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9일 화요일

면접

오후 내내 면접관으로 면접실에 앉아 있었다. 회사 간부로 있는 이상 면접관으로 호출되는게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지난 2년간 세번이나 면접관으로 불려갔으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횟수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면접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입사 지원자들을 면접보는 건 생각보다 배우는게 많은 행위다. 학창 시절에 전공 과목 공부를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공부한 부분을 친구에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설명하면서 스스로가 정리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깨닫기도 한다. '아는 척'을 하기 위해 단기간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은 생각보다 높은 효과를 본다. 면접도 마찬가지다. 입사 지원자들은 긴장해서 잘 알지 못하겠지만 사실 면접관이랍시고 앉아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배우는게 있다고 하더라도 싫은 건 싫은거다. 내가 면접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경력직 사원도 아니고 신입 사원들이라면 사실 그들이 갖고 있는 기본기라는 것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토익 점수가 몇점이고 어학 연수를 다녀왔고 등등은 자신에게는 큰 사건이고 경력일지 몰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면접보는 면접관 입장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든가 오지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든가 하는 이색적인 경력 역시 내 경우엔 전혀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가' 이다. 무엇을 얻었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얻은게 있다면 겉으로 드러날 것이고 배운게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경험은 불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오지 봉사 활동을 통해 다른이를 배려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이력을 설명하지 않아도 토론 면접을 시켜보면 다른이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다른이를 배려하느냐 아니냐지 원래 배려하는 성격으로 타고났는지 후천적 경험을 통해 배려하는 법을 배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남에 비해 좀더 좋은 기회를 많이 누렸다고 해서 더 유능한 인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어려워 하는 부분은 바로 그런 사람인지를 내가 그토록 단기간내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면에서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내가 그를 올바로 판단했는지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과연 내가 내 가치관으로 다른이의 점수를 매기는 것이 옳은가? 뭐,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님은 잘 안다. 그냥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최선을 다해 평가를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오늘도 수십명의 긴장한 입사 지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에게 점수를 줘야 하는 내가 그들만큼 긴장해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경험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자신이 책임져야 하지만 내가 잘못 판단하면 내 실수에 그들의 삶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적어도 최대한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면접에 임했고 평가했다는 것은 누가 물어도 확언할 수 있지만 내가 그를 정말로 맞게 평가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매번 면접을 할 때마다 괴롭다. 

사람도 많은 회사, 이젠 좀 다른 사람에게 면접관 역할을 골고루 돌려 줬으면 좋겠다. 

2012년 5월 28일 월요일

친구

3일간 이어지는 황금 연휴에 모든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느라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던 주말에 그동안 얼굴을 거의 보지 못하고 살던 고향 친구 셋을 만났다. 어쩌다 보니 세 친구들을 각각 만나게 됐는데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녀석은 토요일 오후에 잠깐,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친구는 일요일 점심에 가족 모임으로, 나와 비슷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일요일 저녁에 우리 집으로 불러서 아이들은 장난감 방에 들어가 놀게 해두고 어른들끼리 맥주 한잔을 같이 했다. 만나면서 느낀 것은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의 특징에 따라 차츰 그 친구의 성향이 변해 간다는 것. 전혀 변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각자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성향이 크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사실이고 다른 면에서 그만큼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만날 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한번 더 생각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돌팔매가 장난으로 통하던 시절 계곡물로 함께 다이빙을 했던 사이라 할지라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돌팔매는 더이상 장난으로 통하지 않는다.

친구들 중 다른 친구에게 지나치게 경우 없이 행동하는 녀석은 없어서 가족 모임을 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긴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인들이 함께 참석하는 모임은 사실 묘하다면 묘한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다. 발 밑의 얼음이 조금 얇아진 기분이랄까. ㅎㅎ )

명절에 고향 친구들이 모이는 저녁 술자리에 몇년째 참석하지 않다 보니 그런 자리가 좀 그립다. 하지만 명절에 가족들을 놔두고 친구들을 만나기에는 지금의 내 나이가 좀 많거나 적거나 하다는게 내 생각.(달리 말하면 '결혼하기 전이나,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서 집안이 북적거리거나 하기 전에는 가족과 함께'가 우선이랄까.) 뭐, 이번처럼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한넘씩이라도 얼굴 보면서 사는 수 밖에. 어느 면으론 그게 편하기도 하고.

