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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2023

뒷마당에 홈오피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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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에 있는 큰 나무를 베어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알고 보니 이 나무 꽃가루에 막내가 알러지가 있었다는. 눈이 내리면 정말 멋진 풍경을 선물했던 나무지만, 이 집에 온 뒤 매년 이 나무의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 코 안이 부어 코로 숨을 쉬지 못해 괴로와 하는 막내를 매년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내와 상의 끝에 베어내기로 했다. 대신 나무를 베어낸 뒤 그 자리에 아내와 내 홈오피스로 사용할 mini pod를 하나 들이기로 했다. 책상 두개, 의자 두개, 책장 하나, 그리고 협탁 하나 들어갈 정도의 아담한 사이즈로. 업체와 모델도 모두 정했다. 그렇게 아내의 책상과 컴퓨터 등을 뒷마당 홈오피스로 옮기고 나면 아내가 오피스로 쓰고 있던 서재를 침실로 바꿔서 둘째나 셋째에게 주기로 했다. 이러면 세 아이들 모두 자기 방을 하나씩 갖게 되는 셈. 침실로 바꾸면서 전기 공사를 좀 해야 해서 돈 쓰는 김에 개러지 쪽으로 전기차 충전을 위한 240V outlet도 만들려 한다. 당장은 쓸 일이 없지만 언젠가는 필요해질게 뻔하니. 나무 제거부터 시작해서 몇달짜리 프로젝트가 될 예정.

2023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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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마지막 날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짧은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나는 출근을 하기는 했으나 사무실에서 회사 업무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2023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해가 될 것 같다. 좋았던 해로.  2024년에도 이 좋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를.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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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파스타에 눈을 뜬 느낌. 이게 가만 보니까 볶음밥 혹은 비빔밥과 같은 개념이다. 유명한 레시피들은 분명 있지만(한국 돌솥 비빔밥 하면 생각나는 것과 같은..) 그걸 따르지 않는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간단히 말해 면 삶은 뒤 뭐가 됐든 이거저거 넣고 휘적거리면 맛있는 파스타 한 접시가 된다. 냉장고 뒤져서 있는 반찬 꺼내 밥과 함께 볶거나 고추장과 참기름 넣고 비비면 맛있는 볶음밥이나 비빔밥이 되는 것 처럼. 오늘 아침은 마늘 한 움쿰을 기름에 먼저 볶아 놓은 뒤 잘 삶은 pappardelle면과 잠깐 같이 볶아 주고, 먹고 남아 있던 고추참치 통조림 넣고, 치즈 넣고, 버터 넣고, 매운맛 소스 조금 넣고 휘적휘적.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여튼 맛있다.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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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큰 비가 "또" 왔다. 오래 사신 동네 분들 이야기로는 평생 몇 번 보지도 못했던 큰 비가 지난 몇년은 매년, 그것도 여러번 오는 것 같다고. 명백한 기후 변화의 흔적. 내가 사는 지역은 어찌 보면 협곡 같은 지형이라 큰 비가 오면 침수가 될 확률이 있다. 물도 잘 빠져 나가지 않고. 다행이 우리 동네는 첨부한 이미지의 붉은색 원... 어찌 보면 섬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가 와도 도로가 잠기거나 집이 잠기는 피해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출퇴근은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회사가 파란색 원 북쪽 경계에 있어서 침수 지역을 지나지 않고는 출퇴근이 어렵다. 일부 도로만 잠겨서 어찌어찌 갈 수는 있는데 구글맵이 없었더라면 아마 차단된 도로와 도로 사이에서 엄청 우왕좌왕 했을것 같다. 파란색 원에 들어 있는 동네는 평지에 가깝고 당연한 말이지만 교통도 편해서 살기 좋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제는 폭우가 올 때마다 빗물이 흘러나갈 곳이 없는 저지대라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수십, 수백년 동안 상시적으로 침수가 되던 지역이 아니라 배수 시설도 변변찮은 데다, 비구름이 툭하면 양쪽의 높은 산 사이에 갖혀서 여기에서 비를 왕창 쏟아 붓는 탓에 매번 비 피해가 심각하다. 내가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는데 지난 3년동안 날씨가 크게 변했다. 어제 동료들과 이야기해 보니 갑자기 침수가 잦아진 지역 집들, 특히 부자 백인 동네로 유명했던 한 타운은 요즘 집을 내놔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인프라를 개선하는건 정말 오래 걸리는 이야기라서 당분간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보면 나 같아도 그 동네로 이사가는건 피할 것 같다. 아마 전혀 동네 지식이 없는 이민자나 타 주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들어가겠지. 이젠 이사 갈 때 기후 변화도 신경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Happ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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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giving Day 아침.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에 Thanksgiving 장식을 했다. 제일 앞에 보이는 향초는 둘째가 지난번 학교 장터에 만들어서 팔고 남은 것들. 고이 모셔 놨었는데 이번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때 켜기로 했다. 호박은 할로윈에 집 앞 장식으로 사용했던 진짜 호박인데 아직 멀쩡해서 계속 사용하기로. 매년 추수감사절마다 여러 가정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는 했지만 아내와 나 둘 다 집을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부지런함은 갖추지 못해 그런 부분에서는 매번 밋밋하게 넘어가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 추수감사절은 그러지 말고 집 안과 식탁을 좀 꾸미자고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아내도 동의해서 이번주에 식탁보나 집 데코레이션을 추수감사절에 맞게 하고 접시와 그릇도 새로 샀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정말로 추수 '감사' 절 처럼 보내고 싶어서.. 라는 담백한 이유였다. 며칠전 첫째와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아이가 "감사할게 없는데 뭘 자꾸 감사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했다. 그 때 아이에게 "아빠는 감사하다고 느끼는 일이 없는 삶을 네가 살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고 말해줬다. 무슨 소리냐는 아이에게 해 준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늘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름에 고통받는 사람은 누가 물 한컵을 주면 그 사람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느끼겠지만 마실 물이 풍족해서 목마름을 느낄 일 없는 사람은 누가 물 한컵을 줘도 감사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서 바라봤을때, 물 한컵에도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삶과 물 한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삶 중 어느게 더 행복하고 원하는 삶일까 생각해보면 1초의 고민도 없이 후자를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두 삶 중 하나를 살게 된다면, 후자의 삶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때 더 감사해야 할 일 아닐까. 한컵의 물에도 감사한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어마...

욕심

욕심을 부려야 할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때를 구분하는게 쉽지 않다.  내 나이가 아직 많지 않다는 생각... 그래서 천천히 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고 그 반대의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어느쪽이든 합리적으로 선택하면 된다고 할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택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서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와인을 한잔 하면서 쇼팽의 녹턴 1번과 2번을 번갈아 듣는 저녁.  왜 이리 취기가 빨리 올라오지 않는지. 좀 빨리 취했으면 좋겠는데.

이웃

가까운 이웃을 만들기가 어렵다. 적당히 가까운 이웃이 아니라 부담 없이 교류할 수 있는 친구같은 이웃. 하긴 친구 만드는 것도 어른이 되면 어려운 일이니 친구같은 이웃은 더 어렵겠지.  이웃과 교류가 없냐 하면 그런건 아니다. 교류는 분명 있는데 내가 원하는 그런 교류는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없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괜찮은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나와 내 아내가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게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 어쩌면 지나치게 모난 부위가 많은 우리 부부.. 서로에게는 한없이 순두부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슴도치나 다름없는 우리 부부의 성격도 원인이겠고. 그래도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생기겠지. 괜히 서두르다 마음 상하는 경우 만들지 말고 느긋해지자. 

