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October, 2023

이웃

가까운 이웃을 만들기가 어렵다. 적당히 가까운 이웃이 아니라 부담 없이 교류할 수 있는 친구같은 이웃. 하긴 친구 만드는 것도 어른이 되면 어려운 일이니 친구같은 이웃은 더 어렵겠지.  이웃과 교류가 없냐 하면 그런건 아니다. 교류는 분명 있는데 내가 원하는 그런 교류는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없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괜찮은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나와 내 아내가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게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 어쩌면 지나치게 모난 부위가 많은 우리 부부.. 서로에게는 한없이 순두부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슴도치나 다름없는 우리 부부의 성격도 원인이겠고. 그래도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생기겠지. 괜히 서두르다 마음 상하는 경우 만들지 말고 느긋해지자. 

LANAP Periodontal surgery

Image
지속적으로 날 괴롭히던 잇몸과 치주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치주 질환 전문 치과에서 LANAP 수술을 받았다. 효과가 좋고 확실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 역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기를.   

Goodbye, Columbus

Image
Time magazine 최신호에 실린 칼럼, "Goodbye, Columbus." 저자인 Rober P. Jones는 White Christian nationalism 에 대해 이야기 하며 콜롬버스 시대의 Doctrine of Discovery 부터 현대의 Trumpism 까지 선을 잇고 있다. 아침을 먹으며 첫째와 이 칼럼의 내용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다행이 콜롬버스를 "인류 최초로 대륙간 해상 노예 무역을 시작한 사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이기도 하다" 라며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아이에게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discovered 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내 생각에 그는 visit 한거지 discover 한게 아니다. 엄연히 원주민이 살고 있었으니 방문했다고 표현하는게 옳다. 더 깊게 들어가는건 중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인것 같아 거기까지만 했는데, 적어도 학교의 교육은 올바르게 가고 있구나 싶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사춘기 아이와 대화를 할 때 이런 주제(인종차별과 노예제도)는 항상 조심스럽다. 괜한 미움의 불씨를 심어줄 수 있으니. 고등학생 정도 되면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Township soccer league

Image
한달 전부터 타운십에서 주관하는 축구 클럽별 리그가 한창이다. 리그 참여를 신청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몇개 학년을 묶어서 랜덤으로 팀을 구성하기 때문에 매 시즌 팀과 구성원이 달라진다. 한 팀 내에서도 학년이 다양하고. 성별에 따라 리그는 나누지만 그것만 다르지 나머진 그야말로 모든게 랜덤. 덕분에 팀 별 수준 차이가 아주 크지 않다. 아이들이라지만 폭우 수준이 아니라면 비가 오든 말든 모든 시합은 그대로 강행한다. 코치와 심판들은 아이들과 함께 비를 맞아가며 시합에 임하고 부모들은 우산을 쓰고 경기장을 둘러싸고 응원을 하는데 일단 시작을 하면 중간에 폭우로 바뀌어도 그냥 진행한다. 오늘도 그랬다. 경기가 끝난뒤 아이들은 전부 수영장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꼴 이었는데 날씨까지 추워서 경기를 응원하는 부모들은 우산쓰고 파카까지 꺼내 입고 온 모습과 대조적. 그래도 그 추위에 비에 흠뻑 젖어서 친구들과 경기에 이겼다고 파이팅을 외치고 즐거워 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걱정보다는 흐뭇함이 더 컸다. 코치들이 이깟 비도, 추위도 우리가 오늘 상대팀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걸 방해할 수 없다며 아이들에게 함성을 지르게 하고 투쟁심을 끌어 올리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국 남자들의 마초 정신은 이런식으로 어릴때부터 길러지는 건가 싶기도. 지난주에도 비가 왔었는데 그 때 코치가 "지금 춥고 비가 오지만 오늘 경기를 이길수만 있으면 내일 좀 아파도 상관 없잖아! 안그래? 춥다고 벌벌떠는 저 아이들에게 축구가 뭔지 가르쳐주자! 자, 가자!" 라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 역시 동조의 함성을 지르고, 그걸 듣고 있던 부모들도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와..... 이 사람들 정말.' 싶었다. 초등학생들 축구 시합인데, 분위기는 슈퍼볼 경기장이다. 여튼, 그렇게 차가운 가을비 맞아가며 몇차례 시합을 뛰었지만 둘째는 감기 한번 안걸리고 건강하다. 아이가 속한 팀은 현재 리그 2위. 1위를 하겠다며 팀원들 모두 파이팅 넘치고 있는데, 원했...

인재 모시기

삼성전자 시절 내 상사 중 한명을 우리 회사 경영진으로 모셔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우리 회사가 제일 취약한 부분을 맡아서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그 분이 적임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삼성전자 시절 알게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네트워크 폭이 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다들 자기 네트워크 범위 안에서 찾기 마련이니 오십보 백보. 폭이 좁은 대신 긴 시간 함께 일을 해왔기 때문에 더 깊게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성공 했으면 좋겠다. 

