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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February, 2021

성공 또는 실패

실패의 경험을 밤새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은 일은 항상 어렵다. 똑같아 보이는 일을 언제는 실패하고 언제는 성공해 봐야만, 그리고 그걸 여러차례 반복해야만 나름의 관점이라는게 생기기 마련인데 실패의 횟수가 부족하면 또는 성공의 횟수가 부족하면 항상 불안하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삼성전자에서 상품기획을 했을 때가 그랬다. 항상 최선을 다해 분석한다고 하지만 살아있는 동물처럼 움직이는 시장 환경을 보며 성공한 제품도 뒤에서는 불안했고 실패한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성공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실패 만큼이나 불쾌하다. 마치 장마철 밀려드는 습기처럼.  고백하건데, 그리고 전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삼성전자에서 내가 기획한 제품들은 내 기준에 실패가 성공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당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성공의 원인을 분석한다고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결과를 상황에 맞게 해석했을 뿐이지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무언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마치 모든 걸 아는 것 처럼 자신있게 떠들기는 했으나 항상 마음 한켠에서는 거대한 사기극을 벌이는 것 마냥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한 전체 기간을 놓고 보면, 상품기획자로 일 한 기간은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상품기획자의 이미지로 조직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3년의 기간 동안 내가 만든 실패와 성공의 이미지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겠지. 재미있는 건, 개발-상기-영업 세 직군을 다 경험했고 그중 가장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건 상품기획이었지만 정작 근무 기간은 셋 중 가장 짧았고, 실적에 의한 공적상은 개발에서 한번, 영업에서 한번 받았을 뿐 상품기획자로써는 의미있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에 개발과 영업에서는 실패의 기억이 없다. 항상 목표를 달성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걸 성공이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많은 실패를 했던 상기. 성공...

하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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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을 찍고 나도 함께 눈 밭에 누워서 같이 하늘을 쳐다봤다.  50cm 나 내린 눈이 몇주간 잘 다져져서 누워도 푹 꺼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새하얀 눈 위에 아무 거리낌 없이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일탈이 주는, 평소와 다른 행위가 주는 짜릿함이란. 여튼, 다섯 식구가 정말 흠뻑 젖을 만큼 앞마당과 뒷마당의 눈밭을 뛰어 다니며 눈싸움을 했다. 아무리 눈을 파서 긁어 모으고 뛰어 다녀도 새하얀 눈 이외에 다른 색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의 눈싸움은 나도 처음이었다. 즐거움과 만족감. 그냥, 너무나 재미있게 잘 놀았다는 만족감이 컸다. 아무 생각 없이 놀아본게 얼마만인지. 생각해보니 저렇게 누워 있을 때 올려다 본 하늘 사진을 찍을 걸 그랬다. 누워서 올려다 본 하늘이 참 좋았는데, 사진은 없다. 다음엔 꼭 한 장 찍어봐야지. 

안도감

어제 제법 멀리 운전할 일이 있었다.  얼마전 job offer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의 내 포지션과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그만두고 어디론가 이직을 할 시점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을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른 이로부터 나를 추천 받았다는 그 회사의 대표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조건에 상관없이 지금은 이직 생각이 없으니 굳이 구체적인 조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이후 그 회사의 대표가 부담 갖지 말고 자기 회사에서 커피라도 같이 한잔 하자고 연락을 했고 마침 어제 휴가이기도 해서, 다녀왔다.  변한 건 없다.  회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제품 보고, 내부 구경을 좀 했을 뿐. 그 사람도 offer를 바꿔 설득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네트워킹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던 것 뿐이니까.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고, 그를 어떻게 알았고 등등. 삶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이야기 했고. 그가 채용중인 또 다른 Jr. Engineer 자리에는 내가 아는 사람을 한명 추천해줬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의 삶에 대해서. 여기에서도 이제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고, 연락이 오고, 나도 추천해 줄 수 있는.. 인맥.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 부분이 참 어려울 것 같았는데 어찌어찌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운전하는 동안 들었다. 해고가 한국에 비해 훨씬 쉬운 이 나라에서, job을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처음 랜딩했을 때 처럼 무조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게 아니라, 이젠 비벼볼 수 있는 언덕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는 안도감. 달리 다른 단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온 몸이 나른하게 늘어지는 듯한 안도감을 마지막으로 느껴본게 언제였는지. 미국에 랜딩할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며 이 땅에서도 어떻게든 또 살아 지겠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어떻게든 살아지긴 하는구나. 

