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어렸을 때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 집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던 시기부터는 단 한차례도 이사를 가지 않았고 그나마 이사를 다녔던 시기도 걸어서 30분 안쪽의 동네들 안에서(적어도 내 기억에는) 다녔던 것이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수년만에 찾아왔을때의 느낌 같은건 경험에 없다.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도 오늘 난 그런 경험을 했다.

95년 겨울부터 96년 겨울까지 정말로 많은 횟수를 찾았던 동네를 오늘 다시 찾아 갔다. 처음으로 그 동네를 찾아갔던 것과 비슷한 시간대에 두번째 찾아갔던 것과 유사한 이유로.

7년전에 걸었던, 그리고 유난히도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길, 골목등이 다시금 눈에 띠면서 느끼는 감정들. 그건 반가움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그곳이, 비록 골목 어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가게들은 변했지만 풍기는 느낌과 구조가 변하지 않은채로 그냥 있다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괜스런 즐거움에 주위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만들 정도로.

언젠가의 글에도 썼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감정의 해석이다. 7년전에 겪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한 지금의 내 감정이 평온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 곳의 기억이 반가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좀더 과거였다면 그건 굉장히 괴로운 풍경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더욱 확실하게.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흐름과 무관하게 반가움과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애써 그러한 즐거움을 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무엇이 지금의 날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분명 납득하기 어려웠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이해하고-납득해 버리는 이 모습은. 그리고 덕분에 난 나쁜 기억이 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지금 이순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물론 먼 훗날 지금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어째서 그때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는지를 화낼지도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건 현재지 미래에 내가 어떻게 느깔까를 고민하는 건 미래의 나한테나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난 즐겁고 편안하다.

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는 훨씬 춥기도 했지만, 그때 두리번 거리며 걸었던 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건 좀 복잡한 질문이다. 사람이 변했는가는 쉽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 그 사람의 모든면을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그때와 다른 모습인지, 아니면 그때도 있었는데 내가 못느꼈던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7년의 시간동안 내가 많은 부분에서 변했듯이 다른 이들도 변했으리라 생각을 한다. 그 모습이 내가 느끼기에 좋은 쪽인가 나쁜 쪽인가는 이런 논의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 사람과의 만남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턱이 얼어버릴 것 같던 추위와, 난생 처음 들이켜본 소주병 나발에 대한 기억과, 20층을 올라가던 엘리베이터 그리고 올림픽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처음 먹어봤던 돌같이 딱딱했던 과자에 대한 기억까지.

넘치는 과거의 기억속에 휩쓸려 현실 감각을 잃어버릴 것 같은 밤이 다가오고 있다.