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기일 아침

지난 주말 새벽같이 일어나 청주에 다녀왔다. 지난주 내내 목감기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전화통화도 못하시던 어머니가 걱정되어 들여다 보기 위해서였다. 뵙고 바로 올라오는게 그래도 쉬실 수 있게 하는거라 생각해 혼자 내려갔다. 아이들을 달고 가봐야 유난히 할머니와 애틋한 첫째가 울고 불고 할테니 오히려 악영향일게 뻔하니.

아내가 싸준 곰탕과 반찬을 한보따리 차에 싣고 내려가는데 마음이 묵직했다. 아버지께서 먼저 가시고 혼자 지내신지 9년. 그 외로움의 깊이가 얼마인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혼자 자취할때 감기에 걸려서 혼자 방에 누워 있는것도 그리 서러웠는데 하물며.

오늘은 9번째 아버지 기일이다. 유난히 남아계신 분이 애틋하다.

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게임 그리고 교육

내가 아직 게임에 빠질 나이의 자녀가 없어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질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귀를 잡힌채 끌려가야했던 세대가 놀이터에서도, 골목에서도 친구들과 놀 수 없어 가상공간으로 뛰어들어 관계를 맺고자 하는 그들의 자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하지만 실상은 아이들이 게임을 안하고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는 것 아닌가? 이번 법안에 적극 찬성하는 단체들을 보면 그렇다. 그놈의 공부 공부 공부.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공부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마지막으로 해본 공부라곤 고3때 대입이 끝인 사람들이 십대의 덜 여문 생각에서 멈추고 굳어진 공부에 대한 선입견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대학원을 말하는게 아니다. 평생 자신을 갈고 닦는 공부를 해온 사람들은 단판 승부로 모든걸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답답한 생각인지 안다.

세살, 다섯살인 우리 아이들을 사교육을 열심히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는 동네 다른 부모들과 잘 어울리질 못한다. 모이면 대화가 안된단다. 우리집만 유별난 집 취급을 받는 중. 어쩌면 아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리며 플레이스테이션2와 몇몇 타이틀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게 이상하긴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말도 어눌한 아이들을 수학 영어 선행을 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어떻게 생각해도 병적이다.

하지만 난, 교육은 성공의 수단이 아닌 인맥 형성의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 독야청청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붇는 요즘의 사교육 시장은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것이 더 좋은 인맥을 만들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기회라는 것이 모든것을 희생하고 나 혼자 잘나야 할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어로 말하자면 human network에 의해 결정된다. 평생을 도서관에서 혼자만 공부해서 고시에 붙는건 시험까지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관점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하는게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적어도 게임 이외에 공부에 방해 된다고 생각되는 모든것을 아이들에게서 빼앗아 버린 어른들이 할 말은 아닌것 같다. 나에겐 지금의 거센 반발은 마지막 남은 장난감을 지키려는 이들의 절규로 들린다.

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둘째

어제밤, 잠지리에 누웠다가 벌어진 실갱이에 결국 둘째를 안고 나가 호되게 야단을 쳤다. 야단 맞을 때는 안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침실에 돌아오면 떼쟁이가 되는 통에 그때마다 다시 안고 나가길 서너차례. 결국 녀석이 고집을 꺾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고집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자기 싫다는 것 더하기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자세로 안아주질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막상 자신은 졸려서 나오는 잠투정이 합쳐져서 대화도, 어르기도 안통하는 땡깡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고집의 실체다. 뜯어놓고 보면 별게 아니지만 막상 재워야하는 아내 입장에선 만만찮은 일이다. 더군다나 몸살감기로 자기 몸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서는 제대로 어르기도 안된다. 같이 짜증을 낼 뿐이다. 하필이면 둘째는 엄마 껌딱지라 오로지 엄마엄마 한다. 보다못해 안고 나와 야단을 쳐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내 옆에서 잠을 자게 시켰다.

야단을 쳤든 어쨌든 눈을 감고 눕게 하자 1분도 안되서 잠이 든다. 약기운에 취해있던 아내는 내가 둘째를 안고 나가있는 사이 이미 잠이 들었다. 이래저래 고단한 두 사람이다.

그렇게 둘째에게 호통을 쳐놓고 나니 내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잠에서 깬 둘째가 품 안으로 굴러오더니 내 팔을 이리저리 위치시키곤 자기를 안으란다. 팔의 각도부터 무척 까다롭다. 반드시 팔베게를 한 팔로만 안아야 하고 손바닥의 위치는 가슴과 배의 중간 그리고 토닥토닥은 안된다. 자세를 잡고 보니 허리가 좋은편이 아닌 아내에겐 쉬운 자세가 아니겠다 싶다.

눈치가 빨라서 어른들이 하는 말에 민감한 첫째와 달리 둘째는 잔소리를 하면 눈부터 흘긴다. 입술도 나오고 몸도 반대로 돌리는 등 보고 있으면 성격을 그리 타고 태어난건지 아니면 둘째라고 은연중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는 건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래도 어제밤, 혼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아이가 품으로 굴러온거 팔베게 해주자 마자 나도 곧장 잠이 들어서 아침까지 그 자세로 잤다. 에혀. 애비인게지.

어렸을때 종아리가 부어오르도록 회초리를 치시고 나중에 약을 발라주시던 아버지가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분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물론 체벌의 비주얼(?)은 완전 딴판이었지만. ㅎㅎ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사랑해요

어제 밤늦게 야근을 하고 퇴근하니 두 아이들이 모두 안자고 놀겠다며 엄마와 실갱이 중이었다. 내가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안방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첫째가 빼꼼히 내다 보고는 환한 표정으로 방 안의 둘째를 향해 "아빠다!" 하고는 냅다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무릎을 꿇고 첫째를 안아주자 마자 뒤이어 온 둘째는 다른 한쪽팔 차지. 그리곤 서로 할 말이 많다. 제대로 알아 들은 거라곤 왜 늦게 오냐는 질타 하나뿐이었지만 매번 "정말?" "그랬어요?" 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뭐, 내용이 크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그렇게 두 아이들이 고자질(?)을 마치고 나자 아내가 수고 했다고 날 포옹하고 토닥여 주는데 첫째가 다시 와서 아내를 뒤에서 끌어 안더니 "엄마 사랑해요" 한다. 질새라 다시 뛰어온 둘째도 포옹에 합류 하더니 아직 한참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 사랑해요" 한다. 아이들에게 듣고 어찌 가만 있을까. 아내와 나도 "사랑해요" 라고 대답해 주었고 놀이처럼 번져서 한참동안 네 식구가 거실에 포옹하고 앉아서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사랑한다며 깔깔거리는 큰 소리의 웃음과 미소를 지었다.

