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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마

어느덧, 매미소리가 잦아들어가면서 귀뚜라미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인식시키기라도 하듯,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비가 오고 있다. 혹자는 늦장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여름의 마지막 인사가. 유난히 더운날이 적었던 여름이었다. 온 세상이 떠내려 갈 것 같은 폭우도,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던 열대야도 없었다. 더울만 하면 비가 내려 이 도시의 열기를 식혀버리고, 그렇다고 긴 장마를 지나치지도, 여느해처럼 쉴새없이 올라오는 태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이 태풍이 일본열도로 갈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상륙할 것인지를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 보듯 했던 시기도 없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참 “조용히” 지나간 여름이다. 남부지방은 비피해도 제법 있었다지만, 내 체감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일들을 억지로 인식하려 애쓰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조용히 지나가던 여름이 아차 싶어서 늦게나마 장마를 불러오고 있는 이유가. 며칠째...근 일주일이 넘도록 우중충한 하늘과 연일 쏟아붇는 빗줄기를 봐야만 했다. 공식적인 장마철에마저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서울 하늘의 먼지들이 많이 씻겨졌는지, 간간히 개인 하늘은 가을하늘이 무색할 만큼 파랗고 예뻤다. 지나치게 많이 나온 수리비 견적으로 수리를 포기해 버린 내 카메라가 아쉬울 만큼..그만큼 예뻤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다. 이 비가 끝나고 나면 이제 가을이 시작될 거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입밖으로 내어 말한다고 구박할 수도 있지만, 세상엔 사랑과 같이 다 아는 사실도 소리로 변화시켜 내보내야만 다가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그냥 멀어져 버리는 것들도 있다. 다시금 다가오긴 하지만, 계절은 분명..그런 존재다. 입밖으로 내지 않으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쳐서 멀어져 버리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매년 가을이 오면, 난 계절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계절을 멈추고 싶다는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계절이라는 ...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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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인가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라고. 그러면서 고향 집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정말 우습게도, 그런 생각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 기다려지던 매미 울음소리, 바람이 불때마다 들려오는 커다란 활엽수들의 음악까지도. 그저 덥다는 생각과, 에어컨 바람이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구실과 집을 오갔을 뿐이다. 깨달음은 순간에 찾아온다. 책을 한권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나오기 위해 도서관의 회전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랄만큼 커다랗게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뒷사람이 회전문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내 등을 가볍게 밀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동안 난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채 멍하니 서있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매미 울음 소리가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 것이. 혹시 내가 도서관에 들어갈때까지는 매미들이 울지 않고 있었다가 공교롭게도 내가 도서관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맞춰서 울기 시작한걸까? 상식적으로 그럴 확률은 너무나 작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다. 지금 내 방의 달력이 아직도 6월인 것처럼, 난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 하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만큼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1999년 겨울이 다가오는 것 역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고 이번에는 2003년의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그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면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력이 한달전것이니 양호한 편이다. 심할때는 세달 전인 경우도 있었으니까. 시간이 이토록 의식의 뒷면을 타고 몰래 흘러 버린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겁다. 누가 했던 말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은 돌아보며 아쉬워 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쳐 보내야 할 대상이다. 어느책에 나와있는 말인지는 아니까 누구의 말인지 마음만 먹으면 정확한 문장과 함께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온 세상을 덮어...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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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치 죽는 것 처럼 보일거야.”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여러해 전인 생땍 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왕자가 노란뱀에 의해 그의 소혹성 B612호로 되돌아 가기 전에 ‘나’ 에게 이야기 하는 말중 하나이다. 죽는 것 처럼 보일거야. 나이가 들수록 큰 감동으로 읽었던 소설은 몇개 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 이 소설들 중에 가장 많은 횟수의 정독을 이끌어 냈지만 그 소설을 처음 접한 건 1996년 가을 이었고(그러고 보니 빌린 책인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원 주인은 돌려받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 물론 그 소설역시 읽을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곤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몇년마다 한번씩은 꺼내서 읽게 되는 소설이라면 단연코 ‘어린왕자’ 이다. 지금껏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본다면 내 생에서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은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내 노트북을 켜면 로그인 화면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Welcome to minor planet B612 오늘 아침에 문득, 어린왕자의 여러 장면들이 생각이 났고 배경화면을 바꾼 김에 노트북의 이름까지 B612호로 변경했다. 지금껏 부르기 쉬운 명사로 해서 인격을 부여해 왔던 것에 비하면 부르기도 까다롭고 ‘어린왕자’의 내용에서도 나왔듯이 전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아서 이름조차 없고 그저 식별번호로만 불리우는, 그런 존재처럼 되어 버리긴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족감에 하루종일 내 노트북을 바라보면서 흐뭇해 했다. 공교롭게 지금은 홍순관님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 을 가사로 해서 부른 동명의 노래 ‘귀천’ 이 흘러 나오고 있다. 어린왕자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 보니 참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달력을 보니 어느덧 5월이다. 이미 현재가 5월임은 알고 있었지만, 내 방 책상에 앉아 정면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아직도 4월이었다. 그리고 그에대한 반작용으로 난 현재가 5월임...

