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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2013

기일 아침

지난 주말 새벽같이 일어나 청주에 다녀왔다. 지난주 내내 목감기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전화통화도 못하시던 어머니가 걱정되어 들여다 보기 위해서였다. 뵙고 바로 올라오는게 그래도 쉬실 수 있게 하는거라 생각해 혼자 내려갔다. 아이들을 달고 가봐야 유난히 할머니와 애틋한 첫째가 울고 불고 할테니 오히려 악영향일게 뻔하니. 아내가 싸준 곰탕과 반찬을 한보따리 차에 싣고 내려가는데 마음이 묵직했다. 아버지께서 먼저 가시고 혼자 지내신지 9년. 그 외로움의 깊이가 얼마인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혼자 자취할때 감기에 걸려서 혼자 방에 누워 있는것도 그리 서러웠는데 하물며. 오늘은 9번째 아버지 기일이다. 유난히 남아계신 분이 애틋하다.

게임 그리고 교육

내가 아직 게임에 빠질 나이의 자녀가 없어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질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귀를 잡힌채 끌려가야했던 세대가 놀이터에서도, 골목에서도 친구들과 놀 수 없어 가상공간으로 뛰어들어 관계를 맺고자 하는 그들의 자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둘째

어제밤, 잠지리에 누웠다가 벌어진 실갱이에 결국 둘째를 안고 나가 호되게 야단을 쳤다. 야단 맞을 때는 안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침실에 돌아오면 떼쟁이가 되는 통에 그때마다 다시 안고 나가길 서너차례. 결국 녀석이 고집을 꺾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고집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자기 싫다는 것 더하...

사랑해요

어제 밤늦게 야근을 하고 퇴근하니 두 아이들이 모두 안자고 놀겠다며 엄마와 실갱이 중이었다. 내가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안방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첫째가 빼꼼히 내다 보고는 환한 표정으로 방 안의 둘째를 향해 "아빠다!" 하고는 냅다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무릎을 꿇고 첫째를 안아주자 마자 뒤이...

땡큐

오늘 아침. 감기 때문에 한참 앓고 있는 아내가 첫째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우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더란다. 돌아 본 아내에게 아이가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면서 큰 소리로 "땡큐" 라고 인사를 했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아이에게 "땡큐"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감사할 ...

원자력 발전

제어한다는 말에는 시작부터 끝까지를 아우른다는 함의가 있다. 가속과 감속을 마음대로 할때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하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운전 가능한 차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제어가 안되는 차로 분류되서 도로에 나설 수도 없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현재 기술력으론 핵에너지를 ...

오늘 회사 교육중 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가 잠깐 있었다. 아이의 꿈이 소방관인데 그건 직업이지 꿈은 아니지 않느냐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하루종일 꿈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릇 피드백(feedback)이란 과거에서 와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지나간 과거에 그에게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이 있다. 바로 꿈이다. 직업일 수도 있고, 사회적 위치 혹은 인격적 성숙도일 수도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미래에 어떤 것을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반향이 현재의 내 행동 혹은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나는 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첫째 아이의 꿈은 얼마전까지 튼튼한 공룡이 되는 거였다. 아이는 튼튼한 공룡이 되기 위해 다큐멘터리에서 본 공룡들처럼 밥도 많이 먹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도 씩씩하게 뛰어 놀았다. 어떤이는 터무니 없는 바램이고 꿈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분명 튼튼한 공룡이 되고 싶다는 그 바램은 아이의 현재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고 그로인해 아이는 하루하루를 보다 열심히, 그리고 꿈을 이루어 간다는 행복감 속에 살 수 있었다. 꿈이란 그런것이다.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외친 내 바램이 만들어낸 메아리 혹은 피드백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바는 없을 듯 하다. 무언가 바램이 있어서 현재의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바로 꿈일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또를 사는이가 그 로또로 인해 오늘 하루를 희망에 가득차서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역시 꿈이다. 간절히 바라는게 있는가? 그리고 그걸로 인해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꿈을 꾸며 사는 사람이다.

