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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워더링 하이츠... 그 열병같고, 바보같은 사랑 이야기.

너트메그와 너그메트

태엽감는 새를 두번째 읽던날, 나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녀의 이름이 가하사라 메이 가 아니라 가사하라 메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종종 책에 등장하는 이름을 내가 발음하기 편한 식으로 바꿔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나타날 때면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어 버리고 잘못된 이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태엽감는 새를 십여차례도 더 읽었을 무렵에 그것도 세번째 권을 읽다가 나는 또다른 등장 인물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카사카 너그메트 가 아니라 아카사카 너트메그 라는 것을. 난 도대체 무엇을 제대로 알고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마치 내가 전에 읽을 때에는 분명 너그메트 였는데 이후 누군가가 교묘하게 너트메그로 바꿔 버린 것 같은 이 느낌. 새벽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잠,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4일째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기고 있다. 언제 알람이 울었는지, 언제부터 창문 밖에 자동차들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소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잠에 빠져들어 있었던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깊이 잠든 것이며 그때문에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좀 다른 문제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지만 그것은 분명, 잠이 덜 깨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여느 아침의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난 순간적으로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는데 무언가 찝찝하게 끈끈한 것이 낸 몸 전체에 늘어 붙어서 날 뒤쪽으로 잡아 당기고 있다. 그리고 미간에는 술을 마신 다음날 내쉰 숨 같은 것이 덩어리로 뭉쳐서 늘어붙어 있다. 온몸을 휘감고 있는 찝찝함은 그 미간의 덩어리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의 느낌이다.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미간의 그 느낌이나 온몸의 끈끈함에 몸을 맏기면 그대로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이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야 날 다시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 낼 수 있다. 그 한두시간은 그야말로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로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뒹구는 잠이 아닌 모든 의식이 배제된 상태이다. 즉, 나는 내가 잠이 들려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두번째인가 세번째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때 필사의 노력을 해서 몸에서 그 끈끈함들을 떨쳐 버리고 미간의 덩어리를 밖으로 뜯어내고 나면 난 완벽한 무기력에 휩쌓여 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할 힘조차 없는 그런 완벽한 무기력이다. 그렇게 맞이한 4일째 아침.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헤매게 만드는 것일까. 그 원인모를 느낌에 사로잡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것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바뀐 것이라면 방이 무척 지저분해 졌다는 것과 목캔디 한통을 거의다 먹었다는 사실이다. 적...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까?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스발을 사랑하게 된 율리아나 공주가 파킨스 신부에게 물어본 말이다. 거기에 대해 파킨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고.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가?” 다만 살아가기는 하는게 사람이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도 만족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게 바로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만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까? 삶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까? ... 가능할것도 같다. 앞을 보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한 사랑도 제법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난? 지나치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에따른 공포도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벨로린은 현재를 모두 알 수 있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공포도 느껴야 했지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추가로 느껴야 하는 법이다. 난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뒤바뀐 고향

(2001년도에 쓴 글을 옮겨 놓은 것) 며칠간의 짧은 청주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바로 학교에 들려 몇가지 볼일을 보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을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며칠동안 제대로 치우지 않아 너저분한 술병들과 쓰레기들. 그렇지만 그와 함게 찾아온 것은 ‘편안함’ 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청주에 가고싶고, 그래서 무작정 내려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던 때가 있었다. 1995년도...대학에 입학한 그 해에 그랬다. 그런식으로 무작정 수업까지 빼먹고 평일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황당해 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 했던 적도 있었고. 그때로 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난 그러한 마음의 고향이 뒤바뀌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서울이 더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그건 아마도 하숙집이 아닌 내 방이 생긴 이후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소중함이 곧 편안함으로 바뀐것은 아닐까. 지금도 내 방에는 컴퓨터의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다. 그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이란. 이 편안함 때문에 난 항상 술한잔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걸까. 지금 스피커에선 Air on the “G” string 이 흐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중 하나. 무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읽을 거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다

자기 기만

시간은 누구를 위해 흘러가는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소중해 하는가?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가? 나는 행동하고 싶어서 행동하는가? ... 나는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가? 어리석은 고민. 즐겁게 걸음을 내딛고 신경쓰지 않으면 그게 바로 춤인 것을.

168통의 편지 그리고 우표 한장

오늘 정말 오랜만에 학부때 친구를 만났다. 한 4,5개월만인것 같았다.마침 휴가라며 찾아온 녀석과 같이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담소하던 중에 그녀석이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편지 정리를 하던중에 보니 내가 보낸 편지가 참 많더라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그녀석이 휴학하면서 문득 군에 있는 내게 편지를 보내서는 앞으로 편지를 자주 쓸테니까 답장 안하면 가만 안둔다고 협박했던 일 이후로 참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두배는 더 많은 편지를 보냈던게 분명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와서는 편지함을 꺼내서 군에 있을때 받은 편지들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 30분은 빙그레 웃으며 이편지 저편지 골라봤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다 읽을수가 없어서 그냥 몇통이나 왔는지 수만 세어봤다. 모두 다해서 168통. 군에 있는 30개월동안 내게 찾아온 편지의 통수가 모두 168통이었다. 한달에 평균 5.6통씩 받았으니까 일주일에 대략 1.4통, 그러니까 2주마다 3통씩의 편지는 받은 셈이다. 이정도면 제법 많이 받은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남들이 얼마나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하긴 제대하고 2년 반이 지나도록 받은 편지가 10통이 안되는걸 보면 상당히 많이 편지를 받았던 시기인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왜이리 편지가 안오는지 참 기다려 했었는데. :) 그때는 편지를 쓸때 참 공들여서 썼다. 어차피 그때도 행정병이란 신분상 손으로 쓰기보다 워드로 쳐서 보내는 편지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내용을 쓸때는 참 공들여서 썼다. 단어 하나를 선택할때도 이생각 저생각 해서 쓰고. 어쩌면 그것은 우표 한장의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170원하는 그 우표가 그때는 왜그리 귀했는지. 170원이라는 그 돈의 가치때문에 편지 한통을 보낼때 최대한 공을 들여서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요즘이야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메일때문에 점점 메일 하나를 쓸때 기울이는 노력이 줄어들고 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편지는 거의가 A4로 3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