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Save the Children


2011년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후원을 결정하고 유니세프 정기 후원을 신청한지 3년이 됐다.

http://sannuri.blogspot.kr/2011/12/unite-for-children.html

"현실적으로 내 아이들이 나와 아내에게 받는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줄 순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횟수만큼 그들이 받는 최소한의 사랑과 관심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들도 그런 소중함을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차별 없이 모든 아이들이 사랑을 받는 세상에서 내 아이들도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3년간 내 연소득은 늘어났지만 후원 금액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오늘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둘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짧은 논의 후에 추가로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정기 후원 대상 단체는 Save the Children. 후원금은 두배로 늘렸다. 늘어난 소득 덕분에 감당할 수 있는 후원의 폭이 넓어졌다. 그만큼 더 기부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회이기를 희망한다. 나와 아내의 작은 기부가 그런 사회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2014년 마지막 주말 조용히 기도해 본다.

2014년 11월 30일 일요일

아버지 기일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10년이 흘렀고, 오늘은 열번째 맞는 아버지의 기일이다. 사정상 해외 출장을 나와 있고 그 때문에 출장 나오기 전에 부랴부랴 온 가족이 아버지 묘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어른들 입장에선 용서하기 어려운 불효를 한 것이겠지...)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급히 결혼식을 올려 가족이 된 아내까지 다 합쳐 네명이 되었던 가족은 아버지께서 돌아기시고 다시 세명이 되었다가 지금은 세 아이들 덕분에 여섯이 되어 있다. 10년전 석사과정 학생이었던 나는 박사 학위를 받고 회사에 취직해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일을 하고 있다. 날 데리고 해외 여행을 한번 못가신 것을 아쉬워 하셨던 아버지께 '안그러셨어도 지금은 공항 가는게 지겨울 만큼 다닙니다' 라고 말씀을 드릴 입장이 됐다고 할까. 하긴 이것보다 내가 박사가 되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어하셨으니 그걸 이룬 순간 나머지는 그냥 흘러가는 일상 중 하나로 받아들이셨겠지.

어제는 출장지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한인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사는데 손질한 메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참 많이도 낚시를 다녔고 내가(그리고 아버지도) 제일 잡고 싶어했던 물고기는 메기였다. 아버지는 매운탕 중 최고는 메기 매운탕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고 그 이야기를 늘상 들어서인지 나 역시도 메기 매운탕을 무척 좋아했다. 요즘처럼 식당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낚시로 잡기 전에는 맛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귀한 음식이기도 했다.

마트 식자재 진열대에서 그 메기를 한참을 보다 집어 들고 왔다. 매운탕을 끓일만한 마땅한 양념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들고 숙소로 돌아와서 되는대로 이것저것 넣어 푹 끓였다. 그리고 좁쌀 막걸리도 한병 같이 들고와서 따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좁쌀 막걸리를 좋아하셨던게 아버지셨는지 어머니셨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기억에 두 분이 좁쌀 막걸리를 한통 가운데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시면서 맛있다고 말씀하시던 모습만 기억에 있다. 기억이 잘못 된 것일 수도 있고...

잘 끓였다고 생각했던 매운탕은 먹다보니 양념이 제대로 안된게 너무나 티가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무슨 대단한 요리 솜씨라고 양념도 없이 감성팔이식 욕심을 부렸을까. 그냥 라면이나 사올걸.

...편안 하시지요? 소설에 나오는 요정의 나라처럼 그곳에서의 1분이 여기에서의 10년정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어머니나 제가 따라 올라갈때 까지 아버지의 그 자랑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너무 심심하실 테니까요.

2014년 11월 2일 일요일

달고나

항상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내뱉은 말이 문제가 된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자꾸 잊는 바람에 사서 고생을 한다. 특히 아이들하고 한 약속 때문에.

