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내가 사용하는 만년필은 카트리지 형식의 제품이다.즉, 미리 잉크가 채워져 있는 잉크 카트리지를 마치 캡슐 삽입하듯이 만년필에 삽입해서 사용한다. 잉크병에 만년필 끝을 넣어서 잉크를 빨아들여 사용하는 약간은 고전적인 만년필과는 다르다면 다른 그런 제품이다. 어제 한참 사용을 하다 잉크가 떨어졌다. 원래 들어있던 카트리지가 작긴 했지만 이처럼 빨리 잉크를 다 사용할줄은 몰랐기 때문에 별것 아닌 일이지만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만년필의 중심부를 양쪽으로 돌려서 분리해 냈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텅 비어있는 카트리지. 분명 그동안 조금씩 내부의 잉크가 줄어들어 갔겠지만 처음 넣을때 이후에는 한번도 열어본적 없기 때문에 내게는 꽉차있던 잉크가 어느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고 투명한 재질의 카트리지만 남아있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손으로 잡아 뽑자 마치 곤충이 벗어놓은 허물이 떨어져 나오듯 빈 카트리지가 떨어져 나왔다. 길이 3센티미터, 두께 5~7밀리미터. 사실 이렇게 비어버린 필기구의 소스를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얼마전까지도 많이 사용하던 볼펜들 중 볼펜의 잉크를 이처럼 투명한 재질에 담아서 내놓는 것들이 많았으며 이중에서도 볼펜의 겉 케이스는 불투명 하고 잉크를 담는 심은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어느순간 다 쓴 볼펜을 열어보면 가늘고 긴, 투명한 심을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 만년필의 뚜껑을 열었을때의 상실감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야말로, [비어있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지독한 상실감까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와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했을까? 늘상 볼 수 있는 작은 사건, 필기구의 잉크가 다 떨어져 버렸다는 작은 사건일 뿐일텐데. 아마 난 그 잉크 카트리지의 두께로 인해 내부에 있던 무엇인가가 비어버렸다는 느낌을 극도로 많이 받은것 아닌가 싶다. 가는 볼펜심이 아닌, 무언가를 담아 놓았던 것이 분명하게 생긴 비어버린 잉크 카트리지의 형태로 인해. 그때문에 비어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