하긴, 어차피 그때까지 여기 계속 산다는 보장도 없으니 지금은 그런 것들을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겠지.

아내와 짧은 외출을 하고 돌아온 어제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벚꽃 몇송이가 피어 있는 벚나무를 봤다. 가벼운 웃음, 정신 차리라는 면박을 나무에게 주며 이제 정말로 겨울이 끝나간다는 느낌에 살짝 기분이 좋았다. 꽃샘추위 때문에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인 3월. 그 3월은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았지만 벚꽃이 피는 지금, 계절은 분명 완연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