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here in Africa
언제부터인지 해가진 후의 노천극장에서는 오카리나 소리가 들려온다. 한적한 휴일 오후나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앉아서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 된 듯 하다. 그게 한명인지, 아니면 몇명이서 부는 거라서 매일같이 부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은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사건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 순간만 고개를 갸웃하면서 바라볼 뿐 잠시후면 까맣게 잊어 버리곤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강하게 인상이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노천극장 옆의 비탈길을 빠른 속도감을 느끼며 내려가다가 무심코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늦출 만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몇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조차도 귓가에 그 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을 만큼 내 마음에 불쑥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있다. 조금전에 노트북으로 본 영화 때문에 더욱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Nowhere in Africa. ‘어바웃 슈미츠’ 이후에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접했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에는 영화를 보면서 수확이 많은 것 같다. 비록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의 중요 장면마다 -정상적인 시점이라면 중요한 시점이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지만 그런 장면마다 특정한 음향효과를 내는걸 보면 감독역시 의미를 부여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등장하는 나이어린 소녀의 허밍 두소절.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멈춰서서 들었던 오카리나 소리와 겹쳐서 들려왔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간혹, 몇해전의 국토종주때처럼 모든것을 잊고 그저 걷기만 했으면 싶을때가 있다.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 에 나오는 와타나베와 구미코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먼 곳으로 대학을 진학했듯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설속의 그들은 같은 시기의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