LANAP Periodontal surg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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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날 괴롭히던 잇몸과 치주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치주 질환 전문 치과에서 LANAP 수술을 받았다. 효과가 좋고 확실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 역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기를.   

Goodbye, Colum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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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magazine 최신호에 실린 칼럼, "Goodbye, Columbus." 저자인 Rober P. Jones는 White Christian nationalism 에 대해 이야기 하며 콜롬버스 시대의 Doctrine of Discovery 부터 현대의 Trumpism 까지 선을 잇고 있다. 아침을 먹으며 첫째와 이 칼럼의 내용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다행이 콜롬버스를 "인류 최초로 대륙간 해상 노예 무역을 시작한 사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이기도 하다" 라며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아이에게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discovered 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내 생각에 그는 visit 한거지 discover 한게 아니다. 엄연히 원주민이 살고 있었으니 방문했다고 표현하는게 옳다. 더 깊게 들어가는건 중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인것 같아 거기까지만 했는데, 적어도 학교의 교육은 올바르게 가고 있구나 싶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사춘기 아이와 대화를 할 때 이런 주제(인종차별과 노예제도)는 항상 조심스럽다. 괜한 미움의 불씨를 심어줄 수 있으니. 고등학생 정도 되면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Township soccer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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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부터 타운십에서 주관하는 축구 클럽별 리그가 한창이다. 리그 참여를 신청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몇개 학년을 묶어서 랜덤으로 팀을 구성하기 때문에 매 시즌 팀과 구성원이 달라진다. 한 팀 내에서도 학년이 다양하고. 성별에 따라 리그는 나누지만 그것만 다르지 나머진 그야말로 모든게 랜덤. 덕분에 팀 별 수준 차이가 아주 크지 않다. 아이들이라지만 폭우 수준이 아니라면 비가 오든 말든 모든 시합은 그대로 강행한다. 코치와 심판들은 아이들과 함께 비를 맞아가며 시합에 임하고 부모들은 우산을 쓰고 경기장을 둘러싸고 응원을 하는데 일단 시작을 하면 중간에 폭우로 바뀌어도 그냥 진행한다. 오늘도 그랬다. 경기가 끝난뒤 아이들은 전부 수영장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꼴 이었는데 날씨까지 추워서 경기를 응원하는 부모들은 우산쓰고 파카까지 꺼내 입고 온 모습과 대조적. 그래도 그 추위에 비에 흠뻑 젖어서 친구들과 경기에 이겼다고 파이팅을 외치고 즐거워 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걱정보다는 흐뭇함이 더 컸다. 코치들이 이깟 비도, 추위도 우리가 오늘 상대팀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걸 방해할 수 없다며 아이들에게 함성을 지르게 하고 투쟁심을 끌어 올리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국 남자들의 마초 정신은 이런식으로 어릴때부터 길러지는 건가 싶기도. 지난주에도 비가 왔었는데 그 때 코치가 "지금 춥고 비가 오지만 오늘 경기를 이길수만 있으면 내일 좀 아파도 상관 없잖아! 안그래? 춥다고 벌벌떠는 저 아이들에게 축구가 뭔지 가르쳐주자! 자, 가자!" 라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 역시 동조의 함성을 지르고, 그걸 듣고 있던 부모들도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와..... 이 사람들 정말.' 싶었다. 초등학생들 축구 시합인데, 분위기는 슈퍼볼 경기장이다. 여튼, 그렇게 차가운 가을비 맞아가며 몇차례 시합을 뛰었지만 둘째는 감기 한번 안걸리고 건강하다. 아이가 속한 팀은 현재 리그 2위. 1위를 하겠다며 팀원들 모두 파이팅 넘치고 있는데, 원했...

인재 모시기

삼성전자 시절 내 상사 중 한명을 우리 회사 경영진으로 모셔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우리 회사가 제일 취약한 부분을 맡아서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그 분이 적임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삼성전자 시절 알게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네트워크 폭이 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다들 자기 네트워크 범위 안에서 찾기 마련이니 오십보 백보. 폭이 좁은 대신 긴 시간 함께 일을 해왔기 때문에 더 깊게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성공 했으면 좋겠다. 

Car ac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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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출근길, 교통 사고를 당했다. '당했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 차는 가만히 서 있는데 뒤에서 다른 차가 받았기 때문. 정체 구간에서 픽업 트럭 한대가 내 뒤에 있던 SUV를 받았고 그 SUV가 내 차를 받았다. 어찌 보면 가벼운 추돌인 것 같지만 픽업 트럭과 full size SUV 사이에 벌어진 사고에 휘말린거라 가벼운 내 세단에게는 제법 큰 충격이었다.  일단 뒤 범퍼는 완전히 나갔고 뒤쪽 펜더를 비롯 트렁크까지 후방 거의 모든 부분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repair shop에서는 차를 들어 봐야 알겠지만 아래쪽 프레임에 충격이 가해져서 영향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하겠다는 입장. 그동안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런 사고를 당해본 적이 없다. 일단 경찰을 불러서 리포트 # 를 받았고 보험 회사에 연락해서 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차는 수리를 위해 shop에 맡겼고 오늘 렌터카를 받기로 되어 있다. 수리에 대략 2주 정도 걸릴거라는데 그 동안은 이 렌터카를 타고 다닐 예정. 다행히 내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모든게 다 용서가 된다. 이런 사고를 완벽하게 피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고 언제든 생길수 있다고 봐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 몸 무사한게 최고의 결과 아닐까.  여튼 액땜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는 그러니까 더 이상의 안좋은 일은 없기를. 

회사에 충성하기 vs 내 영역 구축하기

금요일이었던 어제, director 한명이 내 사무실로 오더니 오늘이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며 굳은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에 CEO와 그의 매니저 그리고 HR 디렉터가 자신을 불러서 통보를 했다고. 사실 그에게 오늘 통보가 갈 것이라는 사실은 한달 전부터.. 아니, 구체적인 날짜가 오늘이라는 걸 안 건 한달 전이지만 그가 lay off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 건 수개월 전이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여준건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한 내 마지막 배려였을 뿐 몇달 전 CEO가 그를 내 팀에 데리고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을때 나 역시 그에게 줄만한 업무가 없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었다. 그의 입장에서 이는 정말 억울하기도 하거니와 배신감도 드는 상황이리라. 중국계였던 그는 아시아인 치고도 유별날 정도로 상명하복에 철저했으니까. 회사에 입사하고 10년간 회사가 뭔가를 요구하면 no 라고 한 적이 없을 정도. 상당히 무리한 장기 출장도 군말 없이 다녀오고 회사가 어떤 불합리한 요구를 해도 항상 yes 맨이었다. 그래서 10년동안 상당히 많은 업무를 거쳐 갔는데 좋게 말하면 여러가지 업무를 아우를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어떤 일을 시켜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게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10년간 시키는대로 온갖 궂은일을 다 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사실 회사 입사후 개발자로 일했던 5년은 그에게 좋은 시절이었던 걸로 보인다. 새로운 시장이 막 열리던 시기, 회사의 개발 책임자로 여러 신제품들을 연달아 개발하면서 아직까지도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개발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시장이 평준화 되고 자체 개발보다 아웃소싱이 늘어나면서 회사에서 개발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한게 그에겐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Mechanical engineering 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컨트롤, 센서, 무선 프로토콜 등 electri...