그 와중에 날 포옹하고 있던 아내가 내 등 뒤에서 말했다. "좋다" 라고. 그래, 더 이상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좋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땡큐

오늘 아침.
감기 때문에 한참 앓고 있는 아내가 첫째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우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더란다. 돌아 본 아내에게 아이가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면서 큰 소리로 "땡큐" 라고 인사를 했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아이에게 "땡큐"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커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 내가 그렇게 키운건 아닌듯 한데 어쨌든 참 과분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원자력 발전

제어한다는 말에는 시작부터 끝까지를 아우른다는 함의가 있다. 가속과 감속을 마음대로 할때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하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운전 가능한 차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제어가 안되는 차로 분류되서 도로에 나설 수도 없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현재 기술력으론 핵에너지를 제어하지 못한다. 원전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모아둘 뿐 그걸 '처리' 한다고 할 순 없다. 확률이 작다고는 해도 사고시 발생할 문제도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음을 후쿠시마 사태를 보면 분명해진다. 화장실의 분뇨는 모았다가 퇴비로라도 쓰이지만 모아둔 핵폐기물은 쓸 곳도 없다.

브레이크 없는 차는 도로에 나설 수 없듯이, 인류가 제어할 능력이 없는 핵에너지는 사용을 그만둬야 함이 옳다. 단지 저렴하다는, 단기적 그리고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 놓고 이야기 하는 건 아둔한 짓이다. 그건 우리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미래를 끌어다 지금의 전기값으로 써버리는 짓이다.

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오늘 회사 교육중 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가 잠깐 있었다. 아이의 꿈이 소방관인데 그건 직업이지 꿈은 아니지 않느냐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하루종일 꿈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릇 피드백(feedback)이란 과거에서 와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지나간 과거에 그에게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이 있다. 바로 꿈이다. 직업일 수도 있고, 사회적 위치 혹은 인격적 성숙도일 수도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미래에 어떤 것을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반향이 현재의 내 행동 혹은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나는 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첫째 아이의 꿈은 얼마전까지 튼튼한 공룡이 되는 거였다. 아이는 튼튼한 공룡이 되기 위해 다큐멘터리에서 본 공룡들처럼 밥도 많이 먹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도 씩씩하게 뛰어 놀았다. 어떤이는 터무니 없는 바램이고 꿈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분명 튼튼한 공룡이 되고 싶다는 그 바램은 아이의 현재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고 그로인해 아이는 하루하루를 보다 열심히, 그리고 꿈을 이루어 간다는 행복감 속에 살 수 있었다.

꿈이란 그런것이다.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외친 내 바램이 만들어낸 메아리 혹은 피드백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바는 없을 듯 하다. 무언가 바램이 있어서 현재의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바로 꿈일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또를 사는이가 그 로또로 인해 오늘 하루를 희망에 가득차서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역시 꿈이다.

간절히 바라는게 있는가? 그리고 그걸로 인해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꿈을 꾸며 사는 사람이다.

점심식사 대화

어디에선가 읽은 적도 있고 얼마전 회사 선배에게서 유사하게 들은 말이 있다. 남자의 자신감은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까지 절정을 이루고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급격히 내리막을 굴러간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도전 이라는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대부분 사십세 전후라는 논리였다.

어제 한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면서 든 생각은 우리 둘 다 그 자신감 넘친다는 삼십대 후반을 보내고 있다는 조심스러움이었다. 그 친구와 대화를 통해 서로 합의? 동의?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1.
실무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업무지식과 관련 능력이라면, 그 다음 단계에서 필요한건 설득의 능력이다. 다름아닌 경영진에게 내팀의 판단을 전달하고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설득의 능력. 그리고 이 설득의 능력은 업무 지식보다는 나를 보다 신뢰감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취업할때 말고 실무적으로 필요 없었던 학벌이나 커리어가 플러스 알파의 의미를 다시 갖기 시작하는 시점도 이때부터다.

2.
우리 둘 다 실무적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걸 보니 이제 그 자신감 다 버리고 설득의 경쟁력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게 내 뒤를 밝혀줄 학벌이든, 선진사에서의 커리어든, 웅변학원을 다녀서 익힌 말발이든 whatever.  그게 우리의 사십대를 관통하는 인생 계획이 되어야 한다.

3.
경영자에게 필요한건 업무지식도, 설득의 능력도 아닌 직관력이다. 그것만 갖춘다면 나머진 그저 옵션일 뿐이다.

합의하지 못한건,

1.
중국의 미래는 밝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다음 커리어로 고려해볼만 하다.(친구)
중국의 성장은 saturation 될 것이다. 다음 커리어로 생각하기엔 거주 환경도 좋지않다(나)

2.
부동산은 이제 다시금 볼 때가 됐다.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투자처다(친구)
부동산은 원래도 리스크가 큰 고위험 투자 상품이다. 불확실성이 큰 지금은 때가 아니다(나)

세시간이 짧을 정도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근 시일내에 업데이트 모임을 갖자구, 친구.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목욕


어제 두 아들과 간만에 같이 목욕을 했다. 아이들이 매일 씻기는 하지만 내 퇴근 시간과 아이들이 잠자리에 누워야 하는 시간 사이에서 함께 물장난을 치고 목욕을 할 타이밍을 잡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목욕을 하는 경우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여하튼 어제 간만에 두 아이들을 통안에 집어넣고 함께 들어가려다 깨달은 사실은, 많이 비좁아 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제 아빠와 셋이 통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정도까지 큰 것이다. 한쪽 무릎에 한명씩 앉혀서 놀 수 있었던게 엊그제인데.

