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일요일

보고서

심한 몸살 감기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어 끙끙대다 차라리 움직이자는 생각에 새벽부터 일어나 따뜻한 차 한잔을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일요일인 오늘도 아침에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오고나면 출근해야 하니 지금 마시는 차 한잔에 감기가 떨어지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심플하다. 내일, 그러니까 월요일에 사업부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하는 자리와 안건이 있다. 그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보고 준비 자체는 너무나 이른 시기에 쉽게 끝냈다. 다른 이의 도움을 크게 받을 것도 없었고 오히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아이템이었기에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업부장이 제시한 생각에 사업부장을 제외한 회사의 해당부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었으니 역시나 반대 입장인 내가 의견을 개진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 하다. 모두가 반대했던 일에 사업부장이 한번 더 검토해보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했고 마지못해 내게 떨어진 숙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

한주를 마감하는 날이어서 보스들은 모두 회의에 들어가 있고, 오후에는 조직강화 행사도 있고 해서 약간은 느긋한 시간이었는데 그 때 월요일에 보고할 자료를 다시 열어서 혼자 리뷰하다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화 해서 표현하자면 현재의 방식에 대해 사업부장이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제안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검토 보고를 하는게 우리 팀에 주어진 숙제였고 담당자로 내가 적임자라는 팀장의 판단에 내가 직보를 하게 된 아이템이었다. 사업부장의 제안은 제품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모르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이의 제기였고 내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의견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를 사업부장이 제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해프닝으로...그러니까 안해도 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숙제로 인지하고 있었다. 보고서가 복잡할 필요도 없고 안되는 이유만 명료하게 정리하면 끝낸다고 판단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시간이 남는 김에 파트장 리뷰까지 모두 끝낸 자료를 마치 남이 만든 자료 보듯 리뷰하다가 내가 받은 느낌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아이디어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온당치 않습니다' 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정성, 시장 트랜드, 응용처 요구 등등 모든 부분에 대한 검토결과 부정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보고서를 보는 내내 계속 찜찜했다. 보고서의 결론이 '당신 아이디어가 틀렸습니다' 라면 무엇하러 보고서를 작성하는가? 구두 보고면 되지 않을까? 내가 만일 사업부장이고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가 궁금한 거라면 굳이 회의시간까지 잡아가며 보고 받으려고 할까? 맞는지 틀리는지만 알면 되는 것이니 간단히 이메일을 통한 서면보고로 끝내도 되는 문제를 갖고 말이다.

금요일 오전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당신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라는 기조의 보고서를 전부 다 뜯어 고쳐서 '무엇이 맞는 방법입니다' 라는 보고서로 바꿔야 된다는 것이었다. 사업부장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가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방식이 정답이라면 왜 정답인지, 혹 제3의 방법이 있다면 왜 그것이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필이면 주말을 앞두고 그 생각이 든 까닭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준비를 하고 있다. 금토 양일간 자료준비 및 논리구성을 잡아놓고 일요일 하루만에 초안을 완성하고 월요일 아침에 파트장과 리뷰를 해야 하는 빡빡한 준비 일정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진행하려고 달리고 있다. 정 준비가 부족하다면 월요일 사업부장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추가적으로 하루이틀 더 준비해서 다시 보고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할 생각이다. 팀장과 파트장은 기겁을 하겠지만 까짓거 어려운일은 아니지 않은가? 냉정하게 말해서 시급을 다투는 의사결정 사안도 아니고.

더 심각한 것은, 금토 양일간 '무엇이 맞는 방법인가' 를 기조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지금의 방법이 최선이 아닐수도 있다는 기미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금 이른 판단이긴 하지만 사업부장이 옳을 수 있다. 그의 아이디어가 맞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제기한 아이디어는 틀렸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은 근본적으로 옳을 수 있다. 그걸 명확히 하기 전엔 내 입으로 이 사안을 남에게 보고할 수 없다. 토요일 출근해서 작업하다보니 일이 엄청나게 커져 버렸음을 느꼈다. 솔직히 이 내용을 어떻게 소화시켜서 보고를 해야 할지 보고서의 흐름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다. 오늘 출근해서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월요일 아침 동료들에게 SOS를 타전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금요일 아침에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는 하나다. 안된다고 말하는 전문가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초심자중 누가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자각이다. 경영자로써의 자질이 아닌 제품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으로 따지면 사업부장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초심자다. 흔히 나와 내 동료들은 '사업부장이 너무 자기가 이끄는 사업부의 제품을 모른다' 는 투덜거림을 안주로 삼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사업부장이 나 만큼 제품과 기술을 안다고 하면 회사에서 내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그가 내게 의존하게 하면 할수록 내 가치가 올라가는 것인데 한편으로 그가 모른다고 투덜거리고 있으니 이만큼 어처구니 없는 모순이 또 없다.

