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사용하던 크레파스에는 하늘색' 이라는 색이 있었다. 옅은 파란색이었을 뿐인데 그 크레파스에는 분명하늘색’이라고 적혀 있었고 모두가 하늘을 칠할 땐 그 크레파스를 이용해서 색칠을 했기 때문에 항상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지는 종류의 크레프스들 중 하나였다. 주황색을 놓고 가끔 오렌지색이나 귤색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색은 옅은 파란색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부르지 않고 항상 하늘색 이라고 불렀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하늘은 고정된 색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시각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가진 존재이다.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카멜레온의 색이 무슨 색이냐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은 항상 옅은 파란색이라고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내가 대학에 오기까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동아리 후배 한명의 아이디를 접하기 전까지 내게 있어서도 하늘색은 그저 고정적인 색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 그림대회에 억지로 나가면 특이하게 그리는 것이 입상에 유리하다며 손발은 크게, 사람 얼굴이나 다른 색은 내가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르게 그리도록 강요 받았을 경우에나 다른 색으로 칠했을 뿐이다. 그 후배의 아이디는 내가 하늘색 이라고 느끼고 있던 색과 어찌보면 같은 뜻이지만 어감은 전혀 다른 단어인 `하늘빛’ 이었다. 한번도 하늘의 색을 `빛’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표현을 접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그 단어는 무척이나 싱그러운 느낌으로 찾아왔다. 하늘색 과 하늘빛 하늘빛은 고정적이지 않은, 단순한 크레파스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다. 크레파스 하나로 칠할 수 있는 하늘색 처럼 빛을 흡수해서 색을 내는 물감이나 크레파스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다. 샐로판지처럼 빛을 투과시키는 성질에 의해 표현되는 그런 빛이다. 오늘 하루종일 고민을 했다. 하늘빛 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가 될 것인가. lucid 정도면 적당할까. 가을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며칠째 서울 하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