둘째가 '안되요' 라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을만큼 어휘력이 늘었기 때문에 빼앗기 놀이, 물 끼얹기 놀이 등을 하면 의사 소통이 전보다 훨씬 원활해져서 나도, 그녀석도 전보다 훨씬 재미를 느끼는 듯 했다. 첫째는 말 할 것도 없고. 한참을 그렇게 깔깔거리면서 놀다 문득 서운해졌다. 조금 더 크면 이제 이렇게 목욕탕에서 장난치는 것도 못하겠구나. 언제 이렇게 컸니. 아직도 성인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디테일

제품 완성의 고지에서 마지막은 항상 디테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테일이란 대부분 제품을 출시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항목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설사 이슈가 되더라도 단기에 가볍게 해결 가능하거나 마이너한 이슈로 묻어 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제품 혹은 서비스 자체에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있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바로 디테일이다.

삼성의 Half step behind 전략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만이 가능하게 만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략이다. 기업으로써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다음으로 발전하고 싶다면, 정말로 최우선적으로 필요한건 시장 선도 제품이 아니라 개선된 디테일이다.

명품 가방의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디자인이 아니라 재봉질 선의 꼼꼼함을 살피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명품의 시작은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러한 디테일은 제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다.

제품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 결국 해답은 거기에 있다.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사진의 이유

이제 다시 냉동실의 필름을 꺼내고 카메라의 먼지도 털어낼 때가 된 것 같다. 예전 사진을 보면서 근질대는 걸 보니. 

굳이 분류를 하자면 사진이 도구가 되는 사람과 사진이 목적이 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텐데, 내 경우는 분명 사진 자체가 목적이었던 듯 하다. 무엇을 찍든, 어디서 찍든 그저 카메라를 만지는게 즐거웠던 기억을 보면.

몇해 전 사진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 대단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을. 무엇이든 편하게 담아 보자. 다름아닌 나 자신을 위해.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기억

나와 아내는 신혼 생활을 고양시 화정동에서 시작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동네였지만 그렇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그때의 기억을 한장의 사진으로 보여달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사진을 꼽는다. 일산에서 화정으로 나오는 지하철 3호선을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고가 도로가 들어서서 사라진 풍경이다. 

 
별 다른 건 없는 사진이다. 하지만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하늘과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대지의 경계를 불을 밝힌 열차가 가르고 들어오는 이 풍경은 지금이나 그때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 한구석의 저릿함을 가져온다. 아니, 그 저릿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듯 하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잠이 오지 않을 땐 굳이 누워있지 말라는 조언에 충실하고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는데 예전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사진 정리하기, 글 다시 읽기 그리고 키보드 두드려서 블로깅 하기. 며칠전 오랜 친구 한명이 아직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 했다. 무심코 한 대답은 "내가 얼마나 글질을 좋아하는지 잘 알잖아" 였다. 그래...참 좋아하긴 한다. 블로그나 홈페이지 같은 형태로 글을 정리하기 시작한 건 14년째, 온라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이기 시작한 PC통신망에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부터 따지면 19년째니 어디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 오래도 됐다. 그 기간만큼 글쓰는 실력이 늘지 않은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별 것 아닌 글이라도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한장 한장 쌓여서 내는 그 향내는 어줍잖은 글솜씨와 비할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나저나...이렇게 키보드 끄적거리다 언제 다시 잠이 오려는지. 아무래도 내일만 출근하면 추석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자꾸 느긋하게 만드나보다. 

크리스마스 계획

작년 크리스마스 계획은 9월에 수립해서 10월에는 예약까지 모두 마무리를 지어 두었었다.  아래 사진은 그 덕분에 찍은 사진. 제주 사려니 숲에서 아내와 단 둘이 내 삶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려면 지금쯤은 계획을 수립하느라 정신 없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원래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 별로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또 그것만큼 익숙해지지 않는 일도 없는 듯 하다. 이런 고민, 저런 고민 때문에 일상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면 내 힘으로 결론을 낼 수 있는 고민을 빼곤 모두 훌훌 털어 버리는 것이 정답이련만.

어찌 되었든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서 다시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번에는 아내와 나 둘 뿐만이 아닌 가족 모두의 여행으로 만들어 볼 수 있기를.

형제

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내가 신기하게 바라보는 많은 것들 중 단연 으뜸은 '형제'의 모습니다. 

나와 아내 모두 형제,자매가 없이 자란 외동이어서 어렸을 때 집에서 나 이외의 다른 존재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은 경험해 보지 못하고 자랐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존재와 형제의 존재는 다르다. 어른들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 말을 들어주거나, 내가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형제는 다르다. 어른들은 어지간해서는 한쪽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따라서 형제와의 의견 조율은 오롯이 자신들의 몫이다. 

이제 만 세살 그리고 두살이 지난 두 아이들이 과자를 서로 갯수 맞춰서 나누는 것을 볼 때, 화단에 물을 줄 때 한명은 호스 중간을 들고 다른 한명은 손잡이를 드는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을 볼 때, 맛있는 사탕을 선물로 받았을 때 꼭 하나씩 따로 챙겨뒀다가 동생거라고 또는 형아 거라고 나눠주는 모습을 볼 때, 서로 엄마 품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다가도 둘이 얼굴을 마주보곤 뭐가 즐거운지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볼 때 난 그 순간 순간이 경이롭다. 

그저 큰 욕심 안부리고 두 형제가 지금처럼 서로 위해가며 평생을 그렇게 살기를. 싸움 없이 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 크게 맘상하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맑은 아이들로 그렇게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2013년 9월 8일 일요일

정치의 실종

정치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가는 쉽지 않은 논제다. 더구나 국가의 궁극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에서 법제화된 내용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에 의해(더구나 삼권분립의 원칙으로 보장받는 세번째 권력이기까지 하다) 위헌이라는 명분으로 부정될 수 있는 현정치 체제에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끊어서 정리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의 사법화라는 단어가 어느정도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반대인 사법의 정치화라는 단어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단에 국민과 정치가 집단 모두가 찬성 혹은 반대의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정치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사법의 판단 영역에서처럼 흑백의 논리로 양분되기 어려운 사안이며 단순히 정치가나 이해 관계자들만의 몫이 아닌, 언론과 모든 국민의 행동과 의사가 결집되는 행위라는 전제를 놓고 생각해볼때,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정치가 실종되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거물 간첩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다. 더군다나 단순 첩보 활동도 아닌 '내란 음모죄'로 잡아들였으니 당분간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사법 영역에서의 판단이 나오기 전인, 정치적 판단이 주류를 이룰 수 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 마땅한 상황은 그의 혐의에 대한 시끌벅적한 정치적 논쟁이다.