암튼, 별 것 아니지만 간만에 친한 고향 친구들 몇을 봤더니 괜시리 기분 좋은 휴일이다.

2012년 5월 22일 화요일

부부의 날

어제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에서야 '부부의 날' 이란 걸 알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일찍 출근한 탓에 일찍 퇴근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4시 반에 바로 퇴근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한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사실 살면서 가족들과 기뻐할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공식적인' 행사일을 챙기는 건 나름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나 가족 모두에게나 관계없이. 어제와 같은 날이 바로 그렇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인근 공원을 산책하면서 어느덧 훌쩍 자라 엄마 아빠 손을 놓고 저 혼자 뛰겠다고 고집부리는 첫째와 유모차에 실려 가면서도 뭐가 좋은지 연신 웃으며 손뼉을 치는 둘째를 보면서 이 두 아이들을 집에서 혼자 보느라 고생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그만큼 한시도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질투가 함께 올라오는 것을 느끼곤 혼자 한참을 빙그레 웃었다. 아빠 옆에서도 잘 자던 첫째가 둘째와 엄마 경쟁을 시작하면서 아빠 베겟머리 옆을 떠나는게 비단 우리집만의 일은 아닐터.

부부의 날이라고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는 아내 친구 내외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이이들의 부모가 되어있는 우리에겐 이젠 부부의 날도 아이들을 위한 날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쉽진 않다. 지난 십년간 웃은 것 양을 다 합쳐도 고작 일년간 두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웃은 양의 반도 안될테니. 그렇지만 이제는 슬슬 아이들을 친구들 틈에 보내고 아내도 자신의 꿈과 생활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모든것을 희생하는 엄마보다 자기 자신의 꿈을 위해 일정부분 자신의 삶에 매진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자라서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정답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예쁘네~

코끼리와 들소가 보고싶다는 첫째의 갑작스런 요청에 의해 오늘 서울대공원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이제 제법 동물도 구분할 줄 알고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그래도 명확하게 이름도 구분해서 부르기 때문에 동물원에 데려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오늘 두가지 새롭게 놀란 사실? 사건? 이 있는데 두번째 사건만 아니었으면 첫번째 사실로 놀라웠을 하루였다.

지난 2주 정도의 시간동안 매일같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낮에 몇시간씩 산책을 다녀왔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고향 친구와 운동한다는 명목으로 산책을 다니더니 첫째를 거의 운동 선수로 만들어 놨다. 오르막 까지도 거침없이 달려올라가는 첫째를 보면서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드디어 밖에서 아이가 나보다 지치지 않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두번째 사건.

수달을 보러 가서 붐비는 인파 사이를 첫째를 안고 비집고 들어가 제일 앞에 서서 보게 해줬다. 그런데 잠시 후에 보니 수달이 아니라 옆을 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딱 첫째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란히 서서 수달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첫째가 갑자기 손을 뻗어 엄지와 검지로 그 여자 아이의 턱을 잡아 자기 쪽을 보게 돌렸다.

당황한 나와 그 아이의 부모가 그냥 보고 있는 가운데 첫째가 방긋 웃으며 또렸하게 한마디 했다.

"예쁘네~"

허걱. 이거저거 잴 것도 없이 반짝 안아들고 그집 부모한테 꾸뻑 인사하고 도망쳤다.

...

규야, 제발 이러지마. 아빠가 엄한 오해 사잖아. ㅠㅠ
(그런데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니? 다음주에 한번 더 가볼까? :-)

