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일 일요일

금계국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존재로 꽃 이상인 것이 있을까. 하루 밤 사이 그 형태를 바꿔 화려한 색상을 뽐내는 꽃들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를 시간속에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시선을 던져보면 꽃은 단지 시간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땅을 알려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3월의 독일은 야생 장미와 후리지아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4월의 한국과 일본은 벚꽃의 시간이다. 5월로 넘어가면서 이 땅은 수수꽃다리의 향이 넘실거리고 6월이 되면 금계국의 짙은 노란 꽃잎이 자태를 뽐낸다.

오늘 밤 산책을 하다 동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을 마주쳤다.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는데, 이 꽃이 필 시기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제 한국을 떠나기까지 보름가량 남았다. 미국으로 가게 되면 아마도 또 다른 그 땅의 꽃을 마주할테고 그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또다시 시간을 인지하기 시작하겠지.

아마 이 꽃이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들꽃이리라. 그 기억을 강제하기 위해 사진을 한장 찍었다.

2018년 5월 31일 목요일

퇴직

드디어 오늘 퇴직을 했다. 메일로 퇴직 인사를 쓰다 말이 너무 구구절절 해지는 것 같아 다 지우고 짧게 남겼는데 마음이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난 나대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만큼 남아있는 이들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어떤 기분인지, 생각인지 글로 풀어내기 쉽지 않다. 언젠가 기회가 되겠지. 굿바이 삼성전자.

2018년 5월 14일 월요일

자전거 연습

어제 두 아이들의 자전거를 꺼내 이런저런 손질을 하고 자전거를 타게 해줬다. 날도 선선하고 미세먼지도 없는, 좋은 날이었다.

둘째도 초등학교에 갔으니 슬슬 자전거 보조 바퀴를 떼고 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 잠깐 연습을 해봤는데 너무 중심을 못잡아서 난처했다. 왜 넘어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둘째와 잠시 서로 바라보다 첫번째 연습에서 슥슥 타고 가버린 첫째의 균형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좋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 좀 더 보조 바퀴 달고 타자. 아빠도 아직 바퀴 네개 달린 자동차 타고 다니는 걸 뭐. :-)

2018년 5월 13일 일요일

동굴벽화

어제 저녁을 먹던 중 첫째와 '원시인들은 동굴에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 대화의 끝에 아이가 주장한 이론을 증명해보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식물의 즙으로 그림을 그리고 동물 기름으로 겉을 덮어서 지워지는 걸 막는다)

오늘 아침 실험 계획서를 써서 가져온 걸 보니, 식물 즙은 잎이 얇은 나뭇잎을 으깨서 즙을 만든다고 하고(이거 네가 할거지?) 동물 기름은 돼지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기름을 사용하겠다고 한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돼지고기가 없다고..... 일단 고기를 사서 구워 먹어야 하는 상황. 그런데 고기를 싫어하는 첫째는 그 부분에서 난색을 표한다.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데 아빠가 대신 먹어 달라는 눈치. 야, 니 실험 준비물은 니가 만들어야지. ㅡㅡ

2018년 5월 10일 목요일

버스 정류장

약속이 있어 서울 가기 위해 동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중. 그런데 조금 전 30분 기다렸던 버스를 음악 듣다 놓치고 다시 30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어처구니 없어 하며 이마를 짚다가 문득 올려본 하늘이 너무 좋아서 헛 웃음이 나왔다. 피식. 좀 더 기다리지 뭐.