그런데 한동안 지켜본 이 사태의 꼬락서니(더 적합한 단어를 찾기가 불가능 했다)는 날이 갈수록 한심한 형태로 흐르고 있다.

법무부에선 통진단 해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으며 언론에서는 이미 그를 간첩으로 가정하고 이러한 간첩에게 국회 의석을 내 준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한 통탄을 하고 있다. 국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체포 동의안을 가결했으며 인터넷은 꼴보기 싫은 북한 간첩에 대한 질타로 끓고 있다. 정치적 판결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모든이가 그를 최초로 빨갱이라고 지목한 이에게 '너도 빨갱이냐'는 지목을 받을가 두려워 똑같이 돌을 던지자고 소리지르고 있다. '악덕지주' 라고 지목되면 그자리에서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던 60년 전 전쟁터의 모습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다.

아무래도 '빨갱이' 라는 단어가 '국가 보안법' 이라는 단어가 주는 원초적인 두려움에 대해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때 명백한 증거도 없이, 혐의에 대한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고인을 범죄자로 몰고가는 여론과 사법기관, 그리고 정치세력들에 대해 울분을 토했던 많은 이들이 똑같은 상황에서 이석기 의원은 빨갱이니까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죽창 끝에 겨누어진 통진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 세력들이 혹여 '빨갱이' 로 지목당할까봐 목을 움추린 것도 부족해서 의원직 제명이라는, 똑같이 돌로 쳐죽이자는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국보법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던 그들에게 국보법은 뼈속까지 새겨진 공포인가 보다. 그들은 벌써 이석기 의원을 간첩 그것도 전쟁시 후방에서 내란을 일으키는 빨치산의 후예로 단정짓고 모든 판결을 마쳤다. 명백한 사법의 정치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법화된 정치는 선동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당성은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석기 의원이 정말로 국정원이 제기한, 내란 음모를 꾸몄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법원이 그의 신변에 대한 구인을 허락한 것을 보면 국정원이 기소를 위해 확보한 증가들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정말로 북한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군사력의 주적의 끄나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판단'은 사법의 영역에서 충분한 논쟁과 판단이 이루어진 후 나와도 늦지 않다. 그것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정치적 정의다.

막말로 그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통진당을 모두 해산한 이후에 이석기 '전'의원의 혐의가 증거 불충분에 의한 무죄로 판결난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설사 유죄로 판결이 나더라도 박탈과 해선에 따른 '유죄' 선고는 행위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억지 판결이라는, 사법의 정치화에 의한 결정이라는 주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하지만 차분하게 모든 혐의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마치고 나온 결론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너무나 실망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작금의 사태는 최종적으로 이석기 의원이 유죄로 나오든 무죄로 나오든 한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묻겠다.
바르다는 의미의 한자를 앞에 내세운 그 단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서야 하는 시점이 있다면 그게 언제이겠는가? 선택해야 한다면, 보편적 공정함과 주관적 자기주장 중 무엇을 선택해야 겠는가?

언론인들에게 묻겠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대들이 늘상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펜에 의한 범죄는 칼에 의한 범죄보다 과중함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뒷골목 양아치의 칼보다 더 쉽게 펜이 휘둘러 지고 있다. 지금 쓰여지는 기사에 fact가 많은지 아니면 가정에 의한 내용이 많은지 판단해본 적이 있는가?

네티즌들에게 묻겠다.
인터넷을 정당한 의견 표출의 장소로 삼는이와 그저 누구든 욕할 상대만 있으면 만족하는 찌질이들간의 차이가 무엇인가? 나는 그대들이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기소 단계부터 범죄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몰아가는 이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이대며 분노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대들의 정의감은 과연 무엇이 목적인가? 그저, 삶의 고단함을 배설하는 것이 목적인가?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약점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약점이 있다. 굳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드러날 경우 어떻게든 대처를 해야 한다. 이 때 사람에 따라 방식이 전혀 달라지게 되는데 이 차이가 그 사람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모범 답안은 약점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 쉽지 않다. 결국 대부분이 선택하게 되는 방법은 약점을 감추기 위해 이리저리 수를 내 보는 것인데 그런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채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경우는 자기 자신의 심리적인 부채감을 덮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극대화 할 수 있는 감정, 즉 분노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자신의 약점과 거리가 있는 자그마한 것 하나에 주위에서 이해할 수 없을만큼 크게 분노해서 약점에 대한 스스로의 시선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을 제외한 주위 많은 사람들이 왜 그가 이렇게 분노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키우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진 약점이라는 것은 결코 완벽하게 감출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약간의 추론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좋은 상황일 때 연민, 최악의 상황일 때는 혐오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고 그 부분을 보완해 가면서 업무를 하고자 하는 동료가 존재할 경우다. 동료의 호의에 대해 전혀 엉뚱한 부분에서 납득하기 힘든 심한 분노로 맞받아쳤을 경우 두번 다시 그러한 호의를 받기는 어렵다. 감정적 손실을 감내한 채 두번 세번 동료들에게 호의를 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조언조차 받을 수 없다. 이야기 해 봐야 자기 합리화의 강 건너편에서 또다시 분노의 홍수를 일으킬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본인이야 신경 안쓴다고 하겠지만 주위 동료들이 그와의 업무를 불편해 하는 것이 문제라는 뜻이다. 미국처럼 팀웍을 해치는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닌, 어떻게든 안고 가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분명 쉽지 않은 문제다.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인턴을 대하는 태도

지난 봄 멘토링을 했던 학생이 다른 회사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는데 SKY 출신 아니면 안뽑으니 열심히 할 필요 없다는 말을 대놓고 회식자리에서 들었다고 한다. 듣는 내가 다 울컥했다. 어떤 과장이 그랬다는데 아무리 술김에 한 말이라지만 이런경우 취중진담으로 받아들여 지는게 보통이다.

그리 크지 않은 출판사였던 것 같은데 벤처에 더 가까운 회사에서 아직도 학벌이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먹물 만지는 업을 갖고 있다는게 놀랍다.

