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Unite for Children

2012년 한해를 맞이해서 우리 가족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둘이 같은 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름아닌 유니세프(Unicef).



오늘, 2011년의 마지막 날. 유니세프 정기 후원을 신청했다.



현실적으로 내 아이들이 나와 아내에게 받는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줄 순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횟수만큼 그들이 받는 최소한의 사랑과 관심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들도 그런 소중함을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차별 없이 모든 아이들이 사랑을 받는 세상에서 내 아이들도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Good bye 김문수

안상수씨의 보온병 포탄 해프닝 이후 소재가 변변치 않아 무릎을 치게 만드는 풍자를 못하던 네티즌들에게 김문수 도지사가 대어급 소재를 던져줬다. 아마 2011년 최고의 풍자거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다양한 풍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재미를 떠나서 이 사건은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한 도지사가 실제로는 얼마나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김문수 도지사 측에서 찾아낸 변명거리는 "관등 성명을 대야 하는 규정을 어겨서 당황했다" 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손발이 오그라 들 정도로 민망한 변명거리다. 상식적으로 긴급상황 신고 전화로 전화한 사람이 용건도 밝히지 않고 계속 자신이 도지사라며 상대의 관등성명만 물어본다면 장난전화라고 인지하는게 당연하다(규정이야 어떻든). 쉽게 말해서 당장 자기 부모가 쓰러져서 119에 전화했는데 상대가 관등성명을 대지 않았다고 해서 용건도 말하지 않고 수차례 다시 전화해서 관등성명을 요구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나라면 오히려 관등성명을 대느라 시간 끄는 상대에게 화가 날 것 같다. 무슨 김수환무거북이와두루미 찾을 일도 아니고). 더욱이 김문수씨가 전화해서는 관등 성명 요구에 앞서 '도지사입니다' 를 수차례 강조했다는 점(알아서 좀 기어라 라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그리고 실제 긴급 상황이 아닌 정치 행보(시설 방문) 중 일종의 보여주기식 돌발 행동의 일환으로 전화를 했다는 사실로 비춰볼 때 '관등 성명을 대고 안대고'를 이번 사건의 주요 이슈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당사자를 불러서 사과를 했든 안했든가를 떠나서 그 자신이 갖고 있는 태도 자체의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대중에게 사과하지 않은 이상 이 문제는 정치인 김문수씨에 대한 평가 수준을 대폭 낮추는 일종의 기준선이 될 것이다. 아마 이후의 모든 정치적인 행사, 즉 선거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귀찮고 어려운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그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여럿이어서 투표를 통해 선출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앞에 나서서 일을 하는 것보다 뒤에서 결과를 놓고 비아냥 거리거나 비판하는게 비교할 수 없이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경우 그 일을 짊어진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주는 것 자체를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선출직 공무원들이 약간의 권력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 자체는 적절한 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보상 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항상 선출직 공무원은 시민의 아래'에 있다는 표면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 김문수씨는 바로 그 지점을 넘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민의 위에 있는 최고 권력자라고 인지하고 있는 듯한 그의 여러 행동들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소방헬기 이용 건수와 같은. )

이전에도 그다지 높은 순위는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을 빌미로 김문수라는 이름을 아예 정치인 리스트에서 지워버린 유권자가 비단 나 한명 뿐은 아닐 것이다.

Good bye 김문수씨. 당신이 유시민을 이기고 도지사에 오른 그 날이 어쩌면 당신 인생 최고의 전성기였는가 봅니다. 솔직히 당신에게 표를 줬다면 좀 열불이 나겠지만 당신에게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이기에 나 자신의 선견지명에 대한 만족이 더 크게 다가오는군요. 부탁이 있다면 2012년 이후엔 정치판에서 당신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2012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출근 버스. 운 좋게 출발지가 집 앞이어서 일찍 움직인 날은 좋은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출발하기를 기다릴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몸담은 그룹의 세부 조직 및 운영 방침이 오늘 발표된다. 어제 그룹장과 면담을 하면서 알게된, 실질적으로 내게 부여될 예정인 많은 책임과 인력을 어떻게 유기적인 조직체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왜냐하면 그중엔 나보다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어서 자칫 힘 겨루기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룹장이 그리고 회사의 보스들이 원하는 건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는 직무와 조직 체계라는 건 알겠는데 한국 사회에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피할 일은 아니겠지만.

2011년이 내게 있어 삶의 큰 전환점을 만든 선택의 해였다고 한다면 2012년은 관리자로써의 내 역량을 -특히나 가혹한 환경에서- 시험하게 되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아마 내게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지금 내가 맞이한 상황의 확장, 즉 내 아래 사람을 내 실질적인 업무 지시자로 앉히는 걸 주저할 조직 윗선들이 아니니까.

어쨌든 자의든 타의든 신나는 놀이기구로 가득한 놀이공원에 던져졌다. 2012년 한해 정말로 후회없이, 즐겁게 놀아보자.

Ps
그전에 물론 메리 크리스마스를 먼저 즐기고. :-)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앵그리버드 모녀

앵그리버드에 몰두해 있는 엄마와 두 아들.

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목욕

하루종일 추웠다. 어제 청주에 내려갔다 오늘 올라왔는데 집이 난방을 하루 안해서인지 영 냉기가 도는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난방이 도는 동안 어차피 씻어야 하는 두 아이들을 씻기기로 했다.



간만에 두 아들과 목욕을 함께 하기 위해 욕탕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들어가서 앉았다. 아내가 옷을 벗겨서 들여보낸 첫째를 안아서 욕조에 넣고 뒤이어 둘째를 안아들고 욕조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 속에서 몸을 주물러 주는데...기분이 좋아서일까? 둘째가 그대로 쉬야를 했다. .....;;;;;;;;



얼마만의 소변 목욕인지;;; 아마 몇달 전 첫째가 목욕하다 벌떡 일어나서 "쉬야" 를 외치고 바로 쉬~ 를 했던 그 사건이후 처음이다.



뭐, 말 없이 욕조의 배수 마개를 뺐다. 다행인건 따뜻한 물이어서 쉬야의 직접적인 감각(?)은 없었다는 점. 그걸로 위안을 삼고 웃어야 겠지. :-)

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1년

작년 이맘때쯤 상품기획으로 옮기겠다고 면담을 했으니 마음의 결정을 내린지 정확하게 1년이 지난 시점이 됐다. 부서를 옮기고 나서 제법 힘들었던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옮긴 건 3월부터였지만 부서 전배의 조건으로 해야 했던 양산TF로의 파견 근무까지 합쳐보면 1년이 됐다. 많은 질문을 받았었다. 왜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 기획 부서로 가려 하느냐고. 운전 면허 있다고 해서 모두가 운수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내 반문을 이해해 준 사람은 아내를 포함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 밖에는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 선택은 옳았다. 비록 일은 더 힘들어졌고 생활도 그만큼 팍팍해 졌지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게 되는 과정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기도 했다. 중간에 너무나 불만에 차 있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던 모든 행동들이 결국에는 내게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혼자 고군분투 했던 지난 1년과 달리 지금은 지시한 일을 조금의 부족도 없이 수행해내는 만점짜리 사원 한명과 업무 추진력이 너무 좋아서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선임 한명, 그리고 컴퓨터 같은 암기력으로 경쟁사와 우리회사의 모든 사항들을 즉각적으로 읊어댈 수 있는 지원부서의 사람들까지 평소 바랬던 조합의 팀을 이끌게 되었으니 당분간은 더이상 바랄게 없다. 이제 남은건 조율하는 내 역량을 키우는 것 뿐.

다음주, 그리고 다음달이 되면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구성이 크게 변할테고 그때가 되면 내 포지션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끄는 팀을 내가 없어도 혹은 누가 내 위치에 와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만큼 조율해 놓는 것 아닐까. 직급이 높다고 다 아는 척, 유능한 척, 어른인 척 하지 말고 서로의 역할이 있는 동료의 자세에서 일할 수 있게 끝까지 자중하자.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25개월, 숫자 넷을 말하다

얼마 전까지 "하나 둘 셋 ... 많네~" 라고 하던 첫째고 오늘 퇴근 후 책을 읽어주는데 무려 숫자를 '넷' 까지 세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넷 이후는 모두 넷이라고 하긴 했지만. )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아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이 조금 느리긴 하지만 얼추 대화도 되고 제법 한 몫 챙기는 첫째를 보면 자꾸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 섭섭하기도 하다.



조금 더 아기였으면 좋겠는데.

2011년 12월 5일 월요일

칼싸움

어제 밤에 마트에 들렸다가 간만에 게임이나 해볼까 싶어서 Wii용 게임을 하나 구입했다. RPG 게임이었는데 리모콘을 칼자루처럼 쥐고 칼싸움도 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30분쯤 플레이 했나? 암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자고 온 식구가 침실로 들어왔는데 첫째가 옷 구겨지지 말라고 옷걸이에 보조기구처럼 사용하는 종이 막대기(?)를 들더니 "이야! 이야!" 하면서 휘두르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게임의 주인공이 등에 칼 거는 걸 흉내낸다고 자기 옷 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 전까지는 '칼싸움' 이라는 것 자체를 본 적이 없고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딱 30분정도 게임에서 그걸 보더니 흉내내기 시작한 것.



암튼 잠자리에 들기 전 첫째는 상기된 표정으로 우유병도 무찌르고 수건도 무찌르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 다녔다. 나와 아내는 그걸 보면서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고.



집안에 널려있는 수많은 인형들이 제대로 이쁨받지 못하는 상황과, 잠깐 본 칼싸움을 바로 흉내내는 걸 보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성별에 따른 성향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 듯 하다.



어쨌든 용사의 칼에 맞아 죽는 악당 역할을 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음...역할을 바꾸자고 하면 바꿔줄까? :-)

2011년 12월 3일 토요일

송년회 불참

어제가 팀 송년회였는데 주중에 신입사원들을 아예 업무에서 빼서 댄스 공연 연습 시키는 꼴을 보고는 불참해 버렸다. 그런식으로 놀고 싶어 한다고 해서 내가 말릴 방법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 틈에 앉아서 자원자들도 아니고 강제적으로 차출되서 공연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춤과 노래를 보고 있기는 싫다.

나이가 어리다고, 신입이라고 막 대해도 되는 법은 없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에 때른 직무와 책임이 있을 뿐 회사에서 고참이라고 해서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고참 노릇을 하는 것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주어진 업무가 커피 타는 일인 것과 업무가 그거라고 해서 놀러 가서까지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2011년 11월 30일 수요일

아버지 7주기

2004년 끝자락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7주기 기일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한달만에 돌아가셨으니 결혼도 7년, 아버지와 이별한지도 7년이다.



어제 저녁엔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아마 아이들 때문에 그랬으리라. 어른들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자기가 다시 배열하겠다고 휘저어 놓는 첫째와, 이제 겨우 이유식 맛을 보기 시작한 주제에 먹을거 욕심은 많아서 저기 저거 음식 아니냐며 먹게 해달라고 엄마 등에서 엉엉 우는 둘째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진하게.



아무리 자라면서 이야기를 해준다 해도 이 아이들은 제 할아버지에 대해 알지 못하리라. 그저 영정 사진만 기억할 뿐 역사책 속의 인물이나 다름없는 거리감을 갖고 자랄 것이다. 나도 안다.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돌아가시고 나서도 5년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겠지. 아내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한달만에 돌아가신 분을, 그 한달중 3주는 병원에서 보냈고 이후 1주일은 의식 없이 계시다 가신 분께 무슨 기억이 남아 있을까. 결국 남아 있는건 나와 어머니 기억속에 있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흔적들 뿐이다.



지난 주말, 첫째가 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신 곳을 올라가면서 중간 넘게 자기 힘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이면 끝까지 혼자 힘으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지나고, 아이들은 자라고, 기억은 그만큼 희미해진다. 받아들이자.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개집 쟁탈전

오늘 첫째가 초롱이 집에 침입했다. 평소 초롱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쉬는게 부러웠나보다. ㅡㅡ;



사진으로 보면 9개월 된 둘째가 첫째를 끄집어 내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형아! 나도! 나도!" 라는 것. 초롱이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코딱지 만한 두 애들이 서로 자기집에 들어오겠다고 싸웠으니.



암튼 초롱이 덕분에 아이들이 집사람한테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어 많이 편하단다. 초롱이 입장에서야 하루종일 아이들한테서 도망다니느라 피곤해서 밤이면 거의 기절하듯 잠이 들긴 하지만 뭐...밥 값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니? :-)



뭐...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개집에 들어가곤 했던 것 같으니까.

겨울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섰다. 갑자기 추워졌을 땐 추위에 익숙해진 한겨울보다 더 잘 껴입어야 한다며 아내가 꺼내준 두터운 겨울 파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날이 춥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추워진게 이상하진 않다. 누가 뭐래도 벌써 11월 말이니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유난히 감상적이 되곤 한다. 아마 제명씨가 살고 있는 캐나다 위니펙 같은 곳에서는 늘 감상적이 되어서 지내지 않을까? 며칠전 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로(블로그에 댓글 기능을 막아두었다. 댓글은 페이스북으로.) 제명씨의 메일이 왔을 때 유난히 반가웠다. 내게 있어서 그의 이름은 내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의 서표이자 멀리 사는 내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지판이다.

사실 난, 로또가 되면 무엇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타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할 만큼 이젠 쉽게 볼 수 없는 그들이 그립다. 그들 중 일부는 페이스북이나 온라인으로 연결이 되지만 몇몇은 그나마 연락되던 메일 주소마저 없어지고 이젠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힘들어 하는 한 친구와 간간히 주고받던 메일에 어느날 없는 메일 주소라는 시스템 회신이 답장으로 날아 들었던 날, 밤 새도록 그 친구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변하지 않은 내 메일 주소와 블로그 주소로 인해 그렇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들과 다시금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지 그들 역시 해피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겨울에는.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창의력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바로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다. 무슨 지수를 키워줘야 하고 무슨 교육을 해야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하고 등등...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런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러겠지 싶어서.

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남들이 지난 천년간 해온 물리학에서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깨달은 것은 아주 간단한 명제다.

"창의력은 축척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창의력이라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처럼 어느 순간 척 하고 새로운 것을 내놓는 능력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걸 바라는 것도 본인에게 해가 된다. 모든 새로운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찰의 끝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런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남들이 이미 다 해봤던 고민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학부때 배우는 과목들을 철저하게 습득하지 않은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쓸 수 없다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해야 하거나 하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창의력은 꾸준함의 산물이지 조기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화상

태어나서 두 돌이 지나도록 감기 한번 심하게 앓아본 적 없던 첫째가 이틀전 처음으로 응급실을 갔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나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첫째가 병원에 급히 가야 하는데 바로 올 수 있냐고 하길래 바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보니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식탁에 덜어놓은 국 그릇을 첫째가 엎은 것. 다행이 아내가 침착하게 응급 조치한 덕분에 아주 크게 화상 부위가 번지지는 않았다.



아주대 병원 응급실로 바로 움직여서 화기를 빼고 화상 연고를 두텁게 바르곤 붕대로 왼팔 전체를 칭칭 감았다. 첫째가 예전부터 아픈것도 잘 참고 울지 않는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조치하는 내내 울지 않고 있어준게 참 고마웠다. 우리 앞에도 화상 치료중인 첫째 또래의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내내 엄마를 부르며 우는데 듣는 나와 아내까지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그 아이의 부모 심정은 어땠을지.



