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기일 아침

지난 주말 새벽같이 일어나 청주에 다녀왔다. 지난주 내내 목감기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전화통화도 못하시던 어머니가 걱정되어 들여다 보기 위해서였다. 뵙고 바로 올라오는게 그래도 쉬실 수 있게 하는거라 생각해 혼자 내려갔다. 아이들을 달고 가봐야 유난히 할머니와 애틋한 첫째가 울고 불고 할테니 오히려 악영향일게 뻔하니.

아내가 싸준 곰탕과 반찬을 한보따리 차에 싣고 내려가는데 마음이 묵직했다. 아버지께서 먼저 가시고 혼자 지내신지 9년. 그 외로움의 깊이가 얼마인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혼자 자취할때 감기에 걸려서 혼자 방에 누워 있는것도 그리 서러웠는데 하물며.

오늘은 9번째 아버지 기일이다. 유난히 남아계신 분이 애틋하다.

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게임 그리고 교육

내가 아직 게임에 빠질 나이의 자녀가 없어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질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귀를 잡힌채 끌려가야했던 세대가 놀이터에서도, 골목에서도 친구들과 놀 수 없어 가상공간으로 뛰어들어 관계를 맺고자 하는 그들의 자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하지만 실상은 아이들이 게임을 안하고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는 것 아닌가? 이번 법안에 적극 찬성하는 단체들을 보면 그렇다. 그놈의 공부 공부 공부.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공부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마지막으로 해본 공부라곤 고3때 대입이 끝인 사람들이 십대의 덜 여문 생각에서 멈추고 굳어진 공부에 대한 선입견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대학원을 말하는게 아니다. 평생 자신을 갈고 닦는 공부를 해온 사람들은 단판 승부로 모든걸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답답한 생각인지 안다.

세살, 다섯살인 우리 아이들을 사교육을 열심히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는 동네 다른 부모들과 잘 어울리질 못한다. 모이면 대화가 안된단다. 우리집만 유별난 집 취급을 받는 중. 어쩌면 아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리며 플레이스테이션2와 몇몇 타이틀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게 이상하긴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말도 어눌한 아이들을 수학 영어 선행을 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어떻게 생각해도 병적이다.

하지만 난, 교육은 성공의 수단이 아닌 인맥 형성의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 독야청청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붇는 요즘의 사교육 시장은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것이 더 좋은 인맥을 만들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기회라는 것이 모든것을 희생하고 나 혼자 잘나야 할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어로 말하자면 human network에 의해 결정된다. 평생을 도서관에서 혼자만 공부해서 고시에 붙는건 시험까지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관점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하는게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적어도 게임 이외에 공부에 방해 된다고 생각되는 모든것을 아이들에게서 빼앗아 버린 어른들이 할 말은 아닌것 같다. 나에겐 지금의 거센 반발은 마지막 남은 장난감을 지키려는 이들의 절규로 들린다.

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둘째

어제밤, 잠지리에 누웠다가 벌어진 실갱이에 결국 둘째를 안고 나가 호되게 야단을 쳤다. 야단 맞을 때는 안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침실에 돌아오면 떼쟁이가 되는 통에 그때마다 다시 안고 나가길 서너차례. 결국 녀석이 고집을 꺾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고집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자기 싫다는 것 더하기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자세로 안아주질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막상 자신은 졸려서 나오는 잠투정이 합쳐져서 대화도, 어르기도 안통하는 땡깡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고집의 실체다. 뜯어놓고 보면 별게 아니지만 막상 재워야하는 아내 입장에선 만만찮은 일이다. 더군다나 몸살감기로 자기 몸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서는 제대로 어르기도 안된다. 같이 짜증을 낼 뿐이다. 하필이면 둘째는 엄마 껌딱지라 오로지 엄마엄마 한다. 보다못해 안고 나와 야단을 쳐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내 옆에서 잠을 자게 시켰다.

야단을 쳤든 어쨌든 눈을 감고 눕게 하자 1분도 안되서 잠이 든다. 약기운에 취해있던 아내는 내가 둘째를 안고 나가있는 사이 이미 잠이 들었다. 이래저래 고단한 두 사람이다.

그렇게 둘째에게 호통을 쳐놓고 나니 내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잠에서 깬 둘째가 품 안으로 굴러오더니 내 팔을 이리저리 위치시키곤 자기를 안으란다. 팔의 각도부터 무척 까다롭다. 반드시 팔베게를 한 팔로만 안아야 하고 손바닥의 위치는 가슴과 배의 중간 그리고 토닥토닥은 안된다. 자세를 잡고 보니 허리가 좋은편이 아닌 아내에겐 쉬운 자세가 아니겠다 싶다.

눈치가 빨라서 어른들이 하는 말에 민감한 첫째와 달리 둘째는 잔소리를 하면 눈부터 흘긴다. 입술도 나오고 몸도 반대로 돌리는 등 보고 있으면 성격을 그리 타고 태어난건지 아니면 둘째라고 은연중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는 건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래도 어제밤, 혼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아이가 품으로 굴러온거 팔베게 해주자 마자 나도 곧장 잠이 들어서 아침까지 그 자세로 잤다. 에혀. 애비인게지.

어렸을때 종아리가 부어오르도록 회초리를 치시고 나중에 약을 발라주시던 아버지가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분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물론 체벌의 비주얼(?)은 완전 딴판이었지만. ㅎㅎ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사랑해요

어제 밤늦게 야근을 하고 퇴근하니 두 아이들이 모두 안자고 놀겠다며 엄마와 실갱이 중이었다. 내가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안방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첫째가 빼꼼히 내다 보고는 환한 표정으로 방 안의 둘째를 향해 "아빠다!" 하고는 냅다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무릎을 꿇고 첫째를 안아주자 마자 뒤이어 온 둘째는 다른 한쪽팔 차지. 그리곤 서로 할 말이 많다. 제대로 알아 들은 거라곤 왜 늦게 오냐는 질타 하나뿐이었지만 매번 "정말?" "그랬어요?" 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뭐, 내용이 크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그렇게 두 아이들이 고자질(?)을 마치고 나자 아내가 수고 했다고 날 포옹하고 토닥여 주는데 첫째가 다시 와서 아내를 뒤에서 끌어 안더니 "엄마 사랑해요" 한다. 질새라 다시 뛰어온 둘째도 포옹에 합류 하더니 아직 한참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 사랑해요" 한다. 아이들에게 듣고 어찌 가만 있을까. 아내와 나도 "사랑해요" 라고 대답해 주었고 놀이처럼 번져서 한참동안 네 식구가 거실에 포옹하고 앉아서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사랑한다며 깔깔거리는 큰 소리의 웃음과 미소를 지었다.

그 와중에 날 포옹하고 있던 아내가 내 등 뒤에서 말했다. "좋다" 라고. 그래, 더 이상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좋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