지난 금요일 저녁때 퇴근해서 보니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서 만들어서 받아온 달고나를 빨아먹고 있었다. 아내에게 들어보니 어린이 집에서 선생님이 나눠주면서 깨물어 먹지 말고 빨아 먹으라고 했단다. 왜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재워야 할 시간이 되서도 여전히 빨고 있었다는 것. 달고나를 먹어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알텐데, 이게 사탕과 달리 입안에서 쉽게 부서지기는 하지만 의외로 잘 녹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깨물어 먹으라고 이야기 했더니 첫째가 완강하다. 선생님이 빨아 먹으라고 했다는 것.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아빠가 더 만들어 줄게" 라고 말을 뱉어 버렸다. '이렇게 말을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와그작 소리를 내면서 아이 입에서 부서져 버리는 달고나 조각. 뭐...게임 끝.

오늘 점심때 아이가 나한테 그랬다. 언제 만들어 줄 거냐고. 아이에게 한 약속을 안지킬 수도 없고...결국 마트를 가서 달고나를 만들기 위한 재료와 도구를 구입했다. 달고나 국자가 없어서 일반 스테인리스 국자를 하나 사고, 달고나를 누를 판이 없어서 밀가루 반죽 끊어내는 조리도구를 하나 사고, 모양틀이 없어서 쿠키 모양틀을 샀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도전.

1차 도전.
국자에 설탕을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저으며 녹이는데 보기좋게 녹기 시작했다. '아싸' 하는 순간 예쁜 불꽃이 녹은 설탕에 붙어서 불길이 치솟았다. 너무 가스렌지에 가까이 대고 있었던 것. 두번 고민도 안하고 그대로 싱크대에 담아놓은 물로 국자 직행. 실패.

2차 도전.
이번엔 너무 멀찍히서 설탕을 녹였나보다. 불이 약해서인지 가운데는 살짝 녹고 국자의 가장자리는 나무젓가락으로 젓는동안 묻은 설탕이 굳어서 뭉치기 시작. 굳은 설탕을 녹이겠다고 가까이 가져간 순간 가운데 녹아 있던 설탕에 불이 붙음. 싱크대로 직행. 실패.

3차 도전.
국자의 모양과 가스렌지의 불을 형태로 보아 불의 세기 자체보다 불과의 거리가 중요한 인자임을 확인. 거리를 조절해 가면서 녹이기 시작. 이번엔 제대로 녹았다. 어느정도 녹이고 나서 베이킹소다를 찍어서 저어야 하는데, 젓가락에 소다가 묻어나질 않는다. 당황. 내 기억속에서는 쿡 찍으면 탁 묻어서 젓기만 하면 부풀어 올랐었는데. 찍느라 신경을 쓰는 순간 왼손에 쥐고 있던 국자의 높이가 내려갔나보다. 다시 불 붙음. 실패.

4차 도전.
베이킹소다를 스푼으로 옮길 수 있게 세팅해 놓고 다시 시도. 잘 되는가 싶었는데 국자에서 쏟아놓고 평평하게 펴기 위해 누른 누름틀에 달고나가 늘어 붙어서 떨어지지 않음. 떼려고 힘을 줬더니 부서져 버림. 실패.

5차 도전.
찾아보니 기름을 살짝 둘러야 하고 차갑게 유지해야 한단다. 기름을 발라놓고 다시 시도. 적당히 눌러지긴 하는데 색이 아무래도 다르다. 먹어보니 약간 쓴 맛이 나는게 설탕과 베이킹소다의 배합비가 맞지 않는다. 실패.
이 때부터 레서피를 찾기 위한 시도.

6~8차 도전.
레서피 찾기. 배합비에 따라 눌렀을 때 두께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지고 색도 달라짐. 결정적으로 모양틀로 눌렀을 때 잘 눌려지지 않음.

결국 오늘 사용하겠다고 생각했던 설탕을 모두 소모하고 일단 종료. 결과물을 아이들에게 가져가니 다행이도 좋아하고 잘 먹어준다. 휴..

