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7일 일요일

규헌, 혼자 우유를 먹다

그렇게 애를 써도 절대로 자기 손으로 우유병을 잡으려 하지 않아서 늘 먹여줘야 했는데 요즘 들어서 자기 혼자 들고 먹기 시작했다. 병원가 조리원에 있느라 한동안 규헌이를 보지 못한 아내가 보면 깜짝 놀랄 일.

나들이 가는 규헌이

날이 포근하던 어제 오후. 모처럼 일찍 퇴근한김에 규헌이를 데리고 짧게 근처 공원에 다녀왔다.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나들이 나가는 규헌이. :-)

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잠자는 준헌이

아직 황달이 조금 남아있긴 한데 그래도 많이 좋아짐. 지금은 엄마 젖을 배불리 먹도 잠들었음. :-)

2011년 2월 21일 월요일

누굴 닮았나?

준헌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아닌 것 같다. 지금 같아선 잘 모르겠다. 손가락 발가락은 길쭉길쭉한게 아내를 닮은게 확실한데.

2011년 2월 20일 일요일

준헌이 신생아실 사진

아직 눈을 뜨는게 힙겹고 사진 찍으려 할 때마다 자고 있어서...

성격

아직 단정짓기는 조금 이르긴 하지만 규헌이와 준헌이는 성격이 180도 다른 것 같다. 일단 울 때도 규헌이는 간호사들이 이러다 애 넘어가겠다고 놀랄 정도로 숨넘어갈 듯 울었는데 준헌이는 조금 칭얼대는 수준. 수유 할 때도 규헌이는 엄마 젖을 물고 1초안에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두번 다시 안물고 울어댔는데 준헌이는 끈질기게 물고 빤단다.



호기심 많고 활동적이어서 기지도 않고 바로 걸으려 했던 규헌이와 달리 준헌이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두 형제가 모두 활동적이면 키우기 힘들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신생아 때부터 이렇게 성격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준헌이 출생신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준헌이 출생 신고를 하고 왔다. 출산 휴가중인 지금이 아니면 다른 날은 시간을 내서 움직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고 이제 두 아이를 돌봐야 되는 아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더 말이 안되는 일. 어쨌든 병원에서 출생 증명서를 끊어서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하고 등본을 한부 떼어 왔다.



신고를 하면서 조금 헤맸는데 처음엔 병원 바로 옆 동탄3동사무소를 갔더니 현 주소지에서만 신고가 가능하다고 했다. 새로 이사간 동네라 네비를 검색해 봤더니 병점동이 1동과 2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지금 우리집 주소를 검색해보면 그냥 병점동으로 나와서 헷갈렸다. 가까운 병점2동으로 갔더니 우리집은 1동이라나. 덕분에 동사무소 세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요즘같은 시대에 굳이 출생신고를 주소지 관할 관청에서만 해야 한다는게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개선이 필요한 듯.



어쨌든 등본을 떼어 보니 두 아이들의 이름이 나와 아내 이름 아래에 추가되어 있었다. 결혼 후 몇 년동안 둘의 이름만 있어서 굉장히 썰렁했는데 이렇게 이름이 둘이나 추가되고 보니 뭔가 꽉 찬 기분이 든다. (이제 하나만 더 추가하면.....? )

2011년 2월 16일 수요일

준헌, 세상과 만나다

2011년 2월 16일 오전 10시 6분.

지난달부터 세상에 일찍 나오겠다고 엄마를 괴롭혔던 준헌이가 세상에 나왔다. 규헌이와 마찬가지로 수술을 해야 했는데 탯줄을 몸에 세번이나 감고 있었던 탓에 수술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술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수면제 약효가 먼저 돌아서 준헌이에게 엄마 목소리 들려주려고 쏟아지는 잠을 이기려고 애를 썼단다. (전신마취를 안하고 훨씬 부담이 적은 척추 마취를 했는데 이 경우 통증은 못느끼고 정신은 깨어있다. 그래서 수술을 하더라도 아이를 안아볼 수 있다. 다만 그 이후엔 환자를 위해 수면제로 재우는데 바로 그 수면제가 아이보다 먼저 주입된 것. 다행이 준헌이를 품에 안고 고생했다고 엄마 목소리는 들려줄 수 있었다고.)