암튼 아픈걸 잘 참아준 첫째도 고맙고 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응급조치를 해서 생각보다 훨씬 화상 부위를 축소시킨 아내의 침착성도 고맙다.



오늘부터는 뭐든지 조심 또 조심. 지금보다도 더욱.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결혼기념일

2004년 10월 30일에 결혼했으니 오늘이 만 7년이 되는 결혼 기념일이다. 바람도 불지 않고 날은 포근하지만 둘째가 39도를 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고 나 역시 시름시름 상태라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은 어려울 것 같다.



다행이 두 아이들이 함께 잠이 들어줘서 시달리지 않고 조용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엔 먼 것 같았던 결혼 10주년이 이제 몇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7주년이라는 숫자가 새삼스럽긴 하지만 일상은 점점 당연한, 혹은 익숙한 생활로 접어들고 있는 듯 하다.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문득 문득 놀랍지 않은, 그런 익숙함.



그러고 보니 결혼 후 바로 아이를 가졌으면 벌써 학부형이 되는 상황이구나. 아이들이 몇살이 되면 특별한 날에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강릉 커피 축제

처가가 있는 강릉에서는 매년 이맘때에 커피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아내와 나 둘 다 그렇게 커피를 좋아함에도 한번도 그 축제를 즐겨본 적이 없다. 올해는 즐길 수 있을까 기대해 봤는데 왠걸. 주말 내내 비가 오는 것 뿐만 아니라 둘째가 39도를 넘는 고열로 고생한 덕분에 커피 냄새도 맡지 못했다. 로스팅하는 법을 포함 커피 강좌도 명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내년에는 가능할까?

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모기

어제 저녁 퇴근 후 온 가족이 청주에 있는 어머니께 내려왔다. 내려와서 청주에 있는 동물원도 다녀오고 먹기 힘든 이모네 고기도 받아다 먹는 등 제법 괜찮은 주말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조금 전.



자다가 내가 무심코 팔을 긁고 있는 것을 알게 되서 잠이 깼는데 그 순간 웽~ 하는 모기 날아다니는 소리를 귓가에서 들었다. 기겁을 하고 일어나서 아내와 어머니를 깨우곤 전자 모기향을 찾아 연결하고 그 사이 내가 손으로 한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피는 없는 녀석. 결국 여러마리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나만해도 일곱 군데를 물렸고 첫째도 물렸다.



모기 소리에 기겁을 한 이유는 첫째가 유난히 모기 물린 곳에 심하게 반응이 오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붓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을 다녀야 할 만큼 오랜시간 고생을 한다. 알러지를 의심할 정도로 심한 반응. 덕분에 아내와 난 정신적으로 모기에 알러지 반응이 생겨 버렸다. ㅡㅡ;



암튼 모기를 잡거나 완전히 모기들이 전자 모기향에 KO 되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잠은 다 잔 듯.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터치(Touch)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는 책 제목을 보곤 별 생각없이 집어들고 온 책이 있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라는제 제목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었다.

피터 드러커의 명저인 "매니지먼트"를 이해하기 쉽게 각색해서 쓴 책인데 사실 제목을 읽는 순간 내용도 모르고 "고교 야구 여자 매니저" 라는 문구에서 미쓰루 아다찌의 만화 "터치" 가 떠올랐다. 이 만화를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이 느낌. Touch, H2, rough 등등...

책 자체도 읽을만 했지만 읽는 내내 다시 '터치'가 보고 싶어졌다. 구해서 읽어 봐야지. :-)

2011년 10월 8일 토요일

가족 그리고 꿈

Steve Jobs.

생전의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의 창조적인 두뇌와 장기적인 비전, 실행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들은 좋아했지만 그가 가진 폐쇄성은 동의하기 어려운 정도였고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박수쳐주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에 대한 호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만들어 내는 물건들로 인해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고 그런 측면에서 그가 이루어낸 것들에 대해 큰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마지막을 보낸 방식을 지켜보면서 요즘 많은 생각에 빠져 있다. 마지막 몇주간을 그는 오로지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그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가족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그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싶어했다고 전기작가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많이 안타까울 것 같다. 가족은 마지막에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에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끝나갈 때 조차도 돌아 갈 수 있는 곳이 가족이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평소에는 가족을 떠나 있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왜 가족을 떠나 있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일까? 적어도 가정을 이루고 살고자 했던 사람에게 말이다.

그와 나의 가치관 차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정진하더라도 가장 최우선 순위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어쩌면 그 우선 순위의 차이 때문에 그는 내 나이에 글로벌 기업의 CEO로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일지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내 성공을 위해 날 서포트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님은 명확한 진리라고 믿기에 나는 가족을 희생해서까지 내 꿈을 이루고 싶은 욕심은 없다. 당연히 꿈을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야 하는 목표이지 내 꿈이 내 가족의 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결과물은 함께 나누되 도달은 내 힘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간에 서로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20년 후, 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내 꿈을 이루고 있으며 그 꿈의 결과물을 가족과 나누고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아이폰4+s 에 대한 몇가지 생각

떠들썩 하다. 실망이니, 뭐니 하면서.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프리젠테이션을 잘못한 거로 생각된다. 혁신은 있었다. 그게 너무 사소하게 취급되며 지나가서 그렇지.

이번 발표의 핵심은 아이폰이라는 기계가 아니라 인공지능 시스템인 Siri 에 있다. 3GS의 S가 speed였다면 4S의 S는 Siri가 아닐까? 실제로 써봐야 알겠지만 내 블랙베리에 있는 기초적인 음성인식 기능을 토대로 몇가지 추정을 해봤다.

1. 초보적인 음성 명령
내가 운전중일때 주로 사용하는 블랙베리의 음성 명령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기계 측면의 음성명령 버튼을 누른다)
블베:명령어를 말씀하세요.
나:전화 홍길동
블베:홍.길.동 맞습니까?
나:네
(등록된 전화번호가 여러개일 경우)
블베:어느 전화로 연결하시겠습니까?
나:휴대폰
블베:홍.길.동. 휴대폰으로 연결합니다
(자동으로 전화를 걸고 연결되면 스피커폰으로 대화한다)

실제로 인식률이 대단히 높은데 내 음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학습을 시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을 하면서 이러한 학습이 지속되서 사용하면 할 수록 명령어 인식률이 좋아진다. 전화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기능들도 다 음성으로 할 수 있다.

아마 siri 는 이러한 초보적인 음성 인식을 더 확장 구현한 것일 것이다. 단지 이런 정도라면 별로 주목받지 못할게 뻔하다. 이미 이런정도 기능은 작년을 기준으로 보편화 되어 있으며 각종 앱으로도 많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 것은 집이건 직장이건 개인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만 사무실에서도 개인 공간을 확보해주고 자동차 문화인 미국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 들고 나온 siri 는 무엇이 '달라야만' 할까? 답은 인공지능이다. 단순히 음성 명령을 해석해서 앱에 명령어를 전달하는 수준이 아닌 '자연어 분석과 판단, 제안'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다음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2. 배터리
상시 음성인식이 가능하려면 전화기가 항시 음성인식 대기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배터리 소모를 야기한다. 실제로 각종 웰컴 기능과 같은 stand-by 기능에 대한 요구가 많음에도 제조사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건 배터리 소모를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시 음성 인식이 특히나 배터리 소모가 많은 것은, 각종 소음과 음성 명령을 구분해야 하며 항상 마이크로부터 들어오는 소리들을 분석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저전력 AP를 필요로 한다. 아이폰4S가 A5라는 저전력 AP를 사용하고도 연속 대기 시간이 아이폰4의 300시간에 100시간이나 모자란 200시간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0시간은 3시간 정도에 불과한 대기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전에 반드시 충전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사실상 충전기를 떠나서 쓸 수 없다는 말이 된다.

3. 무선 자유도
내가 운전중 전화하는 용도 말고 음성인식 기능을 자주 쓰지 않는 것은 음성인식을 사용하려면 전화기를 집어 들고 음성인식 버튼을 눌러 활성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운전중과 같은 상황을 제외하고 이왕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면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하기보다 그냥 앱을 실행시켜서 보는게 빠르고 간편하다. 따라서 전화기를 손에 쥐거나 가까이에서 명령하지 않아도 될정도의 무선 자유도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아이폰4S는 경악스러운 연속 대기시간으로 인해 거의 항상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어지간한 거리, 사무실내 정도에서는 전화기를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만큼 무선 자유도가 있어야 한다.

4. 빠른 부동소수점 계산 능력
단순히 사전 약속된 음성 명령을 앱에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어를 분석하고 어떤 앱에 어떤 명령어를 전달해서 어떤 결과물을 사용자에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인공지능 행동을 위해선 부동소수점 계산 능력을 극대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령을 내린 후 회신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기능 자체가 쓸모가 없게 된다.

5. 결론
자, 이제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4S에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보자.

A5를 비롯 부동소수점 계산 능력(발표엔 3D구현 능력으로 설명 되었지만 같은 말이다)을 극대화 하는 하드웨어 구성으로 바뀌어 있다. 기존의 A4로는 도저히 siri를 구현하는데 충분한 속도와 전력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구현이기 때문에 하드웨어 종속적이지 않은 siri 기능이 4S에서만 동작하는 걸로 제약을 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을 30%나 줄여야 했다. 애플 입장에서는 배터리 크기를 늘리고 싶었을 테지만 배터리를 키우면 같이 화면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전력 소모율로 봤을 때 화면을 키워봐야 배터리 크기를 키운 만큼 효과는 크게 보지 못하고 가격만 올라갈게 뻔하다. 그렇다고 두껍게 만드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터. 아마 아몰레드가 굉장히 탐났을 걸로 짐작된다. (대신 조만간 low Vf S/V LED에 대한 요구 수준을 올리겠지. OTL)

따라서 새로운 4S는 항상 충전용 도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럼 이렇게 묶여 있어야 하는 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애플이 찾은 답은 블루투스4.0 이다. 이녀석의 수신 반경은 50m 정도로 사실상 사무실이나 집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범위다. 즉,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다니면서 텍스트 메세지부터 전화기 동작, 음성통화 등 모든 조작을 음성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사실...이 블루투스 헤드셋이라는게 생각보다 불편하다. 너무 작은 크기도 그렇고.)

결론만 놓고 보면, 기기의 경쟁력을 위해 siri를 넣었다가 아니라 siri를 넣기 위해 기기의 사양을 결정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beta버전에 불과한 상태에서. 이는 제품의 완성도를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애플의 기류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만일 siri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라면 어느정도 납득은 간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시켜주는 학습으로 인해 정식 버전에서는 시스템의 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테니. 아마 아이폰5에서 정식 버전으로 탑재되겠지.)

조만간 아이폰5가 발표될 것인가? 나는 무조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배터리 문제 때문에라도 폰의 크기를 키워야 하며 그럴경우 디자인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 하다. 또한, 커진 만큼 할 수 있는 짓도 늘어난다. 아마도 내년 상반기가 아닐런지.

6. Siri의 또 다른 의미..
이번 행사에 페이스북이 초대받지 않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애플은 앱 생태계를 키우고자 하지만 페이스북과 다른 경쟁자들은 '웹앱' 을 키우고자 한다. 그런데 siri를 사용하려면 웹은 어렵다. 즉각적인 반응을 위해서는 앱이 기기에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Html5에는 단언하건데 음성 명령에 대한 tag가 전혀 정의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애플은 siri를 통해 사용자들이 앱에 종속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적어도 단기간에 안드로이드에서 추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애플이 작년에 인수한 siri는 인공지능에 대해 지구상에서 가장 앞서 있던 회사였다. 음성 인식은 흉내낼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 깔린 인공지능은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하여금 다시 지루하고 힘든 follow-up의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한 애플은 siri를 통해 그동안 구글에 종속됐던 모바일 검색을 통제할 수 있다. 이제 무엇을 검색하고 싶을때 사람들은 그저 siri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Siri가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오든 그건 관심 밖이며 검색엔진에 대한 통제권은 완벽히 siri에게, 아니 애플에게 있다. 또한 이런 인공지능 시스템에 어떻게든 광고를 적용할 방법을 찾아내는 순간 이 시장의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어려울 것도 없다. 컴퓨터 관련해서 정보를 요청하면 결과를 말하기 전에 인텔의 "딩딩딩딩" 하는 로고음을 한차례 들려주기만 해도 되고 siri에게 정리해 달라고 한 페이퍼의 아래에 한줄 회사 이름을 넣어도 된다.

그리고...그 무엇보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siri는 축복이 될 것이다. 이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마 잡스가 있었다면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잘 버무려서 연출을 해 냈을 것이다. 하드웨어가 아닌, 이러한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와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감동적으로 연출한 뒤, "이것을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폰4의 몇가지 부품을 업그레이드 했다." 는 식으로 가볍게 말했을 것이다. 별거 아니라는 업그레이드가 사실 A5라는 걸 알게 되었을때 사람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발표의 기술.

그가 떠난 지금, 그래서 더욱 그립다. 내가 혁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때마다 아마 한동안 생각날 것 같다.

Good bye Jobs. Thank you so much.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카페 라떼

올해의 마지막 연휴. 그리고 기가 막히게 청명했던 가을 날씨. 바람마저 포근했던 그런 휴일이었다. 비록 아이들의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아 멀리 나가거나 하진 못했지만 집 근처를 한시간 정도 산책하며 가족들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그런 날.



어쩌면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그런 곳들 보다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포근한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산책할 수 있었던 집 근처가 더 좋은 선택이었는지도.



집에 돌아와 휴일을 마무리 하며 오랜만에 아내와 나는 카페라떼를, 규헌이에게는 거품우유를 대접했다. 확실히 라떼를 만드는데는 매일우유가 제격. 맛있다. :-)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책상

오늘 아침,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려서 돌아오면서 문득 내 책상이 눈에 띄었다. 온통 공학과 경영학, 금융에 대한 책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필요한 것들임에는 분명했지만 시집 한권 없는 그 모양새가 무척 한심해 보였다. 시 한편 읽고 사색에 잠길 여유도 없이 살고 있었다니...항상 책장에 시집과 수필집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어디로 간건지.

오늘 점심시간, 간만에 서점을 들려봐야겠다.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감기

첫째가 감기에 걸렸다. 열이 펄펄 나고 기침이 심하고 하는 등 크게 앓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열도 있고 콧물도 나고 기침도 잘게 하며 컨디션이 저하되어 힘들어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듯이 다음날부터 둘째도 같은 증상으로 앓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번 주말 나들이는 전면 취소.



가뜩이나 둘 다 잠이 없어서 힘든데 컨디션까지 좋지 않으니 밤새도록 번갈아 깨는 통에 아내와 나는 거의 꼬박 밤을 지샜다. 오늘이 주말이고 또 출근하지 않는 날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아내는 집에서 곱절로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



일단 둘째는 너무 어려서 의사에게 보여야 할 것 같아 겸사겸사 첫째까지 대동해서 동네 병원에 왔는데 우리 앞으로 일개 소대는 되어 보이는 수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줄을 서있다. 와- 감기가 유행은 유행이구나.