일단, 달고나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달고나용 국자가 꼭 필요함을 알게됐다. 일반 국자는 가운데는 녹고 가장자리는 덜녹거나 국자에 늘러붙은 후 까맣게 타버려서 색도 맞추기 어려울 뿐더러 녹는 시점과 점도가 제각각이라 베이킹소다를 넣을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그리고 넓은, 쟁반이 필요. 손바닥 만한 곳에 달고나를 붓고 누르자니 천천히 부어야 하는데 붓는 동안 아래쪽이 굳어 버려서 누름틀로 눌렀을 때 얇게 펴지지 않는다. 넓은 쟁반이나 판에 '탁!' 쳐서 떨어뜨리곤 바로 눌러야 얇게 펼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에게 인터넷에서 달고나 국자 하나 사달라고 하긴 했는데 계속 고민중이다. 이게 꼭 그렇게 까지 해서 애들을 먹여야 하는 음식인가????? 어쨌든, 첫째가 그랬다. "그런대로 모양이 나온 것도 있기는 있네요." 땡큐 ㅠㅠ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셋째 출산

2014년 10월 2일. 셋째가 태어났다.

원래 예정일은 10월말이었고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10월 10일에 수술 예정이었는데 10월 2일 새벽 녀석이 세상에 나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들 방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자고 있는데 아내가 양수가 터졌다며 날 깨웠다. 잠도 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과 전날 저녁때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삼성의료원 응급실로 달렸다. (전에 첫째가 화상을 입었을 때도 느꼈지만 다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아내의 침착성은 정말 대단하다. 이번에도 목소리는 살짝 긴장한게 느껴졌지만 행동은 더없이 차분하고 침착했다. 오히려 난 운전하는 것 말고는 전부 허둥지둥)

어쨌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이든 세번째 경험이든 그 정도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동네 산부인과가 아닌 대학병원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다인실에 있었어야 했는데 모자동실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다. 작은 산부인과는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최대한 돌봐 주는데 여기는 침상 옆에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아기가 울면 나머지 아기들도 같이 우는 탓에, 결과적으로 24시간 아기들이 울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걱정이 많았다.

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처럼 24시간 아기들이 울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태어난지 몇시간 안된 정말 신생아 일때의 내 아이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엄마만 수유실에서 아이를 안아볼 수 있고 감염을 우려해서라며 나머지 가족들은 접촉을 하지 못해게 한다. 그런데 여기는 면회객을 최대한 억제하는 대신 보호자들과 아기를 같이 두기 때문에 계속 안아볼 수 있었다. 만 하루가 안된 아이를 품에 안아보는 기분이란 정말 어떻게 설명이 안되는 경험.

어쨌든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셋 중 한명은 딸이었으면 서로에게 더 균형있는 형제애를 갖게 해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동성 셋이라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겠지. 다만 키우는 아내와 내가 조금 더 힘들긴 하겠지...그래도 좋다. :-)

어서 아내가 회복되고 막내가 움직여도 되는 개월수가 되서 온가족이 다시 놀러다닐 수 있게 되기를. :-)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흐르는 강물처럼

그런 영화가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문득 생각이 나서 몇날 며칠을 그 영화의 장면 장면을 떠올리며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영화가. 그 이유가 음악일 수도 있고 배우일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떠오르는 경우 사실 어떻게든 그 영화를 구해서 보는 것 말고는 충족할 방법이 없다.

몇주 전에 문득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너무나 오래전에 그리고 어렸을 때 본 영화인 탓에 스토리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 자세한 장면등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한 장면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강과 산을 배경으로 한 채 너무나 아름답게 호선을 그리던 낚시줄. 그리고 그 아름다운 호선을 연신 허공에 그리고 강물에 그려내던 브래드 피트의 뒷모습.

