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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February, 2022

새벽 주절거림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어설픈 새벽 시간에 일어나 서성이고 있다. 아이들 셋 모두 돌아가며 감기로 고생했는데 초기 증상이 비슷한거 보니 이번엔 내 차례인듯. 첫째의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라 그냥 다들 목감기 앓는거라 생각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그동안 첫째의 영어 실력 향상을 도와주겠다며 volunteer를 자처해서 매주 한시간 반씩 첫째를 도와줬던 동네 고등학생네 가족을 초대해서 저녁 먹기로 되어 있는데 증상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어렵게 잡은 약속이라. 내일은 재택 근무 예정이니 비타민 잔뜩 먹고 좀 일찌감치 업무 마치고 쉬어볼 예정. 일기예보대로 엄청난 비구름이 지나가고 있어서 마치 음악 공연장 드럼 안에 앉아 있는 기분. 폭우가 내릴때 나무로 지은 집 전체가 울리는 이 경험은 정말 색다르다.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것과 다르고 아스팔트 벽을 두드리는 것과도 다르다. 소리가 지붕을 두드리는 비로부터 퍼져서 나무 벽과 바닥을 부드럽게 타고 흐르는데,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야 아무런 느낌 없는 소리와 진동이겠지만 내게는 과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몽환적이고. 비 소리에 잠이 깰 정도면 감기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괜히 일찍 잠들어서 새벽에 이러고 있다. 다음 부터는 심하게 앓는게 아니면 너무 일찍 자는건 지양해야할듯. 그래도 잠이 안와서 맥북을 열었기에 우연히 지인의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당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당사자에게 연락해서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을 막아줄 수 있었다. 그런김에 근황도 들었고. 피곤한데, 다시 가서 눕기 애매한 정도라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업체 미팅이 있으니 늦잠 자는건 안될텐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5분. 아직 3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으니 누워 보기는 해야 겠구나.  

미국에 온 이유

어제 퇴근 시간 무렵, 독일계 이민자인 회사 동료 한명과 내 사무실에서 업무 미팅 후 잠시 이민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미국 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잡담을 했다.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과 독일과의 장단점 비교, 은퇴후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굉장히 넓은 범위의 대화였다. 주로 그 동료가 이야기 했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유럽계 이민자의 이야기를 듣는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시민권까지 땄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에 대해서는 많은 불만이 있는 동료였다. 나보다 열살가량 나이가 많아 이제 몇년만 지나면 early retirement 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그날만 기다린다는 입장. 59.5세 1초가 되는 순간 펜을 내려놓고 은퇴할 거라나. 그런데 대화중에 갑자기 내게 "넌 왜 미국에 왔냐?" 라고 물어봤다. 너무나 쉬운 질문. 1초도 고민 없이 답이 나갔다. "To make money." 그 동료는 내 답을 듣고 잠시 날 바라 보더니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내 평생에 독일 사람을 폭소하게 만드는 날이 올 줄이야.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되물었더니 더 장황하고 거창한 답변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다나. 한국 정도의 민주주의와 경제력을 가진 나라 시민권자에, 물리학 박사까지 했고, 삼성전자에서 일했으면서 돈 벌려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감행 했다는게 농담처럼 들렸다고. 그런가? 하고 갸우뚱 했다. 하지만 사실인걸. 물론 그 동료가 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자면 훨씬 길다. 그자리에서 전부 풀어놓을 시간이 없었을 만큼. 하지만 결국 전부 하소연이자 장식일 뿐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미국 이민 이유는 돈 벌려고 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미국 이민을 온 이유에 대해서는 넘어갔는데 은퇴하면 어떡할거냐는 질문이 따라 붙었다. 원래 독일인들이 이렇게 수다스러운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말수가 별로 없었는데. 다음에 만나면 이 동료의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봐야지. 여하튼,...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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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07 내가 가장 아끼는 카메라와 렌즈는 Pentax KX 와  K50.4 단렌즈의 조합이다. 이 카메라를 아끼는 이유는 딱 하나. 내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께서 일본 출장을 가셨다가 세상에 곧 나올 내 사진을 찍기 위해 사온 카메라와 렌즈이기 때문이다. 1976년생인 나보다 1년 먼저 만들어진 카메라.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단 하나의 유품이기도 하다.  카메라의 미러에도 흠집이 있고 렌즈에도 얼룩이 있어서 초점 잡기도 어렵고 빛이 까다로운 조건이면 사진의 중앙에서 약간 상단에 지문이 묻은것 같은 얼룩이 남는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런 사진을 찍을수 있는 빛 조건이면 항상 저 얼룩이 나오니까.  하지만 나는 그걸 아버지가 남긴 지문이라고 여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기신 물건을 정리하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카메라와 렌즈는 처음부터 그 얼룩이 있었다. 내가 만든게 아니니 아버지 생전에 남은 자국일 수 밖에 없고 당연히 아버지의 흔적이다.  오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사람이 그리운데 사람이 싫다. 이런 내게 어떤 조언을 해 주셨으려나. 

