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
난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다. 결혼한지 한달만의 일이었으니 내 아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그저 침대에 누워 계시던 모습 말고는 없으리라. 우리 가족중 취향이나 성격이나 여러가지가 아내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았던 사람이 아버지였던 터라 어머니께서도 이 둘의 만남이 길지 못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아쉬워 하고 계신다. 요즘은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은게 사실이고 정부 지원과 각종 보험으로 인해 예전처럼 암 치료의 높은 비용문제로 포기해야 하는 세상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공포는 결코 작은게 아니다. 감정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암에 걸려 죽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온 우리의 기억 세포에서 암은 저승사자의 손짓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저께 장인어른의 검사 결과가 악성종양으로 나왔다. 하지만 암의 크기가 아직 작을 때 발견했고 발견한 그 자리에서 외과적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고 한다. 암병동에 존재하는 두가지 병실, 외과병동과 내과병동의 분위기(수술로 가볍게 치료가 가능한 사람들과 이미 외과적 치료 방법으로는 손 댈 방법이 없는 사람들)를 기억하는 나는 '수술'을 받으셨다는, 그것도 우연히 발견한 그 자리에서 제거가 가능할 정도의 종양이었다는 것에 무척 큰 안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아내와 장모님으로써는 쉽게 안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상황이 나쁜게 아니거늘 그 공포감이 주는 무게에 아마 지금 많이 괴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전이 여부에 대한 검사가 아직 남아 있지만 난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검사는 어차피 모든 암 환자들이(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받아야 하는 의례적인 검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간병을 하셨던 어머니도 사실 '암' 이라는 진단이 확정되자 무너지셨었다. 겉으로는 의연하신 듯 행동했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급속도로, 정말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게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