결국 며칠 전 IP TV에서 영화를 검색해서 유료 결재를 하고 보고야 말았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영화 Mission 의 DVD를 구하려고 그토록 애쓰다 결국 포기했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근 20년만에 다시 본 그 영화는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디지털화 되어 너무나 선명하고 강열한 채도를 보이는 요즘 영화와 달리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빛이 바랜듯한 블랙풋 강과 숲의 영상은 보는 내내 나로 하여금 몇번이나 장식장에 놓여 있는 내 필름 카메라를 힐끗 거리며 바라보게 만들었으며 마치 소리를 낸다는게 미안하다는 듯이 극도로 절제되어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 음악은 영상을 쓰다듬는 듯한 착각마저 주었다.

마지막, 주름진 손으로 플라이 피시 미끼를 매다는 그 모습 너머로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 블랙풋 강의 영상을 보면서 이 영화 감독은 가족에 대한 영화가 아닌 어떤 종교와 신앙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목사라는 것과 별개로 영화는 내내 어딘가 경건하고 숙연했으며 내 마음속의 흐름을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흔한 말로 '돌이켜 보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마치 군시절 평일 저녁 혼자 찾아가서 한시간씩 조용히 묵상을 했던 그 성당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한 느낌. 영화를 보고 나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보길 잘 했다'.

여튼 좋은 시절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그것도 20년이나 지난 영화를 간편하게 다시 집에서, 그것도 크고 좋은 디스플레이로 볼 수 있는 시절이니.

2014년 9월 8일 월요일

잠자리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보여주셨던 마법(!) 같은 것들 중 잠자리 앞에서 손을 빙빙 돌려 어지럽게 만들어 손쉽게 잡는 기술이 있다. 그렇게 해서 잡은 잠자리는 손으로 잡아도 가만히 있을 뿐더러 놓아줘도 잠시동안은 날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그야말로 마법에 걸린 상태가 되곤 했다.

이번 추석때 두 아이들에게 내가 그 마법같은 잠자리 잡는 기술을 보여줬다. 아버지께 성묘를 갔다가 근처 수목원에 나들이 가자는 어머니 제안에 도시락을 싸들고 간 수목원에서 잠자리를 잡고 싶어서 안달하는 아이들을 옆에 세워두고 손을 빙빙 돌려 잠자리를 연달아 잡아서 아이들 손에 쥐어 주었다. 혼자서 조용히 감탄했던 나와 달리 내 아이들에겐 서로를 마주보며 놀라움을 공유할 상대가 있었고 서로의 흥분을 부추겨 줄 상대가 있었다. 조금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소리를 지르고 뛰어 다녀 주위 어른들을 미소짓게 할 만큼. 

양손에 잠자리를 끼워서 들고 좋아하다 놓아주자는 말에 하늘 높이 다시 날려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참으로 많이 났다. 살아 계셨다면 내가 보여주는 것은 비교도 안될 만큼 놀라운 마법을 아이들에게 선물 하셨을텐데. 난 아버지께서 보여주셨던 마법들(낚시줄 올가미로 매미 잡기,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연싸움을 하기 위한 연 조종술, 맨손으로 불피우기, 벌한테 안쏘이고 벌집 따기, 물수제비 열번 이상 튕기기 등등)에 대한 기억은 잔뜩 있지만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 교과서 펴 놓고 공부할 시간에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그 마법들을 더 연습 할 걸 그랬다. 구구단 5단 이상을 외우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했었는데. 

유난히 그 마법들이 그리운 날이다. 

2014년 8월 31일 일요일

미꾸라지


아이들이 다니는 문화센터에서 이번주에 미꾸라지가 소재인 프로그램을 진행했나보다. 어제 집에 와보니 아이스커피 컵 두개에 미꾸라지 몇 마리가 나눠서 담겨 거실 TV 앞에 놓여 있었다. 참 난감했다. 열대어도 아닌 미꾸라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집에가서 잘 키우라고 했다는데 신이 난 아이들과 달리 키울 방법이 없는 부모 입장에선 곤란한 선물(?) 이기만 할 뿐.

