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1일 토요일

포스팅 제약의 아쉬움

가족일기에 열심히 올리던 사진과 동영상을 요즘들어 전혀 올리지 않고 있다. 덕분에 가족일기 블로그가 영 썰렁해졌다.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얼마전 가족 일기 블로그를 열심히 포스팅 하던 지인의 자녀를 블로그를 보고 사진과 가족관계등을 파악한 유괴범이 유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 안제 어디를 같이 놀러갔던 아저씨라면서 가족들의 일을 다 알고 이름도 아는 그 사람에게 아이가 경계를 풀고 따라갈 뻔 했다는 것. 다행이 동네 어른이 보고 처음 보는 사람이다 싶어 관계를 물어보자 그대로 도망쳐 버려서 큰 위험을 면했다.



그 사건을 전해들은 후 아이들의 실명 언급은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도 전혀 포스팅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블로그를 통해 아이들의 얼굴과 노는 모습을 보시던 어른들이 아쉽게 됐지만 일단 안전한게 제일. 무서운 세상이다.



이 블로그의 성격은 차근차근 고민해 봐야 겠다. 폐쇄하긴 그렇고...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출장 복귀

아프리카 케냐로의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사실 이틀 전에 인천공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어 당초 계획했던 여행기를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해야할 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암튼, 장기간의 출장이 힘들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던 지난 열흘이었다.

출장 때문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로인해 하나의 고민을 하게된, 조금 색다른 의미에서 고마운 출장이기도 했고. 어쨌든 열흘만에 확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11년 5월 6일 금요일

어린이 날

처음으로 어린이 날을 챙겨봤다. 작년엔 첫째도 너무 아가였기 때문에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외출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는 그래도 제법 뛰어 다니기도 하고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멀리는 아니어도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유채꽃 전시회를 다녀왔다. 아직 백일도 안지난 둘째는 품에 안겨있거나 유모차를 타고 움직였다고 해도 좀 힘들었으리라.



사실 어린이날을 인식하는 나이도 아니고 뭘 갖고 싶다고 하는 나이도 아닌 아이들에게 이 날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하겠지. 결혼하고 6년동안 어린이날은 우리에게 그냥 휴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이었는데 아이들이 태어난 지금은 의미를 갖는 날로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올해의 어린이날은 많이 각별했다.



유채꽃밭에서 뛰어 노는 형아들을 쫓아가서 같이 놀고 싶어하는 첫째를 보면서 조금 더 크면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걸 고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친구든, 어린이 집이든.



내년엔 이제 첫째도 제법 요구하는게 생기는 나이가 될테니 조금 더 복잡한 어린이날이 되겠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무언가를 챙겨줄 수 있는 시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감사히, 그리고 즐겁게 기다려질 쁜이다. :-)

2011년 5월 2일 월요일

형이라는 위치

아내도 그렇지만 나 역시 형도, 동생도 없었기 때문에 형제간의 경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자랐다.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촌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만나면 늘 즐거운 존재이기만 했지 속된말로 냉장고 속 먹을 걸 놓고 경쟁해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요즘 둘째로 인해 첫째의 위치가 급격하게 변화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젖먹이인 둘째를 수유하느라 아내가 안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첫째가 거기에 크게 불평을 하지 않고 그냥 장난감을 갖고 잘 놀아줘서 많이 고마워 하고 있다. 문제는 첫째도 엄마품에 안겨있고 싶을 때. 그럴때는 둘째를 떼어 놓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달려가서 자기도 안으라고 찡찡거리다 수유가 안끝나서 끝내 안아주질 못하면 풀이 죽어서 시무룩하게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척이나 안쓰럽다. 엄마 품이 필요한거라 내가 안아줘 봐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찡찡거리는 첫째를 안고 토닥이며 달래노라면 나는 알지 못했던 형이라는 위치를 이 아이는 벌써부터 체득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고 우애있게 자라난다면 첫째는 아마 평생을 두고 둘째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사는 삶을 살겠지.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네 부모님들은 첫째에게 보다 많은 것을 해주려고 애 쓰셨겠지 싶다. 병상에 누워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께 둘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니까 첫째를 더 많이 안아주라고 하셨다는데 아마 지금의 이런 모습을 충분히 예상하셨기 때문이리라. 전화 통화 할때마다 첫째를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 주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어머니 역시 그런 것을 생각하시기 때문일테고.

