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그라인딩한 신선한 원두향을 맡으며 핸드드립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직장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끓인 물이 아닌 정수기 물로 내려서 마신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운이 좋은 직장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커피를 즐기는 사람 기준으로.) 핸드 드립을 하는데 필요한 용품들을 사무실 책상에 가져다 놓고 종종 즐기고 있는데 보통은 출근해서 바로가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야근할 때 한잔씩 즐기곤 한다. 모닝 커피 한잔이 아쉽긴 하지만 출근 시간대 정수기 근처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거기서 커피를 내리고 있기는 미안하기 때문. 그렇지만 오늘처럼 휴일에, 그것도 평소처럼 8시 전에 출근하면 사무실에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음 편히 커피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게 내려졌다. 굉장히 흡족할 만큼. 그렇게 내려진 커피잔을 들고 브라질 원두 특유의 깔끔함과 진한 향취를 즐기고 있자니 평일과 휴일 구분없이 일에 치어 살고 있는 요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바쁜 시즌이 정해져 있으니 요즘만 잘 견디면 되지 않을까?
어제는 퇴근길 라디오에서 "사이먼&가펑클" 특집 방송을 했다. 평소 라디오를 듣는 편이 아니어서 누가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집까지의 20여분 동안 이들의 주옥같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주차장에 들어서면 방송이 끊길 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잠깐 주차장 입구에 이면 주차 해두고 시동을 껐다. 모든 소리들이 차단된 어둡고 조용한 차 안에서 그들의 감미로운 미성으로 듣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 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사무실을 나와서도 계속 업무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리속이 마음에서부터 올라온 차분함으로 편안하게 물드는 느낌. 노래가 흘러나오는 5분여의 시간 동안 그 편안한 느낌을 더할 나위없이 만끽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이 힘든 건 큰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문제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길을 걷던 이를 넘어지게 만드는 건 집채만한 바위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돌뿌리다. 힘든 순간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있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작은, 그리고 사소한 문제다. 주위에선 "뭘 그런 것 갖고 그렇게 오버하냐"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넘어진 사람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발 끝에 채인 돌뿌리의 크기가 아니라 무릎에 난 큼지막한 상처다. 상처가 아닌 돌뿌리를 보면서 "별 것도 아닌걸로" 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도, 쓸모도 없고 적절하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지치고 힘들어 하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무엇으로도 한 사람의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내게는 어제 밤 주차장 입구 옆 이면도로에서 내 마음을 채우고 지나간 "사이먼&가펑클"의 음악이, 오늘 아침 평소보다 맛있게 내려진 커피 한잔이 바로 그런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무너질 만큼 힘들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요즘의 내 마음을 편안하게 그리고 약간은 나른하게 풀어준.. 작고 사소한 것.
행복은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금방 손에 잡히기도 한다. 금방 손에 잡힐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에 쉽게 쥘 수 있을만큼 작은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