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그런 사실을 몰라서 전공 서적들을 남겨 두었던 것은 아니다. 책을 남겨둔 가장 큰 이유는 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념품과 같은 역할을 이 책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4년이라는 시간동안 몸담아 왔던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생각의 되새김질을 하는데 이 책들이 필요했다. 불온 서적이 아니라는 군부대 도장이 찍힌 책들도 있으니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14년을 붙들고 있었던 책들이다. 그 시간이 나로 하여금 쓸데가 없으면서도 버리지 않고 갖고 있게 했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다고 해서 실질적인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감상적인 행위가 내게 큰 의미를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증거는 박사 학위와 집 장식장에 놓여 있는 학위패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부로 그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책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공간은 지금부터의 날 위해 필요한 다른 책들로 채워 나가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책이든(요즘 같아서는 인문학 서적이어야 할 것 같기도) 한권 한권 다시 비어버린 내 책장을 채우자. 혹시 아는가? 그렇게 채우다 만난 책이 물리학 서적 만큼이나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