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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퇴근하려고 회사를 나서는 와중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와 놀다 들어올거라 좀 늦을 거라구요. 평소와 달리 집에오니 저 혼자더군요. 크리스탈 잔에 술을 반잔가량 따라놓고 한줌의 땅콩과 함께 제 아이맥 앞에 앉았습니다. 지금 틀어놓은 음반은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반입니다. 서울 시청 지하철역 “예음사” 에서 제작한 음반으로 다른곳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음반이죠.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들로 선곡해서 제작한 음반입니다. 5년전에 시청역 근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시청역을 오갈때마다 예음사에서 틀어놓는 음악들을 무척 좋아하며 들었었던 기억에 구입한 음반입니다. 가벼운 술한잔과 음악. 너무 좋군요.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TV 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TV 없이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TV 를 켜놓게 되고, 드라마를 보게 되고....조용히 술한잔과 함께 수필이나 시를 쓰거나 책을 읽던 생활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더군요. 결혼한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점이 많더군요. 하지만 가끔은...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히 누리는 것도 비타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그리고 단 둘이 아닌...식구가 여럿이 되는 그때가 되면 꼭 서재를 한칸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단은 당장 지금처럼 문 안쪽은 침실이고 반대편은 집 밖인 단칸방 생활부터 벗어나야 겠지요. 그래도...그래도 앞으로 몇년 후에는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문득 눈에 들어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았다며 전화로 투덜대는 아내에게 장미 한송이를 사들고 갔습니다. 5천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을 만큼 상관에게 스트레스 받고 입맛없어 했던 아내에게 해맑은 웃음을 짓게 할 수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렇게 살기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

퇴근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화정은 지하철 3호선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사가기 전까지만 해도 지명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곳이며 그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런 곳에 지금 살고 있고 제법 만족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다름아닌, 화정까지 가는 지하철 3호선이다. 서 울 중심을 지나는 3호선을 따라 움직일때는 지금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압구정과 을지로를 가로지르는 도심지하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화정으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구파발을 기점으로 지하철 역간 거리가 3,4분 혹은 그 이상으로 멀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경’ 이 달라진다. 빼곡히 들어선 빌딩들은 모두 사라지고 얕으막한 산과 들판, 듬성듬성 혹은 오밀조밀 들어서 있는 단층짜리 민가들. 마치 어딘가 먼 시골로 내려가는 듯한 풍경을 불과 서울의 중심부인 을지로에서 20분정도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길은 신도시로 유명한 일산구로 향하는 노선이다. 난 이 구간들을 지나는 것이 좋다. 책을 읽다가도 구파발 역을 지나는 순간부터는 지하철이 땅 위를 달리는 순간순간마다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어둑어둑해진 이후에야 별 수 없지만 적어도 해가 그 꼬리를 감추지 않고 있는 시간동안 만큼은 그곳은 복잡한 도시가 아니다. 어제는 줄곧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듯이. 비 록 해가 지기전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지만 벌써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흐린 하늘을 탓하며 창 밖의 풍경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은 바로 그런 와중에 찾아왔다. 이창국 님의 수필을 읽고 있었고 귀로는 Kevin Kern 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글을 읽어 나가던 그때 내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가 헤드셋에서 흘러 나왔다. To sleep on Angel’s wings 라는 곡으로 예전에 늦장마 라는 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었던 곡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장마 시작

새벽에 잠에서 깼다. 예보되었던 것처럼 장마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밖에서 빗방울을 맞으면 멍이 들 것 같이 굵은 빗방울이 장대비로 내리고 있었다. 이랬었다. 장 마철의 비는 항상 이렇게 세차고 굵게 내렸었다. 드럼을 치듯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들의 소리를 들으며 작년 여름에도 이랬건만 어째서 잊고 있었는지 혀를 찼다. 그저 조금 귀찮은 수준의 비와, 장마비가 어떻게 다른지 왜 잊고 있었을까. ... 너 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마 작년 이맘때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가기 시작한 아버지의 몸속에선 암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한창 뜨거울 때 암 선고를 받으시고 그해 겨울이 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기까지...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동안 잊고자 노력을 많이 했지만 사실 그게 어디 노력으로 되는 일인가. 아직도 강변북로를 따라 차를 몰고 있을때면 마지막 한가닥 희망을 잡아보고자 한방으로 해보자고 청주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 있는 한방 병원으로 올라오다가 강변북로에서 교통체증에 걸려버려 발을 동동 굴렀던 그때의 초조함과 안타까움이 떠올라 눈이 붉어질 때가 많은것을. 장마가 시작됐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 비가 그치고 난 후 연말까지 어머니와 내게는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아픈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로 힘든 시기가 되리라는 것이다.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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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동안 계속 한 ‘장소’ 에 대한 상상을 하고 있다. 바다와 바로 인접해 있는 곳이고 방파제 위로는 하얀 돌벽들로 둘러쌓인 집들이 가득한. 유리창 보다는 나무로 된 덧창이 어울리는...그런 집들이 가득한 해안가의 마을을 상상한다. 분명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어느 영화에서 보았거나, 혹은 만화영화에서 보았으리라. 어 쨌든 그런 상상속의 장소를 돌아다니며 난 꼭 한번 그런 곳에서 지내 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그리고 책상 앞에서. 갑작스럽게 그런 영상을 떠올리기 시작한건 며칠전부터 두번째로 읽기 시작한 냉정과 열정사이 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그 이야기들의 영향이. 이렇게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바래본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상상하기 보다는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겠지. 일은 너무나 바빠 하루가 부족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난 책 한권으로 인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다. 오늘 새벽에도 3시가 넘어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난 지중해를 꿈꿨다. 어둡고 온통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만으로 가득한 그 좁은 곳에서 난 꿈을 꾸는 것도 아닌 상상에 파묻혀 있었다. 지중해의 어느 도시. 혹은 어느 섬. 언젠가 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실만큼의 그곳에서 몇개월이라도 삶을 누려 보고 싶다. :-)