GNU 40th anniversary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재미있게 살았던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면 내 경우 답이 금방 나온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약 5년의 기간. 이때는 매일 매일이 흥미로웠고, 재미있었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것들 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컴퓨터에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리눅스와 해킹에 빠져 있었고 이와 함께 접한 자유소프트웨어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다. 정말 쓸모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높은 확율로 쓸모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미있어 보이기만 하면 무한정 시간을 쏟아붓고는 했는데 전공 과목 몇개를 말아 먹고도 멈출 수가 없었을 만큼 '정말' 재미 있었다. 2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 때 했던 수많은 쓸모 없는 일들만큼 재미있었던게 없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가 미사일 제어용 컴퓨터로 쓰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2를 4천대나 구입했다는 뉴스( https://kbench.com/?q=node/7709)에 자극 받아 나도 Playstation2 에 리눅스를 올려 컴퓨터로 만들겠다고 했던 삽질은 데비안유저그룹 세미나에서 그 과정과 결과를 발표(내가 해봤는데, 되긴 되지만 일반 PC처럼 사용하기는 어려우니 쓸데 없는 일 님들은 하지 마세요 라는 결론..)하기까지 했던, 미칠듯이 재미있지만 하등 쓸모 없었던 일들의 하이라이트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 내가 했던 많은 일들 중 쓸모 없는 일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걸 하나 꼽자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소위 네임드는 아니었고 이제와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아주 짧은 활동이었으나 그 활동과 별개로 GNU와 FSF의 지향점은 내게 있어서 단순히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고민에 머물지 않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줬다. 바로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 내가 마땅히 가져야 되는 권리와, 내가 당연하게 지켜줘야 하는 남의 권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 GNU가 지난 9/27에 40주년을 맞이했다. 여러 루트로 오래된 인연들로부...

첫째의 독립에 대한 대화

요즘 첫째와 이런 저런 대화를 참 많이 한다.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주말에 둘이서만 자전거를 타고 멀리 다니면서 대화가 더 늘기는 했으나 아이가 7학년에서 8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전과 확연하게 차이가 날 만큼 대화가 늘었다. 이와 관련해서 아이에게 아빠이기 전에 사춘기를 먼저 겪은 한 남성으로서 네가 참 멋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고 보여 부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의 나이때 아버지와 대화 자체를 안하려 했었는데, 이 아이는 다르다. 어른들과 대화를 하려 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을 하지 않고 인정한다.(간혹 그래서 더 대담하게 잘못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요약하면, 내가 못했던 걸 이 아이는 한다. 같은 사춘기에. 어쩌면 그래서 제안했던 것 같다. 어제 저녁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아이에게 그랬다. 5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제 성인으로써 독립을 하게 될텐데,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직업을 갖든 혹은 대학을 가든 상관 없이 6개월이든 1년이든 하와이 같은 곳에 가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은 주구장창 서핑을 즐기면서 해변에서 한껏 시간을 보내고 오는게 어떠냐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으로 첫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고민해보고 또 마음껏 젊음을 즐겨 보는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른으로써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이제 그럴 기회가 없을테니 시작점에서 한번 쉼표를 찍고 가는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 고민과 사색은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도서관이나 골방에 앉아서 하기 보다 하와이 같은 곳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하는게 더 낫지 않겠냐고. 19살의 치기 어린 감성으로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그 시간이 돈 버는데는 쓸모 없을 확률이 높지만 아빠 나이가 됐을때 얼마나 삶에서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이 될지는 상상도 못할 거라는 건 아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상상도, 이해도 못할테니. 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었으나 고...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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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일정의 출장을 위해 공항에 도착.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탑승 게이트 앞 피아노를 두 여성이 번갈아 가며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악보가 없어서인지 가끔 틀려서 다시 치기도 하는데 그래도 듣기 좋았다. 지난 금요일부터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잠시나마 그 일을 잊을수 있었고 뭔가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연주가 끝난 뒤에 옆에 가서 오늘 정말 힘든 하루였는데 덕분에 힘든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두 여성들은 내 힘든 하루에 대한 위로와 함께 자기들의 연주와 노래가 도움이 됐다니 기쁘다며 내 행운과 safe trip을 기원해 줬고. 그렇게 감사와 위로를 주고 받고 났더니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 졌다. 미처 말해주지 못했는데, 이들 또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행복하고 안전한 비행이 되기를. 뒤늦게나마 이렇게 기원한다.

Rutgers Scarlet Knights vs Northwestern Wildcat

지역 주립대인 Rutgers University 풋볼팀인 Rutgers Scarlet Knights 와 Northwestern Wildcat 의 2023 College football 경기에 다녀왔다. 처음 가보는 College football 경기인터라 대학 경기가 뭐 얼마나... 하고 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무슨 한일전 보는 줄. 주차부터 고생하더니 Rutgers 의 대학 컬러인 붉은색 셔츠를 입은 사람으로 경기장이 거의 가득 찼다. 학생들만 온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해서 온 가족이(말 그대로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손자 손녀까지) 총 출동한 모습들도 정말 정말 많았다. Rutgers 가 시종일관 압도한 끝에 24-7 로 승리. 경기 초반 Rutgers의 와이드리시버 Ian 이 end line 끝에서 가까스로 공을 잡아 첫번째 터치다운에 성공하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Ian이 공을 잡았을때 end line 을 벗어났는지 아닌지 애매해서(착지 했을때는 확실히 라인을 벗어나 있었지만 잡는 순간이 라인 인 이었는지가 관건이었다) 비디오 판독에 들어갔었다. 내가 찍은 동영상이 바로 그 상황으로 비디오 판독 후 터치다운이 선언되는 상황을 담았다. 터치 다운이 선언되고 경기장은 잠시 광란의 시간을. 직접 본 느낌으로는 이 순간 Ian이 붕- 하고 날았다. 음...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된다. 여튼, 저 세상 텐션인 사람들 많이 봤다. 가끔 경기보다 이 사람들 보는게 더 흥미로왔을 정도.

연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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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day 연휴의 시작. 첫째와 아침 일찍 15마일 자전거를 타고 왔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고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점심 먹고 아이들은 게임을 시작했고 아내와 둘이 뒤뜰에 나와서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아내는 조금 전에 pool chair 에 누운 채로 잠이 들었다. 낮잠 자기 좋은 날씨. 하여 굳이 깨우지 않고 있다. 3~4시쯤 되면 게임 시간이 끝난 아이들이 수영하겠다고 나올 것 같으니 그때까지는 그냥 둬도 되겠지.  난 옆에서 '달라구트 꿈 백화점'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붕 뜨는 듯한 소설은 오랜만인듯. 술술 읽히고 쉽게 빠져드는 걸 보니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가보다.  어쨌든 날씨가 술 마시기 아까울 만큼 좋다.

