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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December, 2020

2020년 운동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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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바에 기록된 2020년 운동 기록. 가을까지만 해도 1500 마일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늦가을부터 석달간 정체가 됐다. 날씨 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의지의 부족. 당초 계획대로 100번의 운동 횟수를 채웠다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 했을텐데...65번에서 그친게 가장 큰 원인. 여름에서 가을로 향하는 기간의 페이스였다면 100번을 채웠을 경우 1500 마일이 아니라 2000 마일 까지도 노려볼 만 했을텐데.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전체 운동 횟수의 20% 를 러닝으로 채웠다는 점. 자전거 타면서 무릎이 좋아져서 러닝을 해도(비록 느리게, 짧은 거리를 달렸지만) 무리가 되지 않는다. 내년에는 횟수도 늘리고 달리는 거리도 점차 늘려서 연말에는 6마일.. 그러니까 10km를 달릴 수 있게 노력해보자. 자전거의 경우 평일 라이딩은 짧게 가져가서 라이딩을 나서는 것 자체의 부담을 줄이고 대신 주말 아침 라이딩 거리를 조금 더 늘리는 쪽으로. 그래서 1500 마일, 100번의 운동을 달성해보자.  올 한해, 운동하느라 고생 많았다. 매년 기록을 경신해 가고 있고 갈수록 체력이 좋아지고 있으니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한해 운동으로 결산이리라.  ps 와인은 좀 줄이고... 

배웅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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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Cindy Lever  from Pixabay ] 멀리 배웅하는 길은, 유난히 짧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의 마지막 날에는 그의 퇴근길을 함께 걸어가주곤 했다. 모든 동료에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상 마주 붙여놓고 지냈던 동료들에게는 건너뛸 수 없는 의식인 것 처럼 그렇게 배웅을 했다. 유난스럽게 큰 캠퍼스를 가졌던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탓에 건물을 나와서 정문을 지나 주차장까지 걸어가면 15~2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퇴사자들은 보통 인사를 하고 오전에 바로 회사를 나서기에 남들 다 집에 가는 퇴근 시간이 아니라 점심시간 직전의 한낮에 배웅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으로 붐비는 정문을 지나는 내게는 짧은 외출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걸으면 이상하리만치 할 말이 많았다. 내가 남들처럼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유머를 섞어가며 사람들을 웃겨줄 수 있는 재치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말이 많다는 것 자체가 내게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이제 같이 걸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그 어색함을 감추고 싶었던 것인지도.  그렇게 배웅을 해보면, 열에 아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장소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이제 그만 들어가 보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항상 궁금했었다. 그 장소에 무엇이 있는것인지. (내가 퇴사할 때 그 지점에 서 봤으나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혼자였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그 지점에서 더 고집부리지 않고 악수를 한 뒤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 길은 참 길었다. 당시에 그 길이 긴 것인지, 배웅했던 길이 짧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멀리 배웅하는 길 일수록 더 짧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퇴사를 했던 날, 침전되듯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 속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멀리까지 따라나온 배웅이 있었다. 그날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혼자 정문을 지나 주차장...

Work in a balanced Life

어제,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이스먼트에 만들어 놓은 내 홈오피스에서 한참을 몰두해서 프로젝트 진행 현황과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각 상황에 맞는 test plan을 수립해서 메일로 팀원들에게 보내는 작업을 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실 어제는 원래 휴가였다. 미국에 와서 휴가가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같은 업계 내에서의 이직이었기 때문에 종종 전 직장 동료들과 사적으로 또는 일적으로 연락을 하는데 시차 때문에 밤시간(그러니까 한국은 아침)에 conference call을 하게 된다. 그 때마다 그들이 그런다.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냐, 그러려고 미국 간 거 아니지 않냐" 라고. 그 때마다 "그러게, 먹고 살기 어렵네" 라며 같이 맞장구를 쳐주기는 하나 뒷머리를 긁적일 수 밖에 없는 심리 상태가 되는 걸 피하기 어렵다. 종종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질문이 이상한 건 아니다. 그게 보편적인 시각이니까. 깊이 파고들어 가지 않고 보면, 미국에서의 삶이 훨씬 여유로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일' 이라는게 생존 경쟁의 다른 형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가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지구촌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다. 어디에서든, 삶은 치열하다.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한국보다 여유로와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국보다 절대적으로 짧기 때문. 대부분 야근도 없고, 일이 있으면 일찍 짐 챙겨서 퇴근해도 상관 없다. 내 경우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했다(Covid-19으로 이제는 많은 곳에서 보편화 되었지만). 장시간 사무실에서 앉아 있어야 하는 한국 회사와 비교하면 자유로와 보일 수 밖에 없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워라벨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이랄까.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사...

