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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May, 2011

포스팅 제약의 아쉬움

가족일기에 열심히 올리던 사진과 동영상을 요즘들어 전혀 올리지 않고 있다. 덕분에 가족일기 블로그가 영 썰렁해졌다.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얼마전 가족 일기 블로그를 열심히 포스팅 하던 지인의 자녀를 블로그를 보고 사진과 가족관계등을 파악한 유괴범이 유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 안제 어디를 같이 놀러갔던 아저씨라면서 가족들의 일을 다 알고 이름도 아는 그 사람에게 아이가 경계를 풀고 따라갈 뻔 했다는 것. 다행이 동네 어른이 보고 처음 보는 사람이다 싶어 관계를 물어보자 그대로 도망쳐 버려서 큰 위험을 면했다. 그 사건을 전해들은 후 아이들의 실명 언급은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도 전혀 포스팅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블로그를 통해 아이들의 얼굴과 노는 모습을 보시던 어른들이 아쉽게 됐지만 일단 안전한게 제일. 무서운 세상이다. 이 블로그의 성격은 차근차근 고민해 봐야 겠다. 폐쇄하긴 그렇고...

출장 복귀

아프리카 케냐로의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사실 이틀 전에 인천공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어 당초 계획했던 여행기를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해야할 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암튼, 장기간의 출장이 힘들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던 지난 열흘이었다. 출장 때문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로인해 하나의 고민을 하게된, 조금 색다른 의미에서 고마운 출장이기도 했고. 어쨌든 열흘만에 확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린이 날

처음으로 어린이 날을 챙겨봤다. 작년엔 첫째도 너무 아가였기 때문에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외출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는 그래도 제법 뛰어 다니기도 하고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멀리는 아니어도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유채꽃 전시회를 다녀왔다. 아직 백일도 안지난 둘째는 품에 안겨있거나 유모차를 타고 움직였다고 해도 좀 힘들었으리라. 사실 어린이날을 인식하는 나이도 아니고 뭘 갖고 싶다고 하는 나이도 아닌 아이들에게 이 날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하겠지. 결혼하고 6년동안 어린이날은 우리에게 그냥 휴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이었는데 아이들이 태어난 지금은 의미를 갖는 날로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올해의 어린이날은 많이 각별했다. 유채꽃밭에서 뛰어 노는 형아들을 쫓아가서 같이 놀고 싶어하는 첫째를 보면서 조금 더 크면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걸 고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친구든, 어린이 집이든. 내년엔 이제 첫째도 제법 요구하는게 생기는 나이가 될테니 조금 더 복잡한 어린이날이 되겠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무언가를 챙겨줄 수 있는 시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감사히, 그리고 즐겁게 기다려질 쁜이다. :-)

형이라는 위치

아내도 그렇지만 나 역시 형도, 동생도 없었기 때문에 형제간의 경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자랐다.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촌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만나면 늘 즐거운 존재이기만 했지 속된말로 냉장고 속 먹을 걸 놓고 경쟁해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요즘 둘째로 인해 첫째의 위치가 급격하게 변화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젖먹이인 둘째를 수유하느라 아내가 안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첫째가 거기에 크게 불평을 하지 않고 그냥 장난감을 갖고 잘 놀아줘서 많이 고마워 하고 있다. 문제는 첫째도 엄마품에 안겨있고 싶을 때. 그럴때는 둘째를 떼어 놓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달려가서 자기도 안으라고 찡찡거리다 수유가 안끝나서 끝내 안아주질 못하면 풀이 죽어서 시무룩하게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척이나 안쓰럽다. 엄마 품이 필요한거라 내가 안아줘 봐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찡찡거리는 첫째를 안고 토닥이며 달래노라면 나는 알지 못했던 형이라는 위치를 이 아이는 벌써부터 체득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고 우애있게 자라난다면 첫째는 아마 평생을 두고 둘째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사는 삶을 살겠지.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네 부모님들은 첫째에게 보다 많은 것을 해주려고 애 쓰셨겠지 싶다. 병상에 누워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께 둘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니까 첫째를 더 많이 안아주라고 하셨다는데 아마 지금의 이런 모습을 충분히 예상하셨기 때문이리라. 전화 통화 할때마다 첫째를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 주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어머니 역시 그런 것을 생각하시기 때문일테고. 아직 엄마 아빠도 제대로 말 못하는 첫째가 벌써부터 엄마품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평생을 짊어질 무게가 보이는 듯 하다. 그와 함께 내가 이 아이에게 조금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안타깝게도 난 형의 위치에 대해 아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