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메세지를 인위적으로 전달하려 애쓰는 글이 싫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효과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글에서 취하는 과한 상황 연출이나 강조 등이 불편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마치 긴장감을 견디기 싫어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메세지성이 강한 글이나 소설을 아주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빠져들기도 한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이나 양귀자의 희망 같은...- 그래도 '선호하다' 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메세지성이 아주 강한 글은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선호하는 글은 건조하게 '이건 무엇이다' 라는 식으로 내뱉는, 마치 무언가에 대한 설명문 같은 글이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 바로 그 이유, 메세지성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물론 역설적이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상징성이 강하고 메세지 역시 강렬하다. 다만 작가가 그것을 굳이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상황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책 속의 상황을 '그려내듯 보여' 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적인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전혀 없다. 독자에게는 아주 간단한 선택지만 주어질 뿐이다. 소설속 상황을 무덤덤하게 '느끼'거나 책을 덮어버리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래서 그토록 하루키의 작품들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누군가에게 그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대단히 곤란해 한다. 무언가 메세지로 구체화된 것을 '찾아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보고 '소설이 그리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하는게 어렵다. 하고 싶지도 않다. 내 '느낌'을 '언어'로 번역하는 순간 왜곡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굳이 표현하자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설명은 못하는데 그냥 그의 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