사람 고민

새벽에 집에서 나와 인디애나로 날아가서 미팅을 하고 다시 뉴저지로 돌아왔다. 우버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 12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난 수요일 밤, Warehouse director가 사직서를 냈고 당장 다음주까지만 일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다음주까지 출근한다고 하지만 그 사이 노동절인 월요일과 붙여서 목, 금 휴가를 냈기에 사실상 3일 노티스를 한 것. 2주 노티스가 기본 상식인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더구나 시니어 매니저들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일찍 이야기 해 새로 사람을 뽑든 임시로 다른 사람이 진행중인 일을 넘겨 받든 회사가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게 도와주는게 매너인데,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warehouse들을 총괄하던 director가 3일 노티스를 하는건 어떤 이유로 퇴직을 하는 것이든 정말 매너가 없는 행동이었다. CEO와 HR Director 그리고 나까지 셋이 목요일 아침에 회의를 했고 그를 잡기 위한 어떤 협상 없이, 다음주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날 바로 내보내기로 했다. 설사 협상을 그쪽이 원하더라도 내보내기로 했다. 이런 사람을 회사의 주요 자리에 둘 수 없다는게 그 이유. 우리 회사의 인사 원칙중 하나인, asshole과는 일하지 않는다가 적용됐다. 퇴직 사유가 다른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얼마나 회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다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됐다. 인사에서 목요일에 바로 통보를 했고 나는 warehouse 팀의 메인 사무실이 있는 인디애나에 팀을 단속하러 오늘 당일 치기로 다녀왔다. 미팅은 잘 됐지만 앞으로 warehouse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 술 한잔 하고 싶은 날이다.

Ride bu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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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오후에 샵에서 주문한 첫째의 자전거 조립과 세팅이 끝났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다. 퇴근길에 들려서 가져왔고 토요일은 놀러온 손님+아이들 친구와 수영장에서 노느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성당을 다녀온 후 재빨리 점심을 먹고 나와 첫째의 자전거를 차에 싣고는 자주 가는 D&R canal 트레일을 향했다. 아직 얼마나 아이가 따라올지 알 수 없어 우선 한시간 정도만 타 보기로 하고 속도를 조절해 가며 달렸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잘 따라왔다. 한시간동안 10마일 조금 넘게 달렸는데 이만하면 처음 장거리 라이드 치고는 잘 탔다고 보여진다.  날씨도 좋았고, 아이와 함께 라이드를 하는 기분도 좋았다. 새삼스럽지만 이 아이가 언제 이만큼 컸을까. 어쨌든 이제 라이드를 함께 할 친구가 생겼다.

첫째의 그래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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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 첫째와 코어 근육의 힘과 지구력을 어떻게 하면 더 기를 수 있을지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다. 펜싱을 배우고 있는 첫째가 시합이(공식전이 아닌 클럽내에서 친구들과 하는 시합이지만..) 길어지면 급격하게 힘이 빠진다는 것과 몸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을때 다른 친구들보다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한 다음이었다. 사실 근력 운동을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악착같이 플랭크를 오래 하거나 덤벨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반복 운동을 첫째가 질색하는 상황이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별 상관 없을 수도 있지만 문득 생각이 나서 아이에게 툭 던졌다.  "아빠하고 자전거 탈래? 아빠처럼 장거리 타다 보면 코어와 지구력이 좋아질텐데." 별 기대하지 않고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다. 지난 2~3년간 가끔씩 이야기를 했지만 첫째는 운동을.. 특히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을 싫어하는 만큼 늘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부했던 터라 별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이날은 잠깐 생각하더니 OK 를 했다.  "네." 예상을 못했던 터라 잠시 아이를 쳐다봤는데 뭐가 문제냐는 시선이 되돌아 왔다. 얼른 (마음 바뀌기 전에) 오케이 하고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두달이 지났고 그 사이 아이는 한국을 다녀왔다. 지난주부터 어떤 자전거가 좋을지 본격적으로 상의 하다 Giant Revolt2 black color small size 로 결정했다. 아이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나보다 키가 클텐데 그때를 위해 Medium size로 할까도 고민 했었는데 그건 아이에게 당장 너무 큰 프레임일것 같아 small로 했다. 내가 small size도 탈 수 있는 키니 아이가 나보다 커지면 내 자전거를 주고 내가 그걸 타면 되겠지.  어떤게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펜싱을 시작한 뒤로 운동에 조금 더 관심이 생긴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좀 더 점수를 주기 시작한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아빠가 원하는 것 같...

Vacation house?

50대에서 60대로 넘어가는 나이의 동료들 중 일부가 바닷가나 조용하고 경치 좋은 외곽에 vacation house 를 사서 주말을 보내는 경우를 본다. 그때마다 나도 십년 뒤에는 저만큼 여유가 생길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몇년만 일찍 미국에 왔다면 나도 제법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텐데. 어쨌든 10년 뒤에는 뭔가 달라지겠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모기지 부담도 줄어들테고 연봉도 올라 있을테니 금융 자산을 더 모으거나 아니면 vacation house 를 사서 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하지 않을까?  십년, 열심히 연봉 올려보자. 

8월 수녀원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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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8월 정기 봉사 활동.  피정의 집 조명을 교체하고 근처 나무 뿌리 정리(나무를 잘라내고 남아 있던 뿌리/그루터기를 6개나 도끼로 쪼개고 톱으로 잘라서 꺼냈다.), 마지막엔 울타리 근처의 가시나무 덤불 제거 등등 근 몇달 사이 가장 힘든 일들을 했다. 아빠들이 힘을 쓰는 사이 아이들은 수녀님들과 정리된 잔가지를 옮기며 일을 했고 엄마들은 식사 준비. 정말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몰려갔고 어른들은 나머지 일들을 정리했다.  이 수녀원이 우리 가족에 미친 영향은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가치를 매길 수도 없다. 매달 가서 봉사를 하고, 물품을 기부하고, 금전적으로도 도와드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우리 가족이 받는 것들의 반도 되돌려 드리지 못하는 느낌.  어쨌든 9월에는 이제 장작 준비를 시작하신다니 장작 패기의 시즌이구나.

가치를 계산하는 방식

두달 전부터 수영장 필터를 가동시키면 펌프와 필터에 공기가 찼다. 필터를 거쳐 수영장으로 물이 나오는 출수구에서도 종종 공기 방울이 뿜어져 나왔고. 아무리 봐도 어디에선가 물이 새는 것 같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늘 그런건 아니고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생기는 상황이라 일단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그 현상이 지속됐다. 아내와 상의를 해봤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물이 새는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 가장 의심이 가는 건 수영장에서 필터룸으로 오는 파이프.. 땅 속에 묻혀 있는 그 파이프에 실금이 간게 아닐까 하는 상황. 수영장 물이 빠르게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만일 어딘가 파이프에 실금이 가서 계속 상황이 악화되는 중이라면 지금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해결하지 못하니 어쩔수 없이 서비스를 불렀다. 두 업체를 비교했는데 한곳은 정밀 기기를 들고와서 하는 전문 업체로 점검 비용만 $750 이지만 거의 모든 leaking 을 찾아낼 수 있고(보증하고) 다른 업체는 $170 으로 훨씬 저렴하지만 장비를 이용하기 전 먼저 눈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점검을 하는 곳. 만일 pool leaking 이 확인되고 간단한 조치로 안되는 상황이면 그건 다른 전문 업체를 불러야 하는 조건. 만일 정말로 땅을 파야 하면 비용이 얼마나 나올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래도 $170 이면 훨신 저렴했고 심각한 leaking 까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있어서(수영장 물이 빠르게 줄어드는건 아니었으니까) 이 곳을 선택했다.  업체에서 방문한 당일. 두명이 방문했는데 와서 보더니 '지극히 정상' 이라면서 필터로 연결된 연결 커넥터를 렌치로 한두번 조였다. 그리고는 정말로 문제 해결. 펌프 진동에 의해 조금씩 커넥터가 느슨해 졌고, 물이 샐 정도는 아니지만 펌프가 동작해서 압력이 가해지면 공기가 새어 들어 왔던 것. 진단후 조치까지 정말 1분 정도 걸렸다.  끝났으니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그래서 내가 얼마 줘야 해?...