아니, 그 무엇보다 인턴에겐 아무말이나 쉽게 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양이 화가난다. 그 누구도 다른이의 열정을 함부로 대하거나 우월감을 가질 권리는 없다. 그 태도를 보면, 인턴을 대하는 그 회사의 태도와 시스템을 보면 그곳의 인재상과 미래가 보인다고 믿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짧은 생각정리

애틀란타, 덴버, 보스톤, 신시네티, 콜롬버스, 렉싱턴, 피닉스 를 거쳐서 이번 출장의 마지막 기착지인 LA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포함 남은 이틀은 여유있는 일정이니 한숨 돌릴 수 있어서 좋다. 우중충한 애틀란타가 아닌 캘리포니아 남부의 햇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점은 덤.

애초 석달이던 출장이 2주로 줄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겠지만 그 짧은 기간으로 외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지 못했으니 어쩌면 가장 길었던 출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출장 자체도 쉽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는 몇주 전 약속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문전 박대를 당했고 어느 곳에서는 가져간 자료를 제대로 소개도 못하고 가격만 추궁 당하기도 했다. 호텔에서, 렌터카 데스크에서, 택시에서 내 예악 정보를 보거나 어디 다니냐는 질문을 통해 직장명을 알고 나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최고의 회사라고 이야기 하는 일반인들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

이미지가 중요하게 먹히는 컨슈머 시장과 기업 시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기선 단순하지만 가혹한 논리만 통용된다. 얼마나 당신의 이익을 양보해서 내게 돌려줄거냐는 질문. 개인은 인격이 있지만 법인은 인격이 없다. 그래서 그 첨예한 창끝에 서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건 항상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개발을 뛰쳐나와 이곳에 서기로 한건 결혼 이후 가장 잘한 결정인듯 싶다. 계속 개발 라인에 있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넓어진 시야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유독 한국의 개발자들은 시장의 흐름과 동떨어진, 오로지 개발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어찌보면 순진한 하지만  조금은 답답한 곳. 성향이 맞다면 모를까 나와는 맞지 않는다.

어쨌든 이곳에서 얻게된 약간의 여유를 이용해 고민중인 것들을 정리해봐야겠다. 어떻게 하는게 최선인지. 아니. 어떻게 하는게 가장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향일지.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상실 - 喪失

지난 이틀간의 덴버 일정을 마치고 애틀란타로 넘어오는 길은 유난히 힘들었다. 애틀란타에는 강항 비바람이 몰아붙이고 있었고 공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비행기는 쉴 새 없이 흔들렸고 활주로에 내릴때는 동체를 크게 좌우로 한번 흔들어서 나지막하게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얼마전 아시아나 항공 사고가 떠올랐으리라.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길도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두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애틀란타에서 운전하기는 처음이었고 밤에, 비까지 오는데다 한박자씩 반응이 느린 네비게이션은 끊임 없이 나를 괴롭혔다. 5일간 지낼 숙소인 탓에 레지던스인으로 잡았는데 출입구를 찾지 못해 차에 내려 비를 쫄딱 맞아야 했다. 자정이 넘도록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있어서 오는 길에 사온 냉동 피자를 전자렌지에 넣어놓고 이래저래 힘들었던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좋은 소식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기분 좋게 집으로 연결한 전화를 통해 전해진, 외할머님께서 소천 하셨다는 청천벽력같은 아내의 이야기. 계속 안좋으시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공교롭게도 내가 출장을 나온 시기에 세상을 등 질 수가 있으신건지. 어렵다는 걸 알았지만 급하게 알아본 항공권으로는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발인 다음날 오후 늦게나 되어야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상황.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각별한 사람을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외할머님을 꼽는다. 젖먹이 시절, 생계를 위해 항상 시간이 없으셨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철이 들 때까지 날 키워주신 분이 외할머님이었다. 유난히도 고집이 세서 한번 울기 시작하면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는 나를 말 없이 거둬주신 분도 그분이었다. 울고불고 하는 어린 나한테 지쳐서 내다 버리라고 화를 내시는 아버지, 다정하게 다독이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셨던 어머니로부터 나를 데리고 나와서 몇시간씩 업고 집 앞 역전 광장을 얼르면서 돌아다니시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초등학생때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죽을 뻔 했던 나를 살리신 분도 그분이었고 지나치게 엄격했던 집안 분위기에 힘들어 하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신 분도 그분이었다. 잠이 들 때면 외할머니 품에서 잠이 들었고 조금 더 큰 후에는 (내 기억에 유치원 정도였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갈때면 할머니 손을 잡고 끌어드리기도 했다. 항상 몸이 안좋으신 탓에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셔서 진지를 드시고 나면 할머니 등을 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두드려 드리는 것이 싫지 않은 식후 일상이 되었었고 더이상 날 봐 줄 필요가 없게 되서 지방으로 내려가신 후에는 방학마다 할머니한테 가서 한달씩 있다 오는 재미로 방학을 기다리곤 했다. 같은 음식을 연달아 내놓는 일이 없을 정도로 그 한달은 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나를 위해 100% 발휘해 주시는 한달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찾아 뵈었을 땐 치매가 심해져서 날 알아보지 못하셨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바라보며 살아 계신 것만으로 좋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더 고생하시지 말고 편안하게 가시기를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렇게 가시는 길도 뵙지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내와의 전화를 끊고 바닥에 주저 앉아서 통곡을 했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콧물하고 범벅이 되서 한참을 그렇게 애가 되서 울었다. 이번 출장이 끝나고 나면 바로 돌아오는 여름 휴가때 한번 더 찾아 뵙자고 아내하고 일정을 잡았었는데, 출장 끝나고가 아니라 출장 전에 다녀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정말로 한달음에 달려가서 가시는 마지막 길을 지켜드리고 싶다. 이 상실감을, 이억만리 타지에서 찾아온 이 상실감을 도대체 어떻게 추스려야 하는 걸까.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순대국, 자전거, 목욕

어제 두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순대국을 사주었다. 평소 되장국을 좋아하는등 입맛에 관해 까다롭게 굴지 않는 편이라 잘 먹지 않을까 기대는 했었는데 기대했던것 보다 훨씬 잘 먹어서 깜짝 놀랬다. 첫째도 둘째도 최고라며 손가락을 치켜들어가며 아구아구 먹어대는 통에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켰을 정도.