저녁때 아내와 둘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서로 쳐다보는 사이 이미 한차례 미꾸라지가 점프를 해서 탈출을 감행했다. 손으로는 미끄러워서 잡을 수 없어 휴지로 감싸고 다시 넣으면서 집에서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키울만한 어항도 없는 입장에서 좁은 물컵에 그대로 둬 봐야 결국 죽이기만 할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아이들을 설득하기 시작. 처음엔 대단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 탓인지 아이들은 미꾸라지가 원래 살던 환경으로 돌아가야 신이 나서 더 잘 살거라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진흙이 많고 풀이 많은 물에서 살아야 하는데 우리집은 그런 곳이 없다는 설득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오늘 집 근처 논에 아이들과 함께 미꾸라지들을(밤사이 한번 더 탈출을 감행해서 말라 죽을뻔 했던 녀석을 포함) 들고 가서 풀어주면서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 줬다. 내 입장에서 보면 생각없는 문화센터 덕분에 엉뚱한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어느새 차분히 설득하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기도 했다. 뭐,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아이들의 양보 그리고 타협

요즘들어 부쩍 느끼는 것인데, 첫째와 둘째가 제법 잘 어울려서 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둘째의 말이 어눌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타협', '양보' 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나이여서 항상 장난감을 갖고 싸우기만 했는데 이제는 제법 형이 갖고 노는 동안 기다릴 줄도 알고 형이 양보해준 장난감을 손에 쥐면 '고마워' 라고 인사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TV를 통해 보는 만화영화 등이 엇비슷해 지면서 서로 코드가 맞기 시작한 것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앞서 말했듯이 첫째의 양보를 고마워 할 줄 아는 마음, 첫째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둘째가 갖게 된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보인다.

그냥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된 것은 아니고...충돌이 날 때마다 나타나서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신속하게 가려주던 엄마 아빠가 한 걸음 물러서기 시작하면서 둘이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둘이서 해결할 수 있게 엄마 아빠가 심판 역할을 하지 말자는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만 해도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는데 그렇게 몇 달을 두니 오히려 전보다 사이가 돈독해지고 서로간에 의견을 조율할 줄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누가 잘못했고 잘했고를 가려주는 심판 역할을 해주지 않고 서로 충돌하더라도 의견을 조율할 기회를 주자 아이들은 거기에 훌륭히 응답했다. 그저 신기할 따름.

어쩌면 요즘 사회가 극단적인 감정 충돌로 치닫는 것은 어릴때부터 항상 보다 현명한 사람들이 심판을 봐주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가득해서가 아닐까? 나보다 훨씬 나이 어린 두 아들이 내가 상상도 못한 양보와 타협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든다.

2014년 8월 4일 월요일

방울 토마토 - 뒷 이야기

어린이집 방학이라고 일주일간 할머니한테 내려가 있었던 두 형제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일단 할머니는 몸살이 나셨고(...), 두 형제는 바지는 벗어 던지고 맨발로 자연스럽게 뛰어 다니는 시골 아이들 비스무리하게 변했으며 그런 행동에 어울리게도 둘 다 까맣게 탔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까맣게 탔다. 방학이 끝나고 모이면 가장 까맣게 탄 아이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가 오자 마자 가기 싫다면서 할머니한테 어떡하냐고 매달려서 서럽게 울었던 첫째가 막상 엄마 아빠를 보자 냉큼 따라 나서는 모습에 할머니는 어처구니 없어 했지만 할머니가 몸살이 나서 이제 혼자 쉬시게 해드려야 한다고 내가 따로 설득을 했다는 건 아직은 모르신다. 다음에 내려가면 슬쩍 말씀을 드릴 생각이다. 이번에 알려 드렸으면 아마도 더 두라고 고집을 부리셨을 테니까.

