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나와 아내는 신혼 생활을 고양시 화정동에서 시작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동네였지만 그렇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그때의 기억을 한장의 사진으로 보여달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사진을 꼽는다. 일산에서 화정으로 나오는 지하철 3호선을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고가 도로가 들어서서 사라진 풍경이다.
별 다른 건 없는 사진이다. 하지만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하늘과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대지의 경계를 불을 밝힌 열차가 가르고 들어오는 이 풍경은 지금이나 그때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 한구석의 저릿함을 가져온다. 아니, 그 저릿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듯 하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잠이 오지 않을 땐 굳이 누워있지 말라는 조언에 충실하고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는데 예전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사진 정리하기, 글 다시 읽기 그리고 키보드 두드려서 블로깅 하기. 며칠전 오랜 친구 한명이 아직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 했다. 무심코 한 대답은 "내가 얼마나 글질을 좋아하는지 잘 알잖아" 였다. 그래...참 좋아하긴 한다. 블로그나 홈페이지 같은 형태로 글을 정리하기 시작한 건 14년째, 온라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이기 시작한 PC통신망에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부터 따지면 19년째니 어디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 오래도 됐다. 그 기간만큼 글쓰는 실력이 늘지 않은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별 것 아닌 글이라도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한장 한장 쌓여서 내는 그 향내는 어줍잖은 글솜씨와 비할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나저나...이렇게 키보드 끄적거리다 언제 다시 잠이 오려는지. 아무래도 내일만 출근하면 추석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자꾸 느긋하게 만드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