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January, 2021

재택근무

재택근무를 하면서 콜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이야기 하는데 배경으로 누군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싸우는 소리에, 콜을 하고 있는 엄마나 아빠에게 아이가 달려와서 뭔가 도움을 청하는 일도 자주 있다. 경우에 따라 이야기 하던 사람이 사과를 하고 잠시 사라지는 경우도. 개가 짖는 소리는 미국에서야 뭐 일상이고. 어쨌든 미국-중국-한국 콜을 하기에 누군가는 반드시 늦은 저녁일 수 밖에 없고 온가족이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니, 소음이 들어올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야기 하던 사람이 잠시 사라지면 그냥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서 이야기 하고, 원래의 안건은 담당자가 돌아오면 뒤에 다시 논의한다. 그리고, 나는 이게 회의실에 앉아서 회의 하는 것 보다 좋다. 나와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가정이 있고, 회사 밖의 일상이 있고, 그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삶이 따로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기 때문. 그래서 대화할 때 어휘 선택을 좀 더 조심하게 되고 말투도 조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잘못된 게 있어도 절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추궁하지 않는다. 내 목소리가 이어폰 밖으로 흘러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추궁하면 그가 구구절절 변명을 해야 하는데 그걸 그의 가족이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그래서 항상 회의에서는 현재 상황과 진척만 확인하고 빨리 끝내고, 회의 종료 후 메일이나 메신저로 자초지종을 물어본다.  물론, 그런 방식이 종종 비효율적일 때도 있다. 두번 세번 그렇게 배려해줘도 개선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족의 곁에서 일한다'는 그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려 애쓴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일부러 일정을 맞춰서 회사에서 만나 1:1 로 이야기 한다. 이것 때문에 종종 내가 출근하는 날이 아닌데도 사무실에 나갈 때가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번거롭고, 복잡하고, 매니저로서 내 업무 시간을 길게 만들지만 그래도 새로운 업무 환경을...

Single Malt Whisky

Image
[PublicDomainPictures @Pixabay] 잠이 오지 않아 베이스먼트에 내려와 내 크롬북을 열고 앉았다.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이라도 읽으면 되련만, 무료할 때 선택하는게 읽는 쪽이냐 쓰는 쪽이냐를 따진다면 나는 확실히 쓰는 쪽이다. 킨들을 샀을 때 보다 내 개인 크롬북을 샀을 때 더 기뻤던 이유가 그것이리라.  지난주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다. 피곤하고, 몸 여기저기 쑤시고, 약한 두통도 중간에 있었다. 잠시 혹시 Covid-19 에 걸렸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다행이 증상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냥, 최근 업무량은 많고 운동량은 줄어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중.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많이 나쁘다 보니 눈도 침침해서 책을 읽는것도, 쓰는 것도 불편하다. 좀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초저녁부터 침대에 들어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 전화를 받고 일어나 한참 일을 해야 했고, 어설프게 자다 일어난 탓에 자정이 넘은 지금까지 다시 잠들지 못하고 도리어 더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전화기를 꺼 놨어야 했다. 늦었지만. 베이스먼트로 내려오는 길에 위스키잔을 꺼내와 애정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한잔 옆에 따라 두었다. 항상 느끼지만, 와인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묵직한 자주색을 느낄 때 매력적이고 위스키는 대비가 높은 조명 아래에서 밝은 황금색을 느낄 때 매력적이다.  위스키는 사색을 위한 술이고, 와인은 대화를 위한 술이다.   언제부턴가 입에 달고 사는 술에 대한 내 주장. 처음 그 생각을 했던 건 개봉 후 장기간 보관이 쉬운 위스키가 개봉하면 무조건 다 마셔야 하는 와인보다, 주량이 약한 그리고 떠들썩하게 여럿이 함께하는 회식보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내게 더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 사실 퇴근 후 혼자 음악을 들으며 한잔 가볍게 하기에 위스키만한 술이 없다. 와인은 개봉을 하면 맛이 하루만에 변하기에 본래의 맛을 유지하면서 마시려면 개봉했을 때 다 마셔야 해서 혼자 마시기에는 양이 많다. 그래서 와인은 여...