아, 그리고 방울 토마토.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정말 무지막지하게 따 주신 덕분에 배낭 한가득 될 정도로 들고 올라왔다. 다 먹기 전에 물러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일텐데. 내일 출근할 때 좀 들고 가서 나눠 먹어야 겠다. 사실 이렇게 따온 농산물은 누구 입으로든 들어가면 속된말로 '장땡' 아니겠는가?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방울 토마토

어제밤 내린비에 먼지가 씻긴 방울 토마토를 따서 물기만 툭툭 털어 아이들 입에 넣어준다. 어머니께서 아이들 먹인다고 농약을 치지 않고 가꾸시는 텃밭에서 좋은 볕과 맑은 지하수로 기른 녀석이라 껍질은 약간 두껍지만 툭 터지는 단맛은 일품이다. 마트에서 사면 한두개가 끝이었던 아이들도 넙죽 넙죽 잘만 받아 먹는다.

오후에 해가 나면 물놀이를 할 생각에 아이들은 벌써부터 물총을 챙긴다. 안타깝게도 구름의 모양새가 금방 걷힐 것 같진 않지만 오후가 되면 또 다른데 정신이 팔리리라.

오늘부터 일주일. 어린이집 방학동안 할머니하고 지내기로 했는데 어찌 지낼런지. 할머니하고 매일 놀 생각에 첫째는 신났지만 둘째가 과연 안 울고 잘 지내려나? 나름 흥미진진하다.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오브제

수년간 고민해 왔지만 오브제를 잡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난 프로 사진가가 아닌만큼 맘 편하게 잡고 쉽게 쉽게 찍어도 될 것 같은데 항상 두번째 발걸음에서 욕심이 생겨 처음으로 되돌아 가고 만다. 사진은 늘지 않고, 욕심만 늘고 있나보다. 

"오브제의 개념은 ‘보아왔던 것’에서 ‘보여지는 것’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사물의 이름을 기억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 자체로 파 악하기 보다는 ‘보아왔던’ 습관적인 관점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므로 이미 그 것을 완벽한 오브제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통적 미학의 거부로부터 출발한 오브제 미술은 일상의 사물 즉, 소재 지향 적 사물관 에서 벗어나 사물세계 자체의 존재치를 부여하고 단순히 회화나 조 각이라는 장르를 타파한 새로운 조형양식과 시각체험을 확장시켰으며 오브제 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종래의 미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세계관 및 물체관이 탄 생하게 되었다."

美術敎 育專攻 姜周然
현대미술에 있어서 오브제의 변천과정과특성에 관한 연구
2003년 1월昌原大學校 敎育大學院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여행

여행 #1

5월에 결혼한 입장은 아니지만 보다 좋은 날씨를 즐기며 다녀오는게 좋겠다 싶어 오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떠난다.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 2주의 휴가를 내고 아내가 좋아하는 도시로 온가족이 이민가방 수준의 짐을 싸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하면서 결혼 30주년 정도는 가볍게 지나가신 친구(?)들이 좀 생긴 탓에 10주년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가 참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와 내 아내의 지난 10년은 참 다사다난 했다. 11평 원룸에서 소꿉놀이처럼 시작한 결혼 생활이 10년이 되었으니 일일이 글로 풀자니 너무나 유치해 지는 이야기 거리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부터 다녀올 2주간의 여행동안 지난 10년...모두 풀어서 바람에 날리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10년의 여행을 위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해야지. 이제는 둘의 10년이 아닌, 다섯의 10년을 준비해야 하니 결혼할때보다 더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리라.


여행 #2

회사에서 조직 개편이 있었다. 팀장이 불러서 내가 새로이 맡았으면 하는 업무에 대해 면담을 했고 수락을 했다. 회사에서 주는 업무를 '수락' 이라는 표현을 쓰는게 한국 문화에서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그만큼 나를 존중해 주는 팀장을 모시고 있다는게 내 또다른 행운인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거부하면 강요는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 또한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해라' 라고 옵션을 주면 눈치 안보고 소신대로 '싫다'고 말할 사람인걸 안다. 내가 로또 복은 없어도 이렇게 직장 상사 복은 많다.