Your Christmas presents may b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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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봐요 싼타. 이러깁니까? 진작 알려주던가 해야지.... 이제와서 어떻게 다시 선물을 준비하라고...????????????????????

옛날 옛적에 곳감을 파는 H마트가 있었는데.

저녁 먹고 형들하고 TV로 본 해리포터 1편이 너무 무서웠을까? 잠자리에 들어간 막내가 잠시 후 인형을 품에 안고 다시 나왔다. 무서워서 잠이 안오는 탓에 잠이 올 때까지 작은형과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하고 싶다는 것. 그런데 머리를 베게에 대자마자 형이 잠들어서 엄마 아빠에게 SOS를 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곤히 잠든 둘째를 깨울수는 없는 노릇. 아직 자고 있지 않을게 뻔한 큰형은 이야기 만들기 놀이 하자고 말하기 무섭단다. 하긴,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큰아이가 요즘 좀 까칠하긴 하다. 잠시 고민하다 아빠하고 자자고 하고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옆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줬다. 다름 아닌  호랑이와 곳감.   성대 묘사까지 해 가며 하는 이야기를 아이가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호랑이가 문 바로 앞까지 와서 언제 문을 열고 들어가 잡아먹을까 고민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긴장된다며 잠깐 이야기를 끊고 물을 한모금 마시기도.  그리고 마지막에 곳감에 놀라 도망가는 호랑이를 열심히 묘사하고 나서 아이에게 물었다.  "재밌지." "깔깔깔.. 너무 웃겨요." "그래 이제는 잘 수 있지? "아빠.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그럼~ 뭔데?" "곳감이 뭐에요?" "...." 내가 내일 곳감 사러 H마트 간다 가. 

가족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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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번씩은 가족 사진첩을 만들기로 했는데 한동안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가 끝나기 전에 지난 2년반의 미국 생활을 사진첩으로 만들어서 한국에 있는 양가 어르신들에게도 보내드리고 우리도 갖고 있기로 해서 열심히 사진을 고르는 중.  사진이야 Band 에도 꾸준히 올리고 있어 부모님들이 못 본 사진은 없을테지만, 그렇게 디지털로 앱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것과, 인쇄물로 출력이 되어 손에 쥐어지는 건 느낌이 다르다. 일상의 스냅 사진을 출력물로 보는 것도 느낌이 다르지만 이렇게 시간 순으로 의미 있는 순간들을 골라서 책자로 만들어 페이지를 넘기며 보는 건 화면을 스크롤 해가며 사진을 넘겨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리고 내게도 이렇게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한권의 책을, 가족의 시간을 기록한 책을 만드는 건 일상에서 벗어난 소중한 시간이다. 지나간 순간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넘기며 '고른다' 는 행위 자체가 주는 안온한 느낌은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렵다.  그런데... 난 지난 2년반의 시간이 개인적으로 힘들다고 느꼈는데, '가족'의 범주에서 되돌아 보니 지난 2년반 정말 재미있게 지냈구나.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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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선물해 준 책. 항상 그렇지만 내가 읽고 싶어하는 책은 어떻게 눈치 채는지 먼저 사준다. 그건 신기하고 또 고마운데...  난 줄간격 넓은 걸 좋아하는데... 왜 이리 작은 폰트에 줄간격이 빽빽한건지. 이제 노안이 와서 이런거 보기 어려운데. ㅠㅠ  원래 아마존에서 이북으로 사서 킨들로 읽으려 했던 책인데 빽빽한 페이지를 넘나들며 종이책으로 보게 생겼다.  (아, 불만이 있는 건 아니구요... 그냥 눈이 침침하다구요 ㅎㅎ)

