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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감정의 해석이다

아침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온통 스모그로 뒤덮여 있다. 항상 그렇지만 난 뿌옇게 변한 서울의 아침을 안개낀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희뿌연 대기는 오후까지도 지속이 되고 안개가 생길 지형이라고는 한강이 유일한 이런 대도시에 그런 짙은 안개가 낀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2년반동안 안개의 도시에서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거다. 깨끗한 공기에서 느껴지는 안개는 상쾌하다. 약간의 상쾌함과, 차가움 그리고 감각이 아닌 상상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 서울의 안개, 아니 스모그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답답한 가슴뿐. 예전에는 해무가 자욱하게 밀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답답하다고 느꼈었는데 어느새 강릉 해안의 그런 해무를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마치 여기서부터 안개 라고 주장을 하는 것 같이 검은색의 안개가 꾸역꾸역 해안가로 밀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써야 했던게 불과 몇년전인데. 그때와 지금의 난 도대체 어떤 기억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일까? 기억하고 있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 기억을 해석하는 내 내면의 무엇인가가 변했을 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는 그렇게 보기 힘든 상황은 아닌 듯 하다. 분명 좋았거나 나빴던 기억 자체가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까. 변한것은 정말 무엇일까? 잠시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눈을감고 음악에 생각의 흐름을 맡겨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변한것은 그 대상에, 그 기억하고 있던 사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감정은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경험한 시간들의 길이에 의해 변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사실들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 감정에 의해 과거를 그리워 하고, 미소짓고, 대상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마지막으로 잊어간다. 비록 사람에 따라, 대상에 따라 감정의 변화 순서는 제각각 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같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라도 기억을 돌이키는 시간대의 내 감정에 따라 ...

월동준비

아픈 몸을 억지로 끌고 학교에서 실험을 하다 끝내 엉뚱하게 나와버리는 데이타를 원망하며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세미나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도와 같이 포스터를 붙였고 1시간정도 짬을 내서 이번 세미나때 발표하게 된 후배에게 몇가지 내 아는바를 알려주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6시 30분. 약속이 있어 대학로를 간다는 후배를 지하철 역에서 떠나 보내고 집으로 오는길이 어찌나 춥던지. 미처 월동 준비를 못한 탓에 유난히도 이번 겨울은 춥게 느끼는 것 같다. 문득 98년 겨울이었나..11월쯤에 썼던 시가 생각난다. 잘 말린 단풍잎 하나, 그리고 감기약 몇알. 월동준비 끝. 아마 제목이 월동준비 였던 것 같다. 그때 적어두었던 시모음 파일을 잃어버려서 이젠 대부분이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이녀석은 짧기도 했거니와 유난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썼던 녀석이라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내게 있어서 겨울은 슬픈 계절인듯 싶다. 좋지 않았던 최초의 기억은 어디부터였더라.. 아마도 94년 겨울부터였던 것 같다. 뭐, 엄밀히 따지면 매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라는게 인상이 강하게 남은일을 기억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손해 본것을 더 확실하게 기억하는 특징이 있는 터라 아마 나도 좋지 않았던 일들을 기억에 남겨 두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좋지 않았던 일을 더 기억에 남겨 두는 성격인지도.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날과 그 전후로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로 밖으로의 나들이를 피하도록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안에만 있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닌 까닭에 오늘의 이 추위는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아직은 우습다면 우스울수 있는 자존심에 겨울 파카를 입고 다닐 수는 없고 그저 약간 두꺼운 남방과 마이 한벌로 날씨를 견디고 있다. 어서 12월이 되서 파카를 입어도 부자연스러울 것 하나 없는 날씨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날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방에서 바깥 풍경을 보면, 참 따뜻해 보인다. 사람의 생각이란게 어찌나 간사한지. 아마 ...

폭풍의 언덕

워더링 하이츠... 그 열병같고, 바보같은 사랑 이야기.