북적거리는 일상으로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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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오늘 새벽같이 나갈 라이드 준비를 미리 하느라 자전거를 점검하던 중 뒷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펌프로 공기압을 채우던 중 갑자기 "뽁" 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작게 나더니 바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휠을 돌려서 실란트가 구멍을 막도록 조치를 하고 공기압을 마저 채웠다. 어디선가 실펑크가 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신경 안쓰려고 튜브리스 타이어를 쓰는 거니까.  오늘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져본 뒷 타이어는 다시 공기압이 빠져 있었다. 휠을 돌리며 보니 실란트가 새어나온 자국이 어제 밤 확인한 곳과 다른 곳에 있었다. 그제야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어디서 운이 나쁘게 실펑크가 났던게 아니라 타이어의 수명이 다 되어 가는 거였구나 하는 상황. 사실 이 타이어 세트를 3천마일 이상 탔으니 거의 5천km 를 달렸다. 진작에 타이어 수명이 다 됐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일단 다시 공기압을 채우고 휠을 돌리며 더 새는 곳이 없는지 살폈는데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라이드를 나갈까 말까 정말 고민이 됐다. 오늘은 모처럼 뉴욕 업스테이트까지 멀리 올라가서 장거리 라이드를 뛰고 올 계획이었는데 가는 동안 다시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 라이드를 하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할테고, 심지어 라이드 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될 테니까. 잠시 서서 고민하다 일단은 가기로 했다. 한번의 라이드 정도는, 공기압을 낮춰 놓으면 50마일 정도는 그래도 버텨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과 함께.  결과적으로 타이어는 4시간에 가까운 그래블 로드 주행을 잘 견뎌 줬다. 그리고 덕분에 온 에너지를 길에 쏟아 내면서 회사 일로 복잡한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타이어로는 여기까지. 새로운 타이어 세트를 주문했고 도착해서 교체하기 전까지 자전거는 얌전히 차고에 모셔놓을 예정.  혼자 지내는 시간은 이제 오늘까지로 끝난다. 내일 아침에는 한국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온다. 다시 북...

동화책 삽화 같았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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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과 이런 저런 사정으로 두 달 정도 들여다 보지 못했던 수녀원에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다. 뉴저지에서 출발할때도 날씨가 좋았지만 펜실베니아로 넘어가면서 공기가 투명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좋아지더니 수녀원에 도착해서는 정말 이렇게 맑고 깨끗한 공기를 언제 경험해 봤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blurry 한 부분 없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동화책의 삽화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 그곳에서 오래 지내오신 수녀님들도 이런 날씨는 정말 드물다고 하실 정도였다.  함께 점심을 먹고 수녀원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 이야기, 우리집 뒷마당에서 키우는 감자 이야기 같은 농사꾼 같은 주제를 섞어가며 네시간 넘게 수녀님들과 수다를 떨다 왔다.  언제 와도 좋은 곳.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이런 시골로 들어와서 살 수 있을까. 

아침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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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날씨는 운동하기 딱 좋은데 아침부터 집에서 할 일이 있어서 자전거 타고 멀리 가지는 못하고 대신 잠시 동네 산책중. 아침 해를 보는게 시차 적응에도 도움이 될테니 겸사겸사. 습도는 조금 높지만 섭씨 20도에 산들 바람이 부는 정말 쾌적한 아침. 조용한 주말 아침이라 사슴들도 마음 편하게 화초들을 뜯어 먹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도 꿈쩍도 안하는건.. 여튼 이 동네 사슴들은 지나치게 도시화 됐다.

아시아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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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2주를 다녀 왔는데 1주일 이상 해외 출장을 다녀 왔던건 삼성전자를 그만둔 이후 처음. 지금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는 길어야 1주일이었으니까.  Vietnam에서 시작해서 Cambodia를 거쳐 중국 Shenzhen과 Shanghai 에서 마무리 된 일정이었는데 계속 이동을 해야 해서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비행기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다, 한창 해외 출장 자주 다녔던 시기보다 열살 가까이 더 나이를 먹은 입장이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많이 부담이 됐다.  토, 일요일도 계속 업체와 미팅을 하는 쉬는 날 없는 2주였지만 그래도 반나절 잠시 짬을 내서 출국 직전에 Shanghai 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운이 좋게 공기도 깨끗했고 비가 오지도 않아서 다니기에 좋았다. (그래도 사람은 너무 많았다. 워낙 시달려서 나중에라도 내가 가족과 함께 관광을 목적으로 여기를 찾아 올 것 같지는 않다. 우리집 식구들은 다들 사람 붐비는걸 싫어하니..)

불멍 & 물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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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 수영장을 오픈하고 한달의 시간이 지났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다 지나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수영장도, 그걸 관리해야 하는 나도.  아직 날이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아 아이들이 수영장을 이용한게 열번도 되지 않고 이웃들을 불러서 pool party 를 한 건 한번 뿐이다. 하지만 그런것 보다 수영장을 오픈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건 필요하면 불멍과 물멍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이 그런, 그러니까 불멍 & 물멍을 한꺼번에 하면서 밤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이다.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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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둘째의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둘째의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친구들과 기분을 내는 둘째와 함께 아내는 학교에 남고 나는 첫째와 막내를 데리고 집으로 먼저 걸어왔다. 해는 이미 넘어갔으나 하늘은 아직 붉게 꼬리를 끌며 군청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선선한 기온과 건조한 바람이 함께한 정말 좋은 날씨였다. 즐거운 공연을 본 뒤였고 날씨마저 좋다 보니 두 아이들 모두 약간씩 기분이 업 되어서는 앞다투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첫째는 금성의 날씨 설명을, 막내는 요즘 많아진 숙제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집으로 반쯤 걸어 왔을때 문득 첫째와 막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너희들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이냐며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말을 이었다. "ㅇㅇ이의 뮤지컬 공연을 보고 아빠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이 길을, ㅁㅁ이는 낮에 노느라 숙제를 못해서 걱정을 하고 있고 OO이는 금성에 대해 아빠에게 설명해주던 지금을 나중에 어른이 되서도 기억했으면 좋겠어. 맞잡은 아빠의 손 감촉을, 지금의 이 날씨와,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과,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얼굴과 미소를, 저기 언덕 위로 보이는 우리집 porch light 까지. 그 모든 것들을,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은 첫째는 피식 웃으면서 짧게 "네." 라고 했고 막내는 "너무 많아요~~!" 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막내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안으며 "너무 많다고 한 지금 네 말도 기억해야해~!" 라고 하니 아이가 자지러 졌다.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이탈리아의 시인 Cesare Pavese가 한 인간의 기억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통찰. 오늘 저녁이 그런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냥 내 어린 시절...