SNOW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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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목요일(그러니까 내일) 30cm에 가까운 큰 눈이 온다고 예보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예보 때문에 아이들 학교에서 이메일로, 문자로 쉴 새 없이 remind가 온다.  "눈 오더라도 remote learning으로 정상 수업 합니다. SNOW DAY off 없으니 꼭 수업 들어 오세요" 아이들은 당연히 실망했고, 나도 실망했다. Snow day off 의 기본 이유는 교통 문제였으니 remote learning이 보편화된 요즘, 학교 수업을 쉴 이유는 없다. 올 초 Covid-19으로 인해 아이들 수업이 remote로 전환되자마자 우습게도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은 '이제 snow day 안하겠는데?' 였는데.. 항상 그렇지만 내 전망은 쓸 데 없는 경우에만 기막히게 들어 맞는다.  세상에, 창 밖으로 눈이 오는데 앉아서 공부해야 한다니. 퍽이나 그 공부 잘 되겠다. 생각만 해도 내 입술이 먼저 비죽거린다. 더구나 뒷마당이 학교 운동장 경사로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집 위치 때문에 정말 끝내주는 눈썰매장까지 집에서 걸어서 30초가 걸리지 않는 상황에, 부츠와 눈썰매를 모셔두고 앉아서 눈 오는 걸 구경해야 하는 우리집 삼형제의 마음이 선생님의 애타는 목소리를 따라갈 리가 없다.  작년 12월 큰 눈이 왔을 땐 뒷마당 눈썰매장에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눈을 치워야 하는 나 역시 아이들을 앞마당으로 불러내릴 수 없는 상황이 아쉽기는 마찬가지. 작년에 시켜보니 삼형제들이 제법 일 손을 보탠다. 1년 더 자랐으니 더 큰 도움이 될텐데, 아무래도 혼자 치워야 할 것 같다. 올해 역시 망설이다가 snow blower를 사지 않았는데 사둘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드는 아침. Rock salt와 눈삽으로 어떻게든 해 보는 수 밖에.  (아무래도 앞에 했던 말을 정정해야 할 듯. 전망이 쓸 데 없는 경우에만 잘 맞는게 아니라 제대로 전망을 해 놓고 정작 필요한 행동을 안해서 효과를 못보는 것 같다. 주식이 그렇더...

주말아침 레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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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에 앉아 아내는 일을 하고 나는 책을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한번에 하나에만 집중해야 일이 진도가 나가는 나는 일 할 때 만큼은 대화가 불가능한데 멀티 태스킹에 능한 아내는 정신없이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타이핑 하고, 마우스를 클릭 하면서도 내가 건네는 대화를 위화감 없이 잘 받아준다. 흉내내고 싶어도 흉내낼 수 없는 재주.  그렇게 서로 마주 앉아서 나는 어제 밤 내가 본 영화, Sorry we missed you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는 미안해요 리키 라고 번역된 영화인데 번역된 제목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택배 기사인 리키의 이야기고, "부재중이라 물건 전달을 하지 못했습니다" 라는 뜻인 원제목을 고려하면 -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강력한 클리셰로 등장하는 그 문장의 의미를 고려하면 - 잘못된 번역에 가깝다.  어쨌든 스크린 너머의 하지만 현실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죽도록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기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 대한 (하소연에 가까운) 내 이야기를 아내는 잘 들어준다. 반면에 나는 이야기든, 책이든 동시에 못한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책을 덮어 놓아야 하고, 책을 읽을 땐 조금 전까지 열을 올리며 영화 이야기 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말이 없어진다. 정신 없는 쪽이 누구인지 이쯤되면 헷갈릴 수 밖에 없다. 그것 역시 나만 헷갈리는 거겠지만. 2. 내가 펴든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 지난 주말에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빙 세일 한다는 가정에서 한국어 책을 판다는 글을 보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연락해서 내가 사겠다고 했다. 사실 아이들을 위해 리디북스를 구독하고 있기 때문에 한글 책들을 읽으려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음에도 나 자신은 영어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져야 한다는 강박감에 지난 2년동안 아마존 Kindle 만 들고 영어로 된 책만 읽었다. 그러다 이날, 책 제목을 보여준다며 찍어 올린 사진에서 "독일인의 사랑" ...