지금껏 해보지 않은 업무, 지금까지 해온 것과 완전히 구분되는 새로운 커리어. 물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라는 제안이나 다름없는 제안을 받았다. (유치하다면 유치한데, 박사학위는 자동차면허와 같아서 신분의 표현이 아닌 면허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게 평소 지론이지만 그래도 Ph.D 라는 세 영문자가 주는 묘한 자부심과 이끌림을 포기하는게 막상 쉽지는 않다)

뜬금없는 제안은 아니었다. 내심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커리어패스를 지금의 회사에서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마...이번 제안이 없었다면 회사를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제 무수히 출장을 다닐 것이며, 주어진 책임만큼 많은 질타를 받을 것이다. 나 역시 소소하게 투덜거리고 분노하며 또 파트너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업무를 익혀 나갈 것이다. 힘들겠지만, 분명 흥미진진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번 선택이 내 커리어에서 의미있는, 그리고 흥미진진한 여행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늘 그래왔듯이, 심호흡 인내 그리고 최대한 즐겁게.

2014년 3월 31일 월요일

사람

일하면서 내 상관으로 모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후배를 딱 한번 만났다. 나보다 여섯살이 어린 그 친구는 부러울 만큼 열정적이고 현명했다.

지금은 다른 회사로 이직한 그 후배를 해외 전시회에서 만났다. 일부러 찾아온 사람을 어찌 그냥 보내겠는가. 객지 맛집을 찾아 네시간동안 그동안 쌓인 수다를 풀었다.

변한것은 시간이요 나이일 뿐 사람은 변한것이 없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쁜데 결혼 계획도 들었다. 아무래도 독일 음식과 맥주론 축하가 부족하여 한국에서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살면서 사람을 얻었다는 기분만큼 큰 즐거움이 또 어디 있을까. 그저 행복한 밤이다.

2014년 2월 16일 일요일

Thank you Disney

Thank you Disney. I always wanted to show beautiful dream and fantasy to my children like this, Frozen.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첫째가 좋아할 것 같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겨울왕국'을 한번 더 봤다. (지난번에는 아내와 둘만봤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이가 황홀해 하며 봤다. 영화가 끝나고 너무 아쉬워서 나가기 싫다고 아이가 상영관에서 주저 앉을만큼. 너무 예쁘고 너무 재미있었단다.

이런 아름다움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게 해준 디즈니에게 너무나 감사한다.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재롱잔치

어제 첫째의 어린이집에서 하는 아이들 재롱 잔치에 다녀왔다. 예쁘게 무대 분장을 하고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첫째를 보며 감탄을 했다. 언제 이만큼 컸는지.

정말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부득이하게 지금을 희생하지 않고는 당장 가족이 유지될 수 없다면 모를까 '나중'을 위해 아이와 보내는 '지금'을 희생하는건 어찌보면 바보같은 선택이다. 아이의 하루는 어른의 한달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생각보다 큰 공연장에 예쁜 사진을 많이 못잡아서 그건 아쉽. 내년엔 둘째도 같이 할테니 그땐 더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남기자.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출근길

밤새 주차장을 지킨 누군가의 자동차.

주말 새벽부터 환한 누군가의 사무실.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경계. 

추워서 꽁꽁 싸매고 지나쳤다가 계속 뒤통수를 잡아당겨서 결국 다시 되돌아가서 찰칵.

2014.01.11.
@기흥. 회사 주차장.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심호흡, 인내 그리고 최대한 즐겁게

이 블로그의 부제처럼.

2014년 한해도 말하기 전에 한번 심호흡 그리고 행동하기 전에 한번 인내한 뒤에 실행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또한 언제 어디서나 최대한 즐겁게 지내는 한해가 되기를.

내 모든 지인들과 함께.

늦었지만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