점시을 늦게 먹고 나선 동물이 보고 싶다는 첫째 때문에 갑작스레 에버랜드에 갔다. 원래 서울 대공원에 가려 했다가 차가 너무 밀려서 포기한터라 아내와 서로 쳐다보다 가기로 합의하고 다녀왔다. 사실 목적은 자전거. 어린이날 선물로 실은 유아용 자전거를 사줬는데 어제 아침에 조립을 해놔서 그걸 아는 첫째가 조바심이 나 있었던 것. 동물원 포기하곤 동네 공원 가려 했었지만 아이가 아침에 악속한대로 동물 보러 가자는데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둘째와 서로 자전거 타겠다고 엄청 싸을것 같더니 나름 무난하게 서로 번갈아 가며 타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줬다. 기특한 녀석들! 암튼 자전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버랜드 있는동안 두 녀석 모두 너무나 행복해하고 잘 놀아서 아내와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집에 돌아와 두 아들과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같이 들어가 셋이서 깔깔거리며 물장난을 하며 든 생각은 부모라는 존재가 된 이후 참 단순해 진 것 같다는 것. 아이들이 웃으면 행복해하고 울면 불행해 한다.

그래서 결론은?

하루종일 웃음이 끊기지 않았던 아이들 덕분에 너무나 행복으로 충만했던 하루였다는 것. ^^

2013년 4월 27일 토요일

어린이집이 가져온 변화

지난 3월부터 첫째와 둘째 모두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첫째와 둘째 모두 각자 큰 변화를 격고 있는데,

첫째 아이에게는 친구가 생겼다. 그동안 집에서만 지내고 간혹 엄마손을 잡고 강좌등을 다닌게 고작이어서 또래 친구가 없었는데 어린이 집을 다니면서 이름을 기억하고 함께 놀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나름 툭탁거리는 라이벌도, 늘 함께 노는 절친도, 공룡놀이를 함께 하는 무리(아이는 그 무리를 공룡팀 이라고 부른다)도 생긴듯 하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격는 일이겠지만 아이가 퇴근한 내 무릎에 앉아 조잘조잘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걸 듣고 있는건 참 믿어지지 않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그 정도의 큰 변화는 없지만 적어도 어린이집 에서 만큼은 기저귀를 뗐다. 대소변을 모두 잘 가린단다. 집에 와선 다시 애기가 되서 못가리지만 그거야 부모한테 응석부리느라 그러는 거고 나가선 나름 의젓하게 군다니 대견하다. 가뜩이나 말이 늦어서 항상 애기 같았는데 마냥 애기인건 아니었나보다.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전자책

지난 몇달간 내 안드로이드 기기로 책을 읽는데 심취해서 제법 많은 책을 읽고 있다.(사실 요즘 게임을 할 수 없을만큼 저사양 폰이라 달리 할 것도 없다)

주로 이용하는 앱은 교보 도서관 앱인데 이 앱을 통해 졸업한 대학 도서관 전자책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읽는 책 수가 늘면서 두가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아쉬운건 신작은 대부분 도서관에 들어오는게 늦고 들어와서도 대출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 결국 아무래도 어디서든 구입을 해야 하는데 구글의 플레이북이든 교보든 전자책은 구입한 플랫폼에 종속된다는 사실이다. 쉽게말해 구글에서 구입한 전자책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려면 안드로이드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두번째 아쉬운건 종이책 소장에 대한 아쉬움이다. 전자책을 대출해서 보는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구입하는 경우에는 왠지 종이책이 아쉽다. 다 읽은 책을 책장에 꽂아 두고 싶은, 논리가 아닌 감상적인 이유로.

어디서 구입했든 관계없이 기기의 플랫폼을 넘나들며 컨텐츠를 소비하려면 무엇이 충족되야 할까?

2013년 4월 5일 금요일

멘토와 멘티

화사에서 하는 대학생 대상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했다. 회사는 회사대로, 직원들은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각자의 목적이 있어 이같은 일을 하고 있을테니 남들이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이유가 필요할 뿐.

내가 참여한 이유는, 내가 그들 나이였을때 나 역시 정말로 누군가의 도움을, 요즘 흔한 표현대로 멘토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대로 살기보다 의문을 갖고 다른 방향을 바라볼 때 얼마나 정보가 부족한지, 얼마나 막막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 마흔도 넘지않은 주제에 누군가의 멘토링을 한다는게 조금 주제넘은 일이라는 것은 잘 안다. 내가 해줄 몇 마디쯤 그들은 이미 책에서 습득하거나 부모님께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경험이 있기에 나 역시 안다. 단지 내 생각과 의견에 동의를 해주고 지지해주는 선배가 있다는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물론 내가 생면 부지인 그들의 삶을 걱정하고 내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를 해줄 필요는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남남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게 그 당시 내게도 조언을 기꺼이 해 준 몇몇 분들이 있었고 그 조언들이 나로 하여금 내 생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끈기를 줬기 때문이다. 받았으니 그만큼 다시 베푼다는 지극히 간단한 논리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판을 벌여 줬으니 이만한 기회도 없다.

한번 해보자. 도움을 얼마나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면 무언가 할 수 있겠지.

2013년 3월 24일 일요일

보고서

심한 몸살 감기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어 끙끙대다 차라리 움직이자는 생각에 새벽부터 일어나 따뜻한 차 한잔을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일요일인 오늘도 아침에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오고나면 출근해야 하니 지금 마시는 차 한잔에 감기가 떨어지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심플하다. 내일, 그러니까 월요일에 사업부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하는 자리와 안건이 있다. 그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보고 준비 자체는 너무나 이른 시기에 쉽게 끝냈다. 다른 이의 도움을 크게 받을 것도 없었고 오히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아이템이었기에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업부장이 제시한 생각에 사업부장을 제외한 회사의 해당부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었으니 역시나 반대 입장인 내가 의견을 개진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 하다. 모두가 반대했던 일에 사업부장이 한번 더 검토해보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했고 마지못해 내게 떨어진 숙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