주말 아침 티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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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평소보다 이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거실에 내려와 커피를 한잔 내려서 손에 쥐고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서를 펼쳐 들었는데 웬걸, 둘째가 일어나서 거실에 내려왔다. 어제 놀다가 정신없이 잤는지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양말도 신은 상태. 자기도 자기 모습을 보더니 민망한듯 배시시 웃는다. 어이구. 그리곤 곧 이어 첫째도 내려왔고 5분 뒤에는 가벼운 감기 기운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막내까지 합류.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지만 평소엔 늘 깨워야 일어나는 녀석들이 휴일에는 귀신같이 일찍 일어나는건 아마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일듯 싶다. 첫째는 며칠전 먹다 남은 케이크로 아침을 먹겠다고 하고 둘째는 요거트에 꿀을 넣어 먹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고 큰 아이들이 각자의 아침을 챙기는 동안 나는 막내가 먹을 계란 간장밥을 준비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과 같이 마실까 싶어서 첫째와 둘째에게 차 마시겠냐고 하니 그러겠단다.  캡슐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게 간편하기는 하지만 주전자에 물을 넣어서 끓이는 행위가 주는 안온함은 따라갈 수 없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자가 소리를 낸다. 티백을 찻주전자에 넣고 식탁으로 가져와 아이들이 어제 선물받은 새 닌텐도 게임 이야기를 곁들여 떠들썩하게 아침을 먹는 동안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  이런 기회를 책을 읽느라 놓칠수는 없는 일.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펴놓았던 책을 덮고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시의 게임 이야기 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1. 둘째는 베스트 프렌드인 데릭이 수학을 얼마나 잘 하는지 놀라움을 거듭해 표시했다. 순수한 감탄과 친한 친구의 성취가 자랑스러운 모양. 어떻게 그렇게 수학을 잘하는지 같이 놀라움을 표시하며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학 시험의 성취에 대해 그 부모가 상과 벌을 철저하게 주는 모양. 매 학기 첫번째 평가에서 100점을 맞으면 게임을 새로 살 ...

내 지갑의 범위

오늘 아침 출근길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드리는 문안 전화에서 어머니와 나 사이에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논쟁이 다시 올라왔다. 나는 재산을 물려 받을 생각이 없고, 어머니는 사후에 남는 재산은 내게 주고 싶어 하신다. 나는 어머니께서 있는 돈 마음껏 쓰며 노후를 즐기시기를 바라고 남는 재산이 있다면 어머니와 아버지 이름으로 사회에 환원을 할 생각이다. 반면에 어머니는 내가 받지 않으면 당신 손자들에게 주겠다는 생각이시고. 아침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상속 받는 문제는 내 생각이 우선이 되야 하는 만큼 내가 끝내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정하겠지만 어머니의 재산을 당신 손주들에게 상속하는 문제에는 내가 끼어들 수 없다는 말씀.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성인이 됐으니 경제적으로 독립하는게 맞다는 내 생각에 동의해 주시고 대학 등록금은 물론이고 지난 25년간 내게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으셨던 분이 손주를 보시고는 마음이 바뀌셨고 그게 자녀를 키우는 내 가치관과 충돌한다는 것. 물론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스스로의 판단을 내릴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아이들과 대화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어머니께서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안먹고 안쓰면서 생활하신다는 점이다. 좀 넉넉하게 생활하셔도 좋을텐데 그렇게 아끼며 생활하시는걸 보면 속이 미어 터진다. 돈이 없는것도 아니고.. 혼자 지내시는 분이 왜 그렇게 생활하셔야 한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글을 쓰면서 내가 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경제적 결정권까지 좌지우지하려 드는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내가 결정하는 지갑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맞는 걸까. 어머니의 지갑에 대해 나는 권리가 없는건 맞다. 그럼 내 자녀의 지갑에 대해서는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책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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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과 교리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놓지 말고 이어가기를 바란다며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수녀님으로부터 받은 두권의 책.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원래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서 가볍게 읽고 돌려드리려고 빌려 달라 부탁을 드렸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갈때 짐이 너무 많다면서 아예 선물이라고 내 이름을 써서 주셨다.  부담 백배. 읽고 소화할 수 있을까.  처음엔 그저 인쇄물이었는데 선물이 되면서 뭔가 다른 존재가 됐고 의미가 담겼다.   

