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내키는 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싶어서 참 여러가지를 해봤다.

살갗을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에 한동안 샤워를 하고 다시 찬물에 몸을 식히기를 수차례. 마치 고온 사우나에 다녀온것처럼 피부가 발갛게 달아 올라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 옷을 입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표면상으로는 쇼핑을 하러 간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다지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물건 사는데 문외한이라 혼자서는 어지간하면 쇼핑을 가지 않는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볼때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밖을 나가고 싶었다는 것 뿐인것 같다.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고 오락실에서 오락을 했다. 얼마만에 즐겨보는 혼자만의 오락인가. 다른 사람과 캐릭터를 조종해서 싸움을 하고, 스피커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발판을 밟고, 미친듯이 드럼의 스틱을 두드려도 봤다. 그리고 신발 가게에 들려 운동화를 사고 며칠전에 지선이에게 편지를 쓴다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꾸 꾸겨 버리는 바람에 모두 소모해 버린 편지지를 대신하기 위해서 모닝 글로리에서 편지지를 샀다. 그럭저럭 표면상으로 계획했던 ‘쇼핑’이라는 단어에는 충실했을까?

날씨는 참 좋은 저녁이었던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니 어쩌면 약간은 추운 날씨였는지도 모르지만(겨울이니까) 며칠전의 그 매서운 추위에 비하면 이제 겨울은 모두 끝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날씨였다. 오히려 약간은 상쾌한 기분이 드는 날씨였을까?

집에와서 방청소를 하고 며칠째 흐트러져 있는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오늘 오후에 도착한 메일들의 첨부물들을 프린터로 출력하면서 차를 한잔 마셨다. 처음엔 녹차를 마시고자 했지만 왠지 평소와 다른것이 마시고 싶어서 찬장을 뒤져 예전에 집에서 가져온 인삼차 티백을 찾아냈다. 그다지 고급차는 아니어서 맛은 없었지만 평소와 다른 맛이라는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기쁜 법이다. 그것이 정말로 싫은 맛이 아니라면.

지금은 Ennio Morricone의 영화 Mission OST를 틀어놓고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커다란 성당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그다지 성실한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성당의 그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항상 내게 안도감을 준다. 지난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참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이라고 묻는다면 그다지 할말은 없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특별히 어떻다..라고 딱부러지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예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그때는 그러한 상황에 어찌할줄을 몰라 우왕좌왕 했다면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참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그런걸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어렵다. “난 어떤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난 어떤 사람이었구나”라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 지금 하고 있는 말처럼 쉽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금 제대로된 길을 가고 있는가? 엄청난 혼란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결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내 속마음과 내 행동들은 과연 그길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지만 내 자신이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바래왔지만 나역시 자신의 그런 이중성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다.

두렵다는 감정.
난 그 두렵다는 감정에 항상 시달려 왔다. 남들앞에서 흔들림 없이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없다고 비난받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하고자 하는일이 행여나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난 내가 누구에게 기댈수조차 없었다. 그가 내 기대를 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다면 지금의 난 그러한 두려움들에서 어느정도는 벗어나 있는가? 대답은 슬프게도 “No”이다.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난 공포 영화가 싫다. 다른 사람들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 영화안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오히려 쾌감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공포 영화는 내 안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인식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난 원래 이렇게 겁이 많은 녀석이야..’라는 인식. 어째서 난 그런 두려움이란 감정에 그렇게 민감한 것일까. 왜 항상 내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는 가면을 쓴 그런 얼굴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나보고 바르게 산다는 후배들과 동기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외친다. 아니라고.. 난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고. 하지만 아무도 납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 편하게 해주지 못하고 따라서 내 마음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말 잠깐이나마 내 마음속의 그런 감정을 알고 보듬어 준 친구가 몇명 없었다. 그리고 그중 한명은 이성이었기에 사랑에 빠졌었고, 그중 한명은 동성이었기에 지금껏 정말로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맹목적인 사랑의 댓가로 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 더 얻었다. 그리고 요즘의 내 마음 고생은 그러한 두려움의 결과이다.

만일 내 안에 숨어있는 그런 감정을 내가 인정하면 난 편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니, 그런 감정을 인정하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조차도 난 두렵다. 만일 내가 그렇게 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분명 그들은 지금까지의 내 모습만을 생각하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칠테니까. 그리고 내 자신의 그런 감정에 솔직하고자 노력을 해왔던 지난 5,6년동안 난 수없이 많은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다.

차라리 옛날로 돌아갈까? 남에게 마음을 열지도 않고 대신 상처도 받지 않는.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마음을 남에게 열어서 내게 돌아온 이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상처 투성이가 되었을뿐. 정말...정말로 옛날로 돌아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어떻게 해야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저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 진실되게 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내가 상처받지 않는쪽으로,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상관하지 말고, 내가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행동하면 되는 것일까? 예전의 난 정말 그랬던가? 만일 그랬다면 언제까지 그래왔을까?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그저그런 마음상태. 지금은 이 편안한 상황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렇게 이루어 질거라는 조금은 아이같은 기대를 해본다. 지금 흐르는 곡은 River. 마치 무엇의 ending곡 같은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