언넝언넝 나아라. 둘 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옮겨오면 어쩌지? 난 그렇다 쳐도 아이들 돌봐야 하는 아내는 곤란할텐데.)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이력서

마지막으로 내 이력서를 업데이트 한 것이 생각해보니 박사 학위 취득 하기 전 지금 회사에 입사 준비를 하면서가 마지막이다. 벌써 몇 년이 자난 일. 사실 그동안 이력서를 업데이트 해야 할 이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오늘 직장 선배(...라기 보단 인생 선배. 지금 회사에는 내가 먼저 입사했으니.) 한명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나눈 여러 대화중에 "직장인의 가슴 한켠엔 사직서가 아니라 오늘 아침 업데이트한 자신의 이력서가 들어 있어야 한다." 는 말을 들었다. 당장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함께 근래에 들은 가장 인상깊은 말.

오늘은 퇴근하면 묻어 놨던 내 이력서를 꺼내서 먼지를 털어봐야겠다. 나름 나 자신의 커리어 패스를 관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이력서를 방치했었다는게 조금 충격. 그래도 그 선배의 조언 덕분에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앵그리 버드

앵그리 버드에 빠져있는 모녀. 엄마의 선방에 첫째가 박수와 환호로 응원하고 있는 중.



둘째와 나도 끼워주면 좋으련만 두 머리작은 사람이 빈틈이 없이 머리를 마주대고 있어서 틈이 없다. ㅎㅎ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 집에서 싸온 음식의 산더미가 냉장고에 잠자고 있어서 별로 요리의 부담 없이 데워 먹기만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중.



얼마 전부터 길 것 처럼 보이던 둘째가 이제 본격적으로 배밀이를 시작했다. 덕분에 이동력이 너무 좋아져서 바닥에 놓여 있는 장난감이나 물건들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마음 급해진 첫째가 징징 거리면서 둘째가 전진하는 방향에 있는 자기 장난감을 이리저리 치우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 이제 시작인 거겠지? 에휴.



아내는 옆에서 어제 산 Wii 용 게임을 하고 있는 중. 바람이 좀 더 불어준다면 좋겠는데 그럴 기미는 안보인다. 에어컨을 틀자니 그만큼 더운 것도 아니고.



원래는 오늘도 어딘가 놀러갈까 했었는데 이렇게 온 식구가 뒹굴뒹굴 거리며 집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푸근한, 추석다운 편안한 저녁이다. :-)

현상 실패

간만에 필름 현상을 했다. 뭐,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실패. 촬영 자체도 오랜 시간 여러 장소해서 해서 노출 환경이 제각각이었고 현상 자체도 너무 마음 편하게 집중하지 않고 했더니 교반도 평소같지 않고 자잘한 실수가 많았다. 아무래도 중형도 아닌 35mm 필름을 현상할 땐 주의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사람 마음이란...

그래도 마무리 다 하고 건조까지 시키고 있다. 필름 스캔까지 진행 하려고 생각중인데 최종 결과물이 어떨지 궁금하다. 언뜻 봐도 군데군데 제대로 안된게 눈에 띄지만 그래도 현상을 하고 릴에서 필름을 빼서 건조 시키기 위해 널어 놓을땐 기분이 상쾌했다.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가 즐거운 취미를 갖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자, 어서 어서 잘 말라라. 저녁 먹고 나서 필름 스캐너에 넣어 줄테니 결과를 보자꾸나. :-)

2011년 9월 8일 목요일

금융 시장의 공포를 이기는 방법

어제 신입사원 한명이 투자 관련 이야기를 하길래 세가지를 이야기 해줬다.

이것저것, 이쯤저쯤, 나름대로 투자를 해 오면서 깨달은 한가지 사실. 금융 시장에서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시기별로 자산별로 멀리 내다보고 분산투자 하는 것" 이 유일한 방법이다.

분할 매수를 하고, 자산 위험도에 따라 분산 투자를 하고, 몇 년 후에 쳐다봐야 할 정도로 길게 투자 호흡을 가져가는 것 만이 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공포심으로 오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투자 액수가 적다고 고수익률에 목을 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다. 투자금의 많고 적고를 떠나 분할/분산/장기 투자하여 자산을 관리하는 습관을 몸에 들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분산 투자를 해 놓고 시장 상황에 따라 무게 중심을 조금씩 움직여서 손실최소/이익극대를 추구하는 것은 연습해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묘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투자금이 소액일 때 이 연습을 해보지 않고 바로 큰액수의 투자를 하게 되면 당장의 손실액에 눈이 가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다. 연습이 안되어 있을땐 소액이라도 특정 금융 자산의 폭등에 눈이 돌아가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 무시하고 쫓아가게 되니 말 할 필요도 없다.

금융 자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월급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말자. 부족한 월 수입으로 인해 고수익 상품에 욕심이 생기는 경험은 나도 지긋지긋하게 해 봤지만 그런 여건의 사람일수록 아무리 욕심을 내 봐야 금융 투자로 매달 자신이 받고 있는 월급만큼 돈을 벌 수는 없다. 돈은 자신이 벌고, 금융 자산은 인플레이션에 의한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데 집중하자.

둘째는, 적금을 우습게 보지 말자. 수익률은 돈을 모은 다음에 생각해야 할 대상이고 적금 만큼 마음 편히 돈을 잘 모으는 투자 상품은 없다. 그리고 소액 적금을 들어 보면 술자리에서 몇만원씩 쉽게 쓰는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되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다. 영 못미덥다면 우선 1년짜리라도 들어 보라. 1년 뒤에 "우와" 하게 될테니.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셋째는, 보험을 잘 들어 두자. 매주 로또를 살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매달 보험료 내고도 남는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수백만분의 일'이지만 암에 걸릴 확률은 '30%나' 된다. 암에 걸리면 수천만원 날아가는 건 우습다. 그러니 암보험은 당첨 확률 30% 의 수천만원짜리 복권이나 마찬가지다. 어느게 현명한 투자인지는 물어보나 마나. 로또는 이런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끔 생활의 활력을 위한 재미로 즐길때 그 가치가 있다.

거액의 자산가들을, 부동산 부자들을 부러워는 하자. 부러운 건 부러운거지 그걸 부러워하지 말자는 건 불가능한 소리다. 하지만 부러워는 하되 그 때문에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하지는 말자. 대신 그 부러움을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원동력으로 삼자. 그게 현명한 투자고, 금융 시장의 공포심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이다.

2011년 9월 2일 금요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당신들 같은 자가 함부로 가져다 쓸 문구가 아닙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강용석 의원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살아오셨나요?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이봐요 김형오씨. 당신이 말하는 강용석씨는 소위 '취중실언'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고 오히려 '인감제출'발언을 한 사람입니다.

"만약 이만한 일로 강용석 의원이 제명 처분된다면 우리들 중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허....그 수준이었나요? 그럼 다 그만 두시고 다시 선거 해야죠. 하긴 돌이켜 보면 국회의원들이 일으킨 '성 논란' 이 한두건이 아니었죠?

김형오씨. 정치인들은 잘 모르는 듯 한데 궤변은 스스로를 만족시킬 뿐입니다. 자중하세요.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변화

나 자신은, 스스로는 변화에 대해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날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 할 만큼 인간의 불변성을 믿는 입장이 아니기에 나 자신이 분명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구체적으로 그걸 집어 낸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랜, 혹은 몇년간의 시간 후에 날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분명 내게 전에 알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면이나, 혹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면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는지.

...그런데 사실 그걸 또 굳이 알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알아서 뭐하게? 중요한 건 지금이지.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신용 그리고 저축은행

투자 시장에서 높은 위험은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저축은행 영업정지에 따른 피해자들은 고위험을 무릎쓰고 높은 금리를 찾아 저축은행을 투자처로 선택한 투자자일 뿐이다. 이들의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은 법을 고쳐서까지 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할 대상이 아니다. 비록 이번 사건이 금융 감독 기관의 부실에서 기인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애초 위험 자산에 투자한 선택이 희석될 순 없는 법이다.

저축은행 국조 위원들이 사고를 쳤다.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예금액을 법이 정한 5천만원이 아닌 6천만원으로 상향하여 보상해주는 것도 모자라 후순위채까지도 보상해 주겠다는 전무후무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후순위채와 같은 초고위험 고수익 자산의 투자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는 말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샀는데 그 기업이 상장 폐지되면 투자액을 세금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적어도 신용 이라는 말이 금융 거래에서부터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금융 시장에서 이처럼 법과 원칙을 마음대로 어기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태의 해결 권한을 주어서는 안될 일이다.

2011년 8월 20일 토요일

청평 쁘띠프랑스에서의 주말 저녁

2시 정도에 대충 일이 끝나가길래 나머지들은 과감히 월요일로 던져 버리고 회사를 뛰쳐 나와 집에 왔다. 몇주만에 찾아온 기가막힌 날씨의 주말인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기 때문. 아내하고 어딜 갈까 황급히 논의한 끝에 청평 쁘띠프랑스에 가자고 의견을 모으고 바람같이 날아왔다. 거의 다 와서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지만 도착 직후 그쳐서 오히려 공기는 더 없이 청명했다.



쁘띠의 알록달록한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저녁 무렵의 쁘띠프랑스를 잠시 거닐었는데 예쁜 건물들 사이를 걸으면서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샹송을 듣고 있자니 너무나 마음이 편안했다.



소나기가 온 직후 산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풀내음과 청평 호변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 재잘재잘 신나서 떠드는 아이의 옹알이. 더 없이 좋은 주말을 보내고 있다.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엄마가 개를 먹었어요

두 돌이 되어가는 첫째가 요즘 역할 놀이에 눈을 떴다. 자동차 모형 장난감을 갖고 놀때는 "붕~붕~" 이러면서 갖고 놀고 손에 쥔 블럭을 비행기라고 주장하며 머리 위로 손을 들어 흔들며 "윙~윙~" 하기도 한다. 아, 물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탈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집 근처에 공군 비행장이 있어 전투기가 뜨고 내릴 때 나는 소리를 첫째가 너무 무서워 하자 아내가 '비행기' 라고 알려주고 그런 소리가 날 때마다 하는 놀이처럼 인식시킨 행동이다. 그래서 뭔지도 모르면서 비행기 소리가 나면 그러고 놀다가 이젠 비행기라는 단어는 그 행동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러니까 비행기는 머리 위로 들고 흔들면서 '윙~윙~' 하는 존재다.



어쨌든 그렇게 이런 저런 사물을 어떤 존재라고 가정하고 갖고 노는 소꿉장난의 초기 버전 정도 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낮 아내에게 카톡이 왔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첫째에게 빵을 먹으라고 줬더니 먹지는 않고 그 빵이 강아지(역시 보편적인 개가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비글 초롱이를 지칭한다)라면서 "멍멍" "멍멍" 하면서 갖고 놀더란다. 그러다 엄마에게 다시 돌려주면서 자긴 빵 안먹을거니까 엄마가 먹으라고 했다. 자주 그런다. 먹기 싫은 건 엄마 아빠 준다. 그래서 아내가 받아 먹었더니 돌연 "강아지 먹었네?" 라며 엄마가 개를 먹었다고 주장했다는 것.



회의 시간에 온 그 내용에 그만 커피를 테이블에 뿜을 뻔 했다. 조금 지나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기세.



오늘 퇴근하면 첫째하고 같이 엄마에게 개를 먹여봐야 겠다. :-D

2011년 8월 17일 수요일

인생이라는 레이스

아침 사내 방송에서 '지금 우리는 인생이라고 하는 한번도 뛰어보지 않은 레이스를 뛰고 있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지 말자.' 는 이야기가 나왔다.

맞는 말이다. 내가 앞으로 몇km를 더 뛰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무작정 페이스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연히 레이스가 짧을 수는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우연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기를 내 인생에서 어떤 시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 항상 되뇌이지만 일상에서 경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 하게 된다.

심호흡 심호흡. 생각한대로 살자.

리더

리더에 대한 신뢰를 잃는 다는 것 만큼 조직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그냥 투덜거림이나 적당한 뒷담화가 아닌 말 그대로 실망과 신뢰감의 상실.

나나 내 동료가 세계 최고의 인재는 아니지만 분명 더 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터무니 없는 조바심과 무지(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의 반도 못한 결과를 내놓아야 할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리더가 요구한 소설을 기획서랍시고 쓰고 나서는 발걸음. 정말 무겁기 그지 없다. 오늘 저녁 단 몇시간만에 억지 협의를 거쳐 만든 그 2페이지짜리 기획서로 우리 회사의 경쟁력은 몇년을 후퇴할 것인지. 아니, 어쩌면 항상 그렇듯 그 내용은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 또 새로운 소설을 요구하게 될지도.

이젠 제발 CEO놀이, CTO놀이는 관두고 자기 본연의 업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블랙베리 9700용 OS6 사용감

일주일 가량 내 블랙베리 bold 9700에 이번에 발표된 정식판(!) Bold 9700용 OS6를 설치해서 사용해 보았다. 다시 OS5로 복귀하신 했지만 나와 같은 시도를 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리를 한다. (물론 대부분은 직접 설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나와 같은 절차를 밟으리라 생각하지만.)


1. 설치 프로세스

RIM사의 운영체제 정책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블랙베리의 모든 관리를 할 수 있는 데스크탑 매니저(애플의 아이튠즈에 해당한다) 라는 PC용 관리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으로 OS6를 설치할 수 없다. OS6의 9700용 정식 한글판 설치 파일을 다운받아서 별도 설치를 하고나서 데스크탑 매니저를 실행시켜야 OS6를 내 블랙베리에 설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RIM은 사실상 블랙베리 유저들이 기기가 생산될때 설치된 OS의 메이저 버전업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내 9700에 설치된 OS는 5이고 이 버전에서 나오는 모든 업데이트들은 데스크탑 매니저에서 자동으로 체크하여 얼마든지 설치할 수 있다. 과정이 복잡하지도 않고 애플의 아이폰처럼 업데이트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OS6로 업그레이드 하려면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를 필요로 한다. 만일 RIM이 유저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OS6로 이전하게 하고 싶었다면 데스크탑 매니저에서 손쉽게 업데이트를 하게 했을 것이다. 지금의 방식을 통해 RIM은 "OS6를 당신의 기기에 설치하는 것은 우리가 제공하는 방식이 아닌 당신이 직접 우회로를 통해 설치한 것이므로 대부분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 당신의 선택권을 위해 당신 기기에서 동작하는 버전을 만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고 이야기 하고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9700 사용자들이 OS6를 모르고 넘어가 주길 원하고 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에 익숙하고 뉴스등을 통해 OS6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처럼 OS 버전업 됐다고 떠들썩 하게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2. 용량

보편적인 블랙베리 유저들처럼 나 역시 메모리 잔량을 체크하는 것이 일상적인 습관이 됐다. RIM은 애플이 선택한 '기기의 확장성을 통해 추가 가능한 앱으로 사용자가 가치를 찾게' 하는 정책이 아닌 '기기와 연동된 잘 설계된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에게 가치를 제공' 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 애플은 앱스토어를 제공하고 RIM은 BIS와 BES를 제공한다. 물론 과거와 지금의 승자가 각각 누구인가는 명확하다. 중요한 건 이런 정책 탓에 블랙베리의 가치 중 상당 부분은 BIS나 BES에 치중되어 있다. RIM은 이를 통해 단말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었지만 앱으로 확장성을 확보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단말기 메모리가 모자라서 앱을 설치하는데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블랙베리 유저들은 항상 메모리 잔량을 체크하고 다닌다.(특히나 구형일수록.)