Sorry We misse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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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자라고 들여보내 놓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보는 내내 가슴을 부여잡고 거의 울듯한 심정으로 봤다. 영화 감상을 길게 남기고 싶은데 너무 먹먹해서 글이 나오질 않는다.  너무나 아픈데, 스크린 속의 그 모습이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한 단면이고 현실이라는게 곱절로 상처가 된다. 죽도록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상처받고, 이토록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어디서부터 이렇게 잘못 된걸까.  취하고 싶은 밤.. 아까 와인을 사왔어야 했다.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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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에 남아 있는 시간에는 순서가 없다.   지난 주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했고, 문 앞에는 리스를 달았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은 작년부터 수십년 전 내가 막내와 같은 나이였던 시절까지 랜덤 박스에서 물건을 꺼내듯 순서 없이, 무작위로 올라온다.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 처럼.  그 중에서도 파편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기억이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두개인데 하나는 유치원때고 다른 하나는 4학년 때.  유치원때의 기억은, 낮에 어머니와 함께 설치한,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전등으로 퇴근한 아버지를 놀래켜 주기 위해 온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있다가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전등만 키며 나름 서프라이즈! 를 했던 일. 돌이켜 보면 아버지가 마당의 대문을 열고 닫는 소리를 듣고는 신이 나서 내가 외친 "아빠 왔어요!" 가 워낙 우렁찼기 때문에 미리 눈치채고 계셨다고 봐야 겠지만 어린 내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깜짝 놀라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휘황 찬란한 조명도 아니고 그저 알록 달록한 색을 가진 전구 몇개에 불과했지만 그때의 내게는 온 세상을 밝히는 거대한 아름다움이었다. 불을 꺼 놓고 손에 트리장식 전구 스위치를 쥐고는 소파 뒤에 숨어서 현관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그 순간까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단지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만이 아닌 그 시절을 상징하는 기억중 하나.  두번째 기억은 좀 씁쓸한데, 내가 싼타할아버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공표한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4학년이었고 사실 이미 한참 전부터 싼타의 정체를 알고는 있었으나 언제 알려야 할지 타이밍을 보던 중이었다. 싼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가셨다며 들고온 선물을 내가 누가 준건지 알고 있다면서 선물에도 관심 없다고 말했을 때의 그 순간, 부모님의 어쩔줄 몰라 하는 표정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이를 키워보니, 이쯤 키웠으면 아이가 싼타를 믿는지 아닌지 눈치챌 법도 한데 전혀 그런 의심을...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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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시맨' 은 비행기 조종사가 버린 콜라병이 전혀 다른 용도로 원시 부족에게 사용되면서 벌어지는 갈등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병' 을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고 그게 생각보다 편리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런 문명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가 가져온 해프닝을 재미있게 본 기억도.  그런데 그런 오해는 꼭 문명의 차이가 있어야 생기는 건 아닌가보다. 오늘, Amazon에서 쇼핑을 하다 뜻밖의 오해를 발견했다.  아니, 너는 찜기가 아니더냐. 머리에 불을 이고 왜 Fire Pit 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이냐. 한바탕 웃기는 했으나 잠시 후엔, 판매자의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을 칭찬하기에 앞서, 감정 이입이 되서인지 한가지 생각만 든다.  이 낯선 곳에서, 너도 참 고생이 많다.  끓는 물 속에서 채소를 짊어지고 서 있는 것과 불타는 장작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 중 어느게 더 힘든 일인지 찜기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겠지만.. 낯선 곳에서, 나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존재가 겪는 고생이라는 건 사람이나 물건이나 감당하기에 벅차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각자의 장소