둘째

2주 정도 지난 일이긴 한데, 첫돌을 한참 넘겨서도 계속 엄마한테 붙어서 사는 바람에 '껌딱지'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둘째가 엄마 젖을 드디어 뗐다.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너무나 수월하게(일주일 정도 밤에 잠을 못잘 각오를 했었으니) 떼는 바람에 그저 신기할 따름. 밤에 수유를 하지 않게 되자 낮에 먹는 밥 양이 늘어났고 그 만큼 밤에도 깨지 않고 더 잘잔다. 덕을 보는 건 아내와 나. 매일 밤 한두시간마다 깨서 우는 바람에 둘이 (나보다는 아내가 더) 잠을 설쳐서 피곤했었는데 둘째가 처음으로 새벽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쭉 자준날 둘이 손을 맞잡고 아침이 이렇게 개운한 거였구나 라며 감동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다시 아이들이 자란 듯 해 약간의 서운함도 있다. 둘째는 아직 아니지만 첫째는 이제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아기냐 아니냐의 구분은 발바닥을 만져보면 알 수 있는데 얼굴 피부처럼 보들보들하고 부드러우면 아기, 조금 걸어다녀서 슬슬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어린이 로 구분하는게 우리 부부의 구분 방식. 

이제 제법 형아하고 깔깔거리며 같이 놀기도 하는 둘째를 보면서 슬슬 '아기' 라는 존재가 사라져 가는 집을 느낀다. 그래도 두 형제가 깔깔거리면서 서로 까꿍 놀이를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세상에 이런 천국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감을 느낀다.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자. 이 아이들을 내게 가져다 준 축복에. 


승마를 시작하다

승마[乘馬,升麻]
말을 타고 하는 운동 경기

승마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말을 타고 하는 운동' 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몇해 전 제주도 여행때 말을 한번 타보고는 아내가 승마에 완전히 빠져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시작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 회사 동호회 중에 승마 동호회가 있는 것을 보고 반나절 정도 고민하다가 가입을 했다. 아내의 이야기가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은 분명했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안하는 취미나 놀이)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처음으로 승마장에 다녀 왔는데 제주도에서 타봤던 느낌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 때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순하디 순한 말을, 그것도 관리사가 이끄는 방식으로 탔었는데 이번에 가서는 멀리서 지도는 해줘도 어쨌든 혼자 타야 했고 좌속보(앉은 채로 말을 빨리 걷게 하는 것. 일반 속보는 등자를 밟고 몸을 일으켰다 앉았다 하면서 말과 박자를 맞추는 방식)까지 해봤다. 결론은 긴장되기도, 무섭기도, 재미있기도 한 복잡한 한시간 반. 나는 계속 앉아 있는 방식으로 말을 탔기 때문에 긴장은 했어도 땀은 크게 흘리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흠뻑 젖어서는 숨까지 헉헉거리면서 몰아쉴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했다. 

어쨌든 마음에 드는 취미를 하나 새로 시작했으니 일상에 제법 활력이 될 것 같다. 아내가 무척이나 부러워 하고 있는데 동호회 회원 가족 행사때는 회원 가족들도 함께 말을 탈 수 있다는 말에 희희낙낙. :-)

그나저나...아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승마는 평소 쓰지 않는 근육들까지 다 쓰는 전신 운동이라고 하더니 지금 도대체 왜 거기에 알이 배겼는지 알 수 없는 근육들이 뭉쳐서 좀 고통스럽다. 편하게 탔다고 생각 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구보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말에서 내린 후에 무릎을 짚고 헉헉거릴 만큼 힘들어 하던데...그 정도까지 진도가 나가면 운동 효과도 상당할 듯. :-) 

2012년 5월 1일 화요일

초롱이를 입양시키다


지난 주말에 그동안 잘 키워오던 초롱이를 다른 집에 입양 시켰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고, 또 여러가지로 마음 고생 하긴 했지만 결국 입양을 보냈으니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아내와 나 모두 마음 고생을 꽤 했다. 어쨌든 지난 7년동안 자식처럼(그 중 앞의 5년은 정말 외동딸처럼) 키웠던 녀석이라 다른 집에 보낸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래도 단골로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병원 직원들에게 이쁨을 많이 받던 녀석답게 병원 직원 중 한명이 자기 가족에게 소개해서 입양을 보내게 됐으니 엄한데 가서 고생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생각해 보면, 제니가 세상을 떠나고 초롱이 혼자 남겨졌을 때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토록 심하게 분리불안장애가 오진 않았을텐데.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어쨌든 초롱아!
지난 7년간 우리 가족에게 준 기쁨만큼 새로운 가족에게도 기쁨을 주고 사랑을 받으렴.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이렇게 떠나 보내게 되서 정말로 미안하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