메모리얼데이 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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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데이 아침 라이드. Columbia trail에 못보던 메모리얼 벤치가 하나 늘었다. 친구들이 이렇게 기억해주는걸 보면 Dianne는 좋은,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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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까지는 매달 100마일 이상씩 꾸준히 자전거를 탔었는데 작년 Gravel NY 그룹 봄 정기 라이드 즈음 문제가 생긴 무릎이 이후 장경인대 증후군으로 발전하면서 결국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7개월간 자전거를 완전히 봉인 했었다. 매년 부상으로 온전히 시즌을 마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작년 만큼은 다치지 않고 타자는 결심을 했었는데 그 결심이 무색하게 시즌 초반부터 부상을 입었고 결국 한창 뜨거운 시즌에 자전거를 봉인해야 했다. 장경인대 통증이 너무 심해서 실제 라이드는 물론 실내 자전거도 탈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달리 다른 선택지도 없었지만. 무릎 통증을 느꼈던 초반에 바로 라이드를 멈추고 원인을 분석한 뒤 한두달 쉬었다면 괜찮았을 것을,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타다 보면 염증도 금방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통증을 무시하고 장거리를 뛰다가 그리 됐다. 나름 스트레칭을 하는 등 관리 한다고 했는데 문제의 원인, 지나치게 낮춘 안장 높이, 을 고치지 않았기에 아무 소용 없었다.  지난달부터 다시 조금씩 타기 시작했는데 근육이 다 빠져서 마치 처음 자전거 시작했을때 같은 상태라는(거기에 나이도 더 먹었으니) 걸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괴롭히던 장경 인대의 통증이 없는게 정말 기뻤다. (당연히 안장 높이는 다시 맞게 조절했고.) 오늘 오후 또 한번 나갔다 왔는데 날씨도 좋고, 컨디션도 좋고, 정말 모든게 좋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래블 코스를 가지 못하고 동네를 돌았다는 것. 그래도 올해부터는 정말로 무리하지 않고 탈 생각이다. 하나밖에 없는 몸뚱이 아껴서 오래 써야지.

Work & life balance

캘리포니아 출장중. 이틀전에 LA에 도착했고 어제 LA를 떠나 샌디에고로 내려왔다. 내일은 멕시코로 넘어갈 예정. 렌터카를 운전해서 왔는데, CEO와 함께 이동하는 상황이어서 차에 둘이 앉아 처음으로 긴 시간 대화를 했다. 일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대화만 몇시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각자의 가족 이야기에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 그는 내가 입사하기 직전, 지금은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난 회사의 창업자가 몇년에 걸쳐 삼고초려해서 채용한 전문 경영인이다. 이사회 의장과 그 사이에서 방향이 충돌해서 내가 고생한 적도 있지만 일할때 전반적으로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다. 어제 처음으로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50대 후반이라고. 평소 좀 어려 보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원래 다른 인종의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운 법이라서 좀 어려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렸던 것. 그가 CEO가 된 시점을 생각해보면 50대 중반이었고, 이사회에서 몇년동안 합류를 설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50대 초반에 이미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일 하는걸 보면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하면서도 그만큼 가족들과도 잘 지내고 자기 삶도 충분히 즐긴다. 종종 일주일에서 열흘씩 오지에서 백패킹을 하면서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어제도 차에서 친구와 전화로 이번 여름 트래킹 계획을 조율하기도 했다. 이른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라 매년 많은 돈을 버는게 부러운게 아니라, 그런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워커홀릭들과의 경쟁에서 승승장구 하면서도 가족과 화목하고 이웃과 잘 지내고 개인 삶도 즐기는 그 모습이 부럽다. 어제도 쉴 새 없이 울리는 그의 휴대폰에서도 굉장히 많은 수가 아빠의 샌디에고 출장을 대상으로 독립한 두 자녀들이 보내는 농담과 사진들이었다. 내일 저녁은 자기 첫째 아들의 베스트 프렌드가 이곳 샌디에고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그를 만나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고. 과연 내가 내 아이들의 절친과 그 정도로 친하게 지낼...

수영장 관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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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4-60 펌프를 제거하고 연결된 관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도 PVC 액체 용접도 익히고 이래저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좋게 말해서 그렇고, 사실 고생을 제법 했다. 언제 PVC 배관 작업을 해 봤어야지.  어쨌든 반나절의 고생 끝에 더 이상 물이 새지 않도록 작업을 마쳤고 성공적으로 circulation pump 제거를 했다. 제거하고 나서 필터를 가동시켜 보니 물이 새지 않고 잘 되더라는. 휴.  그런데... 사흘이 지난 어제, 필터실 바닥이 젖어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사실 며칠 전에도 보기는 했는데 그 때는 circulation pump 제거하면서 나온 물이 남아 있다고 생각 했었는데 계속 남아 있는게 영 이상했다. 바닥이 말라도 한참 전에 말랐어야 하는데... 싶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니 필터 하부의 drain plug 에서 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Pentair FNS Plus 필터와 연결된 펌프들. 이 집을 살 때 pool inspector 가 찍은 사진인데, 이때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역시 집은 주인 바뀌면 알아채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오 마이 갓. 하필이면 다음주 일주일간 출장이어서 수리를 할 시간이 앞으로 이삼일 밖에 없다. 아내가 할 수 있을리도 없고, 어떻게든 이번 주말에 고쳐야 한다. 아니면 다음주 내내 아이들이 수영장을 쓸 수 없고, 필터도 돌릴 수 없다. 일단 필터 회사의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부품명이 나와 있다. #51005000 O-ring 과 #190030 drain plug. 부품명 확인 후 주문을 하니 금요일에는 도착한단다.  23번과 24번 두개의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일단 금요일에는 pool에 들어가도 될 만큼 기온이 올라서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해 줄 생각이고 손님도 불러 저녁을 함께 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면 필터를 잠그고 토요일 아침부터는 drain plug 교체 작업에 매진해야 할 듯. 일단 필터는 사용 가능하게 해 놔야 할테니. 어쩌면 PB4-60의 ...

수영장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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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전주인이 집 뒷마당 pool 을 위해 설치해 놓은 이런 저런 시스템들을 들여다 보고 있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반대로 하나씩 고쳐야 하는 부분들도 나온다.  일단 지금 당장 당면한 가장 두번째로 심각한 문제는 수영장에 설치된 두개의 펌프중 pressure cleaner 와 연결된 펌프에서 물이 새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걸 손보려다 연결된 PVC 파이프가 깨졌다는(정확히 말하면 똑 부러졌다는) 것.  수영장과 직결된 파이프였기에 부러지자마자 바로 수영장의 물이 부러진 파이프를 통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필터의 배관 스위치를 closed로 옮겼는데도 계속 물이 쏟아지는걸 보고 수영장과 연결된 파이프라 수압으로 물이 나오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일단 물을 틀어 막는 다른 밸브가 주위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보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한 아내를 불러내렸다. 물이 쏟아져 나오는 파이프를 가리키며 왜 저렇게 됐는지, 물을 잠글수 있는 밸브가 없다는 것과 내가 지금 당황해서 침착하게 생각하지 못하니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등등을 설명했다.  펌프실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을 일단 밖으로 돌리는게 우선인 것 같다며 아내가 펌프실에 있는 호스들을 이용해서 응급 조치를 하는 사이 나는 수영장을 둘러보며 수면의 변화가 있는지, 어디에서 물이 흡입되고 있는지를 찾았다. 다행이 수영장 바닥이 아닌 벽면의 물 순환 펌프와 연결된 출수구를 통해 물이 거꾸로 유입되고 있는걸 손을 집어 넣어 확인했다.(물이 흡입되고 있는 압력이 느껴졌다). 내 설명을 들은 아내가 고무 마개를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했고 수영장 closing 도구들을 뒤져서 고무 마개 두개를 찾아 끼웠다. 잠시 후 아내가 깨진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던 물이 줄어든다는 확인을 해줬고 그제야 숨을 돌렸다. 입고 있던 청바지도 젖었지만 팔 길이 만큼 아래에 있는 출수구를 틀어 막느라 손을 집어 넣었던 탓에 셔츠도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동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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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 그리고 막내 셋이서 동네 산책을 나섰다. 꽃나무들의 꽃잎이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지 일주일째가 되어 이제는 제법 많은 꽃잎들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카펫처럼 내려앉은 꽃잎들을 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아이들도 함께 나와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첫째와 둘째는 숙제가 아직 남아 있기도 했으나 애초 이런 산책을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따라 나서는 경우는 대부분 막내가 유일하다. 각자의 개성이니 강요할 수 없는 문제. 그렇게 동네를 걷기 시작한지 5분. 사슴 성체 한마리가 이웃집 앞마당에 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여름털로 반쯤 털갈이를 마친 모습이었는데 희한할 정도로 꼿꼿하게 서서 우리 가족을 쳐다보고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 이런 모습의 사슴은 사실 대부분 한가지 경우다. 아니나 다를까. 유심히 관찰해보니 근처 수풀에 어린 새끼가 한마리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다. 우리 가족이 멈춰서서 쳐다보고 있자 어미가 긴장한듯 보여서 다시 걸음을 옮겨 멀어진 뒤 사진을 찍었다.  동네에서 제법 여러 종류의 야생 동물들을 마주친다. 사슴, 라쿤, 여우, 다람쥐, 토끼 등은 너무나 쉽게 마주치는 종류고 드물게는 흑곰(이건 자전거 타러 가서)도 봤고 카피바라(누군가 애완용으로 키우다 버린 것 아닐까 싶지만)도 봤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슴을 마주치는 정도로는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사슴은 마주칠 때마다 잠시 응시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사슴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문득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막내의 조막만한 손을 같이 힘주어 잡아 주자 아이가 날 쳐다보며 좋다고 웃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환경이 좋았다고 추억을 하는게 아니라 그때도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어서 그냥 당연한 일상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어...