내 bold 9700은 256MB의 용량을 갖고 있고 OS5를 설치하고 나면 120MB정도로 용량이 줄어든다. 그런데 OS6를 설치하고 나면 메모리 잔량이 50MB 이하로 줄어든다.(실제로 내 경우엔 35MB까지 줄어들었었다) 말이 쉬워서 50MB 이지 이 공간을 앱과 운영체제의 동작을 위한 공간으로 함께 사용해야 하는데 앱 하나 설치하는 것이 잔여 용량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오며 앱을 하나 설치할 때마다 시스템이 느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부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메모리가 보다 여유로운 9800이나 최소한 9780 정도는 되어야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9700 에서 OS6를 사용하는 것은 보다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3. 웹브라우저

OS6 의 베타버전부터 시끄러웠던게 webkit 을 적용한 웹브라우저의 속도였다. OS5까지의 거북이 뺨치는 웹브라우저 속도 때문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며 RIM은 OS6에 기본 포함된 웹브라우저를 통해 이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직접 사용해보니 빨라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OS5로 복귀한 지금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 의심을 하고 있다. 블랙베리 웹브라우저의 속도를 결정했던 것은 웹브라우저의 성능이 아니라 BIS나 BES의 데이터 압축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근 RIM은 BIS 서버 이용료를 12000원에서 5000원으로 대폭 낮췄다. 그와 함께 체감 데이터 사용량이 늘었다. 나는 이것을 BIS압축 리소스를 줄여 요금을 낮추고 속도를 개선해서 얻은 비용 절감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블랙베리는 모든 데이터를 BIS 서버에서 일단 압축해서 전송하기 때문에 아이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적은 데이터 사용량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속도가 늦어지고 BIS서버의 부하가 늘어난다. 더군다나 무제한 요금제가 나올만큼 데이터 서비스 이용 요금이 저렴한 지금에 와선 압축은 거의 불필요한 서비스가 된 것도 사실이다. 웹킷은 우수한 플랫폼이다. 그렇지만 이번 속도 향상은 그것만은 아닌 듯 하다. OS5의 기본 브라우저 성능도 함께 향상된 듯 하므로. 물론 이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의심이다.

속도 이외에 달라진 점이라면 기존 열보기 기능이 확대 기능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는 점. 예전에는 메뉴에서 열보기를 선택해 줘야 했으나 이젠 간단하게 확대하면 웹브라우저가 판단해 열보기가 필요하다면 자동으로 적용된다. 적어도 이론 적으로.

국내에서는 모바일 전용 웹페이지들이 대부분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 최적화 되어 있다. 말이 좋아 최적화지 전용이나 다름없다. 화면 크기, 폰트 크기 등이 블랙베리에선 맞지 않아 깨알만한 글씨를 감내해야 한다. 전에는 이럴 경우 열보기 기능으로 좋은 가독성을 확보 가능했으나 강제 열보기 기능이 사라진 지금 모바일 전용 페이지들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열보기 기능으로 인해 지금 방식의 웹브라우저는 모바일 페이지 보기가 오히려 불편하다.

물론 이건 RIM의 잘못은 아니다. 다수만을 위한 서비스만 고려하는 국내 웹서비스 업체들의 질낮은 IT마인드 탓이다. MS종속국가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지난 십년을 보내고 나서 많은 돈을 들여 간신히 그런 웹체제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 다시금 그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언제쯤 우리나라가 IT약소국을 벗어날 수 있을지. 다수(혹은 강자)만을 생각하는 마인드에는 미래가 없다. 그게 IT든 사회 정책이든.

4. 소셜피드, 유튜브, 팟캐스트

OS6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소셜피드라는 기능이다. 소셜 피드를 이용하면 본인이 가입된 모든 페이스북 등의 소셜 서비스에 동시에 포스팅하고 업데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RSS리더도 내장하고 있어서 상당히 편리하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전용 앱이 포함된 건 대단히 반가웠다. 특히 OS5에서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 하려면 유료 앱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OS5로 복귀한 지금 이들이 무척이나 아쉽다.

5. 검색기능

아이폰과 같은 풀터치폰은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기능은 바로 홈화면 직접 검색이다. 터치폰은 주소록으로 이동해서 검색해야 하지만 블랙베리는 홈화면에서 그냥 검색어를 키보드로 누르면 바로 주소록 검색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찾아낸 사람에게 메일,전화,문자,페이스북,구글톡 등 바로 서비스를 골라 연락할 수 있다. OS6는 이 기능을 강화해서 구글검색,지역검색 등 십여개가 넘는(다 세어보지 않았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한글 입력 처리가 불완전해서 예전처럼 바로 입력하면 첫 글자의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을 검색하면 'ㅎㅗㅇ 길동' 으로 입력된다. 2바이트 언어 처리 부분을 신경 안썼기 때문인데 꼭 검색어를 입력하기 전에 스페이스바를 눌러서 검색창을 불러낸 다음 입력해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불편했다. 습관은 무서운 것. 특히 이 부분은 RIM에서 업데이트 한 페이스북 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검색하는 서비스 목록에서 선택 사항을 아무리 변경해도 다음번에 재부팅 하거나 한 후에 보면 리셋되어 있다. 이 두가지는 내 생각에 엄연히 버그인데 마름질이 부족한 티가 났다.

6. 기타..

인터페이스도 좀 더 미려하게 바뀌었고 참담했던 설정 부분도 좀 더 친절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자잘하게 더 신경 쓴 티가 났다. 하지만 결국 OS6는 9800이나 9780등 신기종을 사용할 때 장점이 부각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단점을 다 떠나서 내 9700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OS5로 돌아온 지금, 다시 즉각적인 응답을 보이는 내 블랙베리를 만지면서 최신 기능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래도 한가지. 유튜브 기능은 OS5로도 만들어서 업데이트 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 동영상 찍은 것을 올려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불편하다.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우유 급식비

25년정도 전쯤 내가 초등학생 이었을때 어머니께선 매년 새학년이 되면 담임을 찾아가서 우유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수를 담임에게 받아와서 매달 내던 우유 급식비를 그 아이들 몫까지 내 손에 들려서 보내시곤 했다. 누가 그 돈으로 우유를 먹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지만 제법 수가 많았었고 어쨌든 우리반은 늘 학생 수만큼 우유가 들어왔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얼마나 사려깊은 행동이셨는지를 요즘서야 깨닫고 있다.

애들 밥 한끼 눈치 보지 않게 먹이자는 일에 돈 없어서 나라 망한다고 난리치던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총선이 다가오자 0세부터 무상 보육을 시키자며 설레발을 치고 있다. 이들이 꿈꾸는 보육 시설은 0세 아기들을 돌보기는 해주지만 분유는 주지 않는 곳인가보다.

의무교육은 국가가 강제하는 교육이다. 받지 않으면 보호자가 처벌을 받는다.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며 아이를 보내게 하고 하지만 밥은 줄 수 없으니 밥값을 내놓으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요청한 적도 없는데 찾아와서 보호해 줄테니 포장마차 보호비를 내놓으라고 을러대는 동네 양아치가 생각난다.

다른 무상 복지 시리즈 다 필요 없으니 의무 교육이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교육 받으러 모인 아이들 눈치보지 않게 밥이나 잘 먹였으면 한다. 25년전 우유 값으로 대여섯명 몫의 급식비를 매달 손에 쥐어주시던 분께 교육받으며 자란 내 생각엔, 적어도 그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살아가는 성인의 자세다.

필요하다면 세금 더 낼테니 제발 애들 밥 좀 먹이자. 아이들 보기 낯 부끄러워서 못살겠다.

한글자로 말해요

첫째가 이제 제법 의사 소통이 된다. 형이상학적인 대화가 아니면 엄마 아빠가 뭐라고 하는지 다 알아들어서 따르기도 하고 못들은 척 딴짓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 하고 대신 첫글자 + 네 로 표현했었다. 예를 들면 '강아지' 는 '가~네', '물고기' 는 '무~네', '코끼리' 는 '코~네', '사과'는 '사~네' 로 표현한다. 무조건 모든 단어의 첫글자+'네' 라는 접미어를 붙인다. 심지어 아빠도 '아~네' 다.



그런데 어제 퇴근했더니 아내가 드디어 첫째가 두음절로 된 단어의 뒷글자를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이번엔 뒷글자만 '네'에 붙인다는 것. 예를 들면 '사과'는 '과~네' 로. 데굴데굴 깔깔깔. '사~네' 할 때마다 '사과' 하고 정정해 줬더니 혼란스러웠나보다.



미안미안. 아빠가 좀 더 여유있게 기다려 줄게. 그런데 '토끼' 보고 '토~네' 라고 하는 건 너무 웃겼었단다. ㅠㅠ



Ps

첫째가 유일하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건 "어? 차 있네." 라는 말. 엄마, 아빠보다도 이 말을 제일 먼저 했다. 차보다 못한 우선순위. ㅠㅠ

2011년 8월 7일 일요일

블랙베리 9700용 OS6 업그레이드

얼마전 공식 릴리즈 된 블랙베리 9700용 OS6로 내 블베를 업그레이드 했다. 뭔가 엄청난 변화를 기대 했던 건 아니고 그저 웹킷 적용되었다는 웹브라우저의 속도만 만족스럽기를 바랬었다. 다른걸 다 떠나 OS5의 웹브라우저 속도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느려서....(초고속 인터넷 쓰다가 모뎀 쓰는 기분이랄까..)

업그레이드 하고 보니, 일단 소문대로 웹브라우저의 속도는 놀라울 만큼 개선이 됐다. 이 점은 대 만족. 그리고 생각도 못했던 소셜피드 라는 새로운 기능. 페이스북등의 소셜 서비스들과 블로그 구독을 위한 rss리더 등이 한데 묶여 있어서 내가 사용중인 모든 소셜 서비스들과 블로그들을 하나의 앱에서 처리할 수 있다. 뭐, 그렇지만 현실적으론 소셜 서비스는 페이스북만 하고 있고 RSS리더는 어차피 구글 리더로 보던 터라...그냥 페이스북과 rss리더를 한 앱에서 이용 가능하다는 장점 말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OS6로 바꾸고 나서 블랙베리 앱월드에서 이용 가능한 앱들이 많이 늘었다. 그동안 한국 앱들이 너무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대부분 OS6이상부터 지원을 했었나보다. 서울버스 같은 앱이 등장할 줄이야.

단점은 일단 OS 가 먹는 메모리가 많다는 것. 내 기기에 남아있는 메모리가 50메가 정도다. 원래 기기의 기본 메모리가 256메가 정도 뿐이라서...50메가도 채 남지 않은 메모리가 주는 심리적 압박이 제법 크다. 그리고 홈 화면에서 바로 주소록 검색할 때가 좀 불편해 졌다. 전에는 그냥 이름을 바로 입력하면 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글자가 깨져서 스페이스바로 입력창을 불러내서 해야 한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사실.

그 밖에도 자잘한 장단점이 더 있는데 그런 것들은 아직 더 써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웹브라우저 빨라진 걸로 현재까진 만족. :-)

2011년 8월 6일 토요일

통합, 융합, 통섭

"통합은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데 묶어놓은 것입니다.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해요....(중략)... 통합은 물리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이고, 통섭은 그냥 거기 섞여 있는 상태로, 녹아 있는 상태로 멈춘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뭔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번식하는, 생물학적인 어떤 합침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발효가 되어서 전혀 새로운 맛이 나는 김치나 장 정도는 되어야 통섭 아니겠습니까?"

<인문학 콘서트 | 새롭고 낯선 유혹, 통섭 | 최재천>

개념이 나오고 어휘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어휘를 듣고 개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대게 후자는 나처럼 들으면 알고 있었던 당연한 개념처럼 받아들이지만 내면으로는 그동안 그런 개념을 내 생활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11년 8월 4일 목요일

삶을 바라보는 태도

지난 한달간, 아니 어쩌면 지난 반년간 여러가지로 생각이 참 많았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 1년처럼 힘들었고 또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지만 그런 생각과 고민으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한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만족스러울 만큼 변화한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 움직였다고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자리에서 '옆으로' 비켜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5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날 본다면 누군지 기억도 못할 만큼 인지하지 않고 무시했으리라.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날 봤다면 아마도 숨쉬는 고철 덩어리 취급을 하며 분노했으리라. 그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열정의 가치만을 인정했었으니까. 열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분노했었으니까.

열정.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예전의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활활 타오르는 열정은 남이 보기에 멋있어 보일 뿐 스스로에겐 그만큼의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하는게 남에게 멋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면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차분함이다. 자신의 생각과 목적과 의지를 안으로 잘 갈무리해서 쟁여 둘 수 있는 차분함.

젊은이는 마음이 급해서 허둥대다 시간을 낭비하고 나이든 사람은 시간이 부족해서 차분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차분함으로 멀리 본다면 그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

멀리, 길게 내다보는 사람은 활활 타오를 수 없다. 눈 앞의 어떤 일에 쉽게 흥분하지도 않고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먼데 그러겠는가. 100미터에서의 순위에 절망하는 마라톤 선수도 없고 200미터까지 전력 질주하는 마라톤 선수도 없다.

지난 몇달의 고민 끝에 남의 평가가, 남의 시선이,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남을 넘어서는 결과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낀다.

조바심을 버리고 멀리 보자. 지금 이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과 믿음은 여름 한철 미친듯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떠나 보내자.

2011년 7월 26일 화요일

더치커피

어제 밤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자려고 누워서 아내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던 중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특별히 더치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대화하다 인터넷 검색하다 하면서 만드는 법, 유래 등에 대해 각자가 취득한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필이 와서 둘이 벌떡 일어나 침출식 더치커피를 내리자고 합의를 봤다. 부엌으로 나와서 불을 켜서 내가 핸드밀러의 그라인딩 굵기를 조절하고 원두를 가는 동안 아내는 커피를 침출시키고 숙성시킬 통을 찾느라 싱크대를 뒤적거렸다.