점심식사 대화

어디에선가 읽은 적도 있고 얼마전 회사 선배에게서 유사하게 들은 말이 있다. 남자의 자신감은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까지 절정을 이루고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급격히 내리막을 굴러간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도전 이라는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대부분 사십세 전...

목욕

어제 두 아들과 간만에 같이 목욕을 했다. 아이들이 매일 씻기는 하지만 내 퇴근 시간과 아이들이 잠자리에 누워야 하는 시간 사이에서 함께 물장난을 치고 목욕을 할 타이밍을 잡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목욕을 하는 경우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여하튼 어제 간만에 두 아이들을 통안에 집어넣고 함께 들어가려다 깨달은 사실은, 많이 비좁아 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제 아빠와 셋이 통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정도까지 큰 것이다. 한쪽 무릎에 한명씩 앉혀서 놀 수 있었던게 엊그제인데. 둘째가 '안되요' 라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을만큼 어휘력이 늘었기 때문에 빼앗기 놀이, 물 끼얹기 놀이 등을 하면 의사 소통이 전보다 훨씬 원활해져서 나도, 그녀석도 전보다 훨씬 재미를 느끼는 듯 했다. 첫째는 말 할 것도 없고. 한참을 그렇게 깔깔거리면서 놀다 문득 서운해졌다. 조금 더 크면 이제 이렇게 목욕탕에서 장난치는 것도 못하겠구나. 언제 이렇게 컸니. 아직도 성인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디테일

제품 완성의 고지에서 마지막은 항상 디테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테일이란 대부분 제품을 출시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항목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설사 이슈가 되더라도 단기에 가볍게 해결 가능하거나 마이너한 이슈로 묻어 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제품 혹은 서비스 자체에 상당한 관심과 ...

사진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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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냉동실의 필름을 꺼내고 카메라의 먼지도 털어낼 때가 된 것 같다. 예전 사진을 보면서 근질대는 걸 보니.  굳이 분류를 하자면 사진이 도구가 되는 사람과 사진이 목적이 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텐데, 내 경우는 분명 사진 자체가 목적이었던 듯 하다. 무엇을 찍든, 어디서 찍든 그저 카메라를 만지는게 즐거웠던 기억을 보면. 몇해 전 사진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 대단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을. 무엇이든 편하게 담아 보자. 다름아닌 나 자신을 위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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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신혼 생활을 고양시 화정동에서 시작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동네였지만 그렇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그때의 기억을 한장의 사진으로 보여달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사진을 꼽는다. 일산에서 화정으로 나오는 지하철 3호선을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고가 도로가 들어서서 사라진 풍경이다.    별 다른 건 없는 사진이다. 하지만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하늘과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대지의 경계를 불을 밝힌 열차가 가르고 들어오는 이 풍경은 지금이나 그때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 한구석의 저릿함을 가져온다. 아니, 그 저릿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듯 하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잠이 오지 않을 땐 굳이 누워있지 말라는 조언에 충실하고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는데 예전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사진 정리하기, 글 다시 읽기 그리고 키보드 두드려서 블로깅 하기. 며칠전 오랜 친구 한명이 아직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 했다. 무심코 한 대답은 "내가 얼마나 글질을 좋아하는지 잘 알잖아" 였다. 그래...참 좋아하긴 한다. 블로그나 홈페이지 같은 형태로 글을 정리하기 시작한 건 14년째, 온라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이기 시작한 PC통신망에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부터 따지면 19년째니 어디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 오래도 됐다. 그 기간만큼 글쓰는 실력이 늘지 않은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별 것 아닌 글이라도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한장 한장 쌓여서 내는 그 향내는 어줍잖은 글솜씨와 비할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나저나...이렇게 키보드 끄적거리다 언제 다시 잠이 오려는지. 아무래도 내일만 출근하면 추석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자꾸 느긋하게 만드나보다. 