"당신 요즘 멋있어 졌어요." 며칠 전,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 옆에서 점심 먹고 미뤄 놨던 설겆이 거리를 싱크대에서 행궈 식기 세척기에 넣으면서 아내에게 툭 한마디 던졌다. 별 시덥잖은 소리를 한다며 피식 웃는 아내에게 갑자기 뭔가 설명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에 왜 그런지 구구절절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그 상황이 우스워서 "아니, 뭐... 그냥 그렇다구요" 라고 얼버무리고는 똑같이 피식 웃고 말았지만.  잠시 프라이팬에서 재료가 볶아지는 소리와, 싱크대에서 달그락 거리며 그릇을 씻는 소리가 어울어지며 말 없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내도 알고 있고, 아내가 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첫째 아이가 항상 궁금해 하는,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것 같다는 엄마 아빠의 시간. 사람마다 어울리는 각자의 장소가 있다.  형이상학적인 어딘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런 '장소'. 그리고 아내에게는 미국이 그런 장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는 아이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지낸 탓에 경력이 단절되어 다시 job 을 구하는게 참 어려웠는데(끝내 구하지 못했다) 미국에 와서는 job을 구했다.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하더니 점차 회사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더 많은 일을 하면서 2주에 한번씩 들어오는 pay check의 액수도 빠르게 올라갔다. 그렇게 일하느라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대부분의 주말에도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느라 바쁘고 정신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빛과 말투 그리고 행동에서는 거꾸로 여유가 묻어 난다. 몸은 바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너무나 여유로운, 멋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모습. 지난주에는 함께 식탁에 앉아 내년 가계 운영에 대해 상의했는데 아내의 수입 덕분에 올해보다 여유가 생겨서 아내 명의의 IRA 계좌를 열었다. 아내가 번 돈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된 연금 계좌에 돈을 불입하는건 십년전 아...

이빨갈이

막내가 요즘 본격적으로 이빨 갈이를 시작했다. 지난주 식탁 앞에서 장난치다 미끄러지면서 모서리에 앞니를 부딪쳤는데 이 때 마침 흔들리기 시작했던 앞니가 하나 빠졌다. 곧이어 이웃을 잃은 다른 앞니가 며칠 뒤 빠졌고, 아래쪽 송곳니도 하나 흔들린다. 갑자기 유치들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고민이 생겼다. 어른 이빨 나오기 전에 애기 이빨들이 먼저 다 빠지면 자기는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 짓궂은 엄마, 아빠, 형아들 그 누구도 괜찮을거라고 하지 않는다. 큰일났다고... 이제 굶어야 한다며 장난이 한창.  그런데 오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막내가 옆에 오더니 자기가 생각해 봤는데 어른 이빨 나올때까지 '죽' 을 먹으면 될 것 같다며 죽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 와중에도 한가지 음식만 먹는 건 싫은가보다.  빙그레 미소를 짓다 품에 꼭 안아주면서 사실을 말해줬다. 어른 이빨은 항상 다른 애기 이빨들이 빠지기 전에 나오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는 얼굴이 놀라우리만큼 환해져서 형아들을 부르면서 방으로 달려갔다. 이 기쁜 소식을 자랑해야 하니까.  내가 그랬듯이 아마 저 아이도 수십년이 지나 자기 아이를 키울때가 되어야 알게 되겠지. 그 애기 이빨이 하나씩 빠질때마다 쑥쑥 커가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아쉬운지. 아이의 바로 어제 모습 마저도 얼마나 그리워 지는지.

간격(間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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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s://tracktherecovery.org/ Covid-19으로 인해 발생한, 소득에 따른 고용율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고소득자들의 고용율은 올초 수준을 회복했지만 저소득자들의 고용율은 연초대비 20%나 낮은 상태다. 주식 시장은 유례없는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낮은 시급을 받으며 하루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늘 먹을 거리조차 쉽지 않다. 성급한 생각이겠지만 고용율 격차가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은 경제 환경이 지금의 고용 구조를 바탕으로 안정화가 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확률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무리 낮은 가능성 이라도 정말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다.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인력을 줄여서 운영했는데 일이 돌아간다" 는 식으로 고용주들이 느낄 수 있다는 점.  고용주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으니 일시적으로" 라는 생각에 수긍한 것들이 '어쩔 수 없는'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착화 되고 문화가 되어 버린다. 고용주도, 심지어 피고용인도 그 상태를 '정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일상적인 야근이 그렇고, 낮은 임금 구조를 바탕으로 한 경제 규모 확대가 그렇고, 부족한 인력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그래서 업무의 질을 낮출 수 밖에 없는) 문화가 그렇다. 그런 문화를 '효율적이다' 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으나 그 말의 대상이 '사람' 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입 밖으로 내놓기 어려운 표현이기도 하다. 더구나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말 이라는 것에 이르면 감히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흐름은 물줄기와 같아서 전쟁과 질병등으로 사회 구조 자체의 큰 변화가 생긴 경우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다시 건강한 방향으로 흐른 사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