그 야밤에 수선을 떨어서 결국 더치 커피를 위해 커피를 찬물에 침출시켜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낮에 아내에게 메일이 왔는데 어제 그 난리를 치고 만들었던 커피 우려내기를 끝내고 숙성중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적은 양이 나왔는데 어차피 조금만 해보기로 했던 거니까 불만은 없다. 다만 오늘 퇴근하고 맛을 봐야 하는지, 좀 더 숙성시켜서 내일 아침에 맛을 봐야 하는지 고민중. 맛있었으면 좋겠다. :-)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플라즈마(plasma)

길지도 않은 심플한 단어다. 이게 뭔지 자세히 설명하는 건 귀찮고, 문득 오늘 점심을 먹다가 이게 생각났다. 학부 4학년때 받은 수업의 제목이었는데 말 그대로 플라즈마에 대한 내용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이 과목이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은, 너무나 흥미롭게 공부했다는 것 때문이다. 흡사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다음 페에지에 나올 미분방정식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궁금해서, 또 그 다음엔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서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기 싫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공부했었다. 추리 소설과의 차이가 있다면 한페이지 넘기는데 몇시간씩 걸린 적도 있을만큼 오래 걸렸다는 것. 결국 수식 1-1을 적어놓고 책의 맨 뒤에 나오는 수식까지 줄줄 유도해 가면서 설명할 수 있을만큼 내용에 심취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시험에 임했는데 문제를 풀려고 보니 문제에서는 수식을 외우고 있다는 가정 하에 문제가 출제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식은땀이 주륵 흘렀는데 도저히 수식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것. 유도 하라면 유도할 수 있는데 단순 암기는 못하고 있었다. 어떤 형태인지는 기억 나는데 세세하게는 기억하고 있지 못해서 혹시 틀릴까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수식 1-1부터 유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1번 문제를 드디어 풀고(전체는 4문제)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험 시간을 50분만 준다고 하셨다.(우리과는 전공 과목은 특별히 시간 제약이 없었다. 특히 3,4학년은.) 시간을 더 달라고 하자 시계를 한참 보시더니 5분 더 주겠다고 하셔서 그냥 답안지 내고 나왔었다. 이런 제길슨. 덕분에 4학년 학점이 안드로메다로 갈 뻔했었다. ㅡㅡ;

어쨌든 그때 익힌 지식은 대학원 전공이었던 플라즈몬(plasmon)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됐었지만 그 당시에는 투덜투덜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오늘 밥을 먹다 그 생각이 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잠자기 싫을만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그렇게 재미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분명 공부보다는 쉬운건 분명한데 말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하는 사람은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1인)

2011년 7월 22일 금요일

포항 '아라비카'

이번 커피 여행의 마지막 카페는 포항에 있는 '아라비카' 였다. 그동안의 방문기와 달리 과거형인 까닭은 어제 점심때 방문을 했었고 곧바로 집까지 달려오는 바람에 포스팅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아, 물회로 점심 먹고 오긴 했다)

버스 터미널에 있는, 지나가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아니라면 어느곳이나 기억에 남는 단골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가게일수록 그런 단골들 또한 기억이 아닌 추억을 그곳에 묻어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유행한게 몇년 전부터일까? 흔히 말하는 다방커피가 아닌 제대로 된 핸드드립이 유행하기 시작한지 말이다. 오년? 십년? 과연 십년 전에 핸드드립이라는 방식의 커피를 즐겼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일 그 시간이 이십년으로 늘어난다면?

포항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 '아라비카'는 그 이십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주인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의 커피를 내리고 있는 곳이다. 인테리어 조차도 크게 바뀌지 않아 실내는 이십년된 인테리어다.

카페 투어객이라는 인사를 함과 동시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전날 다녀간, 이십년 전 단골에 대한 이야기까지. 외지에 나가 이십년을 정신없이 살다가 사업차 들린 포항에서 젊은날의 단골 가게를 찾았던 그 분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는 그 이야기에서 단지 돈받고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우려내는 푸근함이 느껴지는 장소로 다시금 보였다. 그런 장소에서, 이십년간 커피 하나로 지역민들에게 인정받고 유지되어 온 가게에서 커피 맛이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 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 것이다. 그냥, 푸근했다. 또 이랬던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만큼.

지금이야 조금 유행처럼 번지는 취미이긴 하지만 커피라는 것은 커피의 산지에서 시작해 손 끝을 거쳐 마실때의 온도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일정함이 없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음료다. 심지어 커피를 내리는 날의 습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정도니 우리나라 같이 기온이 급변하는 기후에서는 일정한 커피맛이라는 것이 의미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도 그 중 한결같은 커피맛을 말한다면 포항의 '아라비카' 가 아닐런지.

이번 커피 여행의 마지막은 푸근하고 아늑했다. 아라비카를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나 자신이 기특하게 생각될 만큼.

남쪽으로 여러곳을 둘러보긴 했지만 아직도 못가본 곳들이 많다. 우리나라 커피의 성지나 다름없는 강릉의 여러 카페들은 자주 들릴 수 있으니 제외한다 쳐도 남양주의 '왈츠와 닥트만', 울산 '빈스톡'(여긴 이제 샵을 안하시니 일반인 자격으로 가봐야...), 경주 '얀', 대구 '커피명가' 등은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들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들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지역의 유명한 곳들은 아예 리스트업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보지 않을까?

차로 이동한 거리만 1,450km 의 나름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조금 더 커피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정신없이 돌아 다녔던, 하지만 커피향 가득 행복했던 휴가를 이제 마무리 한다. 아직도 내 코 끝에선 달콤한 커피 원두의 향이 남아있는 듯 하다. :-)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경주 '슈만과 클라라'

원래 오늘 일정은 아침에 부산을 떠나 오전에 울산 '빈스톡'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경주로 이동해 이지역 커피 명가인 '슈만과 클라라'를 가기로 되어 있었다. 도시를 두 개 가로지르는 일정이긴 하지만 어차피 멀지 않고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울산이 있기 때문에 크게 무리되는 일정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여행의 의외성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울산 '빈스톡'을 포기했다. 이유는 해운대. 어제 저녁 바람이 불고 결국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못나가본 해운대를 오늘 오전에 방문했다. 첫째에게 백사장 모래 장난을 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과 울산 '빈스톡'을 맞바꾼 것. 어차피 '빈스톡'은 카페는 아니고 말 그대로 구경 하고자 했던 곳이니(운 좋으면 박윤혁님이 내려주는 커피를 한잔....기대하긴 했지만)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니었다.
오전을 그렇게 부산 해운대에서 보내고 경주로 이동했다. 일반적으로 도시 중심지에 있거나 한때 중심지였던 곳에 있는 다른 커피숍들과 달리 슈만과 클라라는 주택가에 있었다.(여기 주택가 맞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도 아니고 말 그대로 주택가 외각에 정말 동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곳의 분위기는 슬리퍼를 끌고 찾아야 할 것 같은 친근함이 강제되어 있다. 적어도 강제라는 단어에서 부정적 의미를 뺀다면 말이다.

카페의 1층은 로스팅하는 곳과 커핑 랩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두를 로스팅 하고 맛을 테스트하며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 진다고 한다. 매장은 2층인데 생각보다 널찍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의 위치로 볼 때 평일 오후이니 만큼 조금은 휑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매장 한켠엔 오래된 LP 가 가득했는데 장식인지 아직도 현역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파나마 게이샤 커피를 맛 볼 수 있었다. 게이샤 라는 말은 일본어가 아니다.(한글로 발음을 적어 놓은게 비슷할 뿐) 이 커피는 일반적인 경로로 구할 수 없는 커피로 경매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비싼' 녀석이다. 내가 이제껏 마셔본 커피 중 가장 비싼 녀석이었는데 대충 가격을 이야기해 보면 로스팅한 원두 한알에 몇백원 정도 한다.(OMG. lol) 아마 카페 투어중이 아니었다면 쉽게 고르지 못했으리라. 맛은 대단히 색달랐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예가체프의 할아버지뻘 되는 맛과 향취라고나 할까. 어떻게 글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맛을 보길. (파나마 게이샤에 대한 설명은 다음 링크 참고. http://www.coffeero.com/news/news_view.php?id=academy&seq=501 )

지금은 보문단지내에 있는 산푸른 펜션에서 쉬고 있는데 창문을 열어두고 있으니 뻐꾸기 우는 소리도 들리고 서늘하니 춥다는 생각까지 드는 상황이라 TV 뉴스에서 폭염 어쩌고 이야기 하는 기자가 남의 나라 이야기 하는 것 같은 기분. 내일은 포항으로 이동할 계획인데 오늘 저녁 시원하게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다.

2011년 7월 19일 화요일

부산 로스터리 카페 '휴고'

오래된 도시의 한켠에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구역이 있다. 비좁은 골목, 낮은 빌딩, 낡은 담벼락, 잡초들이 비집고 올라오는 깨진 보도블럭. 한때 중심지의 역할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누구나 '어디'라고 말하면 알 수 있는 곳이지만 도시가 커가며 옮겨가는 중심에서 소외되어 더 이상의 변화가 없이 도시와 함께 늙어가는 장소.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스크린 속 배우가 실제로는 초로의 노인이 되어 있는 낡은 무성영화 필름 같은 시간의 어긋남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로스터리 카페 '휴고'는 지난 십년동안 부산의 한 귀퉁이에서 한결같이 커피 향을 풍겨온 오래된 장소의 냄새가 났다.

생각했던 것 보다 휴고를 찾아가는 길은 어려웠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의심할 정도로 비좁은 골목에 지그재그로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와 화분들을 지나 두 바퀴나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장소를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결국 전화를 걸어 가게 직원에게 장소를 확인해야 했고 직원이 길가에 나와 우리를 주차할 수 있는 건물로 안내를 해주고서야 부산 커피의 1세대라 불리는 유서깊은 그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우리 전화를 받고 두번 물어보지도 않고 가게 앞으로 나온다고 말하는 폼에는 수많은 카페 투어객들을 맞이해본 경험이 배어 있었다.

카페를 들어가니 나이든 노부인 두분이 한 테이블을 찾이하고 계셨다. 오래된 인테리어의 실내와 노부인 두분의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첫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무슨 커피를 주문할까 고민하다 휴고 자체의 로열 블랜드와 브라질 원두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로열 블랜드는 강배전한 원두를 고노 드리퍼로 내리는 진한 커피인데 뜨거운 물로 내리면 쓴맛이 너무 강하게 우러나기 때문에 조금 낮은 온도의 물로 한방울 한방울 내리고 내린 결과물을 다시 가스불 위에 올려서 마시기에 좋은 온도로 데워서 내놓는 특이한 커피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한 에스프레소 더블샷이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중량감이 있는 커피였는데 오전에 이미 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한 아내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이 진했다. 뒷맛에서 놀라울만큼 강하게 단맛이 올라오긴 했지만 카페인 자체가 과다인 것 같은 진한 중량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반쯤 남기고 말았다. 브라질 원두는 신기하게도 온도에 따른 맛의 차이가 적었다. 로열 블랜드를 먼저 맛보고 나서 마셨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한 맛 보다는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고 도는 순한 맛이었다. 너무 부드러워서 그냥 입 안에서 흡수되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면 드리퍼 하나에도 시간의 무게가 묵직하게 내려 앉은 듯한 휴고의 분위기에서 적당한 진한 맛은 그 중량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페 투어를 왔다고 하자 이런저런 질문에 시원스레 대답해 주시는 바리스타님 덕분에 몇가지 핸드드립에 대한 팁을 얻어서 가게를 나섰다.

거제도에서 가거대교를 건너 휴고를 찾아가는 길도 그랬지만 휴고에서 해운대에 잡아놓은 호텔까지 오는 길도 길게 늘어선 차와 비좁은 도로를 구불구불 헤집고 와야 했다. 해운대에 도착하자 마자 바람과 비가 몰아쳐서 해운대 백사장에서 여름밤을 즐기려고 했던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충분히 부산을 방문한 가치가 있었던 오후였다. 내일은 울산을 거쳐 경주까지. 비는 오늘까지만 내리고 말아야 할텐데.

Jay's coffee studio

어제 저녁부터 기다렸던 Jay's coffee studio에서 커피를 즐겼다. 펜션 2층에 자리잡고 있는 터라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 경치가 정말 좋았다. 야외 테라스에도 테이블이 있었는데 날이 지금처럼 덥지 않으면 거기 앉아서 햇볕을 즐기는 것도 무척 좋을 것 같았다.(테이블마다 큼지막한 파라솔을 하나씩 세워 놓거나 전체적으로 차양을 쳐 놓았으면..하는 아쉬움이.)

평일 아침이고 오픈하자 마자 들어간 덕분에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매주 화, 수 요일이 로스팅 하는 날이라고 되어 있어서 혹시 오래된 원두밖에 없거나 오늘 갓 로스팅해서 아직 맛이 제대로 없는 원두만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살짝 됐지만 아내와 내가 고른 수프리모와 산토스는 목요일에 로스팅을 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손님이 없었던 덕분에 아내가 수프리모를 즐기는 사이 나는 첫째와 함께 카페 내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아줄 수 있었다.

커피 맛은 훌륭했다. 나나 아내의 입맛 기준으로는 군산 산타로사 보다 더 좋았다. 특히 브라질 원두 특유의 진하고 깔끔한 맛을 제대로 살려내서 입에 머금고 넘기는 순간의 느낌이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내가 집에서 내리는 산토스의 복잡한 맛과는 차원이 다른 ㅠㅠ) 본래 어느 집이나 핸드드립의 리필은 아메리카노로 해주지만 Jay 님이 인심을 쓰셔서 탄자니아 원두로 핸드드립 리필을 해주셨다. 이 또한 훌륭. 비록 내가 좋아하는 원두는 아니고 아내가 선호하는 원두라서 내 입맛에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산토스, 수프리모, 탄자니아 모두 고유의 맛을 제대로 살리고 있었다. 예가체프를 한번 맛 보고 싶었는데 풍부하고 현란한 맛을 자랑하기보다는 단단하게 맛을 입 안으로 갈무리해서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드립 스타일인 듯 해서 예가체프보다는 내가 골랐던 산토스가 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마셔봐야 아는 거지만 마셔보질 못했으니...)

더치 커피도 있었는데 오늘 거가대교를 타고 부산으로 넘어가서 카페 '휴고'를 방문할 예정이라 카페인 과다가 우려되어 참았다. 더치 커피는 500ml 단위로 파는데 해수욕장에 갈 때 사들고 가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두고 즐기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더치 커피는 휴고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거기서 사들고 해운대로 가서 마셔야지.)

전반적으로 커피 맛은 매우 마음에 들었고 어쩌면 커피보다 카페 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더 마음에 들었던 곳. 펜션부터 관광, 커피 한잔의 휴식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거제도나 통영쪽에 온다면 무조건 들릴 듯.

이제 거가대교를 넘어 부산으로. 2001년에 오픈한, 10년차 로스터리 카페 '휴고' 를 향해 출발~

통영 솔향기 은빛바다 펜션

한국의 나폴리 통영. 나폴리를 가본적도 없고 사진으로 제대로 본 적도 없으니 '나폴리' 라는 단어에서 내게 떠오르는 영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나폴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이름을 날린 역사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고 '한국의 나폴리' 라는 별칭으로 통영을 부를때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지 정도는 상상할 수 있다.

군산, 보성, 여수를 거쳐 바로 그 통영에 와 있다. 어제 도착했는데 두개의 짝을 이룬 대교가 보이고 바로 앞에 갯벌이 펼쳐져 있는 솔향기 은빛바다 펜션에서 하루를 묵었다. (정확히 말하면 통영이 아닌 거제도 행정 구역이지만...) 와서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아내하고 내년 휴가때는 여기에서 아예 며칠 있으면서 거제도와 통영 일대에서 휴가를 즐기는게 어떠냐는 말을 했을 정도. 어제 생명으로 와글와글 하는 갯벌에서 깔깔거리며 걸어 보기도 하고 해가 지고 난 후 바닷가를 따라 도는 산책로로 가족들과 함께 걸었는데 바닷물 온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굉장히 포근했다. 동해와 달리 파도가 잔잔하게 치는 이곳의 파도 소리는 듣고 있자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사실 여기에 온건 예쁜 펜션에서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펜션하고 같이 있는 Jay's coffee studio가 목적이었다. 월요일은 휴무라서 어제는 커피를 즐기지 못했고 오늘 아침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한잔 할 생각. .