크리스마스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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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크리스마스 계획은 9월에 수립해서 10월에는 예약 까지 모두 마무리를 지어 두었었다.  아래 사진은 그 덕분에 찍은 사진. 제주 사려니 숲에서 아내와 단 둘이 내 삶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려면 지금쯤은 계획을 수립하느라 정신 없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원래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 별로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또 그것만큼 익숙해지지 않는 일도 없는 듯 하다. 이런 고민, 저런 고민 때문에 일상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면 내 힘으로 결론을 낼 수 있는 고민을 빼곤 모두 훌훌 털어 버리는 것이 정답이련만. 어찌 되었든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서 다시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번에는 아내와 나 둘 뿐만이 아닌 가족 모두의 여행으로 만들어 볼 수 있기를.

형제

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내가 신기하게 바라보는 많은 것들 중 단연 으뜸은 '형제'의 모습니다.  나와 아내 모두 형제,자매가 없이 자란 외동이어서 어렸을 때 집에서 나 이외의 다른 존재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은 경험해 보지 못하고 자랐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존재와 형제의 존재는 다르다. 어른들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 말을 들어주거나, 내가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형제는 다르다. 어른들은 어지간해서는 한쪽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따라서 형제와의 의견 조율은 오롯이 자신들의 몫이다.  이제 만 세살 그리고 두살이 지난 두 아이들이 과자를 서로 갯수 맞춰서 나누는 것을 볼 때, 화단에 물을 줄 때 한명은 호스 중간을 들고 다른 한명은 손잡이를 드는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을 볼 때, 맛있는 사탕을 선물로 받았을 때 꼭 하나씩 따로 챙겨뒀다가 동생거라고 또는 형아 거라고 나눠주는 모습을 볼 때, 서로 엄마 품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다가도 둘이 얼굴을 마주보곤 뭐가 즐거운지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볼 때 난 그 순간 순간이 경이롭다.  그저 큰 욕심 안부리고 두 형제가 지금처럼 서로 위해가며 평생을 그렇게 살기를. 싸움 없이 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 크게 맘상하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맑은 아이들로 그렇게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정치의 실종

정치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가는 쉽지 않은 논제다. 더구나 국가의 궁극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에서 법제화된 내용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에 의해(더구나 삼권분립의 원칙으로 보장받는 세번째 권력이기까지 하다) 위헌이라는 명분으로 부정될 수 있는 현정치 체제에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끊어서 정리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의 사법화라는 단어가 어느정도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반대인 사법의 정치화라는 단어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단에 국민과 정치가 집단 모두가 찬성 혹은 반대의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정치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사법의 판단 영역에서처럼 흑백의 논리로 양분되기 어려운 사안이며 단순히 정치가나 이해 관계자들만의 몫이 아닌, 언론과 모든 국민의 행동과 의사가 결집되는 행위라는 전제를 놓고 생각해볼때,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정치가 실종되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거물 간첩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다. 더군다나 단순 첩보 활동도 아닌 '내란 음모죄'로 잡아들였으니 당분간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사법 영역에서의 판단이 나오기 전인, 정치적 판단이 주류를 이룰 수 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 마땅한 상황은 그의 혐의에 대한 시끌벅적한 정치적 논쟁이다. 그런데 한동안 지켜본 이 사태의 꼬락서니(더 적합한 단어를 찾기가 불가능 했다)는 날이 갈수록 한심한 형태로 흐르고 있다. 법무부에선 통진단 해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으며 언론에서는 이미 그를 간첩으로 가정하고 이러한 간첩에게 국회 의석을 내 준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한 통탄을 하고 있다. 국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체포 동의안을 가결했으며 인터넷은 꼴보기 싫은 북한 간첩에 대한 질타로 끓고 있다. 정치적 판결이 필요한 시점임...