한주를 마감하는 날이어서 보스들은 모두 회의에 들어가 있고, 오후에는 조직강화 행사도 있고 해서 약간은 느긋한 시간이었는데 그 때 월요일에 보고할 자료를 다시 열어서 혼자 리뷰하다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화 해서 표현하자면 현재의 방식에 대해 사업부장이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제안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검토 보고를 하는게 우리 팀에 주어진 숙제였고 담당자로 내가 적임자라는 팀장의 판단에 내가 직보를 하게 된 아이템이었다. 사업부장의 제안은 제품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모르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이의 제기였고 내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의견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를 사업부장이 제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해프닝으로...그러니까 안해도 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숙제로 인지하고 있었다. 보고서가 복잡할 필요도 없고 안되는 이유만 명료하게 정리하면 끝낸다고 판단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시간이 남는 김에 파트장 리뷰까지 모두 끝낸 자료를 마치 남이 만든 자료 보듯 리뷰하다가 내가 받은 느낌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아이디어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온당치 않습니다' 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정성, 시장 트랜드, 응용처 요구 등등 모든 부분에 대한 검토결과 부정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보고서를 보는 내내 계속 찜찜했다. 보고서의 결론이 '당신 아이디어가 틀렸습니다' 라면 무엇하러 보고서를 작성하는가? 구두 보고면 되지 않을까? 내가 만일 사업부장이고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가 궁금한 거라면 굳이 회의시간까지 잡아가며 보고 받으려고 할까? 맞는지 틀리는지만 알면 되는 것이니 간단히 이메일을 통한 서면보고로 끝내도 되는 문제를 갖고 말이다.

금요일 오전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당신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라는 기조의 보고서를 전부 다 뜯어 고쳐서 '무엇이 맞는 방법입니다' 라는 보고서로 바꿔야 된다는 것이었다. 사업부장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가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방식이 정답이라면 왜 정답인지, 혹 제3의 방법이 있다면 왜 그것이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필이면 주말을 앞두고 그 생각이 든 까닭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준비를 하고 있다. 금토 양일간 자료준비 및 논리구성을 잡아놓고 일요일 하루만에 초안을 완성하고 월요일 아침에 파트장과 리뷰를 해야 하는 빡빡한 준비 일정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진행하려고 달리고 있다. 정 준비가 부족하다면 월요일 사업부장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추가적으로 하루이틀 더 준비해서 다시 보고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할 생각이다. 팀장과 파트장은 기겁을 하겠지만 까짓거 어려운일은 아니지 않은가? 냉정하게 말해서 시급을 다투는 의사결정 사안도 아니고.

더 심각한 것은, 금토 양일간 '무엇이 맞는 방법인가' 를 기조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지금의 방법이 최선이 아닐수도 있다는 기미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금 이른 판단이긴 하지만 사업부장이 옳을 수 있다. 그의 아이디어가 맞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제기한 아이디어는 틀렸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은 근본적으로 옳을 수 있다. 그걸 명확히 하기 전엔 내 입으로 이 사안을 남에게 보고할 수 없다. 토요일 출근해서 작업하다보니 일이 엄청나게 커져 버렸음을 느꼈다. 솔직히 이 내용을 어떻게 소화시켜서 보고를 해야 할지 보고서의 흐름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다. 오늘 출근해서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월요일 아침 동료들에게 SOS를 타전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금요일 아침에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는 하나다. 안된다고 말하는 전문가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초심자중 누가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자각이다. 경영자로써의 자질이 아닌 제품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으로 따지면 사업부장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초심자다. 흔히 나와 내 동료들은 '사업부장이 너무 자기가 이끄는 사업부의 제품을 모른다' 는 투덜거림을 안주로 삼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사업부장이 나 만큼 제품과 기술을 안다고 하면 회사에서 내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그가 내게 의존하게 하면 할수록 내 가치가 올라가는 것인데 한편으로 그가 모른다고 투덜거리고 있으니 이만큼 어처구니 없는 모순이 또 없다.

그는 넓고 얕게 아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의 깊이를 보충해주는 역할이 전문가인 내게 주어진 과제 아니던가? 그런데 초심자인 그도 새로운 방법을,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아래 사람들로부터 '터무니없는 생각' 이라는 비아냥 아닌 비아냥을 들으면서까지 동분서주 하는데 사내에서 나름 전문가라고 인정받고 있는 내가 그런 돌파구를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를 생각해 본 금요일 아침,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사업부장이 던진 화두는 내가 진작에 검토했어야 하는 일이었고 그가 의문을 제기했을 때 그자리에서 바로 검토했던 결과를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던 일이어야 했다. 내가 보냈던 비웃음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내게 돌아왔다.

그래서 휴일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원칙까지 반쯤 어겨 가면서(반나절씩 일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집에서 보내니까 반쯤 어긴거라고 위안중...) 회사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다. 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솔직히 내 인생의 비전을 위해 다음 계단을 밟아야 하는 시점과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부를 떠날 수도,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비전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잘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지금처럼 보수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사고 방식을 고수하는 한 그 비전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일 내가 돌이켜 볼 수 있는 흔적을 위해 이 글을 남겨 둔다. 잊지 않기 위해서.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나른한 삶에 대한 기억

잠이 오지 않아 예전 블로그 글들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왕십리에서 자취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아마도 내 블로그에서 가장 감상적인 글을 남겼던 시기가 그 때였기 때문이리라. 글 수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어쩌면 그렇게 감상적인지.

그 때 살던 오피스텔이 15층이었고 창문 바로 옆에 침대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매일 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창문턱에 술이 담긴 유리잔을 한잔 올려놓고는 야경을 보면서 잠이 들었고, 휴일 아침 늦잠을 자기라도 한 날이면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일어날 수 있었다. 날이 좋은 저녁이면 멀리 사는 사촌 동생이 맥주 한잔 하자며 찾아올만큼 멋진 맥주집도 집 바로 옆에 있었다. 요약하면 감상적이 안될래야 안 될 방법이 없었던 환경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한장의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 찍는 취미가 없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 때 내려다 보던 그 야경을 다시 보기 어렵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이 되서 번듯한 건물이 왕창 들어섰을텐데.

