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8일 일요일

정치의 실종

정치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가는 쉽지 않은 논제다. 더구나 국가의 궁극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에서 법제화된 내용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에 의해(더구나 삼권분립의 원칙으로 보장받는 세번째 권력이기까지 하다) 위헌이라는 명분으로 부정될 수 있는 현정치 체제에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끊어서 정리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의 사법화라는 단어가 어느정도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반대인 사법의 정치화라는 단어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단에 국민과 정치가 집단 모두가 찬성 혹은 반대의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정치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사법의 판단 영역에서처럼 흑백의 논리로 양분되기 어려운 사안이며 단순히 정치가나 이해 관계자들만의 몫이 아닌, 언론과 모든 국민의 행동과 의사가 결집되는 행위라는 전제를 놓고 생각해볼때,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정치가 실종되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거물 간첩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다. 더군다나 단순 첩보 활동도 아닌 '내란 음모죄'로 잡아들였으니 당분간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사법 영역에서의 판단이 나오기 전인, 정치적 판단이 주류를 이룰 수 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 마땅한 상황은 그의 혐의에 대한 시끌벅적한 정치적 논쟁이다.

그런데 한동안 지켜본 이 사태의 꼬락서니(더 적합한 단어를 찾기가 불가능 했다)는 날이 갈수록 한심한 형태로 흐르고 있다.

법무부에선 통진단 해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으며 언론에서는 이미 그를 간첩으로 가정하고 이러한 간첩에게 국회 의석을 내 준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한 통탄을 하고 있다. 국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체포 동의안을 가결했으며 인터넷은 꼴보기 싫은 북한 간첩에 대한 질타로 끓고 있다. 정치적 판결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모든이가 그를 최초로 빨갱이라고 지목한 이에게 '너도 빨갱이냐'는 지목을 받을가 두려워 똑같이 돌을 던지자고 소리지르고 있다. '악덕지주' 라고 지목되면 그자리에서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던 60년 전 전쟁터의 모습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다.

아무래도 '빨갱이' 라는 단어가 '국가 보안법' 이라는 단어가 주는 원초적인 두려움에 대해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때 명백한 증거도 없이, 혐의에 대한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고인을 범죄자로 몰고가는 여론과 사법기관, 그리고 정치세력들에 대해 울분을 토했던 많은 이들이 똑같은 상황에서 이석기 의원은 빨갱이니까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죽창 끝에 겨누어진 통진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 세력들이 혹여 '빨갱이' 로 지목당할까봐 목을 움추린 것도 부족해서 의원직 제명이라는, 똑같이 돌로 쳐죽이자는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국보법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던 그들에게 국보법은 뼈속까지 새겨진 공포인가 보다. 그들은 벌써 이석기 의원을 간첩 그것도 전쟁시 후방에서 내란을 일으키는 빨치산의 후예로 단정짓고 모든 판결을 마쳤다. 명백한 사법의 정치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법화된 정치는 선동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당성은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석기 의원이 정말로 국정원이 제기한, 내란 음모를 꾸몄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법원이 그의 신변에 대한 구인을 허락한 것을 보면 국정원이 기소를 위해 확보한 증가들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정말로 북한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군사력의 주적의 끄나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판단'은 사법의 영역에서 충분한 논쟁과 판단이 이루어진 후 나와도 늦지 않다. 그것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정치적 정의다.

막말로 그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통진당을 모두 해산한 이후에 이석기 '전'의원의 혐의가 증거 불충분에 의한 무죄로 판결난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설사 유죄로 판결이 나더라도 박탈과 해선에 따른 '유죄' 선고는 행위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억지 판결이라는, 사법의 정치화에 의한 결정이라는 주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하지만 차분하게 모든 혐의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마치고 나온 결론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너무나 실망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작금의 사태는 최종적으로 이석기 의원이 유죄로 나오든 무죄로 나오든 한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묻겠다.
바르다는 의미의 한자를 앞에 내세운 그 단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서야 하는 시점이 있다면 그게 언제이겠는가? 선택해야 한다면, 보편적 공정함과 주관적 자기주장 중 무엇을 선택해야 겠는가?

언론인들에게 묻겠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대들이 늘상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펜에 의한 범죄는 칼에 의한 범죄보다 과중함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뒷골목 양아치의 칼보다 더 쉽게 펜이 휘둘러 지고 있다. 지금 쓰여지는 기사에 fact가 많은지 아니면 가정에 의한 내용이 많은지 판단해본 적이 있는가?

네티즌들에게 묻겠다.
인터넷을 정당한 의견 표출의 장소로 삼는이와 그저 누구든 욕할 상대만 있으면 만족하는 찌질이들간의 차이가 무엇인가? 나는 그대들이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기소 단계부터 범죄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몰아가는 이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이대며 분노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대들의 정의감은 과연 무엇이 목적인가? 그저, 삶의 고단함을 배설하는 것이 목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