약점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약점이 있다. 굳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드러날 경우 어떻게든 대처를 해야 한다. 이 때 사람에 따라 방식이 전혀 달라지게 되는데 이 차이가 그 사람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모범 답안은 약점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 쉽지 않다. 결국 대부분이 선택하게 되는 방법은 약점을 감추기 위해 이리저리 수를 내 보는 것인데 그런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채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경우는 자기 자신의 심리적인 부채감을 덮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극대화 할 수 있는 감정, 즉 분노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자신의 약점과 거리가 있는 자그마한 것 하나에 주위에서 이해할 수 없을만큼 크게 분노해서 약점에 대한 스스로의 시선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을 제외한 주위 많은 사람들이 왜 그가 이렇게 분노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키우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진 약점이라는 것은 결코 완벽하게 감출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약간의 추론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좋은 상황일 때 연민, 최악의 상황일 때는 혐오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고 그 부분을 보완해 가면서 업무를 하고자 하는 동료가 존재할 경우다. 동료의 호의에 대해 전혀 엉뚱한 부분에서 납득하기 힘든 심한 분노로 맞받아쳤을 경우 두번 다시 그러한 호의를 받기는 어렵다. 감정적 손실을 감내한 채 두번 세번 동료들에게 호의를 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조언조차 받을 수 없다. 이야기 해 봐야 자기 합리화의 강 건너편에서 또다시 분노의 홍수를 일으킬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본인이야 신경 안쓴다고 하겠지만 주위 동료들이 그와의 ...

인턴을 대하는 태도

지난 봄 멘토링을 했던 학생이 다른 회사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는데 SKY 출신 아니면 안뽑으니 열심히 할 필요 없다는 말을 대놓고 회식자리에서 들었다고 한다. 듣는 내가 다 울컥했다. 어떤 과장이 그랬다는데 아무리 술김에 한 말이라지만 이런경우 취중진담으로 받아들여 지는게 보통이다. 그리 크지 않...

짧은 생각정리

애틀란타, 덴버, 보스톤, 신시네티, 콜롬버스, 렉싱턴, 피닉스 를 거쳐서 이번 출장의 마지막 기착지인 LA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포함 남은 이틀은 여유있는 일정이니 한숨 돌릴 수 있어서 좋다. 우중충한 애틀란타가 아닌 캘리포니아 남부의 햇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점은 덤. 애초 석달...

상실 - 喪失

지난 이틀간의 덴버 일정을 마치고 애틀란타로 넘어오는 길은 유난히 힘들었다. 애틀란타에는 강항 비바람이 몰아붙이고 있었고 공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비행기는 쉴 새 없이 흔들렸고 활주로에 내릴때는 동체를 크게 좌우로 한번 흔들어서 나지막하게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얼마전 아시아나 항공 사고가 떠올랐으리라.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길도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두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애틀란타에서 운전하기는 처음이었고 밤에, 비까지 오는데다 한박자씩 반응이 느린 네비게이션은 끊임 없이 나를 괴롭혔다. 5일간 지낼 숙소인 탓에 레지던스인으로 잡았는데 출입구를 찾지 못해 차에 내려 비를 쫄딱 맞아야 했다. 자정이 넘도록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있어서 오는 길에 사온 냉동 피자를 전자렌지에 넣어놓고 이래저래 힘들었던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좋은 소식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기분 좋게 집으로 연결한 전화를 통해 전해진, 외할머님께서 소천 하셨다는 청천벽력같은 아내의 이야기. 계속 안좋으시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공교롭게도 내가 출장을 나온 시기에 세상을 등 질 수가 있으신건지. 어렵다는 걸 알았지만 급하게 알아본 항공권으로는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발인 다음날 오후 늦게나 되어야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상황.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각별한 사람을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외할머님을 꼽는다. 젖먹이 시절, 생계를 위해 항상 시간이 없으셨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철이 들 때까지 날 키워주신 분이 외할머님이었다. 유난히도 고집이 세서 한번 울기 시작하면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는 나를 말 없이 거둬주신 분도 그분이었다. 울고불고 하는 어린 나한테 지쳐서 내다 버리라고 화를 내시는 아버지, 다정하게 다독이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셨던 어머니로부터 나를 데리고 나와서 몇시간씩 업고 집 앞 역전 광장을 얼르면서 돌아다니시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초등학생때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죽을 뻔 했던...