그 때는 참 젊었다. 아니 어렸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1층 화단에서 올라오는 비 냄새와 창문을 두드리는 비소리를 즐기며 행복해 했었고 TV하나 없는 좁은 방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즐거워 했었다. 조금은 나른했던 날들이었고 조금은 여유 있었던 날들이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치열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에 잔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박수를 쳐주며 즐겁게 웃을지도. 여하튼 학사경고를 받고도 멋적게 웃어 버리고는 여전히 등산 배낭을 책가방으로 삼아 학교를 다니다 날이 좋으면 그 길로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었으니 그걸 나른한 삶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점잖은 표현인걸까? 어쨌든 요즘의 20대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른함이 미덕 까지는 아니라도 흠은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다시금 사진을 하고 싶어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어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걸 보면 나른한 삶에 대한 욕구가 제법 밀려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어렵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듣는 음악들은 거의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

덧붙임.
사진 대신, 당시 살던 오피스텔에서 야경을 내려다 보며 쓴 시를 링크. :-)
http://anecdotist.blogspot.kr/2006/04/blog-post_114431171765330931.html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아이의 꿈

규헌이는 커서 공룡이 되는게 꿈이다. 시기에 따라 용감한 공룡, 튼튼한 공룡 혹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같이 구체화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핵심은 공룡이다. 그런데 어제 폭탄 선언을 했다. 공룡 과학자가 되겠단다. 털썩. 공룡 화석을 탐구하는 다큐를 너무 틀어줬나 보다.

아들! 하늘은 날아보지도 못했고 고래는 근처도 안가봤는데 인간의 직업이 꿈이 되기에 다섯살은 너무 이르단다. 아빤 우리 규헌이가 좀 더 공룡이었으면 좋겠는데. 응?

PS
그리고 이왕 과학자를 할거면 차라리 물리를 하렴. 공룡 말고. ㅡㅡ;

2013년 3월 6일 수요일

도시

[도시, 2013]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부부 그리고 서로의 커리어 관리에 대해

아침을 먹으면서 웹서핑을 하다 가슴을 후벼파는 글을, 이혼하려 한다는 글을 보고 끄적끄적.

내가 선택했던 커리어 패스가 그래서겠지만 유난히도 내 주위에는 고학력자들이 많다. Ph.D. 를 받은 사람도 많고 받고 있는 사람도, 받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도 많다.

세상 어느일이 쉽겠냐마는 사실 공부해서 먹고 살겠다는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적당히 하면 적당히 살 수 있는 다른 직종과 달리 학업은 그 안에서도 선두 그룹에 들지 않는 한 결코 적당히 살 수 없다. 그래서 결혼한 Ph.D 예정자들이나 Ph.D 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 천재로 불러도 될 만한 사람들 뿐인데 그 사람들을 뛰어 넘어야 '먹고 살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기 보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고 젊은 시절을 청백리 처럼 사는 길을 걷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공부로 무언가를 이룬다는게 힘든 일이다 보니 가족의, 정확하게 말하면 배우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지원은 다시 엄청난 부담으로 되돌아 온다. 자신의 학비는 자신이 모두 해결한다고 해도(사실 결혼한 Ph.D 예정자들에겐 기본이어야 한다) 가장으로써 느끼는 책임감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때문에 나도 학위를 받기 전 2년간 만성적인 위염과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신체적 부작용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그렇게 힘든 걸 배우자에게 말 할 수도 없다. 칭얼대는 것 처럼 보일 것 같은 두려움에.  

내가 읽은 이혼하려 한다는 글도 바로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름 성공한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나름 좋은 학교를 한국에서 나왔고 Ph.D를 받은 후에 미국에 넘어와서 포닥을 하고 괜찮은 직장을 다니며 성공한 삶을 사는 듯 했으나 남편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동안 자신은 애들 낳아서 기른 것 말고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자괴감에 남편에게 질투심으로 쉽게 폭발하고 단절된 커리어를 핑계로 자신은 별다른 커리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남편이 크게 성공해서 자신이 부유한 삶을 살게 해주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아내와의 갈등을 더이상 견디지 못해 이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여러가지 댓글들이 있었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한 분들은 본인의 커리어 관리를 스스로 포기해놓고 이제와서 남편에게만 요구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들을 했다. 미국으로 넘어온 이상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스스로의 커리어 관리에 신경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댓글들은 당연히 그 오랜 시간 희생해 왔는데 당연히 이해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들이었다.   모두 맞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코멘트를 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래의 두가지 내용은 가슴 깊이 후벼파는 통증을 느꼈다.  

1. 본인의 커리어 관리는 본인 몫이라고 한다면, 부부로 함께 사는 의미가 뭔가요? 배우자가 잠도 안자고 일한다면 미친듯이 화가 나는게, 다른 이유가 아닌 상대방이 걱정되서 화가 나는게 부부입니다. 커리어 관리라고 다를게 없습니다.  

2.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의 진로와 적성 마음가짐 등에 온갖 신경을 써 오셨겠죠. 그런데 혹시 아내분의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잘 하는게 뭔지 알고 계시나요? 아니면 아내분이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 그게 정말 아내분이 잘하고 자신있어 하는 일이라고 확신 하시나요?  

그 수많은 댓글 중 이 두가지는 내게 큰 충격을,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줬다. 정말로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내 주위 Ph.D 는 대부분 아내가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양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언뜻 보면 돈 잘버는 성공한 남편 만나서 인생 참 편하게 산다는 질시를(주로 친구들에게서)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해보고 싶은 걸 참고 양보하며 산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집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젊은 시절 그런 모습은, 남편이 학위를 받아서 외국으로 나가고 거기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등은 성실한 남편과 함께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간다고 보일 수 있다. 언뜻 화려해 보이는 모습에(보이지 않는 부분은 지지리 궁상일지라도) 주위에서 부러워도 하고 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자기 최면의 힘으로 버티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들은(감히 우리 라고 지칭하려 한다) 과연 배우자의 커리어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아이들을 키워놓고 막상 더이상 예전처럼 바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 왔을때 어디서 삶의 가치를 찾을 것인가가 정말로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닐까? 배우자에게 알아서 고민하기 전에 나 스스로 부터 말이다.

요리를 잘한다? 그럼 그걸 그 사람의 커리어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고민해 봤는가? 아니, 그 전에 정말로 내 배우자가 자신있어 하고 재능이 있는 분야가 뭔지 알고 있는가? 전업주부를 원하는지 아니면 무언가 삶에서 의미있는 것을 한가지라도 더 하면서 살고 싶어하는지도 명확히 모르지 않는가? 한국의 문화라는 핑계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내가 힘들다고 해서 배우자의 희생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그런 희생을 나도 모르게 당연히 받아들이거나 혹 반대의 희생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부부로써 함께 사는 의미가 한가지 분명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