아침에는 모처럼 내 KX를 들고 펜션 앞바다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밤사이 물이 들어와 갯벌로 내려서는 돌계단에 앉아 셔텨를 누르는데 묵직하게 올라오는, 익숙한 KX의 셔터음과 느낌이 반가웠다. 그동안 정물 사진은 RB67로 찍고 아이들 사진은 조리개 우선 모드가 지원된다는 이유로 컬러 필름을 물려놓은 아내의 ME로 찍거나 똑딱이 디카로 찍다보니 KX를 이용할 기회도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손을 타고 올라오는 그 묵직하면서 경쾌한 셔터음이 말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반가웠다.

사진을 찍는 취미는 가족들이 공유해줄 수 없는 나 혼자만의 공간이다. 그런 만큼 그동안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날 위해 시간을 쓰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아이들 사진은 찍는다는 표현보다는 기록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일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뷰파인더로 보이는 사물과의 대화만이 남는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은, 숨쉬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절정의 순간이다. 그리고 내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런 숨막힐 정도로 고요한 나만의 시간이었던 듯.

어느덧 아침 8시. 이제 슬슬 짐을 챙겨놓고 커피를 마실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의 목적지는 부산. 사실 본격적인 커피 여행은 바로 오늘부터. :-)

2011년 7월 17일 일요일

군산 산타로사

군산 은파호수는 그 자체로도 명물이다. 호수를 숲이 둘러싸고 있고 그 경계에 있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어디가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가을쯤 한번 더 와보고 싶을 만큼 멋진 곳이다.



그 은파호수가에 유명한 로스커리 카페가 있는데 바로 '산타로사' 다. 내가 전문 블로거도, 기자도 아니어서 가게 이력이나 이런 것들은 스킵하고 바로 커피 맛을 보기로 했다. 아내는 예가체프, 나는 늘 그렇듯이 브라질 산토스를 요청했다. 예가체프는 너무 복잡하지 않은 깔끔함을 보였고 산토스는 본연의 깊고 단순한 맛을 보였다. 전반적으로는 매우 만족. 다만 산토스의 경우 식으면서 쓴맛이 너무 날카로와져서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커피한테 아쉬운게 아니라 첫째에게 끌려 다니느라 커피가 제일 맛있을 때 마시지 못했다는게 아쉽다는 것.



그런 아쉬움과 무관하게 커피 자체는 훌륭했다. 내리는 모습을 봤는데 거름종이냐 거름망이냐, 드리퍼는 어떤걸 쓰느냐, 드립하는 방법은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 등 주문 자채에 따라 내리는 방법과 도구의 조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봤다. 특히 한잔 한잔 대단히 공을 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정성이 이런 맛을 만들어 내는구나 싶었다.



전반적인 평을 요약하면 맛이 약간 날카롭다는 것. 식기 전의 맛은 어디가서 쉽게 맛보기 어려운 그런 맛이었는데 커피 온도에 따라 맛이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 갈다.

군산 이성당

평소 먹어보지 못한 특이한 음식이 아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감탄을 금할 수 없을만큼 맛있게 하는 요리사나 음식점은 없다. 사실, 흔한 음식이라는 것은 그만큼 맛의 보편화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맛 없게 하는 것이 더 이야기 거리가 되는 음식이라는 의미가 된다.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빵'은 그런 흔한 음식들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맛으로 유명한 빵집에 대한 입소문은 쉽게 접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군산에 있는 '이성당' 이라는 빵집은 상당히 특이한 곳이다. 흔치않은, 바로 입소문이 나 있는 빵집이기 때문이다.

이성당은 1945년에 문을 연 빵집으로 해방 전 일본인이 하던 빵집을 해방직후 인수해서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보다 오래된 빵집'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빵집이다.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이 맛으로 유명한 빵집이다. 음식을 다루는 업종의 특징상 맛이 아주 좋지 않으면 유행에 따라 매출이 출렁이고 그런 출렁임을 몇번 겪다보면 문을 닫는 경우가 생긴다. 60년을 훌쩍 넘긴 빵집이 갖는 맛의 차이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오늘 가족들과 함께 바로 그 이성당을 찾았다. 생각보다 쉽게 찾았는데 밖에서 본 이성당은 상당히 놀라웠다. 빵집 치고는 제법 넓은 매장과 테이블 수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 넓은 매장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빵은 직원이 내놓자 마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집어가서 비어 버리고 계산대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너무 길어서 빵을 계산하는 줄, 팥빙수 등의 음료를 계산하는 줄, 음료를 받아가는 줄 등이 모두 구분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빵을 사는 사람들이 서너개 고르고 마는게 아니라 쟁반 수북하게 쌓아서 계산대로 가져간다. 팥빵이 제일 유명하다는데 항상 진열대에는 비어있다. 직원이 내놓자 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정신없이 집어드는 진풍경을 구경하고 싶다면 꼭 오전에 가야 한다. 늦게 가면 더이상 빵이 없다고 하니.

잔뜩 기대를 하고 베어 문 첫 맛은 시시했다. 힘들게 자리를 잡은 테이블에서는 합석을 해야 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맛과 번잡함 때문에 역시 소문 믿을 것 없다는 약간의 투덜거림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그래도 몇개 더 사들고 번잡한 빵집을 나왔다. 그런데 빵을 먹으면 먹을수록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지도 않고 뭔가 대단히 강렬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손이 갔다. 결국 아내와 둘이 "이집 빵 맛있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평범한데 손이 가는 맛. 그게 지금까지 이성당을 지켜온 맛인듯 했다.

여행의 첫 출발지인 군산. 군산의 두군데 목적지 중 한군데인 이성당. 출발이 좋다. :-)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남 탓 하지 않기.

누구를 탓 하기는 참 쉽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못났다. 일이 잘못 되거나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을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물론 정말로 외부적인 요건이 따라주질 못해서 일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비율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내 경우엔 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외부적인 문제로 일이 안풀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크던 작던,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 가정이든, 회사든.

며칠전 위에서 일을 시키곤 아무런 권한 이양을 해주지 않아 오히려 일이 제대로 안되고 보고 하느라 시간 낭비가 많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우리 회사는 임원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임원들의 업무가 너무나 많고 그래서 오히려 의사결정 권한을 아래에 나눠주고 싶어하는 임원들도 많다. 중요한 건, 내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 증명해 보이는게 먼저라는 사실. 세상에 권한을 먼저 주고 그 사람을 키워가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효과적이지도 않고.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없다는 것 역시 우스운 변명. 업무의 중요도에 관계없이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에게 한단계 더 중요한 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나 자신에게도 매일 아침 거는 주문. 제발 남 탓을 하지 말자. 남 탓을 하면 그도 날 향해 탓을 하게되고 그 순간 협업도, 성과도, 고객도 모두 떠나버린다.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휴가계획

계획에 없던 휴가를 쓰기로 해서 나름 계획이라는 걸 짜보고 있다. 사실 처가가 강릉이어서 바닷가에 간다는 건 좀 식상하다보니 휴가라고 해서 어디 움직인다는게 그리 들뜨는 일은 아니다. (주말에 처가에 갔다가 산책하러 나서면 경포대인 입장이라...) 아내는 작년에 갔던 샌디에고를 다시 가거나 아니면 산호세/샌프란시스코쪽을 가보고 싶어 했는데 젖먹이들이 있어서 함께 가기도, 떼어 놓고 가기도 애매해서 다시 나가는 건 몇 년 후로 미루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서 이리저리 둘러볼만한 곳을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사실 둘러보고자 하면 여기저기 볼 곳들이 많다. 무작정 어디 가서 며칠 놀다 오는 것 보다 테마를 잡아서 정말 휴가라도 쓰지 않으면 가보지 못할 곳을 가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테마는 '커피' 와 '습지'. 습지 식생이 전공인 아내에게는 전국에 가보고 싶었으니 가보지 못한 습지가 많다.(자기 말로는 영동지역 습지만 다녀 봤다니까) 그래도 막판에 커피로 결정을 내렸다. 아내가 예전부터 좋아는 했지만 최근 들어서 제대로 재미를 붙인게 바로 커피이기 때문.



그래서 이번 여름 휴가때는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커피 명인들을 찾아다녀 볼 생각이다. 이런곳들은 사실 큰 마음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가보기 쉽지 않다.(커피 한잔 마시자고 포항까지 간다거나....) 대충 몇군데 정하긴 했는데 내일 정도까지 고민좀 해보고 모레까지는 숙소 예약을 할 계획. 설마 초성수기도 아닌데 일주일 전에 예약해도 충분하겠지. :-)

2011년 7월 8일 금요일

돈(money)

돈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세상엔 많아서 나쁠게 없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좋은 벗과 마찬가지로 돈 역시 많아서 나쁠게 없는 것들 중 하나다. 아, 물론 그걸 제대로 못써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칼과 같이 잘못 사용하는 일부에 국한된 말이니 돈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돈이 많으면 좀 더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 수 있는게 현실이다. 억지로 꼭 그런거 아니고 운운하지 말고 생각해보면 사실이 그렇다. 재미있게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는 범위는 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 범위가 넓어진다고 더 즐거운 건 아닐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즐길 거리를 찾는 그 사람의 능력 탓이지 범위가 넓어지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게 아닌 이상 돈이 많기 위해선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현재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일해야 한다는,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줄어들 경우의 행복 수치는 로그 함수로 감소한다. 그게 문제다. )

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가끔씩 '구경' 하듯 쳐다보는 내 일상을 보면서 조금 회의감이 드는 요즘이다. 내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 길을 달리기로 결정했을 때, 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었다.

행복을 위해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기간을 언제까지로 가져가야 하는 걸까? 분명한 건 '당장'은 아니라는 것과 '먼 훗날' 이어서도 안된다는 것. :-(

2011년 7월 7일 목요일

아내의 생일

오늘은 아내가 만으로 서른을 찍은 날. 어제 오후에 올라오신 어머니께서 잡채부터 동그랑땡까지 생일상을 봐주신다고 분주하셨던 덕분에 간만에 집에 기름 냄새가 진한 잔치집 분위기가 났다. 그 와중에 케�까지 챙겨 오셨으니 내가 멋적을 정도. 어쨌든 덕분에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나도 잘 얻어 먹었다.

아내에게 만으로 서른을 넘긴 소감을 묻자 남들과 어울려야 나이가 실감날텐데 늘 아이들하고만 집에 있으니 나이가 별 의미 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는 말.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서 더이상 하루종일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다시 나이를 인식하게 되는, 밖에서 사람들하고 함께 일하는 때가 오겠지. 나이가 더 들더라도 그건 좋은 일일거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살 더 나이를 먹은 오늘. 진심으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혜성.

2011년 7월 3일 일요일

병점 지하차도 침수

아침에 장대비를 뚫고 출근하기위해 차를 몰고 나가는데 집 바로 앞에 있는 병점 지하차도에 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조금씩 전진을 하는 기미도 안보일 정도로 차들이 서 있었는데 평소 교통 체증이 없던 곳이라 이상하게 생각됐다. 빗길에 지하차도 내에서 사고라도 났나 싶어 차를 돌릴 수 있을때 돌리자는 생각으로 옆 골목으로 빠져서 한참을 돌아 출근을 했다.



퇴근 후 아내에게 들어보니 바로 그 병점 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됐었다고 한다. 사고가 아니라 물이 차서 차들이 못지나가고 있었던 것. 가뜩이나 연식이 오래된 차인데 괜히 물 먹고 주저 앉을 뻔 했다는 생각에 잘 빠져 나왔다 싶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오랜만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퍼붓는 비를 경험한 듯. 내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비가 안온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2011년 7월 2일 토요일

주말 아침

주말 아침. 오늘과 내일 모두 회사에서 워크샵이 예정되어 있어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들이 자는 사이 부엌으로 나와서 커피를 내려서 아내 몫으로 한잔 덜어두고 아침 식사와 함께 내 몫을 마셨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아내 몫으로 놔둔 커피를 버리고 새로 내려서 식탁에 올려 두었다. 드립 방식을 바꿔봤는데 확실히 내게 익숙한 방식이 더 괜찮은 듯.

보통 워크샵이라고 하면 내 주위에선 어디 멀리 놀러가는 걸 생각하는데 우리 회사는 진짜 워크샵을 한다. 아침부터 새벽이 될 때까지 회의실에 모여 앉아서 한가지 주제로 끊임없이 토론을 한다. 마실것을 쟁여두고 하는데 어차피 식사는 회사 식당에서 해결하니 간식거리는 따로 없다. 이번엔 지난번 이틀간 진행되었던 1차 워크샵의 결과물을 놓고 진행하는 2차 워크샵인데 역시 이틀간 예정되어 있다. 위에서 받은 숙제는 다른 업무 하면서 워크샵 방향이 어떻게 가는지 종종 들어가서 체크하고 엉뚱하게 가지 않게 챙겨라...인데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업무 주어진 것도 많아서.

어쨌든 마침 장대비도 예고되어 있어 어디 움직이기 곤란한 주말, 회사에서 내내 지내게 생겼다. 분명 한밤중까지 진행될테니 평일이나 다름 없는 주말일 듯. :-(

2011년 7월 1일 금요일

5%의 개선과 100%의 혁신

오늘 제품의 나아갈 방향과 개선점에 대한 토론을 벌이던 중 함께 일하는 대리 한명이 터무니 없게 들리는 말을 하면서 내게 그랬다.

"과장님, 때론 5%의 개선보다 100%의 혁신이 쉬울 때가 있는 법이에요. "

순간 한대 맞은 느낌.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 말을 곱씹고 있다. 방법을 찾아보면 당장은 어렵더라도 내년엔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번 뒤집어 놓고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프로그램이 복잡해지면 디버깅보다 처음부터 작성하는게 더 좋은 결과를 낼 때가 있는 법이니까.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인내

20대의 난 그랬다. 대화 주제와의 연관성에 관계없이 상대방 주장의 논리적 약점은 찾아내 '사냥'하듯 몰아 붙였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날 변호하기 위한 '논리'로 내 주장을 구성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논쟁에서 이겼고 토론의 마지막 발언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그게 결코 이기는 것도, 내 자존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쟁에선 이길지 몰라도 공감은 얻을 수 없었고 공감없는 토론은 이기든 지든 내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이와 함께 철이 들었다.

이후엔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를 이해했다면 사소한 논리적 모순 정도는 모른척 넘어갈 줄 알게 됐고 상대방과의 관계 그리고 결론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내 변호를 포기할 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내 변호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지금 내 변호를 하지 않으면, 논쟁에서 지면 남들이 두고두고 손가락질 할거라는 건 내 착각이요 오만이었다. 마치 셔츠 아래쪽에 묻은 얼룩과 같이. 나는 죽도록 신경쓰지만 남들은 그런 얼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알게 된다해도 곧 기억에서 잊혀진다. 그 얼룩..내게는 창피한 존재일지 몰라도 나 이외의 사람들에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자존심 또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얻었고 만족해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스스로 그런 생각을 완전히 체화하진 못한 것 같다. 그 순간엔 분명 과거와는 다른 행동으로 잘 대처하고 넘어가면서도 한참 후에까지 속에서 열이 오른다. '이 말은 이렇게 받아쳤어야 하는데', '이 말은 꼭 해줬어야 하는데' 등등의 생각들과 함께. 내가 복기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상대를 논리적 코너로 몰거나 상처를 입히는 말들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못해준게 열받고 짜증이 난다. 물론 동시에 한켠에선 그런 짜증을 스스로에게 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는 것도 피할 도리가 없다.

