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9일 일요일

오늘 이래저래 집 배치를 바꾸면서 책장에 있던 책도 함께 정리를 했다. 기준은 다시 보지 않을게 확실한 책은 정리해서 버리든가 기증하기. 그런데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전공 관련된 물리학 서적들에 여러권 나왔다. 잠깐이지만 상당히 깊이 망설였다. 사실 그 책들을 다시 볼 이유는 없다. 기획 파트로 옮긴 지금 내가 물리학 서적을 뒤적일 일도 없고 설사 기획을 떠나 다시금 R&D 부서로 옮긴다 해도 양자역학과 비선형 광자결정 구조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분야를 할 가능성도 없다.

그동안 그런 사실을 몰라서 전공 서적들을 남겨 두었던 것은 아니다. 책을 남겨둔 가장 큰 이유는 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념품과 같은 역할을 이 책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4년이라는 시간동안 몸담아 왔던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생각의 되새김질을 하는데 이 책들이 필요했다. 불온 서적이 아니라는 군부대 도장이 찍힌 책들도 있으니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14년을 붙들고 있었던 책들이다. 그 시간이 나로 하여금 쓸데가 없으면서도 버리지 않고 갖고 있게 했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다고 해서 실질적인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감상적인 행위가 내게 큰 의미를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증거는 박사 학위와 집 장식장에 놓여 있는 학위패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부로 그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책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공간은 지금부터의 날 위해 필요한 다른 책들로 채워 나가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책이든(요즘 같아서는 인문학 서적이어야 할 것 같기도) 한권 한권 다시 비어버린 내 책장을 채우자. 혹시 아는가? 그렇게 채우다 만난 책이 물리학 서적 만큼이나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을지. :-)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육아

얼마 전부터 출근 버스에 회사 어린이집에 가는 듯한 아이와 엄마가 같이 탄다. 아이는 이 추운 새벽에 외출하는게 그리고 엄마와 떨어지는게(당연히 알겠지. 애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싫은 듯 항상 울면서 타고 엄마는 버스 안 눈치를 보며 그런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집 첫째 또래로 보이는 그 아이는 말로 의사 표현도 정확히 못하면서 울먹울먹 옹알이를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절절함이 느껴져서 듣고 있자면 마음이 참 아프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매일 아침 그렇게 아이의 울음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아이 엄마도 불쌍하긴 매한가지.

생각해보면 그나마 회사 어린이집에 당첨되서 엄마와 출퇴근을 같이 하는 아이는 행복한 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설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 집은 데려가고 데려오고가 하루하루 전쟁일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업무의 연속성이라는 것도 어차피 구시대적인 마인드고 이직이나 동직장내 부서간 전배가 보편화 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육아를 위한 몇년의 휴직을 그토록 백안시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단지 법적으로 쉴 수 있다 없다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렇게 쉬고 나서 복귀 혹은 재취업을 하고자 할 때 넘어야 할 산을 낮춰주지 않는 한 현실은 법 조문의 글자처럼 그렇게 명확한 문제가 아니다. 졸업 후의 비전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아무리 장학금을 지원해봐야 이공계 기피 현상을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퇴근해서 문을 열면 아직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다~!" 하면서 달려와 안기는 첫째를 보듬을 때마다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한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그래도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엄마가 끼고 생활하는 우리집 아이들은 정말 행복한 아이들이란 생각도 든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이 커서도 남을 보듬을 줄 아는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를 위해, 이젠 좀 육야에 대한 인식을 바꿔서 장기적으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투자를 할 시기가 아닐까? 육아로 인해 직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부모들에 대한 사회적 문턱을 낮추는 것부터 말이다.

2012년 1월 12일 목요일

관심

며칠전 마트에서 치약등을 사기 위해 그쪽 코너로 가고 있는데 아내가 날 잠시 멈추게 하더니 용도가 궁금해지는 물건을 골랐다. 7개의 작은 통이 일렬로 연결되어 있는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도구였는데 각 통의 뚜껑에 요일별 영문 이니셜이 적혀있는 형태였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어머니 드리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이가 들만큼 드신 분 답게 어머니께서 드시는 약이 제법 많다. 아침 저녁으로 약을 드시는데 문제는 약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가 늘 헷갈리신 다는 것. 그래서 약 먹는 걸 건너 뛰기도 하고 두번 드시기도 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 그래서 이렇게 요일별로 구분되어 있는 약통에 약을 넣어두면 그런 불편이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아내의 이야기였다. 천원짜리 그 약통은 그렇게 우리 쇼핑 카트를 거쳐 어머니께 전달이 됐다.

그리고 어제 저녁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그 약통을 너무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받을 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약 먹는 일을 헷갈리지 않아서 너무 좋으셨다는 것. 막상 아들인 나는 어머니의 불편을 듣고 안타까워 할 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아내는 그걸 관심있게 듣고 어떻게 해드릴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건 비싼 선물이 아닌 평소 갖고 있는 사소한 부분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날이었다.

여보, 당신이 우리 어머니 딸이 맞네요. 여기 이 무심한 아들보다 늦게 본 딸네미가 더 낫더라는 어머니 말씀이 그냥 나오는게 아닌 듯 싶어서 괜시리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군요.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당신한테 배우며 살게 되니 이 철부지를 어찌해야 할지 그저 난감할 따름입니다. :-)

2012년 1월 8일 일요일

오렌지 쥬스

첫째와 둘째

형제 없이 혼자 자란 내게 맏이와 막내 혹은 첫째와 둘째의 다툼에 대한 친구들의 하소연은 공감되지 않는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싶지만 실제로 와 닿지는 않는, 그런 이야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자라면서 알지 못했던 첫째와 둘째간의 문제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뭐, 본인들에겐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고 다툼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저 귀여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