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잡다

비가 오고 있다.

학교에서 점심먹으러 가면서 후배들과 이 비가 그치면 이제 가을이 오겠다..라는 말들을 하면서 갔는데 동호회에 올라온 글을 보니 태풍이 올라오는 거란다. 가을이 올줄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우리의 여름은 끝나지 않고 있었나보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바뀌다’라는 말에는 무엇인가 하나는 사라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까? 설혹 그렇다고 해도 그런 것들을 새삼스레 느낄만큼 감성적인 면은 없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슬픔은 그런 측면은 아닌 것 같다. 좀더 실리적으로 말을 하면 아직 겨울옷을 준비 못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겠지.

이유가 무엇이 됐든, 계절이 바뀌고 있고 그런 탓에 요즘들어 자꾸 툭하면 기분이 가라 앉는다. 창밖으로 들리는 젖은 도로의 타이어 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온 방안을 휘감는 야릇한 냄새의 원인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춥다는 이유로 환기를 잘 안시켜서일까? 오늘 새벽에는 방문을 있는대로 다 열어놓고 공기를 교체해야 겠다. 계절의 케케묵은 냄새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여름이 지났는가?

돌이켜 보면, 지난 수개월동안 유난히 많은 땀에 시달렸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때 여름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기억속에서 여름은 이미 다른 곳으로 사라지고 없다. 왜일까? 왜 지난 시간속에서 체험한 일들은 현실의 기억 속에서 그 빛이 희미해지는 것일까? 누구나 자신의 기억속에 계절을 담고 있다. 나도 그렇고 이글을 읽을 누군가도 그렇다. 그리고 그 기억속의 계절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짜여져 있는 4계절은 아닌 것 같다. 기억속에 남아있는 사건들의 순서가 시간의 흐름대로 매겨지는 것이 아닌것처럼.

오늘 계절을 잡았다.

방안 가득 수북히 쌓여 있는 프린트물 사이에서 지나간 여름과 남몰래 숨어든 가을을 잡았다. 커피냄새, 그리고 소지로의 오카리나 연주소리.

밖에는 비가 오고 있고 내 방에는 계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