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한 잔, 포도주 반 잔
젖은 도로를 질주하던 자동차 타이어 소리가 점차로 잦아들고 있다. 비가 그쳐가는 것인지, 아니면 자동차 수가 줄어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 창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을 무슨 고집에선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는 애써 소리만으로 밖의 모습을 상상하려 애를 쓰고 있다. 아까부터 목이 말라 계속 물을 마시고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을 잊어 그저 따뜻하다는 것만 간신히 면한 물. 마셔도 그다지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가 않다. 맥주나 한잔 마셔볼까? 지난 수개월째 먼지만 쌓이게 놓아두고 있는 빨간색 커피 메이커가 유난히 눈에 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갈증이 생기고 있는데 커피를 마시는 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닐것이 틀림없다. 마음 한편으로는 마시진 않더라도 향긋한 커피 향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도 있고. 살이 데일 것 같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다시 한동안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물로 몸을 식혔더니 피부가 발갛게 달아 올랐다. 그리고 온몸을 팽팽하게 차오르는 기분좋은 긴장감. 정말 옆에 누군가 있다면 같이 가볍게 맥주한잔 나눴으면 싶은 밤이다. 술을 마시고 싶은건지, 아니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건지 구분을 할 자신은 없지만. 음악이 듣고 싶어서 음악 사이트에 접속해서 몇몇 곡들을 골라서 듣고 있다. 그다지 시끄럽지 않은, 좀 잔잔한 곡으로. 조용한, 그리고 가급적이면 육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연주곡들을 좋아하는 이 취향은 아마도 죽을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과 웃음이 입가를 잠시 스쳐간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냉장고에서 한동안 혼자 있던 포도주를 꺼내서 마셔볼까? 유리잔에 반잔만 따라서 마셔도 제법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을텐데. 아침엔 우유 한잔, 밤에는 포도주 반잔인가? 무척이나 오래 전 같은 오늘 아침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무척이나 오래전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오늘아침이다. 오늘 하루가 내게는 그렇게 길었을까?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비오는 것을 여유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