2018년 5월 5일 토요일

여유

1.
어제 아침 일찍 아내와 둘이 집을 나서 서울 종로까지 2시간 가까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서 올라갔다. 갤러리 한 곳을 방문하면서 경복궁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는데 휴일이라 하더라도 시간 효율을 따지지 않고 먼 길을 다녀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보고 싶은 사진 전시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는데 중간에 예상치 못한 멋진 작품을 만났다.
http://iphoswebzine.tistory.com/297
윤길중 작가의 큰법당 시리즈였는데 한지에 인쇄된 (인화물이 아닌 인쇄물이었다) 작품의 분위기는 나와 아내 둘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 끌었다. 사진을 보면서 '갖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한 몇 안되는 작품의 리스트에 한 점 추가된 순간이었다. 갤러리 큐레이터에게 가격과 운반비 등을 상담했는데 본 전시는 5/8 부터이고 어제는 일종의 사전 전시와 같은 상황이라 아직 가격이 책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 나왔지만 작가명과 작품명은 메모를 해 놨다. 나중에 반드시 다시 구입을 타진해야지.

2.
연휴 동안 머리를 텅 비우고 마음 느긋하게 책을 읽고 싶어 오늘 아침 파운데이션 시리즈 전집을(1~7권) 리디북스에서 구입했다.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고전SF 를 좋아하는 성향이 더 짙어졌다. 고전SF 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 부류의 작품들이 좋다. (그렇다고 사실주의 성향의 SF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스페이스 오페라 만한 소설도 없다) 태블릿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전자책 단말기를 살것인가 하는 부분은 고민이다. 페이퍼 프로를 한번 만져봤으면 좋겠는데 써 볼 기회가 없다.

3.
아침 일찍 아내는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했고 혼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옷을 챙겨입고 조깅을 나갔다. 겨울동안, 그리고 미세먼지 심한 시즌을 피하느라 한국에서 조깅을 한 건 거의 반년만이었다. 지난 겨울 중국 남부 출장을 가서는 가끔 휴일에 달렸지만 날씨는 따뜻할 망정 거기도 공기가 깨끗하지는 않아서 마음 편히 달리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어쨌든 잠깐 몸을 푼 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왠걸, 평소 달리던 거리의 반도 안갔는데 심장은 터질듯이 뛰고 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반년의 휴식이 가져온 체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 가슴은 이미 한계에 왔다고 난리를 치는데 오기가 나서 무시하고 1km 정도 더 달렸다가 그만 길바닥에 주저 앉아서 가쁜 숨을 10분가량 몰아쉬어야 했다. 나중에 심박계를 보니 160bpm 이상으로 달렸던데... 전보다 속도도 느려졌고 거리도 짧았는데 심박수가 160을 넘는 걸 보니 이번 여름 다시금 체력을 끌어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예전의 저질 체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4.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두 번 돌려 빨래를 널고 커피 한잔을 내려 식탁에 앉았다. 바람이 너무 좋아 온 집의 창문을 다 열어 두었는데 이런 날이 정말 흔치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음악을 좀 틀어놓고 싶은데 이틀 전 CD플레이어를 서비스 센터에 수리 보낸 덕에 마땅한 도구가 없다. 헤드폰으로 귀를 틀어 막은 채 음악을 듣고 싶은 바람은 아니어서 그냥 음악을 포기하는 걸로. 아쉽다.

5.
한 숨 자려 했는데 문득 첫째의 자전거를 손봐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녹슨 부위를 닦아내고 체인에 오일링을 해야 다음 휴일에 아이가 탈 수 있을테니 아이들이 할머니댁에 놀러가 있는 이번 주말이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장갑과 도구를 챙겨서 나가야 겠다. 다음 휴일엔 캐치볼과 함께 자전거도 타자고 해야지.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캐치볼

새벽 두시경 코피가 난다며 첫째가 일어났다.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멎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피가 멈추질 않아 30분이 넘게 얼마전 첫째가 체육시간에 한 야구와 T-ball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마 근 몇 년 동안 가장 길게 첫째와 단 둘이 대화를 한 것이지 싶다.

그래, 날이 풀리면 잘 안된다는 캐치볼을 아빠하고 같이 연습 하자꾸나. 네가 공 받는게 잘 안되는 건 아빠 닮은 탓이니 누가 널 돕겠니. 이번 기회에 우리 둘 다 한번 캐치볼 실력을 키워보자.