Nowhere in Africa

언제부터인지 해가진 후의 노천극장에서는 오카리나 소리가 들려온다. 한적한 휴일 오후나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앉아서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 된 듯 하다. 그게 한명인지, 아니면 몇명이서 부는 거라서 매일같이 부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은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사건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 순간만 고개를 갸웃하면서 바라볼 뿐 잠시후면 까맣게 잊어 버리곤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강하게 인상이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노천극장 옆의 비탈길을 빠른 속도감을 느끼며 내려가다가 무심코 브레이크를 잡고 속도를 늦출 만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몇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조차도 귓가에 그 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을 만큼 내 마음에 불쑥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있다. 조금전에 노트북으로 본 영화 때문에 더욱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Nowhere in Africa. ‘어바웃 슈미츠’ 이후에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접했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에는 영화를 보면서 수확이 많은 것 같다. 비록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의 중요 장면마다 -정상적인 시점이라면 중요한 시점이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지만 그런 장면마다 특정한 음향효과를 내는걸 보면 감독역시 의미를 부여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등장하는 나이어린 소녀의 허밍 두소절.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멈춰서서 들었던 오카리나 소리와 겹쳐서 들려왔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간혹, 몇해전의 국토종주때처럼 모든것을 잊고 그저 걷기만 했으면 싶을때가 있다.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 에 나오는 와타나베와 구미코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먼 곳으로 대학을 진학했듯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설속의 그들은 같은 시기의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또...

쟈스민, 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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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산 쟈스민이 꽃을 피웠다. 쟈스민을 샀다는 말에 친구가 인터넷에서 찾아준 재배법에는 쟈스민의 개화기는 7,8월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꽃이 가장 많이 팔리는 봄철에 내놓기 위해 하우스에서 키워온 꽃들에게 계절은, 크게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덥던 며칠의 시간이 지난후에 태어나서 처음, 내 손에서 꽃을 피운 화분을 보았다. 어느날 아침에 맞이한 그 경이로움. 그 경이로움을 기억속에 강제하고자 사진을 찍었지만 과연 그것이 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각이 많다. 지나가 버린 사건은 ‘과거’에 남겨 두어야 하는것이 아닐까. 과거를 현재에 속박 시키면 그것은 미래에 고통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런 꽃에 대한 기억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고는 있지만, 머리속을 파고드는 한가지 생각은 사라지질 않고 있다. 모든것이 확실해져서 더이상 이런 시간들을 겪지 않아도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에 속박해서는 안된다는걸 나 자신이 이해가 아닌 납득을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Pen &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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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을 하던 그 해 겨울방학이 내게는 참 특별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항상 집에서 사주는 것만을 읽었던 아이에서 내가 읽고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에 가서 죽치고 앉아서라도 읽어야 하는 아이로 바뀌었고 그때문에 집에서 처음으로 등록해준 학원을 한달이나 빠져야 했다.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학원앞을 지나쳐서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시내까지 걸어가 서점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서 책을 읽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그 서점의 출입구를 딱 막아 버리고 내가 그 안에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을 때까지 나 혼자만 그 서점을 소유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책을 좋아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책을 좋아했기 때문일까? 학교에서 시켜서가 아닌 혼자 쓰고 싶어서 처음으로 글 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수필이나 다른 것도 아닌 ‘시’ 였다. 멋진 시라는 것은 아름다운 어휘만을 골라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하나가득 내 생각에 아름다운 단어들만을 골라서 채워 넣었던...참 유치했던 시였지만 그 시로인해 난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절묘하게도 내가 진학했던 고등학교에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 문학회가 있었다. 그리고부터 만으로 꼭 10년이 흘렀다. 그때 이후 내가 가장 많은 소재로 삼아왔던 사물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난 두말하지 않고 ‘비’ 라는 사물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감정이나 전반적인 풍경이 아닌 단지 어떤 사물 자체를 내 글의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 글의 가장 큰 소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난, 비가 온다는 것에 대해 유난히도 많은 감흥을 느끼는 것일가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비에대해서 나만큼의 감흥을 느끼는 것일까. 정말로 오랜만에 시원하게 비가 오고 있다. 며칠동안 오후의 햇살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낄정도로 날이 덥기도 했...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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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의 적용을 받지않는 일요일이다. 일어나긴 평소와 같이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한시간 반이 넘도록 계속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이니까 신나는 음악을? 나한테 그런 음악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드디스크에 무작위로 들어있는 mp3 파일중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배의 컴퓨터에서 목록도 확인한하고 3기가 정도로 긁어온게 전부니까 아마 들어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 파일들은 잘 듣지 않는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 선배와 난 음악적 취향이 대단히 다르고 그런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이 일부러 모아놓은 음악 파일중에 마음에 드는게 많을리가 없다. 결국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파일들을 찾아야 했다. 실시간 음악방송 사이트들은 소용없다. 윈도우 전용으로 구성된 그 홈페이지들을 리눅스 환경을 사용하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Dawn.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벽, 여명 뭐 대충 그런 뜻이다. 다른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는 최근 들어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무리 정확하게 옮겨도 옮길 수 없는 것이 언어이다. 문득 창 밖을 봤고, 내 방 창문에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본게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떠올렸다. 더욱이 눈이 덮인 서울의 새벽을. 서울은 대도시 답게 눈이 잘 오지 않는다. 아마 어지간한 눈은 모두 내리다 녹아 버리겠지. 이 도시에서 소모해 버리는 열은 주위의 환경과 자연을 수십억번 바꾸고도 남을 만큼일테니까. 그렇게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새벽..이라는 단어가 아닌 dawn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중에 dawn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는 것이 있던가? 우습게도 Third dawn이라는 부제로 발매된 온라인 게임인 Ultrima online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다지. 결국 웹사이트를 뒤지며 다녔다. 내가 기대했던 글이나 풍경보다 상업적인 사이트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의 검색 사이트에서는 의외로 새벽 기도회 같은 종교적인 사이트들이 눈에 띄었지만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