순대국, 자전거, 목욕

어제 두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순대국을 사주었다. 평소 되장국을 좋아하는등 입맛에 관해 까다롭게 굴지 않는 편이라 잘 먹지 않을까 기대는 했었는데 기대했던것 보다 훨씬 잘 먹어서 깜짝 놀랬다. 첫째도 둘째도 최고라며 손가락을 치켜들어가며 아구아구 먹어대는 통에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켰을 정도...

어린이집이 가져온 변화

지난 3월부터 첫째와 둘째 모두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첫째와 둘째 모두 각자 큰 변화를 격고 있는데, 첫째 아이에게는 친구가 생겼다. 그동안 집에서만 지내고 간혹 엄마손을 잡고 강좌등을 다닌게 고작이어서 또래 친구가 없었는데 어린이 집을 다니면서 이름을 기억하고 함께 놀고 싶어하는 친구들...

전자책

지난 몇달간 내 안드로이드 기기로 책을 읽는데 심취해서 제법 많은 책을 읽고 있다.(사실 요즘 게임을 할 수 없을만큼 저사양 폰이라 달리 할 것도 없다) 주로 이용하는 앱은 교보 도서관 앱인데 이 앱을 통해 졸업한 대학 도서관 전자책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읽는 책 ...

멘토와 멘티

화사에서 하는 대학생 대상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했다. 회사는 회사대로, 직원들은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각자의 목적이 있어 이같은 일을 하고 있을테니 남들이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이유가 필요할 뿐. 내가 참여한 이유는, 내가 그들 나이였을때 나 역시 정말로 누군가의 ...

보고서

심한 몸살 감기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어 끙끙대다 차라리 움직이자는 생각에 새벽부터 일어나 따뜻한 차 한잔을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일요일인 오늘도 아침에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오고나면 출근해야 하니 지금 마시는 차 한잔에 감기가 떨어지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심플하다. 내일, 그러니까 월요일에 사업부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하는 자리와 안건이 있다. 그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보고 준비 자체는 너무나 이른 시기에 쉽게 끝냈다. 다른 이의 도움을 크게 받을 것도 없었고 오히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아이템이었기에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업부장이 제시한 생각에 사업부장을 제외한 회사의 해당부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었으니 역시나 반대 입장인 내가 의견을 개진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 하다. 모두가 반대했던 일에 사업부장이 한번 더 검토해보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했고 마지못해 내게 떨어진 숙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 한주를 마감하는 날이어서 보스들은 모두 회의에 들어가 있고, 오후에는 조직강화 행사도 있고 해서 약간은 느긋한 시간이었는데 그 때 월요일에 보고할 자료를 다시 열어서 혼자 리뷰하다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화 해서 표현하자면 현재의 방식에 대해 사업부장이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제안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검토 보고를 하는게 우리 팀에 주어진 숙제였고 담당자로 내가 적임자라는 팀장의 판단에 내가 직보를 하게 된 아이템이었다. 사업부장의 제안은 제품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모르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이의 제기였고 내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의견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를 사업부장이 제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해프닝으로...그러니까 안해도 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숙제로 인지하고 있었다. 보고서가 ...

