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 기억
전에도 느꼈지만 내 생각의 우물은 항상 해가 지고 난 이후에야 자신에게 글이라는 두레박이 드리워 지는 것을 허락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야 난 내 생각을 내면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일까? 어쩌면 단순히 습관일 수도 있다. 낮에는 밖을 돌아다니고 밤이되어야 집에 돌아와 키보드에 손을 얹게 되는..그런 습관의 결과. 뭐, 어느것이든 그 이유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침이라기엔 조금 늦고 낮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인간이 만든 규칙에 의하면 11시 30분이라는 굉장히 자주 말해지는 시간 단위로 설명할 수도 이겠지만 그보다는 ‘무엇보다는 이르고 무엇보다는 늦다’ 라는 식으로 설명하는게 좀더 덜 어색한 그런 시간이다. 어제 밤에도 그런 휘발성 기억을 상당히 떠올렸고 오늘 아침이 되자 어제 어떤 생각을 했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 손가락을 통해서 펼쳐지지는 않는다. 다행이라고 할까? 그다지 밝은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남과 해본적은 아무래도 없는 듯 하니까. 난 어떤 생각이 들때 단순히 그 생각이 아니라 그걸 글로 옮길때 적절히 표현이 될만한 표현들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머리속으로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학교오는 길에 문득 삼각김밥이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 들려 김밥을 사들고 나오면서 껍질을 벗겼을때 그 김밥은 양념장이 김밥의 포장을 벗기는 반대쪽이 아닌 벗기는 쪽에 있었다. 지금껏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아마도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걸 보는순간 머리속에서는, ‘당연할 거라 기대한 일이 어긋날때, 비록 그 사실 자체가 지극히 사소하고 상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단지 기대가 어긋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받는 느낌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느낌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혹은 그 느낌을 잡아내지 못할뿐이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