첫째와 다른 얼굴, 다른 울음소리, 다른 느낌. 준헌이는 규헌이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 쌍둥도 느낌이 다르다는데 당연한 것인지는 몰라도 준헌이를 처음 보는 순간의 기분은 정말 색달랐다. 익숙할 줄 알았는데 익숙치 않은, 설레임과 묵직한 책임감. 싫지는 않은 기분이지만 가볍지도 않은 그런 종류의 여러 생각들이 그 짧은 시간에 흘러갔다.

자기 엄마를 붕어빵 찍어내듯 닮은(눈매만 날 닮아서 언뜻 보면 아빠 닮았다 소리 듣지만 가만 뜯어보면 엄마하고 똑같다) 규헌이와 달리 준헌이는 돌아가신 자기 할아버지와 닮았다. 피가 뭔지.

이제 우리 식구는 넷이 되었고 양가 부모님들까지 합하면 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가족이 됐다. 그 식구들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압박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 어제 오늘 받은 많은 축하의 전화와 메세지 그리고 바구니까지. 어쨌든 지금은 책임감 보다는 새 생명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누릴 시간인가 보다.

준헌아, 반가워. :-)

2011년 2월 13일 일요일

하바방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를 보다가 하바방 출신들을 모아보곤 참 많이들 변했다...싶어 조금 감상적이 됐다.


자바 책을 사들고 와서 전자기학 실험실에서 밤새던 수석 입학 선환이가,
하바방에 모여 시험 공부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랑 같이)유유히 맥주 마시던 선영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던 신입생 미옥이가,
전시회에 다녀와서 감상문 대신 자작 기타 연주곡을 녹음한 테이프로 레포트 대체했던 성호가,
순대국을 처음 먹어본다며 원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냐고 물어보던 후영이가,
웃으면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선영이한테 놀림받던 울트라 슈퍼 범생 길환이가,
항상 엄마가 아이들 챙기듯 후배들(가끔 선배도) 돌보고 야단쳐가며 챙기던 주원이가,
후배들에게 연습문제 풀어주며 타고난 학자처럼 생활하던 정호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선배들에게 귀여움 많이 받던 경민이가,
말이 느리다 못해 듣다보면 앞에 이야기 까먹게 만들던 과대표 성훈이가,
도깨비 같은 얼굴 하고 항상 후배들 잡아먹을 준비하던 양도가,
농구공과 혼연 일체가 되어서 학교 다니던 재홍이가,
이름보다 거북이라고 불러 달라고 노래하고 다녔던 승원이가,
현대물리 수업을 양자 수업으로 바꿔 버렸다고 동기들의 지탄을 받던 재혁이가,
생긋 웃고 다니는 얼굴로 모든 사람과 잘 지냈던 민우가,
책임감이 너무 강해 뭘 맡으면 항상 심각한 얼굴 하고 다니던 재환이가,
항상 액티브 하고 겨울이면 스키장이라고 얼굴에 써놓고 다니던 창우가,
반박자씩 느리긴 해도 매사에 열심히 노력해서 극복해 나가던 병철이가,
(헥헥..너무 많아서 동기나 선배는 생략)


이 모든 사람들이 하바방이라는 공간에서 어울리던 그 때, 지금의 모습들을 난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몇몇은 대충 짐작한대로 살고 있긴 하지만. ^^)

우리가 각자 걷는 길이 그 시절 그 공간에서 겹쳐졌었다는 사실이 정말 너무나 기적같다. 그리고 그 기적을 이 사람들과 함께 누렸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하바방이라는, 지저분한 쇼파 두개와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4인용 책상 하나 그리고 낡은 책장 두개가 놓여있던 그 공간이 무척 그리워지는 날이다.

2011년 2월 9일 수요일

둘째 만나는 날 확정

오늘 의사가 수술 일정을 확정 지었다. 날짜는 2/16 일로 예정일보단 한달 가량 빠르지만 인큐베이터는 면할 수 있단다.

