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막내의 7번째 생일.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 막내가 일어났을때 어떻게 축하를 해줄까 고민하다가 문득 미역국을 끓여 놓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허겁지겁 일어나 미역을 꺼내 물에 불리면서 미역국에 넣을 재료들을 살펴보는데, 고기 종류가 넣을 수 있는게 없었다. 아예 재료 준비조차 안 했던 것. 불기 시작한 미역을 내려다보며 고민하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나서 스팸을 꺼냈다.
스팸을 작게 썰어서 미역국에 넣어서 이름하여 "ㅇㅇ 를 위한 스페셜 스팸 미역국" 을 만들기로 한 것. 명분도 좋다. 막내가 좋아하는 스팸을 일부러 사용해서 끓인 미역국이라는 식으로.
다행이 어제 늦게까지 놀다 잔 탓에 모두 한창 꿈나라여서 미역을 물에 불리고 볶은 뒤 국을 끓이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아슬아슬하게 막내와 다른 가족들에게 막내 생일 미역국을 내놓을 수 있었다. 특히 막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팸으로 특별 미역국을 끓여 줬다는 말에 감격해서 나를 으스러져라 안아주는 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약간 캥기는 기분이지만 아이가 이렇게 기뻐해 주면 된거 아니겠어?)
이후에는 정말 정신 없었다. 세 아이들의 수영 클래스가 두차례 모두 토요일에 있어서 수영장을 두번 왕복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근처 농장으로 장인, 장모님을 포함 온 가족이 함께 애플 픽킹을 다녀왔다. 집에서 30분도 안걸리는 곳이라 부담없이 다녀왔는데 주차 공간이 모자라서 제법 멀리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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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mpkin sling shots. 별 기대 없이 했는데 통쾌하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
날씨도 좋고, 사과도 맛있었다. 사과와 함게 할로윈 장식으로 사용할 크고 작은 호박도 몇 개 사왔는데 돌아오는 주말에는 Jack-O-Lantern 을 아이들과 만들어 볼까 계획중.
신나게 하루종일 놀고 돌아와서는 막내의 생일 축하 파티. 파티때 처음 들어야 한다며 아침부터 누구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막고 다녔던 막내가 드디어 생일 케이크와 함께 온 가족들로부터 생일 축하 노래를 듣고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을 초대 못한건 아쉽지만 대신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반에 goodybag을 돌리기도 해서 그걸로 오케이. 항상 그걸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나. 스무개나 되는 goodybag을 준비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엄마에게 진한 포옹을 해줬는데 덕분에 엄마에게 1년치 응석 허락권을 받은 분위기.
그렇게 시끌 벅적한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거실에 앉아서 차를 한잔 하려는데 첫째가 오늘도 잠이 안온다며 거실로 내려왔다. 킨들 충전을 깜빡해서 책도 읽을 수 없다나. 내 킨들을 빌려줄까 하다 마침 차도 넉넉하게 내려둔 김에 아이와 함께 차를 마시며 체스를 뒀다.
장난감 간이 체스판을 쓰다 작년에 나무로 된, 한단계 위 품질의 체스 세트를 샀는데 참 마음에 든다. 큼직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체스 말도 묵직한 감촉이 좋고, 역시 나무로 된 보드 위에 말을 내려놓을 때의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소리와 느낌도 좋다.
첫째와 체스를 두면 서로 말이 많아진다. 한 수 둘 때마다 내 수를 이해를 못하겠으면 아이가 왜 그렇게 뒀는지 물어보는데 마치 게임을 모두 마친 뒤 복기를 하듯 그 자리에서 왜 이렇게 뒀는지, 노림수가 뭔지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준다. 나 역시 아이에게 자기 수를 설명해줄걸 종종 요청하고. 물론 모든 수를 전부 그렇게 물어보는 건 아니고(그러면 게임이 끝나질 않을테니) 게임 두는 동안 대여섯번 정도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데 그렇게 아이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게 퍽 즐겁다. 이번 게임은 내가 졌다. 막판에 실수를 한번 했는데, 아이가 그 실수를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져서 결국 항복을 했다. 전에는 실수를 해도 만회할 기회가 제법 있었는데 요즘은 실수, 특히 막판에 하는 실수는 그대로 승패를 결정 짓는다. 그만큼 아이의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겠지.
첫째부터 막내까지. 점차 아이들과의 체스가 진지해진다. 전혀 봐줄 필요가 없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