사람을 대하는 지혜

가까이 지낼수 밖에 없는 이웃중 한명이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 참 불편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냥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안보면 되는데... 이게 그럴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 오늘 아침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는 김에 지혜를 청해서 30여분 말씀하시는걸 들었다. 명쾌한 해답은 사실 없다. 이게 그럴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일흔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지혜를 들을수 있었던 그 시간 자체가 좋았다. 살면서 점점 크게 느끼는데, 분명 지식은 내가 어머니보다 많이 쌓았는데 지혜는 어머니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특히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흉내도 내지 못하는듯 하다.  

몇일 vs 며칠

수관형사의 예외 규칙.  몇주, 몇달, 몇년 과 달리 날짜를 의미하는 며칠은 'ㅊ' 받침이 'ㅇ' 자리로 옮겨가서 며칠 이라고 써야 한다.   보통 맞춤법을 사람들이 잘못 이용하면 집단의 자정 작용을 거쳐 맞는 맞춤법을 찾아가는것이 일반적이었는데(예를 들어 어의없다 -> 어이없다), 이 단어 만큼은 예외인것 같다. 날이 갈수록 몇일 이라고 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오늘은 기자도 몇일 이라고 쓴걸 봤다. 보통 기자가 맞춤법을 틀리면 사람들이 지적하면서 고쳐 주고 잔소리를 하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걸 보면 다들 몇일 이라고 알고 있는것 같다.  저녁 먹고 한글학교 숙제를 하는 막내가 몇일 이라고 쓰는걸 보고 며칠 이라고 고쳐줬는데 내가 관형사를, 그것도 수관형사 문법을 언제 배웠나 생각해보니 중학교 올라가서 배웠던것 같다. 그러니 우리집 아이들은 잘못 쓰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특히 기자는 좀 달라야 하는거 아닐까.

Lunar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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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은 좀 유별났다. 나는 그걸 '마치 지침이 내려온 것 같다' 고 표현했는데 그 정도로 음력설의 명칭을 Chinese New Year 로 해야 한다는 중국계 이민자들의 움직임이 정말 거셌고 조직화 되었고 광범위했다. 중국계 학부모들로 구성된 Chinese PTA를 통해 학교마다 중국 새해 문화에 대한 공연이 있었고 자료들이 제공되었으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뿌렸다. 온라인에서는 Lunar new year 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Chinese New Year가 맞는 명칭이라는 조언/항의가 뒤따르기 일쑤였다. 한인 타운에 있는 학교 한곳에서 음력 새해를 축하하며 Chinese New Year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중국계 학부모들과 PTA 사이에 충돌도 있었다. 작년까지는 아무런 항의가 없었다. 올해만 유별나다. 출신 국가의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려는 노력은 저들이 잘하고 있는거라 생각하지만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축하하는 절기에 대해 중국거니까 반드시 Chinese New Year 라고 불러야 한다는 그들의 요구는 대단히 불편하다. 마치 Europe's Christmas 혹은 Rome's Christmas 아니면 Catholic's Christmas 라고 하지 않는것 처럼 보편적인 절기/축제의 명칭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게 옳다.  더구나 음력이라는 것 자체는 중국만 사용한게 아니라 고대 인류 문명 대부분이 동시 다발적으로 사용했다. 해의 높낮이와 낮의 길이같이 하루하루의 차이를 인지하기 어려운 태양과 달리 모양이 하루하루 바뀌는 달은 날짜를 세는 용도로 가장 이용하기 쉬운 대상이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고대 이집트는 물론이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히타히트나 수메르까지도 태음력을 이용했다. 인도의 고대 국가들중 일부에서도 태양태음력과 유사한 구집력九執曆을 사용했었다. 중국의 주장대로 중화 문명에서 음력을 사용하기 시작한게 요순(堯舜)시대라고 한다면 기원전 2천년경이니 기원전 3천년으로 기록된 히타히트나 수메르...

둘째의 오케스트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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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오케스트라에 가입해 매주 금요일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대부분이 악기를 이때 처음 잡아보는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악기마다 선생님들이 따로 있어서 비록 일주일에 한시간이지만 그럭저럭 소리는 내는 수준까지는 된다. 그리고 그 오케스트라의 Winter concert 가 어제 밤에 있었다.  여러가지로 인상 깊었던 둘째의 어제 공연. 그 중 공연 시작전 아이들 음악 선생님이 나와서 인사하며 한 이야기가 계속 기억난다.  "이 아이들이 악기를 연습할 시간은 앞으로 수십년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죠? 즐겁게 악기를 대할수 있게 해주세요." 하긴, 어제 공연에 나온 아이들은 대부분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할 확률이 매우 낮은 아이들이다. 그 정도 재능있는 아이들은 이미 여기서 삑삑거리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그렇다면 악기를 즐겁게 취미로 만지며 수십년을 살아가는게 지금 당장의 실력 향상을 위해 다그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겠지.  잘 하는게 아니라 즐겁게 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둘째가 일주일에 한시간씩 학교 음악 시간에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바로 그런 모습을 우리 가정에 선물해줬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과 말도 안되는 합주를 하며 서로 재미있다고 깔깔거리고, 연습하다 잘 안되는 부분을 엄마와 함께 해보며 개선하고, 매일 저녁 온 집안을 바이올린 (주로 끼긱 삑삑 이었지만..) 소리로 가득 채워주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이 시간으로 그치지 않고, 부디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서도 즐겁게 바이올린을 켤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ps 우리 부부가 최소한이라고 잡았던 하루 30분 연습도 너무 많았던 것 아닌가 싶다. 어제 공연 끝나고 "거봐, 매일 연습하니까 해내잖아" 라며 칭찬하는 엄마에게 잔뜩 업 되어서는  "내일부터는 더 많이, 10분씩! 연습할 거에요." 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던 여자아이를 보고나니 더욱...