40대가 되면 이런 내면의 갈등까지도 제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50대까지 가야할까? 아니면 삶을 정리하는 시기가 되어야만 이런 내면의 갈등을 부드럽게 넘길줄 알게 되는 걸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

2011년 6월 20일 월요일

핸드드립

최근 깨달은 건데, 내 핸드드립 솜씨가 제법 늘었다. 아마 회사에서 매일 한두잔씩 내리면서 여러모로 숙달이 되었기 때문일 걸로 생각된다. 그 동안은 내 핸드드립 솜씨가 늘었는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아내가 나더러 늘었다고 해서 생각해보니 확실히 늘었다.

아무리 티가 안나도 꾸준함은 결국 결과를 보이는 법이다.

어쨌든, 별 것 아닌 일인데 괜시리 기분좋은 밤이다. :-)

2011년 6월 14일 화요일

편지

어제밤 자정이 다 되어 퇴근한 나를 현관에서 맞아주는 아내를 보고는 마음 한켠이 찡 했다. 여름이라고 옷을 가볍게 입은 아내의 체형이 너무 말랐다는 것을 깨달은 것. 아이 둘을 키우느라 체력적으로도 힘들겠지만 뭔가 제때 챙겨먹을 시간이 없는 것이 주 이유인 것 같다. 부엌에 가서 싱크대와 가스렌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애들 먹을것 말고 어른 먹을게 별로 없는 그 주방이 도대체 누구네 주방인지.



오늘 아침, 마음 한켠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불편한 상태로 출근하면서 읽은 칼럼이 또다시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한다.



m.chosun.com/article.html?contid=2011061302011



아이들에게 들이는 정성 조금 줄인다고 아이들에게 문제 생기는 것 아닙니다. 그 조금을 당신에게 들인다고 잘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군살 없이 늘씬하고 쭉쭉빵빵한 몸매 따위 연예인들이나 가지라고 하세요. 그 대가로 돈버는 사람들이니. 당신은 잘 먹고 통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밥 잘먹고 통통하고 활기차고 살빼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치킨 한마리 뚝딱 하는, 나는 그런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년 6월 12일 일요일

아이스 커피

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날이 조금 덥기도 했고 내가 아이들을 보는 사이 집 정리를 혼자서 한 아내를 위해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서 같이 한잔씩 마시고 있다. 빠르코에서 공수해 온 원두가 워낙 신선해서 핸드드립을 할라치면 재미있을만큼 부풀어 오른다. 미리 얼음을 채워놓고 내리기 때문에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시원하게 커피가 내려졌다. 그렇게 커피를 다 내려놓고 커피잔을 찾으니 아내가 얼음을 적당히 채워놓은 머그컵 두개를 내민다. 센스쟁이 같으니라구. ㅎㅎㅎ



그렇게 커피를 손에 쥐고 아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라치니 꼭 밤 늦은 시간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와 있는 기분이다. 집에서 보이는 경치가 좋지 않은게 아쉬울 뿐.



내일은 다시 월요일이구나. 또다시 치열한 하루하루의 시작. 힘내자. :-)

2011년 6월 4일 토요일

주말 시간 보내기

아프리카 출장이 여러가지로 힘들었고 특히나 초장거리 비행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무료한 시간이 많이 남은 덕에 이런저런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은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번 출장 후 결심한 것은, 주말은 무조건 가족들과 외출을 하자 라는 것. 주말을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건 두가지 이유에서 결과적으로 좋지 않다.

첫째로 주말 근무 시간이 늘어진다는 점. 토요일 늦게 퇴근해도 집에가서 몇 시간만 같이 놀아주면 된다는 생각에 집에 일찍 가야 한다는 심리적 재촉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외출을 하려면 아무래도 최대한 일찍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다. 한국 기업 문화상 항상 그럴수는 없지만 늘 염두에 두고 신경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정에 대한 집중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둘째로, 아내의 일상에 변화가 없다는 점. 회사를 오가는 나와 달리 아이들을 혼자 집에서 키우는 아내는 하루종일, 매일을 아이들 하고만 보낸다. 내가 집에 와서 같이 놀아줘 봐야 약간 편하거나 즐거운 정도일 뿐 큰 의미에서의 기분 전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외출을 해서 나들이를 다녀온다든가 하는, 아내 입장에서 볼 때 일상에서의 벗어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적인 부분을 논외로 치더라도 금전적인 부담이 있고 젖먹이들인 만큼 외출 준비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이야 내가 평소 야근을 조금 더 하면 되는 일이고 외출 준비는 자꾸 하다보니 익숙해져서 갈수록 쉽게(라고 쓰고 대충 이라고 읽는다) 하게 되는 듯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즐거워 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밀어 올린다. 마치 연애할 때 선택한 영화를 상대방이 재미있게 보는가만 신경쓰느라 막상 난 영화 내용도 기억이 안나는 것 같은 심리라고나 할까. ㅎㅎㅎ

지난 몇주는 성공적으로 나들이를 했는데 오늘은 회사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다. 일단 계획을 세워두긴 했는데 일찍 들어갈 수 있을런지는 의문. 그래도 노력해보자. 아자아자!

2011년 5월 21일 토요일

포스팅 제약의 아쉬움

가족일기에 열심히 올리던 사진과 동영상을 요즘들어 전혀 올리지 않고 있다. 덕분에 가족일기 블로그가 영 썰렁해졌다.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얼마전 가족 일기 블로그를 열심히 포스팅 하던 지인의 자녀를 블로그를 보고 사진과 가족관계등을 파악한 유괴범이 유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 안제 어디를 같이 놀러갔던 아저씨라면서 가족들의 일을 다 알고 이름도 아는 그 사람에게 아이가 경계를 풀고 따라갈 뻔 했다는 것. 다행이 동네 어른이 보고 처음 보는 사람이다 싶어 관계를 물어보자 그대로 도망쳐 버려서 큰 위험을 면했다.



그 사건을 전해들은 후 아이들의 실명 언급은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도 전혀 포스팅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블로그를 통해 아이들의 얼굴과 노는 모습을 보시던 어른들이 아쉽게 됐지만 일단 안전한게 제일. 무서운 세상이다.



이 블로그의 성격은 차근차근 고민해 봐야 겠다. 폐쇄하긴 그렇고...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출장 복귀

아프리카 케냐로의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사실 이틀 전에 인천공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어 당초 계획했던 여행기를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해야할 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암튼, 장기간의 출장이 힘들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던 지난 열흘이었다.

출장 때문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로인해 하나의 고민을 하게된, 조금 색다른 의미에서 고마운 출장이기도 했고. 어쨌든 열흘만에 확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11년 5월 6일 금요일

어린이 날

처음으로 어린이 날을 챙겨봤다. 작년엔 첫째도 너무 아가였기 때문에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외출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는 그래도 제법 뛰어 다니기도 하고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멀리는 아니어도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유채꽃 전시회를 다녀왔다. 아직 백일도 안지난 둘째는 품에 안겨있거나 유모차를 타고 움직였다고 해도 좀 힘들었으리라.



사실 어린이날을 인식하는 나이도 아니고 뭘 갖고 싶다고 하는 나이도 아닌 아이들에게 이 날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하겠지. 결혼하고 6년동안 어린이날은 우리에게 그냥 휴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이었는데 아이들이 태어난 지금은 의미를 갖는 날로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올해의 어린이날은 많이 각별했다.



유채꽃밭에서 뛰어 노는 형아들을 쫓아가서 같이 놀고 싶어하는 첫째를 보면서 조금 더 크면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걸 고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친구든, 어린이 집이든.



내년엔 이제 첫째도 제법 요구하는게 생기는 나이가 될테니 조금 더 복잡한 어린이날이 되겠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무언가를 챙겨줄 수 있는 시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감사히, 그리고 즐겁게 기다려질 쁜이다. :-)

2011년 5월 2일 월요일

형이라는 위치

아내도 그렇지만 나 역시 형도, 동생도 없었기 때문에 형제간의 경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자랐다.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촌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만나면 늘 즐거운 존재이기만 했지 속된말로 냉장고 속 먹을 걸 놓고 경쟁해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요즘 둘째로 인해 첫째의 위치가 급격하게 변화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젖먹이인 둘째를 수유하느라 아내가 안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첫째가 거기에 크게 불평을 하지 않고 그냥 장난감을 갖고 잘 놀아줘서 많이 고마워 하고 있다. 문제는 첫째도 엄마품에 안겨있고 싶을 때. 그럴때는 둘째를 떼어 놓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달려가서 자기도 안으라고 찡찡거리다 수유가 안끝나서 끝내 안아주질 못하면 풀이 죽어서 시무룩하게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척이나 안쓰럽다. 엄마 품이 필요한거라 내가 안아줘 봐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찡찡거리는 첫째를 안고 토닥이며 달래노라면 나는 알지 못했던 형이라는 위치를 이 아이는 벌써부터 체득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고 우애있게 자라난다면 첫째는 아마 평생을 두고 둘째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사는 삶을 살겠지.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네 부모님들은 첫째에게 보다 많은 것을 해주려고 애 쓰셨겠지 싶다. 병상에 누워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께 둘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니까 첫째를 더 많이 안아주라고 하셨다는데 아마 지금의 이런 모습을 충분히 예상하셨기 때문이리라. 전화 통화 할때마다 첫째를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 주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어머니 역시 그런 것을 생각하시기 때문일테고.

아직 엄마 아빠도 제대로 말 못하는 첫째가 벌써부터 엄마품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평생을 짊어질 무게가 보이는 듯 하다. 그와 함께 내가 이 아이에게 조금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안타깝게도 난 형의 위치에 대해 아이에게 조언을 해줄 수가 없다. 내가 겪어본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네가 형이니까 참아" 라는 말 대신 두 형제들에게 최대한 공정하게 대해 주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엄마품을 양보하는 것 처럼 첫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을 테니까.

2011년 5월 1일 일요일

James 님의 "토요일 모습" 에 대한 Reply

이 포스팅은 James 님의 "토요일 모습" 포스팅을 읽고 댓글을 달던 중 너무 길어져서 제 블로그 포스팅으로 바꿔서 올리는 '댓글' 입니다.

---
James님,

토요일 아침 일상이 인상적입니다. "느즈막히 일어나 뭐라도 주워먹게 배려해 놓는" 문화가 말이죠. 요즘 제 가족의 문화? 암튼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중이라서요.

저는 요즘 말로 "타이거 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휴일도 예외없이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으니까요. 휴일 늦잠이 당연시되면 평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게 되어 버린다는게 어머니의 생각이셨지요. 그래서 평일 휴일 구분없이 늘 기상 시간은 같았습니다.(제 기억에 초등학생때도 늘 그랬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런데 5시반에 일어나면 제가 가족중에 제일 늦잠을 잔 거였습니다. 아침 운동갈 준비와 그 전에 가볍게 허기를 달랠 음식들까지 모든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지요. (그때는 몰랐는데 조금 자라고 난 후 그게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깨달았지요.)

하지만 그게 자라면서 완전히 (몸과 마음 양면에서)습관이 되어 버린 탓에 내색을 하진 않지만 결혼 후 늦잠을 즐기는 아내의 생활 습관이 심적으로 잘 받아들여 지지 않았었고 요즘은 아이들을 몇시에 일어나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중입니다. 아직 어린 아가들이라 일어나는 습관에 대해 말할 단계가 아니라 이야기 안하고 있지만 말이죠.(제가 가진 생활 습관을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강요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구요.)

정작 저 자신은 울트라 초 슈퍼 아침형 인간으로 교육 받느라 힘들어 했으면서도 막상 아이들이 생기고 나니 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고민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군요.

확실히 아침형 인간은 early bird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러가지로 유리합니다. 일단 아침형 인간이 되기만 하면 일상의 시작이 확실히 덜 힘들지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주위를 보면 다들 힘들게 아침을 시작하고 약간의 짜증속에서 침대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몸이 아프거나 피로가 지나치게 누적되어 있지 않는 한 아침은 늘 기분이 상쾌합니다. 업무 시작할 때쯤의 컨디션은 최고지요. 제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일찍,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항상 성공한다는 법칙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강한 적응력을 발휘하는데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지요. 제가 만일 늦잠을 즐기는 스타일(늦잠으로 상징되는 생활 패턴을 말합니다)이었다면 지금의 제 생활이 불행하게 받아들여졌을거라 확신합니다. 제가 힘들어 하는걸 보면서 제 아내도 같이 힘들었을거고 집에서 웃음을 짓기가 서로 힘들지 않았을까요? 저는 힘들어서, 아내는 안쓰러워서 말이죠. 어쨌든 지금의 일을 제가 잘 적응해내고 있기 때문에 요즘같은 세상에 아내가 맞벌이를 하지 않고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저 자신은 힘든것을 잘 견디도록 배우고 자란 사람의 습관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라온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할지, 또 아내도 얼마나 힘들어 할지 알기 때문에 함부로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 지금 힘들더라도 생활 습관을 다잡자'는 생각을 실행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이 두 가지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어느 한쪽이 틀리고 맞는 정답이 있는 것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민됩니다. 차라리 정답이 있는 문제였으면 좋겠네요.(이과 전공자의 특징이지요.)

그 두가지 길 중, 다른 한쪽길을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그 길이 두렵습니다. 아내를 통해, 주위 사람을 통해 그 길을 걷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는 지장 없다는 것은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들어본 것과 직접 걸어보면서 그 길에 숨어 있는 돌뿌리나 비탈 등을 느낀 것은 하늘과 땅 차이겠지요. 걸어보지 못한 길은 아무리 들어도 모른다는게 맞는 말입니다. 과연 제 아이들이 그 길을 선택하게 한 후 아이들이 그 길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을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그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제가 아버지로써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역할에 대해 일찌감치 접어놓는 행위가 되는 것 아닐까요? 제 고민과 두려움의 근원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고민을 저는 이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고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찌감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전개하려다 보니 글만 길어지고 핵심이 없어졌네요. 댓글로 쓰면 James 님의 댓글창을 망가뜨릴 것 같아 제 블로그로 옮겨서 포스팅합니다.

2011년 4월 29일 금요일

줄세우기 본능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첫째가 항상 자신의 장난감들을 일렬로 줄세워 놓는 습관이 생겼다. 줄 세워 놓으면 뭐가 재미있는 건지는 몰라도 참 열심히 세워 놓는다.



정말 제대로 된 기차 시리즈나 도미노를 사줘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아, 그러고 보니 도미노는 하나 있구나. 조금 더 크면 꺼내 줘야지. :-)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시외버스 간이 정류소

청주에서 어머니께서 올라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회사 업무를 대충 정리해 놓은 채 차를 끌고 어머니께서 내리는 시외버스 간이 정류장에 나와있다. 버스 도착 시간이 다 되어가니 나 말고도 차를 끌고와서 근처에 대 놓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저들도 청주에서 올라오는 누군가를 데리러 나온 것이겠지. 모처럼 올라오는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혹은 주말에만 만나는 주말 부부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군가 반가운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다. 그래서인지 지금 정류장의 분위기는 뭔가 모르게 흥겹다. 간이 정류장이어서 바람을 막아주는 벽도 부실하지만 반가움은 건물에 의해 증폭되거나 감소하진 않는다.



7시 46분. 버스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다는 어머니의 문자가 도착. 이제 슬슬 시동을 걸어 두어야 겠다. :-)

비를 맞은 기억

기억에 남는 비가 지금까지 두 번이 있었다.