Pool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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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뒷마당 pool 오프닝 작업을 하고 있다.  겨울동안 덮어 두었던 커버를 벗기고 그 사이 지저분한 것들이 잔뜩 쌓인 pool 바닥을 로봇으로 청소하면서 동시에 pool filter 를 돌렸다. 이 로봇 청소기가 과연 어떻게 동작 할까 궁금했었는데 제법 기대를 충족시켜 줬다.  시간이 날 때마다 청소기를 돌리고, 솔질을 하고, 수영장 필터 돌리기를 며칠.. 드디어 수영장의 물리적인 청소를 끝냈다. 이제는 chemical 들을 넣어서 수질을 맞출 차례. 이 부분까지 끝나면 물 색이 더 투명해 진다는데, 한번 봐야겠다.  그나저나 날이 좀 뜨거워져야 아이들이 들어가서 놀 텐데. 당분간은 그냥 어른들 pool party 용도로 이용될 것 같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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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막내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잠을 잘 수 없다고 펑펑 울면서 방을 나왔다. 평소 잘 때 용기를 주는 커다란 인형도 이미 품에 안고 있는걸 보아 스스로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해 본 듯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방으로 가서 불을 끄고 침대 옆에 주저 앉았다. 품에 안고 침대에 함께 누워 주기에는 이제 막내도 많이 자랐다. 그렇게 침대 옆에 바짝 앉아 손을 뻗어 가슴을 토닥여 주자 아예 내 손을 부여잡고 품에 끌어 안는 모양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던 모양. 그렇게 30여분 있자니 숨소리가 고르게 나기 시작. 잠들기까지 제법 오래 걸렸다. 지켜보다 한손으로 어렵게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의 얼굴을 촬영했다. 이 아이는 커서 이런 모든 순간을 기억할까? 아마 아니겠지? 그러니, 내가 대신 기록해야겠지. 이렇게.  

5,6,7월 일정

5월 중순, 출장 5월 중순, 캠핑 6월 초, 캠핑 6월 중순, 캠핑 6월 말, 캠핑 7월 초, 캠핑 7월 중순, 출장 ----여기까지는 확정---- 8월은 어쩐다.

또 다른 소식

요즘이 뭔가 전과 다른 시절인건지,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나이가 그럴때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틀 연달아 가까운 이웃의 이혼 이야기를 들었다.  첫번째 소식이 내 이십대부터 이어져 온 인연들에 대한 것이었다면 두번째 소식은 미국에 와서 생긴 인연들로부터 왔다. 정말 가까운 이웃이라고 느꼈던,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가까운 사이였던 가족이라 또 다른 형태의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갈라선 상황은 아니라지만 이혼 이야기가 테이블에 오르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단계까지 갔다면 설사 다시 봉합을 하더라도 상처는 남을 것으로 보여서 많이 착찹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나아 기르며 십년 이상을 산 부부가 헤어짐을 고민할때 상처가 없을 수 없다.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과는 상처의 깊이가 비교가 안되겠지.  내가 의견을 낼 문제가 아니라 함부로 단어를 얹을 수는 없으나,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소식

학부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후배 내외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에 인연도 깊은 사이고 어떻게 보면 내가 연결해준 부부라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말이든, 글이든 아껴야 하는 입장인 것 같아 길게 글을 적을 수는 없지만... 둘 모두에게 합리적인 결정이었기를. 그리고 이 결정이 둘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잘 한 결정이었기를 바란다. 아니면? 까짓거 우리집 방 하나 와서 술주정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줘야 겠지.

노후 대비

언젠가 지인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는 월급쟁이로 살면 월급과 연금만 열심히 모아서는 노후에 대한 답이 안나오는데, 미국은 젊은 시절부터 성실하게 살면 월급과 연금만 차곡차곡 모아도 노후에도 답이 나오는 것 같다고. 몸 쓰는 일을 하면 조금 다른데 그런 일들은 은퇴후에도 경제적인 부분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그 업으로 small business 를 열어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일반적인 월급쟁이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지내는 듯 보인다. 월급쟁이로 살 경우에도 경영진 레벨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대단히 여유있어 보이고.  어쨌든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자로 살고자 하는 동기가 아주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성실하게 생활을 한다는걸 전제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사회 활동도 하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며 노후를 준비하는게 미국에서는 큰 어려움은 아닌걸로 보인다.  단, 어린 나이부터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경우에만.  나처럼 마흔이 넘어 미국에 온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한 것도 아니어서 갖고 있는 자산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미국에서 내가 벌어 가족이 생활을 하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내 노후까지 대비하는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은퇴까지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인데, 월급쟁이 처지에 이를 극복하려면 결국 small business 를 시작하거나 회사에서 일을 하더라도 높은 연봉을 받는 루트를 노릴 수 밖에 없다.  내가 속해 있는 industry 의 미국내 top company CEO는 작년에 $7M 이 넘는 total compensation을 받았다. 2년전인 2020년에는 stock option 덕분에 거의 $20M 을 받았고. Top이 아닌 회사들중 CEO의 total compensation이 공개된 곳들을 찾아보면 대략 $0.5M ~ $1.5M 을 오가...