요녀석, 나오면 엉덩이를 때려 줘야지. :-)

2011년 2월 8일 화요일

토론의 기준

모든 주장에는 도저히 포함시킬 수 없는 극단이 존재한다. 이 극단은 말 그대로 극단적인 경우이며 이러한 부분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건 토론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을 입다물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그러한 상대와의 토론은 더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정치인은 능력보다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그렇다면 무역이 뭔지도 모르지만 아주 도덕적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혀야 하는 거냐는 질문을 제기한다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토론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은 토론에 너무나 자주 등장한다. 상대방의 논리를 궁색하게 하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이클 샌델과 같은 이시대 최고의 철학자들 마저도 반대 논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까지 상대의 논리를 계속 밀고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우리가 토론을 할 때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상대 주장의 극단에 받아들이기 힘든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상대의 주장이 갖고 있는 보편적 판단 기준이 어느 선에서 그어지고 있느냐이다. 그리고 그 선이 바로 타협의 기준선이 된다.

물론 형이상학적 논리에 실제로 접하게 되는 많은 개별 상황들에 대한 기준선을 일일이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민은 최소한 우리로 하여금 서로 접근 가능한 타협의 언저리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다.

토론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결론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
* 마이클 샌델이 그의 저서 Justice에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자기 결정권에 기반한 안락사 옹호를 비판하면서 합의하에 서로가 먹고 먹혔던 2001년 독일에서 발생한 브란데스&마이베스 사건을 예로 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굴려라 왕자님

2011년 2월 7일 월요일

공교육

연합뉴스 :: 체육수업 합법적으로 몰아서 한다
m.media.daum.net/media/sisa/newsview/20110207053206558

아침 뉴스에 체육 수업을 합법적으로 몰아서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기사가 떴다. 읽으면서 참 한심했다. 나 때도 분명 체육 수업은 형식적으로 진행됐지만 이제 대놓고 그런 짓거리를 하게 됐구나. 공교육의 질적 정상화에 대한 이슈가 지난 십년 넘게 있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 관계자들의 수준은 일보도 전진하지 못한 듯 하다.

학부모들의 시선이야 근시안일 수 밖에 없다 쳐도 그들을 설득하고 멀리 내다봐야 하는 교육 관계자들의 수준도 같은 근시안이라는 사실은 한숨을 쉬게 만든다.

2011년 2월 6일 일요일

페이스북 소셜 댓글을 기다림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댓글을 디스커스 서비스를 이용하여 붙이고 있는데 실제로 댓글이 주로 달리는 곳은 페이스북이다. 블로그에 포스팅 되면 페이스북에 자동으로 뜨도록 설정해 놓았기 때문인데 실제로 지인들이 페이스북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쪽에 댓글이 많이 달린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댓글 시스템을 통합하고 싶다.(지금은 디스커스, 버즈, 페이스북의 세곳에 댓글이 달린다)

최근 소셜 서비스를 이용한 소셜 댓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조만간 페이스북에서도 이러한 소셜 댓글 서비스를 내놓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럴경우 블로그에 페이스북 소셜 댓글 시스템을 부착할까 고민중이다.

악성 댓글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고, 분산된 지인들의 댓글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을테니까.

2011년 2월 2일 수요일

규헌이 동생덕에 병원신세.

규헌이 동생이 세상에 일찍 나오겠다고 해서 며칠째 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직 나올때가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하는데 무슨 성격이 그리 급한지.



덕분에 아내와 둘이 병실에서 책도 보고 TV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규헌이는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하루 한번씩 내가 들리는데 아빠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하는 듯)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나서 둘만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적이 있나 싶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

공증 문서 정치의 시대

정치는 말로 하는 싸움의 가장 높은 단계이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최고의 덕목은 신뢰이다. 자신의 말에 일일이 증거를 대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설득을 하는 것이 백배는 효율적이며 바람직한 정치 행태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찬성하고 반대하고를 떠나 상대방의 주장이 토론 후에 갑자기 바뀐다면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따라서 정치 행위가 불가능 하다.

따라서 미국에서 이야기 했던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못하겠느냐" 라는 발언이나 "충청권의 표를 위해 했던 (발언)공약일 뿐 공약집에도 없다" 라는 말을 신년 좌담에서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공약집에 없다는 것으로 면피가 된다는 그의 발언에는 "주어가 빠졌던" 과거 사례처럼 법적으로 인정되는 증거만 없다면 정치인의 발언은 언제든 뒤집어도 된다는 천박함이 담겨 있다. 더군다나 그는 손학규나 안상수같은 잔챙이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바로 아래이자 모든 정치인들의 정점의 자리에 서 있는 대통령이다.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 주장대로라면 이제 대한민국 정치인의 모든 발언은 법적 효력이 있는 공증 문서로 남겨야 하는 시대로 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