아직 엄마 아빠도 제대로 말 못하는 첫째가 벌써부터 엄마품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평생을 짊어질 무게가 보이는 듯 하다. 그와 함께 내가 이 아이에게 조금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안타깝게도 난 형의 위치에 대해 아이에게 조언을 해줄 수가 없다. 내가 겪어본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네가 형이니까 참아" 라는 말 대신 두 형제들에게 최대한 공정하게 대해 주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엄마품을 양보하는 것 처럼 첫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을 테니까.

2011년 5월 1일 일요일

James 님의 "토요일 모습" 에 대한 Reply

이 포스팅은 James 님의 "토요일 모습" 포스팅을 읽고 댓글을 달던 중 너무 길어져서 제 블로그 포스팅으로 바꿔서 올리는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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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님,

토요일 아침 일상이 인상적입니다. "느즈막히 일어나 뭐라도 주워먹게 배려해 놓는" 문화가 말이죠. 요즘 제 가족의 문화? 암튼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중이라서요.

저는 요즘 말로 "타이거 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휴일도 예외없이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으니까요. 휴일 늦잠이 당연시되면 평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게 되어 버린다는게 어머니의 생각이셨지요. 그래서 평일 휴일 구분없이 늘 기상 시간은 같았습니다.(제 기억에 초등학생때도 늘 그랬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런데 5시반에 일어나면 제가 가족중에 제일 늦잠을 잔 거였습니다. 아침 운동갈 준비와 그 전에 가볍게 허기를 달랠 음식들까지 모든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지요. (그때는 몰랐는데 조금 자라고 난 후 그게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깨달았지요.)

하지만 그게 자라면서 완전히 (몸과 마음 양면에서)습관이 되어 버린 탓에 내색을 하진 않지만 결혼 후 늦잠을 즐기는 아내의 생활 습관이 심적으로 잘 받아들여 지지 않았었고 요즘은 아이들을 몇시에 일어나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중입니다. 아직 어린 아가들이라 일어나는 습관에 대해 말할 단계가 아니라 이야기 안하고 있지만 말이죠.(제가 가진 생활 습관을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강요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구요.)

정작 저 자신은 울트라 초 슈퍼 아침형 인간으로 교육 받느라 힘들어 했으면서도 막상 아이들이 생기고 나니 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고민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군요.

확실히 아침형 인간은 early bird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러가지로 유리합니다. 일단 아침형 인간이 되기만 하면 일상의 시작이 확실히 덜 힘들지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주위를 보면 다들 힘들게 아침을 시작하고 약간의 짜증속에서 침대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몸이 아프거나 피로가 지나치게 누적되어 있지 않는 한 아침은 늘 기분이 상쾌합니다. 업무 시작할 때쯤의 컨디션은 최고지요. 제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일찍,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항상 성공한다는 법칙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강한 적응력을 발휘하는데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지요. 제가 만일 늦잠을 즐기는 스타일(늦잠으로 상징되는 생활 패턴을 말합니다)이었다면 지금의 제 생활이 불행하게 받아들여졌을거라 확신합니다. 제가 힘들어 하는걸 보면서 제 아내도 같이 힘들었을거고 집에서 웃음을 짓기가 서로 힘들지 않았을까요? 저는 힘들어서, 아내는 안쓰러워서 말이죠. 어쨌든 지금의 일을 제가 잘 적응해내고 있기 때문에 요즘같은 세상에 아내가 맞벌이를 하지 않고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저 자신은 힘든것을 잘 견디도록 배우고 자란 사람의 습관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라온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할지, 또 아내도 얼마나 힘들어 할지 알기 때문에 함부로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 지금 힘들더라도 생활 습관을 다잡자'는 생각을 실행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이 두 가지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어느 한쪽이 틀리고 맞는 정답이 있는 것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민됩니다. 차라리 정답이 있는 문제였으면 좋겠네요.(이과 전공자의 특징이지요.)

그 두가지 길 중, 다른 한쪽길을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그 길이 두렵습니다. 아내를 통해, 주위 사람을 통해 그 길을 걷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는 지장 없다는 것은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들어본 것과 직접 걸어보면서 그 길에 숨어 있는 돌뿌리나 비탈 등을 느낀 것은 하늘과 땅 차이겠지요. 걸어보지 못한 길은 아무리 들어도 모른다는게 맞는 말입니다. 과연 제 아이들이 그 길을 선택하게 한 후 아이들이 그 길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을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그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제가 아버지로써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역할에 대해 일찌감치 접어놓는 행위가 되는 것 아닐까요? 제 고민과 두려움의 근원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고민을 저는 이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고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찌감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전개하려다 보니 글만 길어지고 핵심이 없어졌네요. 댓글로 쓰면 James 님의 댓글창을 망가뜨릴 것 같아 제 블로그로 옮겨서 포스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