2018년 3월 14일 수요일

훈육

이틀전. 하루종일 회사에서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많았다. 간신히 마음을 다스리고 집에 왔는데 그날 따라 첫째와 둘째가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며 신경을 긁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보였는지도. 몇 번인가 좋게 이야기 하며 참아 넘기다 세번째인가 네번째에 눌렀던 화가 터져 나왔다. 참 별 것 아닌 일이었는데 잔이 흘러 넘치는 마지막 물 한방울이 되었던 것. 갑작스런 아빠의 분노에 당황한 아이들은 눈물부터 그렁이는데 한번 터져나온 내면의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나서 곧바로 찾아온 후회는 하루가 지나도록 사라지질 않았다. 아이들에게 내가 참고 넘어갔던 앞의 일들을 나열하며 나중에 터져나온 분노가 정당했음을 설명할까 하다 나부터도 납득 못할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변명 없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제 별 것 아닌 일로 소리를 질렀는데 생각해보니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사과하는 내내 스스로를 꾸짖었다. 부모는 부모일뿐 상전이 아니라고.

부모 노릇은 참 어렵다. 다른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 드는 이 마음을 다스리는게 어렵다.

2018년 2월 25일 일요일

아침인사

오늘 아침에도 여지없이 막내는 일어나서 아빠는 잘잤냐는 인사 후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물어본다. 매번 대답해 준 후 귀엽다며 웃어 넘기다 오늘은 잠시 아침과 저녁이 헷갈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낮잠 때문인 것 같다. 낮잠을 꼭 재우는 탓에 막내 입장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항상 아침 아니면 저녁인데 자고 일어난 몽롱한 정신에 그 차이를 깨닫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인 것.

아침과 저녁을 쉽게 구분하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다 그만뒀다. 어차피 이것도 앞으로 몇 달이면 자연스럽게 사라질텐데 뭐하러 일찍 구분하게 만들고자 하는건지. 아이가 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서운해 하면서 정작 아이를 빨리 키우려고 하는 습관은 고치기가 어렵다.

2018년 2월 10일 토요일

Google cloud platform

이런저런 이유로 며칠 고민을 하다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계정을 열었다. 사용법을 익히는 용도로 제공하는 무료 계정인데 일단 좀 써보고나서 유료 전환을 할지 결정할 예정.

그런데 유료 계정이라고 해도 이용 요금 자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저렴하다. 15년전에 내가 연구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cluster를 꾸밀때 든 비용이 대략 4천만원 정도였는데...  지금 GCP High performance computing 또는 GPU computing 사용 요금표를 보니 그 돈이면  이제는 연구실 학생들 모두가 박사과정 내내 훨씬 강력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여러 계산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부러워졌다. 나는 항상 컴퓨터 성능이 부족해서 내 연구 시간의 대부분을 어떻게 하면 클러스터 노드간 데이터 전송을 효율화 할지, CPU와 메모리 사용율을 최소화 할지 고민하는... physics가 아닌 CS 가 할법한 고민을 하면서 보냈었는데.

만일 내가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해 진다면 이제는 하드웨어 구입을 고민하기보다 일단 GCP 요금표를 펴놓고 계산기 두드려 볼 것 같다.

2018년 2월 6일 화요일

선물

어제 출산휴가를 가는 부서원을 위해 순산기원 파티겸 부서 회식을 했다. 인상 깊었던 건 동료들의 선물. 출산용품, 아기선물 등 엄마 OOO 이 아닌 OOO 본인을 위한 선물이라며 립글로즈와 귀걸이를 선물한 것. 아기를 낳고도 지금처럼 예쁜 OOO의 모습 그대로 회사로 돌아오란 말과 함께 건내진 그 선물에 내가 더 감동했다. 무슨 선물을 준비했는지 사실 신경 못쓰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여운이 남는 선물 증정식이었다. 마음에 대해 어제 또 한가지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