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30일 수요일

아버지 7주기

2004년 끝자락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7주기 기일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한달만에 돌아가셨으니 결혼도 7년, 아버지와 이별한지도 7년이다.



어제 저녁엔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아마 아이들 때문에 그랬으리라. 어른들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자기가 다시 배열하겠다고 휘저어 놓는 첫째와, 이제 겨우 이유식 맛을 보기 시작한 주제에 먹을거 욕심은 많아서 저기 저거 음식 아니냐며 먹게 해달라고 엄마 등에서 엉엉 우는 둘째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진하게.



아무리 자라면서 이야기를 해준다 해도 이 아이들은 제 할아버지에 대해 알지 못하리라. 그저 영정 사진만 기억할 뿐 역사책 속의 인물이나 다름없는 거리감을 갖고 자랄 것이다. 나도 안다.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돌아가시고 나서도 5년이나 지나서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겠지. 아내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한달만에 돌아가신 분을, 그 한달중 3주는 병원에서 보냈고 이후 1주일은 의식 없이 계시다 가신 분께 무슨 기억이 남아 있을까. 결국 남아 있는건 나와 어머니 기억속에 있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흔적들 뿐이다.



지난 주말, 첫째가 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신 곳을 올라가면서 중간 넘게 자기 힘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이면 끝까지 혼자 힘으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지나고, 아이들은 자라고, 기억은 그만큼 희미해진다. 받아들이자.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개집 쟁탈전

오늘 첫째가 초롱이 집에 침입했다. 평소 초롱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쉬는게 부러웠나보다. ㅡㅡ;



사진으로 보면 9개월 된 둘째가 첫째를 끄집어 내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형아! 나도! 나도!" 라는 것. 초롱이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코딱지 만한 두 애들이 서로 자기집에 들어오겠다고 싸웠으니.



암튼 초롱이 덕분에 아이들이 집사람한테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어 많이 편하단다. 초롱이 입장에서야 하루종일 아이들한테서 도망다니느라 피곤해서 밤이면 거의 기절하듯 잠이 들긴 하지만 뭐...밥 값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니? :-)



뭐...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개집에 들어가곤 했던 것 같으니까.

겨울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섰다. 갑자기 추워졌을 땐 추위에 익숙해진 한겨울보다 더 잘 껴입어야 한다며 아내가 꺼내준 두터운 겨울 파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날이 춥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추워진게 이상하진 않다. 누가 뭐래도 벌써 11월 말이니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유난히 감상적이 되곤 한다. 아마 제명씨가 살고 있는 캐나다 위니펙 같은 곳에서는 늘 감상적이 되어서 지내지 않을까? 며칠전 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로(블로그에 댓글 기능을 막아두었다. 댓글은 페이스북으로.) 제명씨의 메일이 왔을 때 유난히 반가웠다. 내게 있어서 그의 이름은 내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의 서표이자 멀리 사는 내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지판이다.

사실 난, 로또가 되면 무엇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타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할 만큼 이젠 쉽게 볼 수 없는 그들이 그립다. 그들 중 일부는 페이스북이나 온라인으로 연결이 되지만 몇몇은 그나마 연락되던 메일 주소마저 없어지고 이젠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힘들어 하는 한 친구와 간간히 주고받던 메일에 어느날 없는 메일 주소라는 시스템 회신이 답장으로 날아 들었던 날, 밤 새도록 그 친구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변하지 않은 내 메일 주소와 블로그 주소로 인해 그렇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들과 다시금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지 그들 역시 해피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겨울에는.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창의력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바로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다. 무슨 지수를 키워줘야 하고 무슨 교육을 해야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하고 등등...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런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러겠지 싶어서.

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남들이 지난 천년간 해온 물리학에서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깨달은 것은 아주 간단한 명제다.

"창의력은 축척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창의력이라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처럼 어느 순간 척 하고 새로운 것을 내놓는 능력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걸 바라는 것도 본인에게 해가 된다. 모든 새로운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찰의 끝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런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남들이 이미 다 해봤던 고민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학부때 배우는 과목들을 철저하게 습득하지 않은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쓸 수 없다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해야 하거나 하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창의력은 꾸준함의 산물이지 조기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화상

태어나서 두 돌이 지나도록 감기 한번 심하게 앓아본 적 없던 첫째가 이틀전 처음으로 응급실을 갔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나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첫째가 병원에 급히 가야 하는데 바로 올 수 있냐고 하길래 바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보니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식탁에 덜어놓은 국 그릇을 첫째가 엎은 것. 다행이 아내가 침착하게 응급 조치한 덕분에 아주 크게 화상 부위가 번지지는 않았다.



아주대 병원 응급실로 바로 움직여서 화기를 빼고 화상 연고를 두텁게 바르곤 붕대로 왼팔 전체를 칭칭 감았다. 첫째가 예전부터 아픈것도 잘 참고 울지 않는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조치하는 내내 울지 않고 있어준게 참 고마웠다. 우리 앞에도 화상 치료중인 첫째 또래의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내내 엄마를 부르며 우는데 듣는 나와 아내까지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그 아이의 부모 심정은 어땠을지.



암튼 아픈걸 잘 참아준 첫째도 고맙고 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응급조치를 해서 생각보다 훨씬 화상 부위를 축소시킨 아내의 침착성도 고맙다.



오늘부터는 뭐든지 조심 또 조심. 지금보다도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