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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February, 2019

Negotiation

며칠전 큰 아이의 요구에 따라 아이와 딜을 하나 했다. 첫째도 엄마 아빠에게 말 곱게 할테니 엄마 아빠도 첫째가 잘못했을때 야단치지 않기로. 아이의 이유인즉, 잘못하는 건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알지만 '잘 안되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알지만 '일부러 안하는 것' 이란다. 잘 안되는 건 노력하는데도 잘 안되는 거니까 야단친다고 갑자기 잘하게 될리가 없고, 일부러 안하는 건 잘못인줄 알지만 나름 이유가 있어서 혼날걸 각오하고 안하는 것이라 야단친다고 자기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잘하고 싶어지지는 않는단다. 결국 어느 경우도 야단쳐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는 것. 그러니 자기가 잘못하는게 보여도 지적은 하되 화를 내거나 야단치는 건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의 요구가 합리적이라 그러기로 했다. 대신 요즘 사춘기가 시작되서 말과 행동이 공격적인 아이에게 엄마 아빠에게 말할때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이어도 예의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아 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딜에 응해서 둘이 악수하고 계약을 성사시켰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는 아이가 언행을 조심하는게 보인다. 며칠이나 갈까? 슬슬 한계가 보이는 것 같은데 ㅎㅎ 그래도 아빠에게 원하는 걸 요구하고 아빠의 행동을 바꿀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언제 이렇게 컸을까?

봄이 오는 길목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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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약속이 있어 저녁에 집을 나서는 날. 몇시간 산책을 하고 싶을 정도로 딱 적당한 온도, 습도 그리고 청명함이 있는 날이다.

삶이 힘든 막내

막내가 요즘 삶이 힘들다. 얼마 전까지는 엄마, 아빠만 "잡아먹어야겠다-" 라면서 깨물려고 해서 피해다니기 쉬웠는데 이제는 (아이말에 따르면 엄마 아빠보다 더 무섭다는) 큰형아도 틈만나면 깨물고 간지럽히고 난리도 아니다. 따로 자는 엄마 아빠와 달리 큰형은 같은 방에서 잔다. 도망칠 공간이 없다. (큰 아이는 요즘 막내가 귀여워 죽겠단다.) 나한테 작은 형아만 안그러고 전부 자길 괴롭힌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자길 이뻐해주고 아낌없이 베풀고 챙겨주기만 하는 작은형이 세상에서 제일 좋단다. 그냥 그렇게 이 아이가 또 나를 웃게 만든다.

생각의 배설

갑작스런 생각의 배설. JD샐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접한건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 Stand Alone Complex' 를 통해서다. 정확히는 SAC중 웃는남자,Laughing man, 편이었다. 그런데 Laughing man 역시 JD샐린저의 또 다른 단편소설 제목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이 시리즈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웃는남자' 편 보다는 '개별11인' 편이 더 인상깊었지만 작품의 완성도에서는 웃는남자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 유명한 고전을 읽어보지도 않고 살다가 다른 작품에서 인용된 문장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에 약간은 한쪽 마음이 캥기는 느낌도 있었지만 뭐 어떤가. Stand alone complex 역시 그 자체로도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인걸. 더구나 당시에는 그저 그런 느낌이었던 '초연결 사회' 가 실제로 도래한 지금, 이 작품의 내용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쨌든 이 애니메이션에서 인용된 '호밀밭의 파수꾼'의 구절은 "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인간이 되려고 했다" 였다. 너무 축약해서 번역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오히려 대단히 간결하게, 잘 번역한 것 같다. 직역하면 "그곳에서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하고도 쓸데없고, 바보 같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가 되는데, 문학 작품의 인용구를 들먹이며 빠르게 대화가 오고가던 '웃는남자' 편의 마지막 도서관 씬에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하는 것은 속도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어쨌든, 난 마음에 든다. (번역 이상하기로 따지면 사실 '호밀밭의 파수꾼' 이라는 한글 제목이 더 이상하다. 원 제목은 "The Catcher in the Rye...

