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생일

내 방 책상 앞에는 달력이 하나 걸려있다.

올 초에 집에서 가져온 달력인데 집에서 가져오던 날 어머니께서 집안의 행사들과 어른들의 생신등을 표시해서 주신 덕에 여기저기에 동그라미와 함께 이런저런 말들이 적혀있다.

평소에 달력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자주 본다기 보다 거의 보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정도의 비중이라면 맞는 말일까? 워낙 집에 있는 시간이 짧은 탓도 있지만 날짜 보다는 요일로 시간을 따지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 답게 나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요일로 느낀다.

오늘은 월요일...오늘은 수요일..오늘은 토요일..

어쩌면 직장인들보다도 학생들이 더 요일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학생들에게는 각 요일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드는 “시간표” 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학생에게 1년은 7일일까? 1년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인식하는 시간단위의 핵심이 7일 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겠지.

그런 이유로 어느날 문득 달력을 바라보면 한달전인 경우는 물론이고 가끔씩 두달전 달력이 그대로 걸려있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문제는 그걸 보고도 그저 피식 웃고는 넘어간다는 것. 오늘 아침의 내방 달력은 4월이었다. 어째서 4월일까를 고민하다가 중간고사때 날짜를 따져보느라고 달력을 자주 쳐다봤던 일이 기억났다. 아하, 그랬구나. 뜻밖의 사실을 알았을때의 유쾌함. :-)

그렇게 지난 시간에 잡혀 있는 달력을 들어서 묵은 시간들을 뜯어 냈다. 그러고 보니 5월달에도 집안 어른들 생신이 몇번 있었다. 내가 굳이 챙겨드릴 필요는 없는 분들이라 집에서도 별 말씀이 없으셨겠지만. 재밌는 사실은 분명 그런 메모를 남기신 분은 어머니인데 쓴사람은 나인것 처럼 되어 있다. ‘외숙모 생신’ 이라던가, ‘작은아빠 생신’ 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풋. 난 ‘아빠’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지 꽤 오래 됐는데. 어머니께는 아직도 내가 아빠, 엄마 할때의 모습으로 남아있나 보다.

그렇게 달력을 보면서 또 한차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건, 6월 10일에는 동그라미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들 생일’.

아마 당신께서도 인식하지 못하셨을거다. 애써 내 입장에서의 호칭으로 이런저런 행사를 적어나가시다가 내 생일에 이르러서는 그런 생각에 앞서 아들생일 이란 단어가 앞서서 튀어 나오셨겠지. 나한테 아들이 있을리 없으니까. :-)

2002년 6월 10일.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맞이하는 8번째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