아이의 거짓말

첫째가 거짓말을 시작하는 나이가 됐다. 악의가 담긴 거짓말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의 귀찮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아이가 할 법한 거짓말들.  어제 저녁, 첫째가 엄마에게 거짓말을 들켜서 한소리 들었다. 아내도 아이가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는 걸 알아서 길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대신 이번 주말동안 전자책을 못 보는 벌을 내렸다. 오늘 아침에 보니 책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진 첫째가 온 집안을 돌아 다니며 방황을 하고 있길래 잠시 불러서 마주 앉았다. 그리고 거짓말에 대한 내 생각을 짧게 나눴다.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와, 왜 그 나이가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지. 거짓말은 정말 나쁜 것인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에게 세상 모든 사람이 지금 네 나이가 되면 거짓말을 시작하며 엄마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했다. 모든 거짓말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귀찮거나 민망한 상황을 매번 쉽게 피해서 돌아가려 하는 '거짓말하는 습관'은 나쁘다는 말을 덧붙여서. 사실 거짓말 자체는 좋은 거짓도, 나쁜 거짓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 아무 의미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거짓말 하는 습관 자체는 절대적으로 나쁘다.  아이와 길게 나눈 대화를 다 옮길 수는 없고, 엄마나 아빠, 혹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걸 겁내지 말라고 했다. 보통 그걸 듣기 싫어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시작하는데 그런 잔소리나 질책을 겁내거나 피할 이유가 없다고, 그런걸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이제 어른의 잔소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고, 너도 네 생각을 분명하게 밝힐만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반대할 건 반대하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이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까? 아마 아니겠지.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받아도 부모의 조언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게 이치니까. 그래도, 언젠가 아이가 더 컸을 때 내가 해 준 이 말을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눈은 모습으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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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vingston @2021 / Galaxy S10+] 지난주부터 일주일째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일주일동안 쉼 없이 내리는 건 아니지만, 눈을 치우고 돌아서서 커피 한 잔 할 여유만을 허락하고 퐁당퐁당 내리고 있으니 눈삽을 들고 씨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줄기차게 내리는 것과 진배 없다. 그리고 오늘 아침, 커피를 한 잔 내려 테이블에 앉아 내다본 창문 밖으로 예보에 없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후에 2~3시간 가볍게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밤 사이 날씨가 바뀌었나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쉼 없이 heavy snow 온단다. 지금 보니 벌써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 걱정해 봐야 소용 없는 일이니 그냥 커피잔을 들고 풍경을 즐기는게 낫겠지.  눈은 모습으로 내리고, 비는 소리로 내린다.  눈은 내릴 때 소리가 없다. 눈 자체가 내리는 소리도 없지만 내리는 눈의 결정들이 소리를 흡수하는 방음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폭설이 내리는 날은 유난히 주위가 고요해진다. 그래서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바람이 나무를 휘돌아 가는 그 소리만 없다면, 눈이 내리는 숲은 기이할 만큼 적막하다. 그래서 눈은, 소리 없이, 모습으로 내린다.  [제주 사려니 숲 @2012 / Samsung NX20] 201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방문했던 제주 사려니 숲이 그랬다.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폭설, 관리 공단의 인터넷 예약 시스템 오류, 일년에 몇 번 없다는 바람 불지 않는 제주의 아침.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겹쳐 넓은 숲 전체에 사람 이라고는 나와 아내 단 둘 뿐이고, 우리가 눈을 밟는 발소리와 내쉬는 숨소리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던 그 숲. 아마 이날 걸었던 그런 숲 길을 평생 다시 걸을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걷는 내내 아내와 둘이 주위 모습에 매혹되어 있었던 숲.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항상 그 날 아침 사려니 숲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 짧은 글을 적는 사이 커피가 식었다. 머그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