자동차 고민

내가 타고 다니는 하이브리드 세단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면 대략 25달러 내외를 지불한다. 주행 가능 거리는 500마일 수준. 여름에는 550마일까지도 나오는데, 윈터 타이어를 달고 돌아다니는 겨울에는 500마일 정도 나온다. 전에는 출퇴근 + a 하면 400마일 정도 탔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 정도 주유를 했다. 그러니까.. 대략 한달에 20달러 정도 출퇴근을 위한 연료비를 쓴 셈. 그런데 요즘에는 일주일에 이틀만 출퇴근 하기 때문에 한달 운행해 봐야 120~150마일 정도에 그친다. 오늘이 이번달 마지막 출근인데, 아침에 회사 주차장에서 연료 게이지의 남은 예상 주행거리를 보니 370마일이 찍혀 있다.  얼마나 연료를 쓰는지 보겠다고 일부러 이달 첫날 연료를 가득 채웠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다음번 주유는 3월말 정도가 될 것 같다. 아, 택배 때문에 멀리 있는 한인 타운에 한번 다녀올 일이 있으니 3월말은 아니고 3월초에 넣게 되겠지. 그러니까, 요즘 내가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는 세단은 한달에 12~13달러 정도 기름을 먹는다. 패밀리카로 이용하는 미니밴은 연비가 내 하이브리드 세단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이건 일주일에 한번 성당 다녀올 때 아니면 움직이질 않아서 들어가는 한달 연료비는 비슷하다. 두 대 합쳐서 한달에 25달러 내외. 내가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산 와인BiLA-HAUT Occultum Lapidem 이 우리집 옆에 있는 와인샵에서 24달러니까, 와인 한병 값이다. 일단, 전기차를 쳐다볼 이유는 없다. 만일 그 전기차가, "연료비 절감" 만을 내세운다면. 그러니까 뭔가 다른게 있지 않는 한, 연료비만으로 전기차를 고를 이유는 없다.  그리고 다음은 보험료. 자를 운행하는 거리와 시간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꾸준히 나가는 보험료는 아깝다. 보험의 속성이 원래 그런거지만, 최근의 자동차 보험료는 유독 그렇다. 운행 시간과 거리가 줄었다는 건 사고 확률도 줄었다는 뜻이니 기존의 보험료 책정 기준을 가져다 대면, 소비자가 무조건 크게 손...

사진

Image
[Apple study @2019 / Mamiya RB67 / Film scan] 하고 싶은 일은 많고, 능력과 시간은 모자란다.  사진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여유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환경이 아닌 의지의 문제인데..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전시회를 두번이나 했는데 미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 여유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의견도 필요 없는, 내가 생각해봐도 그냥 의지의 문제다. 남들처럼 풍경 사진에 열광하는 것도 아니고, 정물 사진에 흠뻑 빠져 있으면서 집에서 작업을 하지 않는 건 그냥 의지의 문제. 아니면... 지금 내 주위에는 사진 작품에 대해 토론할 친구들이 없다는 문제일지도.   그나저나, 언제까지 필름 카메라를 써야 할까? 시간이 갈수록 필름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현상 약품들도 구하기 어려워진다. 코닥에서 품질 문제가 터졌는데도 대안이 딱히 없는 이 답답한 상황. (아, 우리에겐 아직 ilford가 있나?)  물론 필름이 완전히 사라질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유품을 단지 필름 카메라라는 이유만으로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으로 분류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헷갈리는 건,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이걸 부여잡고 있는건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부여잡고 있는건지 알 길이 없다.  그동안 찍은 정물 사진 작품들을 보다 문득 마음 복잡해진 밤. 생각이 사진을 넘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까지 이르렀다. 쩝... 괜히 맥주를 꺼냈다. 위스키였어야 했는데. 위스키는 사색을 위한 술이고 와인은 대화를 위한 술이라고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면서, 이런 저녁에 위스키가 아닌 (심지어 와인도 아니고)맥주를 꺼낸 이 변덕을 어찌해야 할지. 대신 이번 주말에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한병 골라서 열어야겠다. 그런데... 웹에 올려서 보면 품질이 너무 저하되서 사진의 감흥이 사라지니 큰 모니터나 실제 인화물로 봐야 하는 중형 필름 사진을 찍으면서 집에 적당한 크기의 포토 프린터 ...

