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1999년 12월 31일을 집에서 혼자 보낸것 이후에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해였던 것 같다. 정확하게 3년만이다. 원래 무슨 날이든 잘 챙기는 성격이 아닌 관계로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는 날도 별다르게 의미를 두진 않았었다. 어렸을때는 집안에서 신정을 설날로 정해 모였으므로 다음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는다는 것때문에, 그리고 보기 힘들었던 사촌들과 만났다는 즐거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원래의 설로 챙기는 날을 집안에서 옮긴 이후로는 1월 1일은 그저 내게있어서 많은 날들중 하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날이 됐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종각에 타종을 보러 간다고 부선을 떨었지만 올해는 그것도 시큰둥. 특별히 누구와 만나고자 약속을 잡지도 않았고 그서 하루 집에서 푹 쉴 생각으로 영화와 소설들을 노트북에 챙겨서 집에 왔을 뿐이다. 너무 재미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재미란 상대적인 느낌. 자신의 판단 기준을 남에게 적용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드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근에는 매년 1월 1일을 기억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1월 1일을 챙겨서 글을 쓰고 있는건, 순전히 달력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3년이라는 숫자. 이유를 설명하라면 할 수 없지만 난 홀수가 좋다. 홀수를 좋아하는게 비단 나 혼자만의 특징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좋아한다는 그런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2001년이 그랬고, 2003년이 그렇다. 난 홀수해가 좋다. 무언가 기분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 물론 내 예감이 맞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런 정확성을 요구했다면 애초에 좋은일이 있을 것 같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느낌은 느낌으로써 끝. 좋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굳이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2003년은 내가 학부를 졸업하는 해이며 동시에 대학원생이 되는 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