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5일 일요일

셋째 출산

2014년 10월 2일. 셋째가 태어났다.

원래 예정일은 10월말이었고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10월 10일에 수술 예정이었는데 10월 2일 새벽 녀석이 세상에 나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들 방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자고 있는데 아내가 양수가 터졌다며 날 깨웠다. 잠도 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과 전날 저녁때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삼성의료원 응급실로 달렸다. (전에 첫째가 화상을 입었을 때도 느꼈지만 다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아내의 침착성은 정말 대단하다. 이번에도 목소리는 살짝 긴장한게 느껴졌지만 행동은 더없이 차분하고 침착했다. 오히려 난 운전하는 것 말고는 전부 허둥지둥)

어쨌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이든 세번째 경험이든 그 정도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동네 산부인과가 아닌 대학병원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다인실에 있었어야 했는데 모자동실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다. 작은 산부인과는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최대한 돌봐 주는데 여기는 침상 옆에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아기가 울면 나머지 아기들도 같이 우는 탓에, 결과적으로 24시간 아기들이 울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걱정이 많았다.

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처럼 24시간 아기들이 울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태어난지 몇시간 안된 정말 신생아 일때의 내 아이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엄마만 수유실에서 아이를 안아볼 수 있고 감염을 우려해서라며 나머지 가족들은 접촉을 하지 못해게 한다. 그런데 여기는 면회객을 최대한 억제하는 대신 보호자들과 아기를 같이 두기 때문에 계속 안아볼 수 있었다. 만 하루가 안된 아이를 품에 안아보는 기분이란 정말 어떻게 설명이 안되는 경험.

어쨌든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셋 중 한명은 딸이었으면 서로에게 더 균형있는 형제애를 갖게 해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동성 셋이라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겠지. 다만 키우는 아내와 내가 조금 더 힘들긴 하겠지...그래도 좋다. :-)

어서 아내가 회복되고 막내가 움직여도 되는 개월수가 되서 온가족이 다시 놀러다닐 수 있게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