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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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대문 밖 칠패시장. 혜촌 김학수] 모두가 봄을 준비하던 때에 갑작스럽게 찾아와 미친듯이 함박눈을 퍼붓고 옷깃을 여미게 만들던 꽃샘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갔다. 연구실 동기의 말처럼 아무 감흥없이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며칠전의 폭설때문에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인간이 만든 달력상에선 한해의 시작이 1월일 수 있지만 체감으로 다가오는 한해의 시작은 봄이다. 얼어붙었던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시간이야 말로 한해가 시작한다는 느낌에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어제오던 눈이 오늘도 오고 추위도 매한가지인 12월과 1월 사이에서 달력이 넘어간다는 사실로 인해 자기암시적으로 기뻐하는 새해맞이와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쪽으로 공유되는 계절이라는 점에서도 겨울은, 한해를 구분짓기에 적합하지 않다. 2003년의 겨울은 2004년의 겨울과 이어진다. 올해의 난...그 사실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깨달았었다. 잊고 싶었던 모든 기억들이 해가 바뀌었음에도 달라진 것 없이 나를 얽매여 온다는 그 사실에 모든것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싶을만큼 힘들었었다. 그리고..그렇게 힘든 시간속에서 난, 2004년이라는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공감할 수 없었다.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정말로 신기하게도 요 며칠사이 난, 그동안 날 짓눌렀던 몇가지 일들을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었다. 마치 헌 것의 의미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것 처럼. 그리고 향긋한 녹차 한잔을 손에 쥐고 창문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봄마을’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다. 한동안 온라인에서 대화명으로 쓰기도 했던 그 단어를. ‘마을’ 이라는 단어에 아무런 조사 없이 바로 붙여서 어울리는 계절은 봄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주는 포근함으로 인해 난 지금도 ‘봄마을’ 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아무 수식어 없이 적혀 있어...

Calling you

I’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m calling you. I know you hear me. -------------------------------------------------------------------------------- 가사가 너무나 슬픈 바그다드 카페의 OST 중 하나인 calling you.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머리속을 지배해 버린 멜로디지. 나만 그런것은 아니겠지? 아침에 눈을 떴을때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하루종일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말이야. 지금은 저녁 7시이고 연구실이야. 연구실에 나와있던 선배와 둘이서 저녁을 시켜먹고나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 일요일의 일상은 참으로 단조롭지. 아침에 일어나서 주중에 거의 하지 않는 세탁물 정리를 하고 방안에다 널지. 어딘가 볕이 잘 드는 곳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방이 그런 공간을 갖고 있지 않고 더욱이 방이 북향이라 바짝 마른 옷을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어. 마르지 않는건 아니지만 햇볕에 잘 마른 옷과 그냥 마른 옷은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거든.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컴퓨터로 영화를 한두편 보다가 점심을 먹고나서 학교에 올라왔어. 특별한 약속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날은 이렇게 별 일 없이 학교에 올라와서 시간을 보내곤 해. 그리고 그렇게 학교에 와서, 다시말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오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Calling you 의 mp3를 찾아다닌 것이지. 워낙 유명한 곡이라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랄까. 간혹 음악에 취해있을때가 있어. 이것저것 한다기 보다는 하나에 몰두하는 성격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다른 곡을 듣지도 않고 그 곡만 계속 반복해서 듣지. 가장 처음은 조지윈스턴의 December 앨범이었어. LP 였는데 판에 기스가 날때까지 반복해서 들었지. 이후에 CD로 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사지도 못하고 있다. 그 LP를 샀던게 내...

Kiss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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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is Blinov, Rain, 1997] 비에 어울리는 음악은 흔하지 않다. 곧게 내리는 그 형상만큼이나 비는 소리를 동반한다. 창문 너머로, 혹은 캔버스의 저편에서 보여지는 비는 마치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듯 그렇게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소리로 모습으로.. 그렇게 비는 우리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가끔씩, 비는 그러한 소리를 내게 보내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적절한 음악이냐가 어려울 뿐이다. 단순히 비올때 들을만한 음악이라면 당장이라도 수십곡을 댈 수 있겠지만 비오는 것을 보고있는 바로 그 ‘순간’에 어울리는 곡은 그런 음악들 중에서도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림속 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는 일상은 바로 그러한 ‘순간’ 이지만 음악은 ‘순간’이 아닌 ‘시간’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비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은 날은 이처럼 기쁜 것이겠지만. 가을은 비가 온다는 사실이 상쾌함보다는 우울한 분위기를 내는 계절이지만 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으로 비의 소리를 대신하고 누군가와 함께 거리를 거닐 수 있다면, 가을비라는 단어가 주는 감성이 그렇게 우울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Boris의 그림속 두 남녀의 옷차림과 풍경은 쌀쌀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이 그림이 따뜻하게 보이는건 아마, 그 둘이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Kiss The Rain. 언젠가...그 언젠가가 ‘지금’ 이 되는 그 날엔 바람이 불지 않아 곧게 선을 긋는 차분한 가을비가 내리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