기억의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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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해변] 군 시절 이야기. 당시 내가 있던 내부반 규칙이 상병이 되면 근무시간 외에는 원하는 걸 하면서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미대 출신이던 바로 한달 고참 한명이 상병 휴가를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이런저런 미술 도구를 들고 들어왔다. 몇 날 며칠을 연필과 스케치북을 갖고 고민하는 듯 하던 그 고참이 어느 순간부터 목탄을 칼로 긁어서 가루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며칠만에 몇 자루의 목탄을 그렇게 깎아서 가루를 제법 많이 모았다. 그는 그렇게 모은 목탄 가루를 손가락에 찍어서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밑그림에 문질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뭐랄까, 마치 수채화 물감을 붓으로 칠하듯 손가락으로 목탄 가루를 문질렀다. 그 시점부터 그 고참이 작업할때면 난 옆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게 한동안 일상이었다. 그림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이었다. 어렸을 때 연필로 쓴 글씨나 그림을 손으로 문질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의 그림이 나왔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검은색 입자가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퍼진 느낌과 그림에서 보여지는 아기와 어머니의 모습이 어울어져서 무척이나 인상깊은 작품으로 변해갔다. 그 그림은 그때까지 미술 작품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내게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림과 사진 등 회화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해줬다. 그에게 그 그림을 달라고 한동안 졸랐으나 습작이라면서 결국 폐기해버렸다. 어쨌든 그 이후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해야하나)처럼 남은 그 목탄화의 이미지는 내가 사진을 시작한 이후 흑백 필름 사진에 매달리게 하는 이유가 됐다. 그냥 흑백인 것도 모자라 보통은 피하고자 하는 필름 입자가 도드라지게 드러난 그런 사진에 몰두했다.  그래서 내가 사진을 찍을때 추구하는 이미지는 대단히 선명하다. "입자감 가득한 흑백의 목탄화 같은 사진" 에 모든 관심과 스터디가 집중되어있다. 오늘 노트북으로 만지던 사진을 USB에 담...

Mark Rothko

이전 직장 식당을 나오는 복도에는 언제부턴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명한 작품들의 모조화였는데 식당을 나서다 말고 가끔 멈춰 둘러보곤 했다. 특히 혼자 밥을 먹어서 동료의 발걸음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아침이나 저녁시간이 그런 여유를 부리기에 가장 좋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회사에서 먹어야 했었다는 사실이 좀 불만이긴 했지만..) 내가 회사를 다녔던 마지막 1년여간은 Mark Rothko의 작품으로 전체를 통일해서 십여점을 전시했었는데 특히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이여서 식당을 가는게 즐겁기까지 했다. 작품들이 모두 큼지막한... 실화 크기의 모화여서 더욱 좋았다. 아마 지금도 동일한 작품들이 걸려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여러 유명한 작가들의 대표작을 짜집기한 컬렉션이 아닌 한 작가의, 한 시리즈로 이루어진 컬렉션이 주는 느낌은 그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가 누군지 궁금할만큼 강렬했다. 언젠가 하루는 퇴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서다 하늘에 걸 린 석양을 보고는 그길로 발길을 돌려 다시 게이트를 지나 식당까지 찾아가서 한참을 그의 작품을 바라보기도 했다. 많은 인내심을 사용해야 했던 날이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고민들이어서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은 날이었다. 술자리로도, 집으로도.. 그 어디로도. 아침에 이런 저런 글을 읽다 그의 작품이 언급된 글을 읽고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도저히 타인에게는 -아무리 가깝더라도, 아니 가까울수록 더욱-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는데 차라리 그냥 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으면 그렇게 혼자 긴 시간 심호흡을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지나간 일이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언뜻 들었다.

Fernbank Museum of Natural History in Atla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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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자연사박물관 주말 나들이. 포근한 날씨에 바람도 불지 않는다. 전시관에 관심이 없는 둘째와 셋째는 나와 같이 산책로와 놀이터로 왔고 첫째는 엄마와 함께 전시관을 빠짐없이 둘러보는 중.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잠시 벤치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중.

해지는 풍경의 울림

일이 있어서 집에서 두시간 정도 떨어진 다른주의 도시에 다녀왔다. 시간상 돌아오는 시간대에 해질녘이 되었는데 운전하는 내내 서쪽으로 직진을 했기 때문에 그 광경을 보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미국에 와서 해지는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그동안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해질녘 풍경이 여기라고 다르진 않다. 노을이 멋진 날은 아니었다. 지평선 가까이면 붉은색과 주황색 노을이 머물로 있고 그 위로 하늘은 점차 짙어지는 군청색이었다. 그냥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해질녘 풍경. 그리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만큼, 한국에서 볼때와 동일한 가슴의 울림이 있었다. 징- 하는 그런 울림. 여유있는 삶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무엇에 쫓겨서 해질녘 풍경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여유있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 만은 아닌가보다. 좀 더 여유를 가져보자. 하늘도 좀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