나른한 삶에 대한 기억

잠이 오지 않아 예전 블로그 글들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왕십리에서 자취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아마도 내 블로그에서 가장 감상적인 글을 남겼던 시기가 그 때였기 때문이리라. 글 수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어쩌면 그렇게 감상적인지. 그 때 살던 오피스텔이 15층이었고 창문 바로 옆에 침대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매일 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창문턱에 술이 담긴 유리잔을 한잔 올려놓고는 야경을 보면서 잠이 들었고, 휴일 아침 늦잠을 자기라도 한 날이면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일어날 수 있었다. 날이 좋은 저녁이면 멀리 사는 사촌 동생이 맥주 한잔 하자며 찾아올만큼 멋진 맥주집도 집 바로 옆에 있었다. 요약하면 감상적이 안될래야 안 될 방법이 없었던 환경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한장의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 찍는 취미가 없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 때 내려다 보던 그 야경을 다시 보기 어렵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이 되서 번듯한 건물이 왕창 들어섰을텐데. 그 때는 참 젊었다. 아니 어렸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1층 화단에서 올라오는 비 냄새와 창문을 두드리는 비소리를 즐기며 행복해 했었고 TV하나 없는 좁은 방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즐거워 했었다. 조금은 나른했던 날들이었고 조금은 여유 있었던 날들이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치열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에 잔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박수를 쳐주며 즐겁게 웃을지도. 여하튼 학사경고를 받고도 멋적게 웃어 버리고는 여전히 등산 배낭을 책가방으로 삼아 학교를 다니다 날이 좋으면 그 길로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었으니 그걸 나른한 삶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점잖은 표현인걸까? 어쨌든 요즘의 20대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른함이 미덕 까지는 아니라도 흠은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다시금 사진을 하고 싶어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어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걸 보면 나른한 삶에 대한 욕구가 제법 밀려오...

아이의 꿈

규헌이는 커서 공룡이 되는게 꿈이다. 시기에 따라 용감한 공룡, 튼튼한 공룡 혹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같이 구체화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핵심은 공룡이다. 그런데 어제 폭탄 선언을 했다. 공룡 과학자가 되겠단다. 털썩. 공룡 화석을 탐구하는 다큐를 너무 틀어줬나 보다. 아들! 하늘은 날아보지도 못했고 ...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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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2013]

부부 그리고 서로의 커리어 관리에 대해

아침을 먹으면서 웹서핑을 하다 가슴을 후벼파는 글을, 이혼하려 한다는 글을 보고 끄적끄적. 내가 선택했던 커리어 패스가 그래서겠지만 유난히도 내 주위에는 고학력자들이 많다. Ph.D. 를 받은 사람도 많고 받고 있는 사람도, 받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도 많다. 세상 어느일이 쉽겠냐마는 사실 공부해서 먹고 살겠다는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적당히 하면 적당히 살 수 있는 다른 직종과 달리 학업은 그 안에서도 선두 그룹에 들지 않는 한 결코 적당히 살 수 없다. 그래서 결혼한 Ph.D 예정자들이나 Ph.D 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 천재로 불러도 될 만한 사람들 뿐인데 그 사람들을 뛰어 넘어야 '먹고 살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기 보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고 젊은 시절을 청백리 처럼 사는 길을 걷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공부로 무언가를 이룬다는게 힘든 일이다 보니 가족의, 정확하게 말하면 배우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지원은 다시 엄청난 부담으로 되돌아 온다. 자신의 학비는 자신이 모두 해결한다고 해도(사실 결혼한 Ph.D 예정자들에겐 기본이어야 한다) 가장으로써 느끼는 책임감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때문에 나도 학위를 받기 전 2년간 만성적인 위염과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신체적 부작용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그렇게 힘든 걸 배우자에게 말 할 수도 없다. 칭얼대는 것 처럼 보일 것 같은 두려움에.   내가 읽은 이혼하려 한다는 글도 바로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름 성공한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나름 좋은 학교를 한국에서 나왔고 Ph.D를 받은 후에 미국에 넘어와서 포닥을 하고 괜찮은 직장을 다니며 성공한 삶을 사는 듯 했으나 남편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동안 자신은 애들 낳아서 기른 것 말고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