Car accident

Image
어제 출근길, 교통 사고를 당했다. '당했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 차는 가만히 서 있는데 뒤에서 다른 차가 받았기 때문. 정체 구간에서 픽업 트럭 한대가 내 뒤에 있던 SUV를 받았고 그 SUV가 내 차를 받았다. 어찌 보면 가벼운 추돌인 것 같지만 픽업 트럭과 full size SUV 사이에 벌어진 사고에 휘말린거라 가벼운 내 세단에게는 제법 큰 충격이었다.  일단 뒤 범퍼는 완전히 나갔고 뒤쪽 펜더를 비롯 트렁크까지 후방 거의 모든 부분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repair shop에서는 차를 들어 봐야 알겠지만 아래쪽 프레임에 충격이 가해져서 영향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하겠다는 입장. 그동안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런 사고를 당해본 적이 없다. 일단 경찰을 불러서 리포트 # 를 받았고 보험 회사에 연락해서 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차는 수리를 위해 shop에 맡겼고 오늘 렌터카를 받기로 되어 있다. 수리에 대략 2주 정도 걸릴거라는데 그 동안은 이 렌터카를 타고 다닐 예정. 다행히 내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모든게 다 용서가 된다. 이런 사고를 완벽하게 피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고 언제든 생길수 있다고 봐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 몸 무사한게 최고의 결과 아닐까.  여튼 액땜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는 그러니까 더 이상의 안좋은 일은 없기를. 

회사에 충성하기 vs 내 영역 구축하기

금요일이었던 어제, director 한명이 내 사무실로 오더니 오늘이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며 굳은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에 CEO와 그의 매니저 그리고 HR 디렉터가 자신을 불러서 통보를 했다고. 사실 그에게 오늘 통보가 갈 것이라는 사실은 한달 전부터.. 아니, 구체적인 날짜가 오늘이라는 걸 안 건 한달 전이지만 그가 lay off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 건 수개월 전이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여준건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한 내 마지막 배려였을 뿐 몇달 전 CEO가 그를 내 팀에 데리고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을때 나 역시 그에게 줄만한 업무가 없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었다. 그의 입장에서 이는 정말 억울하기도 하거니와 배신감도 드는 상황이리라. 중국계였던 그는 아시아인 치고도 유별날 정도로 상명하복에 철저했으니까. 회사에 입사하고 10년간 회사가 뭔가를 요구하면 no 라고 한 적이 없을 정도. 상당히 무리한 장기 출장도 군말 없이 다녀오고 회사가 어떤 불합리한 요구를 해도 항상 yes 맨이었다. 그래서 10년동안 상당히 많은 업무를 거쳐 갔는데 좋게 말하면 여러가지 업무를 아우를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어떤 일을 시켜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게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10년간 시키는대로 온갖 궂은일을 다 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사실 회사 입사후 개발자로 일했던 5년은 그에게 좋은 시절이었던 걸로 보인다. 새로운 시장이 막 열리던 시기, 회사의 개발 책임자로 여러 신제품들을 연달아 개발하면서 아직까지도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개발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시장이 평준화 되고 자체 개발보다 아웃소싱이 늘어나면서 회사에서 개발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한게 그에겐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Mechanical engineering 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컨트롤, 센서, 무선 프로토콜 등 electri...

GNU 40th anniversary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재미있게 살았던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면 내 경우 답이 금방 나온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약 5년의 기간. 이때는 매일 매일이 흥미로웠고, 재미있었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것들 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컴퓨터에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리눅스와 해킹에 빠져 있었고 이와 함께 접한 자유소프트웨어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다. 정말 쓸모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높은 확율로 쓸모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미있어 보이기만 하면 무한정 시간을 쏟아붓고는 했는데 전공 과목 몇개를 말아 먹고도 멈출 수가 없었을 만큼 '정말' 재미 있었다. 2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 때 했던 수많은 쓸모 없는 일들만큼 재미있었던게 없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가 미사일 제어용 컴퓨터로 쓰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2를 4천대나 구입했다는 뉴스( https://kbench.com/?q=node/7709)에 자극 받아 나도 Playstation2 에 리눅스를 올려 컴퓨터로 만들겠다고 했던 삽질은 데비안유저그룹 세미나에서 그 과정과 결과를 발표(내가 해봤는데, 되긴 되지만 일반 PC처럼 사용하기는 어려우니 쓸데 없는 일 님들은 하지 마세요 라는 결론..)하기까지 했던, 미칠듯이 재미있지만 하등 쓸모 없었던 일들의 하이라이트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 내가 했던 많은 일들 중 쓸모 없는 일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걸 하나 꼽자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소위 네임드는 아니었고 이제와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아주 짧은 활동이었으나 그 활동과 별개로 GNU와 FSF의 지향점은 내게 있어서 단순히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고민에 머물지 않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줬다. 바로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 내가 마땅히 가져야 되는 권리와, 내가 당연하게 지켜줘야 하는 남의 권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 GNU가 지난 9/27에 40주년을 맞이했다. 여러 루트로 오래된 인연들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