첫번째는 중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하교시간 버스를 놓치면 한두시간 이상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온 날이었고 친구들과 텅 비어버린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다 그냥 "비 맞고 가자" 는 의견의 일치를 보곤 폭우속을 우산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집까지 한시간 반을 걸어오면서 친구 넷이서 흠뻑 젖어서는 목청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웃고 떠들면서 텅 비어버린 도로를 뛰고 걷고 하면서 집까지 왔었다. 같이 비를 맞으며 걸었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그 날의 자유로움은 아직도 기억한다.

두번째는 대학생때 국토종주를 하던 중 장마비를 만났을 때다. 판초 우의를 입고 있어서 흠뻑 젖지는 않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던 아스팔트의 열기에 지쳐있던 심신에 활력을 되돌려 준 고마운 비였다. 첫번째 비 보다 더 세찼고, 가슴 깊이 느꼈던 자유로움은 더 컸다. 아마 그만큼 더 구속되는 것이 더 많은 나이여서 그랬으리라. 이후 며칠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맑은 날 보다는 비가 오는 날이 더 반가웠었다.

오늘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더불어서 방사성 오염 물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산성비라 맞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눈총을 받는 요즘의 비일진데 방사성 오염 물질이라는 덧붙임 덕에 이제 비를 맞는 건 정신나간 행동으로 분류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기에 이런 사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언제 또다시 비를 맞으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청정 지역중 한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전엔 요원한 일일 듯 싶다.

2011년 4월 17일 일요일

은퇴 후 제주도

평소 은퇴하면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자고 아내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 하다 요즘 갑작스럽게 진담으로 급격하게 무게추가 쏠리고 있다. 은퇴가 현실로 다가오려면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적어도 20년은 더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사실 그 이후에도 은퇴라기 보다는 여기저기 옮겨가면서 일을 하게 될 건 명확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말 하는 은퇴는 바로 그 시점이다. 치열하게 20년을 살았으면 그 이후는 공기 좋은 곳에서 그냥 어디 손 안벌리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월 수입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 그걸 위해서 노후 대비를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고.

어쨌든 그 때가 되면 미련없이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자고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요즘엔 정말로 제주도에 나 같은 직종의 경력자가 일 할 만한 곳이 있는지까지 알아보곤 한다. 지금 당장 사표 던지고 제주도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때가서 내 경력을 살릴 수 있을까? 적어도 지역사회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 친구들이 그때까지 거기서 살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공상의 끝이 어디로 가든 은퇴 후 가족과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사는 꿈이 기분 나쁠리 없다. 그 때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도 하고 짬을 내서 제주도에 대해서도 좀 검색해 보고. :-D

2011년 4월 2일 토요일

숨겨두기

아내가 지난 며칠동안 둘째를 눕혀놓은 바운서를 거실에 내놓고 첫째에게 자꾸 보여주기를 시도했다. 처음엔 신기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자꾸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던 첫째도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그렇게 신기해 하진 않는다. 역시 무조건 곁에 못가게 하는 것 보단 곁에두고 인지시키는게 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요즘엔 종종 첫째가 마치 둘째를 돌보고자 하는 듯한 행동을 종종 한단다. 울고 있으면 뭘 덮어주려 한다던가 하는. 15개월 짜리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마는 그래도 아내의 친구 중 한집처럼 첫째가 둘째를 시기해서 꼬집고 때리는 일은 없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



그런데 오늘 둘째의 바운서 건전지를 교환하느라 바운서를 옆으로 눕히는 순간 쿠션 아래에서 첫째의 보물들이(퍼즐 판이라든가 하는) 쏟아져 나왔다. 아마 자꾸 엄마가 치우니까 그걸 피해서 숨겨둔 모양이었다. 그 나이에 뭘 숨겨놓을 생각부터 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아내와 한참을 웃었다.



일단 아내가 치워놓긴 했는데(스펀지로 되어 있어서 제지를 못하는 안보이는 곳에서 자꾸 물어뜯는다) 내일 아침에 자기 보물들이 없어진걸 알면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은근 그대되는 순간이다. :-)

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정물 110327


정물 110327

Kodak HC-110 을 테스트 중인데 아직 약품 특성 파악이 안된다. 기대했던 것 보다 중간 톤 표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입체감을 표현하는데 있어 로디날과 어떤 차이점을 보여줄지. 어쨌든 지금까지의 결과물로만 놓고 보면 합격선은 넘었다.
(현상시간이 짧은데서 일단 한점 먹고!)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차 한잔

새벽같이 나갔다 밤 늦게 들어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어서 아내와 차 한잔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한동안 미뤄두고 살았었다. 첫째와 둘째가 번갈아 울어서 밤을 꼴딱 세우는 일을 피하기 위해 첫째는 내가 데리고 작은 방에서 자고 아내는 둘째와 함께 안방에서 자는 터라 더군다나 이야기할 일이 없었다. 티타임 대화와 배겟머리 대화를 빼고나니 부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대화가 줄었었다. 오히려 낮에 문자로 주고받는 대화가 더 길 정도.



오늘 감기 몸살 핑계로 일찌감치 들어와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첫째를 재우고 난 뒤에 아내와 테이블에 마주앉아 자스민차를 우려내고 있자니 마음이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낮동안 아이들이 어떤지도 듣고 내 회사 생활 이야기도 하고, 부모님 건강 걱정에 적금 이야기까지 소재는 무궁무진했고 차는 향기로웠다.



가끔 생각한다. 난 앞으로 평생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은 누리지 못할 거라고.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은 이미 7년전 결혼식때 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더이상의 행운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해도 불만은 없다. 아직도 그 행운과 함께 살고 있으니. :-)

2011년 3월 21일 월요일

첫째와 둘째

첫째는 이제 세상의 불합리성(하고 싶은걸 엄마 아빠는 항상 못하게 한다는)을 깨달은 나이가 됐고 둘째는 전기장판보다 엄마 품이 더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이가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첫째가 둘째에게 크게 질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 간혹 힘조절을 잘 못해서 세개 두드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예쁘다~ 해주세요" 하면 조심조심 쓰다듬고 "애기한테 뽀뽀~" 하면 살짝 뽀뽀해주고는 환호성을 지른다.(말을 할 줄 알면 뭐라고 할지가 궁금.)



가장 걱정했던게 둘째 수유하거나 안아서 달랠때 첫째가 땡깡 부리는 거였는데 아내 말에 따르면 그런 경우는 아직 없다니 정말 다행이다. 크면서 계속 그렇게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싸우는 것과 별개로)



내가 집에 좀 일찍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느라 그러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 지금 일만 지나가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첫째하고 밖에서 놀아줄 수 있게 해봐야지. 슬슬 축구공을 차는 법을 알려줘야 할 것 같으니. :-)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Whare are you.....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나온 발자국이 조금씩 파도와 바람에 지워져 돌아보면 아득한 백사장만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지난 하루 하루를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기억이라는 것의 속성이 원래 시간의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을 뿐더러 밀려왔다 되돌아 가는 파도처럼 한결같은 모습도 아니기에 그렇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감정으로 성큼 다가선다. 서랍속에 넣어 둔 물건처럼 내 의지와 관계없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다가 뜻밖의 순간에 눈앞에 나타나 난처한 기분을 느낄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런 감정의 모습을 하고선.

하루종일 마신 커피가 과했는지 마지막으로 내린 커피는 입에서 걸려 더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입에서 넘어가지 않는 커피를 억지로 한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지나온 시간속으로 감정이 휩쓸려 버렸다. 우울함과는 다른, 굳이 표현하자면 쓸쓸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속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미소가 지어지는 쓸쓸함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고요함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라면.

약간의 나른함과 기분좋은 노곤함이 묻어나는 발걸음.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아 기억을 보듬고 있던 감정까지. 자그마하게 틀어놓은 루시드 폴의 음악이 유난히도 어울리는 밤이다.


2011년 3월 17일 목요일

북적북적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요즘 집에 와서 함께 지내고 계신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둘째를 낳고 몸조리를 해야 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이제 제법 매달리기 시작한 첫째를 봐주기 위해서 일정기간 와서 지내시기로 했기 때문. 덕분에 집에 아이들까지 합하면 여섯이나 되는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섯'명' + 한'마리'. 초롱이를 빼먹을 수는 없으니까. :-)



아내도 그랬겠지만 혼자서 자란 나는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한집에 여러날 복작거려 본 경험이 없다. 명절이나 제사때 친척들이 모인적은 있어도 보통 하루, 길어봐야 이삼일 정도면 다시 흩어졌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주일 이상(어머니께서 와계셨던 기간까지 합하면 거의 한달가량) 여러 사람과 같이 지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내가 늘 새벽에 주무실 때 나와서 밤 늦게 주무실 때 들어가는 탓에 대화는 커녕 얼굴을 뵙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 하필이면 요즘 갑자기 바빠져서는 이런저런 시간을 꾸려봐도 짬이 잘 나질 않는다. 이번주 정도가 지나면 아내가 내려가시게 할 생각이라고 하니 주말 정도엔 어떻게든 시간을 좀 내서 식사라도 모시고 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지난 한달동안 딱 하루 집에서 쉬었었다.



어제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두 분을 내려가시게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응석받이가 된 첫째의 식사버릇을 다시금 잡겠다고 하니 다음주 부터는 다시금 첫째의 고난의 시간이 시작될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만 있을때는 응석도, 때도 잘 안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첫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할 뿐. :-D

2011년 3월 15일 화요일

일본 지진

지난 며칠간 일본 지진에 대한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희생자 수가 집계되기 시작하고 피해 상황이 기사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진 관련 기사를 읽지 않고 있다. 도저히 그 기사에서 그리고 있을 참혹함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

지금의 내 삶이,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그곳에도 일상과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중에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고 살았을 어린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도 해본적 없었을 그 아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지를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모든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초라하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지금 거기에서 삶을 위해 투쟁하는 그네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그것은, 그 아무리 자연이 거대하고 나는 초라한 존재라 할지라도 그 거대함이 의미를 갖는 것은 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존재 가치와 의미를 갖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기원한다. 나를 바라봐 줄, 그래서 내게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는 이웃이 한명이라도 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핸드드립 커피" 그리고 "사이먼&가펑클"

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그라인딩한 신선한 원두향을 맡으며 핸드드립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직장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끓인 물이 아닌 정수기 물로 내려서 마신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운이 좋은 직장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커피를 즐기는 사람 기준으로.) 핸드 드립을 하는데 필요한 용품들을 사무실 책상에 가져다 놓고 종종 즐기고 있는데 보통은 출근해서 바로가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야근할 때 한잔씩 즐기곤 한다. 모닝 커피 한잔이 아쉽긴 하지만 출근 시간대 정수기 근처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거기서 커피를 내리고 있기는 미안하기 때문. 그렇지만 오늘처럼 휴일에, 그것도 평소처럼 8시 전에 출근하면 사무실에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음 편히 커피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게 내려졌다. 굉장히 흡족할 만큼. 그렇게 내려진 커피잔을 들고 브라질 원두 특유의 깔끔함과 진한 향취를 즐기고 있자니 평일과 휴일 구분없이 일에 치어 살고 있는 요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바쁜 시즌이 정해져 있으니 요즘만 잘 견디면 되지 않을까?
 
어제는 퇴근길 라디오에서 "사이먼&가펑클" 특집 방송을 했다. 평소 라디오를 듣는 편이 아니어서 누가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집까지의 20여분 동안 이들의 주옥같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주차장에 들어서면 방송이 끊길 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잠깐 주차장 입구에 이면 주차 해두고 시동을 껐다. 모든 소리들이 차단된 어둡고 조용한 차 안에서 그들의 감미로운 미성으로 듣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 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사무실을 나와서도 계속 업무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리속이 마음에서부터 올라온 차분함으로 편안하게 물드는 느낌. 노래가 흘러나오는 5분여의 시간 동안 그 편안한 느낌을 더할 나위없이 만끽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이 힘든 건 큰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문제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길을 걷던 이를 넘어지게 만드는 건 집채만한 바위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돌뿌리다. 힘든 순간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있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작은, 그리고 사소한 문제다. 주위에선 "뭘 그런 것 갖고 그렇게 오버하냐"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넘어진 사람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발 끝에 채인 돌뿌리의 크기가 아니라 무릎에 난 큼지막한 상처다. 상처가 아닌 돌뿌리를 보면서 "별 것도 아닌걸로" 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도, 쓸모도 없고 적절하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지치고 힘들어 하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무엇으로도 한 사람의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내게는 어제 밤 주차장 입구 옆 이면도로에서 내 마음을 채우고 지나간 "사이먼&가펑클"의 음악이, 오늘 아침 평소보다 맛있게 내려진 커피 한잔이 바로 그런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무너질 만큼 힘들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요즘의 내 마음을 편안하게 그리고 약간은 나른하게 풀어준.. 작고 사소한 것.
 
행복은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금방 손에 잡히기도 한다. 금방 손에 잡힐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에 쉽게 쥘 수 있을만큼 작은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6일 일요일

홈플러스에서 시식중인 규헌

홈플러스에서 뻥튀기 시식중인 규헌이. 야곰야곰 잘도 먹는다.

2011년 3월 4일 금요일

기러기 날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집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내리는 순간 머리 위에서 기러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하늘이 너무 어두워서 보일까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V 자 대형을 이룬 기러기 무리가 나타났다. 놀라울 정도로 낮게 날고 있었는데 아파트 꼭대기에서 본다면 불과 십여미터 위를 날고 있을 것 같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가는 기러기 무리를 보게 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러기 무리를 제대로 본건 5,6년 전. 물론 그때는 '수십만' 마리의 군무를 본 것이니 지금처럼 십수마리를 본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모든 감동의 근본은 의외성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머리위를 날아가는 그 몇 초 동안 난 얼어붙은 듯이 고개를 들어 그 새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보이지도 않고 울음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된지 한참이 되도록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일상은 누구나 의지와 관계없이 헛없이 흐를때가 있기 마련이고 반대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꼭 어느 한 순간, 조금은 나른하고 조금은 지루한, 그런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순간이 오면 우린, 늘 눈앞에 펼쳐져 있던 익숙한 일상의 다른 모습을 낯설어 하며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곤 한다. 감정의 한 귀퉁이에 약간의 감동을 담아서.

"꽃샘 추위가 한창이던 어느날 이른 저녁. 집 앞에서 우연히 삶에서 마주치기 힘든 의외성을 주웠다."

2011년 2월 27일 일요일

규헌, 혼자 우유를 먹다

그렇게 애를 써도 절대로 자기 손으로 우유병을 잡으려 하지 않아서 늘 먹여줘야 했는데 요즘 들어서 자기 혼자 들고 먹기 시작했다. 병원가 조리원에 있느라 한동안 규헌이를 보지 못한 아내가 보면 깜짝 놀랄 일.

나들이 가는 규헌이

날이 포근하던 어제 오후. 모처럼 일찍 퇴근한김에 규헌이를 데리고 짧게 근처 공원에 다녀왔다.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나들이 나가는 규헌이. :-)

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잠자는 준헌이

아직 황달이 조금 남아있긴 한데 그래도 많이 좋아짐. 지금은 엄마 젖을 배불리 먹도 잠들었음. :-)

2011년 2월 21일 월요일

누굴 닮았나?

준헌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아닌 것 같다. 지금 같아선 잘 모르겠다. 손가락 발가락은 길쭉길쭉한게 아내를 닮은게 확실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