너트메그와 너그메트

태엽감는 새를 두번째 읽던날, 나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녀의 이름이 가하사라 메이 가 아니라 가사하라 메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종종 책에 등장하는 이름을 내가 발음하기 편한 식으로 바꿔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나타날 때면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어 버리고 잘못된 이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태엽감는 새를 십여차례도 더 읽었을 무렵에 그것도 세번째 권을 읽다가 나는 또다른 등장 인물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카사카 너그메트 가 아니라 아카사카 너트메그 라는 것을. 난 도대체 무엇을 제대로 알고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마치 내가 전에 읽을 때에는 분명 너그메트 였는데 이후 누군가가 교묘하게 너트메그로 바꿔 버린 것 같은 이 느낌. 새벽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잠,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4일째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기고 있다. 언제 알람이 울었는지, 언제부터 창문 밖에 자동차들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소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잠에 빠져들어 있었던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깊이 잠든 것이며 그때문에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좀 다른 문제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지만 그것은 분명, 잠이 덜 깨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여느 아침의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난 순간적으로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는데 무언가 찝찝하게 끈끈한 것이 낸 몸 전체에 늘어 붙어서 날 뒤쪽으로 잡아 당기고 있다. 그리고 미간에는 술을 마신 다음날 내쉰 숨 같은 것이 덩어리로 뭉쳐서 늘어붙어 있다. 온몸을 휘감고 있는 찝찝함은 그 미간의 덩어리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의 느낌이다.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미간의 그 느낌이나 온몸의 끈끈함에 몸을 맏기면 그대로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이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야 날 다시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 낼 수 있다. 그 한두시간은 그야말로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로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뒹구는 잠이 아닌 모든 의식이 배제된 상태이다. 즉, 나는 내가 잠이 들려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두번째인가 세번째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때 필사의 노력을 해서 몸에서 그 끈끈함들을 떨쳐 버리고 미간의 덩어리를 밖으로 뜯어내고 나면 난 완벽한 무기력에 휩쌓여 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할 힘조차 없는 그런 완벽한 무기력이다. 그렇게 맞이한 4일째 아침.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헤매게 만드는 것일까. 그 원인모를 느낌에 사로잡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것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바뀐 것이라면 방이 무척 지저분해 졌다는 것과 목캔디 한통을 거의다 먹었다는 사실이다. 적...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까?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스발을 사랑하게 된 율리아나 공주가 파킨스 신부에게 물어본 말이다. 거기에 대해 파킨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고.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가?” 다만 살아가기는 하는게 사람이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도 만족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게 바로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만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까? 삶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까? ... 가능할것도 같다. 앞을 보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한 사랑도 제법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난? 지나치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에따른 공포도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벨로린은 현재를 모두 알 수 있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공포도 느껴야 했지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추가로 느껴야 하는 법이다. 난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뒤바뀐 고향

(2001년도에 쓴 글을 옮겨 놓은 것) 며칠간의 짧은 청주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바로 학교에 들려 몇가지 볼일을 보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을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며칠동안 제대로 치우지 않아 너저분한 술병들과 쓰레기들. 그렇지만 그와 함게 찾아온 것은 ‘편안함’ 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청주에 가고싶고, 그래서 무작정 내려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던 때가 있었다. 1995년도...대학에 입학한 그 해에 그랬다. 그런식으로 무작정 수업까지 빼먹고 평일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황당해 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 했던 적도 있었고. 그때로 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난 그러한 마음의 고향이 뒤바뀌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서울이 더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그건 아마도 하숙집이 아닌 내 방이 생긴 이후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소중함이 곧 편안함으로 바뀐것은 아닐까. 지금도 내 방에는 컴퓨터의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다. 그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이란. 이 편안함 때문에 난 항상 술한잔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걸까. 지금 스피커에선 Air on the “G” string 이 흐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중 하나. 무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읽을 거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