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서 주변으로부터 내 의식을 차단할 필요가 있는 나날이다. 그리고 마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옵션이 어줍잖게 갖춰졌다. 카메라가 왔고(수리를 보냈었다), 삼각대가 준비되었고(quick release plate를 분실해서 해프닝이 있었다), 조명도 도착했다. 배경으로 사용할 천은 진작에 월마트에서 사다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통기한을 7년이나 넘겨 버린 120mm 400TX 필름이 있었다. 이 필름은 2010년에 구입 했으니 무려 십년 가까이 냉동실에서 동면을 하고 있었던 필름이다. 제대로 현상이 되리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십년만에 동작시켜보는 RB67의 조작법도 익힐겸 한번 찍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히 집중해서 신경을 쏟을만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120mm가 6x7 판형에서 몇컷이 나오는지도 헷갈려서 구글에 찾아봐야 할 만큼 생소한 느낌. 심지어 카메라 동작 방법은 메뉴얼을 몇 번 정독 을 하고서야 기억의 저편에서 슬금슬금 기어 올라올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방에 들여 보내고 가장 빛을 차단하기 쉬운 유일한 장소인 안방 화장실에 천을 펴고 삼각대를 놓고 카메라를 붙였다. 원하는 피사체는 아니었으나 아이들 간식으로 사다놓은 사과도 몇 개 냉장고에서 들고 왔다. 타이머로 사용할겸 들고온 휴대폰이 알려주는 시간은 9시. 120mm 필름을 6x7 포맷으로 찍으면 딱 열컷이 나온다. 조명을 조정하고,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다 도 조정하고. 마음에 들면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고, 다시 도 조절하는 작업의 수없는 반복. 조명이 설정되고 나면 노출계로 EV값을 재고, 조리개를 조절하고, 타이머 설정하고 찍는는다. 찍고 나면 수첩에 각종 수치와 조명의 위치를 도면으로 그려놓고는 한 컷의 작업을 마무리 한다. 그렇게 열 컷의 촬영. 사진을 모두 찍고 보니 10시 10분이 됐다. 70분이 걸렸으니, 한컷에 7분 정도씩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브라케팅을 했다면 열컷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