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데이트

다음주 유럽 출장을 앞두고 항상 그렇듯 아내와 아이들을 강릉 처가에 데려다 줬다. 매번 장기 출장을 갈 때마다 강릉 처가에 남은 식구들을 보내는 이유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가 없을 때 아내와 함께 아이를 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무리 퇴근 후 저녁때, 그것도 잠깐씩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한명이 더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 그래서 누군가 아이를 함께 봐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게 중요할 것 같아서 매번 강릉에 보낸다. 

두번째 이유는 거기가 아내의 고향이기 때문. 사실 누군가 도와줄 일손이 필요한 거라면 청주 본가에 가도 되지만 강릉에 가면 아내가 아이를 부모님께 부탁드리고 낮에 놀러 나가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1개 소대는 대기하고 있다. 이건 청주는 고사하고 평소 나와 함께 있어도 내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분인데 아이들에 치어서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을 아내에게 확실한 휴식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이유는 거리 때문에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강릉 부모님들을 위해서. 청주에는 어쨌든 한달에 한번씩은 찾아 뵙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강릉은 쉽게 가지 못한다. 그분들께 일주일씩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 가능한 시간이 아닐 것이다.(물론 1주일 후에 가보면 두 분 모두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을 하고 계시긴 하지만... :-)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번 출장에 앞서서도 강릉에 온 가족이 함께 갔다. 주말에 잠깐 아이들을 부탁드리고 아내와 둘이 데이트를 나왔는데 자주 가던 커피숍도 가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했다. 특히 극장을 가 본 건 첫째 임신하고 난 이후 처음이니 대략 3년 반 만에 가본 거였다. 비록 재미있는 영화도 없었고, 혓바늘이 심하게 돋아(곪아서 직경 5mm 정도로 큼지막하게 혀가 패였다 ㅡㅜ) 팝콘과 콜라도 맛나게 먹지 못했지만 어두운 상영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서 팔짱도 끼고 손도 잡고 걷고 했는데 마치 연애 시절로 되돌아 간 것 같아 너무 즐거웠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는 서로 손잡고 걸을 여유조차 없었다. 누군가는 항상 아이를 챙기고 있거나 짐을 들거나 유모차를 밀거나 했으니. 정말, 얼른 커라~ 하고 주문을 외워야 할 지경. 

정말 감사하게도 주말 강릉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청명했다. 뜨거운 햇살, 시원한 바람, 탁트인 하늘, 멋지게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해보면 내가 사는 지역과 공기부터 다른 이 멋진 도시가 내 아내의 고향이라는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내와 내내 서로 맞장구 친 말은, "우리 회사는 강릉에 사무실 안여나" 하는 것. 정말로 강릉에 사무실 연다고 하면 손들고 자원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