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게 말하기
건조하게 말하는 화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중이다. 아직 잘 안되기는 하지만. 사실 한국어의 '아니' 에 해당하는 영어식 표현이 없다는게 건조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라면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로 시작하는 한국어의 반론 화법이 주는 장점은 그 한 단어로 상대방의 주장을 약간 비정상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주장이라는(그래서 약간 어처구니 없다는 식의..) 뉘양스를 풍기며 왜 내 진심을 몰라주느냐는 억울함까지 한번에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우 효과적인만큼 널리 쓰인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우리집 막내까지도 형들하고 의견 대립이 되면 일단 '아니' 를 뱉고 시작할 만큼.그런데 아무래도 억울함을 함께 표현하려다 보니 이 말을 할 때 억양과 표정도 억울함, 어처구니 없음, 아주 약간의 분노 등등이 함께 묻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토론할 때 쉽게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감정적인 부분들을 드러내는게 한국에서는 쉽게 관찰된다. 전문적인 패널들이 등장하는 TV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관찰될 정도니 일상 생활, 특히 회사 업무 회의에서는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이게 엄청난 결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생각해보면 '한'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한국 문화권에서 억울함이나 감정을 평소에 드러내는게 개인의 유별난 단점으로 취급될 까닭도 없다. 오히려 감정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게 효과적인 토론의 도구 중 하나로 취급받을 때도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그렇게 감정을, 분노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면 professional 하지 않다고 취급 받는다는 것. 여기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debate 하는 법을 배우거나 반론하는 글을 작문할 때도 그렇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훈련 받는다. 짧게 말하자면 아주 dry 하고, 마치 자동 응답기와 대화 하듯 말해야 한다. 심지어 나를 대상으로 한 약간 모욕적인 유머를 들었을 때도 분노나 실망감을 드러내는걸 삼가야 한다. 안그러면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나쁜' 평을 받는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가 자기 아내의 외모를 농담의 소재로 삼았던 크리스 룩의 뺨을 때린 뒤 사회적인 비난을 받았던 사건은 극단적이지만 이런 사회적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화법의 장점은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노, 실망, 연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모두 배제하고 논리와 결론에 집중할수 있어서 효율적일때가 많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단점이 생기는데 외부로 느낌과 감정을 표출할 수 없기에 내부적으로 그걸 잘 다스려야 해서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불필요한 노력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게 내게는 힘들게 넘어야 하는 장벽이다. 내가 유별난 한국인이 아니라면(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여기에 부족한 영어 실력까지 더해지면서 설상가상. 감정 상하지 않았다는 듯 건조하게 말하면서 말에 뼈를 싣는 미국식 '아니' 는 아직 내게 도달하지 못한 산봉우리다.
언제쯤 노력을 일부러 하지 않더라도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최소한 Not my problem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