빈티지 와인

Image
빈티지 와인을 따면, 불가항력적으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애초에 만들어진 연도가 큼직하게 적혀 있는 그런 와인 라벨이나 콜크 마게를 보면서 아무런 감흥 없이 거기에 적힌 그 선명한 "연도" 를 지나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런지. 과거에 대한 기억은 마치 잔뜩 흔들어 버린 샴페인과 같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함이 없지만 약간의 자극 만으로도 뚜껑이 열리고, 그리고 그런 자극에 의해 뚜껑이 열린 샴페인은 사람의 손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저, 더 이상 나올게 없을 때까지 온 사방에 하얗게 거품과 자신의 향을 뿜어낼 뿐이다. 그런 자극이 어떤 것이 있을지 미리 생각해보고 알아서 조심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피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누가 일부러 언급을 했든 관계없이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넘쳐나는 생각의 분출과 홍수를 막을 수 없기 때문. 누군가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한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의 말이 더 타당한지 따져보는 건 제 3자가 아닌, 뚜껑을 열어버린 당사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미 다 젖어버린 그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입고 있지도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피식 웃음 지을 수 있을 뿐. 오늘, 무심코 연 콜크 마개에서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 잡았다. 그리고, 어떻게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 거품과 함께 뿜어져 나온 시간의 분출에 흠뻑 젖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취하게 만든게 와인인지, 아니면 뿜어져 나온.. 잘 묻어 두었던 시간들인지 모르겠지만 잠이 들 수 있기까지 무척 긴 밤이 될 것 같다.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

참 힘든 하루였다.  아닌 날이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오늘은 유달리 힘들었다. 감정적으로, 일적으로... 그리고 여러가지로. 남의 손을 다치게 할 땐 칼이 날카로워서지만, 내 손을 다치게 할 땐 칼이 무뎌서라던데 아직도 나는 내 칼날이 무딘지 날카로운지 모르겠다. 칼날은 같은데 나도 다치고 남도 다치니 도무지 종을 잡을 길이 없다. 다 필요 없고, 메일을 통해 그냥 긴 호흡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 수록 주위에 짧은 호흡의, 숨가쁜 대화만 가능한 사람들만 보인다.  할 말이 많으면서 한편으로 없는 저녁. 와인에 흠뻑 취해서 자우림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취하니... 좋기는 하네. 그나저나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이라니. 이름을 지어도 어쩌면 이렇게 잘 지었는지. 노래에 취하고, 멜로디에 취하고, 목소리에 취하고... 그냥 지금 내 이 상황에 취한다. 

편도 항공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비행기 타고 돌아오죠 뭐." 이민을 결심하면서 아내와 한 대화. 비행기에 오를 용기를 내기 위해 우리는 이 말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법의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녔고 부모님들도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사셨다. 아니다 싶으면 훌훌 털고 돌아오라고. 이때는 '돌아온다' 는 단어에 실린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떠난 그 장소에 다시 서 있게 되면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민은, 편도 항공권이지 왕복 항공권이 아니 라는 그 선명한 사실을.   내가 간과했던 건 아이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정 이민 생활이 힘들고 적응이 안된다면, 생활 수단이 고민되긴 하겠지만 그냥 털고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내 아이들에게는 '이민' 이 된다 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힘들고 적응하지 못해서 포기한 이민 생활을 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상황이 된다는 생각을 못했다. 더구나 미국에 비해 한국은 소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문화. 이 때문에 같은 이민이라면 한국에서의 적응이 더 어렵다. 그래서 가정을 이룬 뒤에.. 뒤늦게 여행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역이민이 이민보다 더 고민되고 어려운 건 분명한 사실. 내가 결심하고 내 의지로 실행한 이민도 견디기 어려운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된 이민은 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자아가 분명해지는 사춘기 자녀들의 경우 그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적인 어려움이 부모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 내 주위만 봐도, 그렇게 돌아가서 잘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동네에는 역이민을 시도했다가 아이가 적응을 못해 다시 미국에 눌러 앉은 한국인 가정도 있다. 내가 이민을 나올때 쯤 오랜 주재원 근무 후 복귀한 동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