Please do not take this as it is for neighbors to s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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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인도의 얼음이 자주 어는 부분에 사람들 미끄러지지 말라고 고무 깔판 큰 것 두개를 가져다 놨었는데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졌다. 눈 온뒤 해가 뜨면 우리집 앞마당 잔디밭에 쌓였던 눈이 조금씩 녹는데 도로 높낮이 때문에 항상 drive way와  side walk 가 만나는 지점으로 흘러가고 아주 조금씩 녹아서 흐르는 탓에 약간만 추워져도 쉽게 얼어 결국 그 일대가 빙판이 된다.  Rock salt도 뿌려 봤는데 경사가 있어 salt 가 녹은 물이 흘러 내리는 탓에 너무나 쉽게 씻겨 내려가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파란색 빗금 영역에 얼음이 언다. 좌우 눈더미 때문에 돌아가기도 어려운 애매한 위치.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커다란 고무 깔판을 놓으면 물은 깔판 아래나 옆으로 흐르고 고무 재질 자체가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것도 막아줄 것 같아서 사다 놨는데 바로 그게 없어진것. 재활용품 치우는 사람들이 재활용품 내놓았다고 생각하고 함께 치웠는지 누군가 길에 놓여 있는걸 보고 내가 버렸다고 생각해서 가져갔는지 모르겠으나 여튼 없어졌다. 훔쳐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집 현관 앞에 택배 박스가 며칠씩 놓여 있어도 멀쩡한 동네에서 얼마 하지도 않는 그런 고무 깔판이 탐이 나서 들고 갔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실 바로 저 위치가 재활용품을 내놓거나 안쓰는 물건 내놓고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는 자리와 무척 가깝기도 하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어쨌든, 눈만 오면.. 그리고 조금씩 기온이 올라가면 여지없이 빙판이 되는 집 앞 도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모래를 사다 뿌려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다시 고무 깔판을 사다 놓고 가져가지 말라는 안내판을 세워 놔야 하는건지. 정말로 안내판을 세울까? Please do not take this as it is for neighbors to slip. Thank you.

이해의 반경

Manche Menschen haben einen Gesichtskreis vom Radius Null und nennen ihn ihren Standpunkt. - David Hilbert 위 문장은 내가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 Solid-state physics 시험지 제일 상단에 교수님이 붙여 넣은 문구였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해의 반경이 0인데 그걸 자신의 관점이라고 부른다 정도의 의미가 된다. 사실 나는 이때 PhD candidate 여서 시험을 보지는 않았는데 이 시험이 끝난후 몰려나온 대학원생들에 의해 위 문장이 떠들썩하게 알려져서 듣게 됐다.  이 말은 1940년대 Ring Theory 의 대가였던 독일의 수학자 David Hilbert가 한 말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접할 때마다 일정 수준의 충격을 받는다. 사실 그 교수님께서 왜 시험지 제일 상단에 저 문장을 넣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시험 볼때마다 시험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틀렸다거나 다른 해석/정답이 가능하다고 벌떼 같이 따지고 드는 학생들에게 "제발 한번만 더 생각해보고 나서 찾아와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곧 한명의 학자로 세상에 나갈 제자들에게 학문적인 아집을 깨라는 의미에서 쓰셨을 수도 있고.  돌이켜 보면 한번 여쭤볼만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 말이 주는 충격에 허우적거리느라 그 생각을 못했다. 대부분의 PhD candidate들이 그렇겠지만 그 시기가 되면 내가 아는게 정말 없구나.. 학위를 받아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연구했던 분야의 내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이 이중나선을 그리며 오락가락 한다. 그러면서 점차 고집불통이 되고 이해하기 위해 듣는게 아니라 반박하기 위해 듣는 모습을 띤다.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지만 나는 반박하기 위해 듣는 버릇을 상당히 오랜기간 버리지 못했다.  오늘 후배 한명이 이때 촬영한 시험지를 페이스북에 띄우며 그 시절 이야기를 잠깐 써서 또다시 기억의 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