환경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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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뉴저지에서 펜실베니아로 넘어가는 다리를 통해 델라웨어 강을 넘는 구간이 있다. 아치형 다리라 중간까지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 다리를 통해 펜실베니아로 넘어가는 순간 끝도 없이, 말 그대로 지평선까지 펼쳐진 듯한 숲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구글 로드뷰를 캡쳐한거라 느낌이 덜한데, 실제로 운전할때 보면 수해(樹海)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나무의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이 넓은 수해가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엄격한 환경 규제 때문이다. 주마다 세부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큰 방향은 동일한데, 공사를 위해 나무를 자르려면 그에 상응하는 수량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내가 사는 뉴저지는 공사를 위해 나무를 제거하는 경우 지름 24인치 이하의 나무는 지름 3인치 이상의 나무로 1:2 매치시켜서, 그러니까 24인치 이하 나무 한그루 자르면 3인치 이상 나무 두그루를 심어야 한다. 24인치 이상은 3인치 이상 나무 세그루를 심어야 하고. (워싱턴주에 사는 지인의 정보로는, 거기는 30인치 기준으로 최대 6그루까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단다. ) 그러니까 "울창한 숲" 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하나 내려면 최소한 도로 면적의 몇배에 해당하는 새로운 숲을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나무의 종류까지 따져야 하지만, 어쨌든 새로 도로를 내는 것도 어렵거니와 도로를 낸다 하더라도 최대한 숲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도로가 구불구불하게 날 수 밖에 없는것. (어쩔수 없이 예전에 만들어 놓은 도로를 최대한 잘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놓고 보면 미국의 freeway 체계를 확정한 1956년의 Highway Act 는 정말 대단한 정책이었다고 생각된다. ) 미국이 자국의 삼림을 보호하는데만 집중하고 미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에서 삼림을 파괴해서 돈을 번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국의 삼림을 지키는 일 자체는 어느 나라 시민들이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지구적으로 이...

평화의 집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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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에 있는 평화의 집 수녀원에 매달 다녀오는 봉사를 다녀왔다.  제법 많은 눈이 뉴저지를 출발할때 부터 내렸는데 펜실베니아 고지대에 있는 그곳은 더 많은 눈이 내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지나치게 춥지 않아서 도로에는 눈이 쌓이지 않고 들판과 숲에만 쌓였고, 운전해서 다녀오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숲 한 가운데 자리잡은 이곳은 정말 언제 찾아와도 좋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데.. 내게 주어진 삶의 형태로 보아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

Cho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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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지나면 겨울이 끝날 것 같다.  일기 예보를 보면 2월에도 아직 추운 날이 이어지는 듯 하지만 그런 숫자로 표시되는 계절 말고 그냥 느낌으로 알게 되는 계절을 이야기 하자면 이제 겨울은 끝난 것 같다. 봄이 왔는가? 하면 그건 아직 아니지만서도.  어쨌든 쇼팽의 녹턴이 어울리는 주일 저녁. 와인은 없지만, 겨울을 떠나 보내기에 좋은 선율과 시간이다.   

미국 시민권?

미국 시민권 신청 자격이 된다. 몇해전 한국을 나올때 다 정리하고 나왔다. 자산을 정리하면서 미국 송금을 위해 마지막까지 필요했던 한국 은행 계좌 하나 남겨두고 모든 금융 계좌를 다 정리했다. 금융 계좌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도, 국민연금도 전부 다 해지했고 전부 다 현금화 해 국세청 신고한뒤 싹싹 비질까지 해서 미국으로 옮겼다.(남겨 놓은 은행 계좌에 아마 몇십만원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요약하면 정말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고' 나왔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 나중에 아프면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병원 가는 법이라느니, 세금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다 무시하고 법과 절차대로 했다. 지인들에게 '남겨 놓은 건 친구와 가족뿐' 이라고 말 할 정도로. 그 둘은 내가 옮기고 싶다고 옮길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 무슨 대단한 결심이나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 하면, 가진 자산이 별로 없는 가난한 직장인이라 그렇게 다 현금화 해서 가져오지 않으면 미국에서 초반 정착에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없었기 때문. 없으면 없는대로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 셋이 딸린, 직장도 없이 넘어오는 사십대 이민자가 쉬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아니다. 거기에 더해 미국에 와서는 바로 직장을 구하지 않고 한동안 가족들과 100%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기에 그 생활비도 필요했고. 종종 아이들 다 키워서 대학 보내고 나면 한국에 돌아갈 거라는 이민자들을 보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나온게 아니라 나이 들어서 한국에 들어갈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돌아 갔을 때' 를 위한 준비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제와서 보니 한국을 너무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온 탓에 국적 포기와 같은 큰 일들이 지나치게 쉬워져 버렸다. 조금 과장하면 신청서 한장씩 미국과 한국에 내는 걸로 충분한 상황. 너무 쉬워지니까 고민해보게 된다. 미국은 남은 내 여생을 보내기에 괜찮은 ...

Alge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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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이 된 첫째는 이제 학교에서 Algebra 수업을 듣는다. 어떻게 보면 인류 문명의 정수라고 볼 수 있는 철학, 그 철학의 한 부분인 논리가 숫자와 관계식으로 표현되어 정리된 지적 유희의 끝판왕인 수학, 그리고 그 수학의 정수라고 부를수 있는게 algebra 대수학 이다. 미국, 그중에서도 뉴저지의 공교육에서 algebra의 기초는 2학년만 돼도 시작하지만 말 그대로 기초일 뿐이고 본격적인 수학적 아름다움을 다루기 위한 준비는 7학년은 되어야 다루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외에 집에서 algebra 책을 한권 사서 아이에게 조금씩 가르쳐 주고 있는데 가르치는 속도와 내용 설명을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고민이 많다. 아이가 수학을 부담이 아니라 재미로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자칫 그 경계를 넘어갈까 싶어서 조심스럽다.  문제풀이의 대상이 아닌 논리와 사고의 유희로 즐기는, 인문학으로써의 수학은 정말 재미있는데 어떻게 해야 그 재미를 느끼게 해줄 수 있을런지.

바람 잘 날 없는.

사람 사는게 다 그렇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머리 복잡한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큰 변화가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경영 회의에서 들었다. 특별한 이슈 없이 모든게 잘 진행된다고 가정할때 빠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발표가 날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예상 했었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몇 년 뒤의 일로 예상했던터라 당장 올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는 제법 놀랐다.  경영 회의가 끝나고 CEO가 자기 사무실로 따로 불러서 작년 성과 보너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변화 이후 내가 받게될 benefit 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이후에도 자신은 계속 CEO로 남아 있을 예정이기에 자신의 senior staff 들도 계속 남아서 조직 변동 없이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게 그의 바램.  그의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승진해서 경영진이 되니 이런 정보도 미리 알게 되고 또 혜택도 주어지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뿐. 상대에게 꼬치꼬치 캐묻는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내가 따진다고 별로 바뀔게 없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 버리는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그 자리에서 말을 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내 무반응을 지켜보며 CEO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좀 애매했다. 좀 멋있는 말도 해가며 협상을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자세한 내용을 물어봤어야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경험이 좀 더 쌓였으면 내 대응도 달랐을텐데 이제 겨우 넉달밖에 안돼 업무 적응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기 때문에 경영 임원으로의 태도를 갖출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미팅을 마치고 나와서 지금까지, 주말 내내 머리속은 이만저만 복잡한게 아니다. 남을 것인지, 남아서 약속받은 benefit 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이 참에 보너스 받아 챙긴뒤 다른 회사로 옮길 것인지 하는. 당연히 옮길만한 다른 회사들은 어디가 있는가 하는 고민도 함께. 이제 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가 ...

낭만, 그리고 기억들

일상은 짜증날 만큼 시시하고, 기억은 저릿할 만큼 아름답다.  와인 한병을 따서 홀짝거리며 과거의 글을 읽어보는 시간.  쓸쓸함이 낭만이던 시절, 어설픈 한편의 글 조차도 영혼 없이 두드리는 지금의 글 보다 몇배는 더 아름답다. 쓸쓸함은 낭만으로 치환되고, 낭만은 문자로 새겨지던 시간들.  이제는 쓸쓸함은 여전하나 낭만은 없고, 간신히 끌어 모은 낭만조차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번거로와진 건조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