그는 넓고 얕게 아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의 깊이를 보충해주는 역할이 전문가인 내게 주어진 과제 아니던가? 그런데 초심자인 그도 새로운 방법을,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아래 사람들로부터 '터무니없는 생각' 이라는 비아냥 아닌 비아냥을 들으면서까지 동분서주 하는데 사내에서 나름 전문가라고 인정받고 있는 내가 그런 돌파구를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를 생각해 본 금요일 아침,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사업부장이 던진 화두는 내가 진작에 검토했어야 하는 일이었고 그가 의문을 제기했을 때 그자리에서 바로 검토했던 결과를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던 일이어야 했다. 내가 보냈던 비웃음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내게 돌아왔다.

그래서 휴일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원칙까지 반쯤 어겨 가면서(반나절씩 일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집에서 보내니까 반쯤 어긴거라고 위안중...) 회사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다. 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솔직히 내 인생의 비전을 위해 다음 계단을 밟아야 하는 시점과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부를 떠날 수도,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비전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잘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지금처럼 보수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사고 방식을 고수하는 한 그 비전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일 내가 돌이켜 볼 수 있는 흔적을 위해 이 글을 남겨 둔다. 잊지 않기 위해서.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나른한 삶에 대한 기억

잠이 오지 않아 예전 블로그 글들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왕십리에서 자취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아마도 내 블로그에서 가장 감상적인 글을 남겼던 시기가 그 때였기 때문이리라. 글 수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어쩌면 그렇게 감상적인지.

그 때 살던 오피스텔이 15층이었고 창문 바로 옆에 침대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매일 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창문턱에 술이 담긴 유리잔을 한잔 올려놓고는 야경을 보면서 잠이 들었고, 휴일 아침 늦잠을 자기라도 한 날이면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일어날 수 있었다. 날이 좋은 저녁이면 멀리 사는 사촌 동생이 맥주 한잔 하자며 찾아올만큼 멋진 맥주집도 집 바로 옆에 있었다. 요약하면 감상적이 안될래야 안 될 방법이 없었던 환경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한장의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 찍는 취미가 없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 때 내려다 보던 그 야경을 다시 보기 어렵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이 되서 번듯한 건물이 왕창 들어섰을텐데.

그 때는 참 젊었다. 아니 어렸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1층 화단에서 올라오는 비 냄새와 창문을 두드리는 비소리를 즐기며 행복해 했었고 TV하나 없는 좁은 방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즐거워 했었다. 조금은 나른했던 날들이었고 조금은 여유 있었던 날들이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치열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에 잔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박수를 쳐주며 즐겁게 웃을지도. 여하튼 학사경고를 받고도 멋적게 웃어 버리고는 여전히 등산 배낭을 책가방으로 삼아 학교를 다니다 날이 좋으면 그 길로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었으니 그걸 나른한 삶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점잖은 표현인걸까? 어쨌든 요즘의 20대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른함이 미덕 까지는 아니라도 흠은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다시금 사진을 하고 싶어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어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걸 보면 나른한 삶에 대한 욕구가 제법 밀려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어렵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듣는 음악들은 거의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

덧붙임.
사진 대신, 당시 살던 오피스텔에서 야경을 내려다 보며 쓴 시를 링크. :-)
http://anecdotist.blogspot.kr/2006/04/blog-post_114431171765330931.html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아이의 꿈

규헌이는 커서 공룡이 되는게 꿈이다. 시기에 따라 용감한 공룡, 튼튼한 공룡 혹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같이 구체화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핵심은 공룡이다. 그런데 어제 폭탄 선언을 했다. 공룡 과학자가 되겠단다. 털썩. 공룡 화석을 탐구하는 다큐를 너무 틀어줬나 보다.

아들! 하늘은 날아보지도 못했고 고래는 근처도 안가봤는데 인간의 직업이 꿈이 되기에 다섯살은 너무 이르단다. 아빤 우리 규헌이가 좀 더 공룡이었으면 좋겠는데. 응?

PS
그리고 이왕 과학자를 할거면 차라리 물리를 하렴. 공룡 말고. ㅡㅡ;

2013년 3월 6일 수요일

도시

[도시,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